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유령' 조너선 록스머스, 더 슬프고 더 외로운 그러나 로맨틱한 유령

남지은 2020. 2. 24.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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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만 내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브래들 리틀 이어 한국 무대 오른 새 유령
드라마틱한 느낌 살려 관객 매료
"리틀 인기 많아 부담됐지만
따라가지 않고 나만의 유령 만들어"
9년 전 최연소로 뽑힌 '준비된 유령'
역대 유령 맡은 배우들 연구해
"소맷단 잘라 손 강조..손으로도 감정 표현"
서울·대구까지 7~8개월간 '원캐스트'
다음 공연 새달 14일부터 블루스퀘어
7년 만에 내한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유령’을 맡은 조너선 록스머스를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만났다. 그는 깊은 음색과 연기로 유령의 아픔을 더 짙게 표현하며 한국 관객을 사로잡았다. 에스엔코 제공

지난 크리스마스이브의 늦은 오후.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만난 그에게 마카롱을 건네자 온몸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선 굵은 외모에 덩치 큰 남자가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변하는 순간이었다. 립서비스도 빼놓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처럼 멋지군요. 오늘이 내 최고의 인터뷰예요!” 사랑에 모든 걸 던진 남자, 로맨틱한 ‘유령’이 눈앞에 서 있었다.

조너선 록스머스. 7년 만에 내한해 지난 2월9일 부산 공연을 끝낸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그는 유령 배역을 맡고 있다. <오페라의 유령>은 1986년 영국 웨스트엔드, 1988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각각 초연한 세계적인 작품이다. 우리나라에는 2005년과 2012년에 이어 7년 만인 2019년 세번째로 찾았다.

누가 유령이냐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전 두번의 내한공연에서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유령’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브래드 리틀이 연기했다. 팬들 사이에서 ‘빵 아저씨’로 불릴 정도로 친근한 느낌과 감미로운 목소리로 인기를 얻었다. ‘유령=브래드 리틀’인 줄 알았는데,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인상 짙은 젊은 배우가 등장하니 팬들은 반신반의했다.

록스머스도 그게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었다. “리틀이 한국에서 어떻게 연기를 해왔고, 얼마나 사랑받는지 잘 알기에 그의 뒤를 이어 유령을 잘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어요. ‘비슷하게 해야 하나’ 싶어 연출과 상의도 했지만, 따라가려고 하지 말고 나만의 유령을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그가 표현하는 유령은 리틀에 견줘 극적인 느낌이 강하다. 동작은 더 크고 목소리는 다소 거친 듯 굵은데, 그런 특징이 애절함을 더 강조하며 사랑에 아파하는 유령의 고뇌를 잘 드러낸다. 더 슬프고, 더 외로운 유령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부산 공연은 점유율이 90%에 육박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에스엔코 제공

한국 관객을 단숨에 사로잡은 데는 그가 오랜 노력을 거쳐 탄생한 ‘준비된 유령’이기 때문이다. 2004년 남아공에 온 오리지널 팀을 보면서 인터미션(쉬는 시간)에 친구에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저 공연을 할 거야.” 그리고 7년 뒤 그는 25살에 역대 최연소로 진짜 유령이 됐다. 2011년 12월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유령 데뷔 무대를 가졌을 당시 “새로운 유령이 탄생했다”는 극찬이 쏟아졌다. 월드투어 데뷔는 2012년 마닐라에서다. 그는 “이미 어렸을 때부터 유령을 꿈꿨고,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준비해왔다”고 말했다. 그가 자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금껏 영국에서는 약 16명, 미국에서는 약 18명의 유령이 거쳐 갔다”는데 모든 배우의 영상을 찾아보며 연구했다고 한다. “유령 중에 마이클 크로퍼드를 가장 좋아해요. 그는 최고에요. 노래를 한다거나 대사를 한다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진짜 그 사람이 돼서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하죠.”

록스머스가 영리한 점은 그들의 장점을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흡수했다는 것이다. 그가 연기하는 유령을 보면 유독 큰 손이 눈에 들어온다. 일부러 소맷단을 짧게 잘라 손목까지 훤히 다 드러냈다고 한다. “제가 표현하는 유령은 몸짓을 크게 하며 손끝으로도 감정을 표현해요. 그래서 손이 잘 보이도록 일부러 소맷단을 잘라달라고 했죠. 역대 유령 중 크로퍼드가 사용하던 방법이에요.” 크로퍼드처럼 그도 가면을 쓴 오른쪽 눈에 하얀색 렌즈를 착용했다. 불편해서 굳이 착용하지 않는 유령도 많은데 디테일을 살리려고 택한 방법이다. “가면 속 화상 입은 얼굴도 보이지 않지만 1시간30분씩 공들여 분장해요. 그래서 제가 진짜 머리카락이 없다고 생각하는 관객도 있죠. 꼭 써주세요. 저 머리카락 있어요!(웃음)”

조너선 록스머스. 에스엔코 제공

유령은 많은 뮤지컬 남자 배우들이 꿈꾸는 배역이다. 로맨틱한 면과 거친 면, 아픈 과거 등이 뒤섞여 연기 의욕을 부추기는 인물이다. 배우로서 인정도 받고 많은 팬도 확보하게 된다. 그런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대부분 오디션을 본다. 그도 심사위원 10명 앞에서 오디션을 봤다. 그는 유령의 조건으로 “다양한 음역을 소화할 수 있어야 하고, 감정적으로 인물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체력이다”라고 말했다. “크리스틴과 라울이 잔잔하게 마라톤을 하는 느낌이라면, 유령은 100m 달리기를 하는 느낌이에요. 체력 소모가 어마어마하죠.” 실제로 <오페라의 유령>은 부산·서울·대구까지 7~8개월 동안 공연하는데 한 배우가 한 배역을 도맡는 원 캐스트다. 최근 한국에선 3명도 모자라 5명이 한 배역을 나눠 연기하는 점을 고려하면 시사점이 많다. 그는 “성대에 좋은 차를 마시고, (특정) 목캔디를 먹고, 물을 많이 마신다”고 말했다.

연기할 때 큰 틀에서 지켜야 할 원칙도 있다. 동작 하나하나를 꼬집는 것은 아니지만 유령의 감정선을 깨지 않고, 몸놀림의 동기에 대한 틀을 정해둔다. 그는 “<오페라의 유령>은 극적인 멜로드라마이기 때문에 유령 연기 역시 극대화된 스타일로 가야 한다. 그래서 크리스틴에게 오른쪽 손을 내밀 때 이렇게(왼쪽 팔을 옆으로 쫙 펴면서) 하는 등 몸으로 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큰 틀을 지키되 그 안에서 자신의 스타일로 변주하는 셈이다.

록스머스는 <미녀와 야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시카고> <스위니 토드> 등에서 주연을 맡았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유다, <캣츠>의 멍커스트랩 역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오페라의 유령>이 꿈의 역할”이라며 “유령이 실제 내 모습과 가장 비슷하다”고 말했다. “낯을 많이 가려서 사람들 앞에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아요. 하지만 유령을 연기하면서 매 순간 후회 없이 충실하게 살자는 생각을 하게 됐죠. 이 작품은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삶의 방향을 알려준 작품입니다.”

무대에서 폭풍 같은 감정이 잘 드러난 것은 그에게도 특별한 작품이기 때문일까. 어쨌든 그의 열연 덕분에 록스머스의 공연을 본 관객은 “나 같으면 라울이 아닌 유령한테 간다”는 댓글을 단다. 노래 못 해도 괜찮냐(극 중에서 유령은 크리스틴의 노래 실력에 반한다)며 나를 데리고 가라고. 유령에 빙의돼서인지 내내 차분하게 미소 짓던 그는 이 대목에서 박장대소했다. “데리고 갈 테니 꼭 공연 보러 오세요.” 서울 공연은 3월14일~6월27일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열린다.

부산/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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