한국인이란 이유로 쫓겨났다, 망친 여행 보상은?

손민호 입력 2020. 2. 26. 00:04 수정 2020. 2. 26.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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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업계 "사상 초유의 사태"
관련 규정 없어 보상금·보험 애로
정부에 책임 묻는 것도 쉽잖아
남은 경비는 협의 통해 환불 가능
귀국 항공 요금 떠안은 여행사도
지난 23일 이스라엘 하르 길로 지역에서 열린 한국인 관광객 격리수용 반대 시위 모습. 거리로 나온 시민들이 타이어를 불태우고 있다. 이스라엘 내 한국인 200여 명을 예루살렘 근처 군기지에 격리 수용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역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로이터=연합뉴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비행기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추방당한 이스라엘 사례는 충격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차단이 이유겠지만, 한국인 탑승객들은 아무 사전 정보 없이 일방적으로 쫓겨났다. ‘코리아 포비아(한국 기피증)’가 확산하면서 이스라엘 같은 ‘사상 초유의 사태’가 속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행금지국가를 방문한 것도, 천재지변이 생긴 것도 아닌데, 여행자들은 억울하고 분하기만 하다. 보상은 받을 수 있는 걸까.

22일 이스라엘 정부는 대한항공 KE957편을 타고 텔아비브 벤구리온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130여 명을 그대로 한국으로 돌려보냈다. 곧이어 한국 여행객과 교민도 철수를 권고했다. 24일 이웃 나라 요르단도 같은 조처를 했다. 두 나라를 여행 중이던 한국인은 부랴부랴 대체 항공편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이스라엘과 요르단은 한국인 성지순례객의 필수 코스다. 지난해 이스라엘을 여행한 한국인 약 6만4000명 중 4만 명이 성지순례객이었다. 한국의 성지순례 전문여행사 50여 곳 대부분이 이스라엘과 요르단을 묶은 패키지상품을 운용한다. 이스라엘~요르단 12일 상품이 보통 300만원이다.

보상과 관련, 법무법인 ‘안다’의 조용주 대표변호사는 “여행사 책임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여행사 잘못으로 여행을 망친 것이 아니어서다. 조 변호사는 “일종의 불가항력의 상황”으로 판단했다. 이 경우 채무자(여행사)의 귀책사유는 없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코로나19 관련 각국의 한국 여행객 조치 현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보험도 해당 요건이 없다. 모리셔스에 격리됐던 신혼부부 17쌍도 “보험을 통한 보상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게 여행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드림아일랜드’ 김정완 이사, ‘모두투어’ 원형진 차장). 평생의 여행을 망친 신혼부부에겐 억울하고 분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여행 경비 일부는 돌려받을 수 있다. 여행을 중간에 중단한 경우 여행사는 약관에 따라 남은 여정의 경비를 돌려줘야 한다. 다만 여행사가 해당 호텔이나 현지 여행사로부터 환불받아야 하는데, 언제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성지순례 전문여행사 ‘두루투어’의 배근홍 매니저).

대금을 지불하고 예약했지만, 출발 전 소비자가 그 여행상품을 취소할 경우에도 100% 환불 보장이 어렵다. 여행사가 이미 현지 호텔과 항공사에 대금을 줬기 때문이다. 돌려받아야 돌려줄 수 있다는 게 여행사 입장이다.

25일 이스라엘 정부가 내준 전세기로 돌아온 221명은 항공 요금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여행사가 원래 예약한 항공편이 아니라 다른 항공편으로 급히 돌아오는 경우는 다르다. 보통 여행사가 먼저 티켓을 산 뒤 여행자에게 청구한다. 여행자가 돌려받아야 할 남은 여정의 경비를 귀국 항공 요금에서 제하기도 한다.

귀국 항공 요금을 떠안은 여행사도 있다. 지난 24일 이스라엘에서 고객 32명을 급히 귀국시킨 ‘다비드 투어’의 이윤 대표는 “성지순례는 여느 패키지여행과 달리 단골 교회 고객이 많다”며 “손해를 감수하고 항공권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현재 코리아 포비아의 가장 큰 문제는 한국 정부는 모르는 채 현지에 도착한 한국인이 격리되거나 추방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중에 사태를 파악하고 해당 국가에 “엄중 경고”하는 게 외교부의 주요 조치다. 조용주 변호사에 따르면 이런 사태가 여러 나라로 확산한다면 한국 정부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여행자 입장에선 불법행위, 즉 여행금지국가를 방문한 것이 아니어서다. 그러나 여행자가 한국 정부의 과실을 입증해야 한다.

태국·베트남·필리핀 등 항공편도 속속 줄고 있다. 항공편 감소는 코리아 포비아와 다른 사례다. 항공사가 텅 빈 비행기를 띄우며 손해를 보느니 쉬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결과다. 항공사 스스로 항공편을 취소했으니 항공요금은 당연히 전액 환불된다. 운항 중단을 발표한 항공사는 해당 날짜에 예약한 승객에게 전액 환불해주겠다고 밝혔다.

호텔 예약의 경우, 국내 여행사를 통해 예약했으면 여행사에 요청하면 된다. 아고다·익스피디아 같은 온라인 여행사(OTA)에서 예약한 경우가 문제다. 이들 OTA는 싼 가격을 제공하면서 ‘환불 불가’ 조건을 건다. OTA 콜센터에 환불을 요청하면 호텔과 상의하라고 떠넘긴다. 호텔에 e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를 하는 수밖에 없는데, 잘 설득하면 전액 환불해주는 호텔이 의외로 많다.

한국인 입국을 제한한 나라 중엔 키리바시·사모아 같은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도 있다. 한국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싶지만, 키리바시와 사모아는 한국 참치 원양어선의 전진기지다. 동원·사조 같은 기업과 관계가 긴밀하고, 한국인 선원도 자주 드나든다. 사모아의 경우 지난해 홍역에 4000명 이상이 감염돼 60명 가까이 사망했다. 태평양 관광기구 박재아 한국 대표는 “작은 섬나라는 면역력이 없어 감염병에 극도로 예민하다”고 사정을 알렸다.

카자흐스탄도 한국인 입국자를 대상으로 24일간 의학적 관찰을 한다고 발표했다. 처음 14일간 매일 의료인의 문진을 받고, 이후 열흘은 전화 등 원격 점검을 받아야 한다. 카자흐스탄 스키여행상품을 운용하는 ‘헬로스키’ 관계자는 “알려진 바와 달리 한국발 항공편은 기내에서 1회 체온 측정, 설문지 작성 및 체온 재측정 정도의 절차만 거치고 있다”고 전했다.

손민호·최승표·백종현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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