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아카데미상 수상에 더 열광하는 이유

서정민 2020. 2. 14.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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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현지시각으로 2월9일 저녁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영화상 등 4개 부문을 휩쓴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출연 배우들과 함께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FP 연합뉴스

“디 오스카 고스 투… 패러사이트(The Oscar goes to… Parasite)!”

대배우 제인 폰다의 입에서 “패러사이트”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꿈과 현실 사이 중간계 어디쯤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이미 감독상을 받은 터라 최고 영예인 작품상은 대다수의 예상대로 <1917>에 돌아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기생충>이 대반전을 이뤄낸 것입니다. <기생충>은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영화상 4개 트로피를 품으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 자리를 꿰찼습니다.

안녕하세요? <기생충> 때문에 지난 한주 동안 반지하와 호화 저택, 천당과 지옥 사이를 오간 영화 담당 서정민입니다. 한국 영화계의 큰 경사에 쾌재를 부르다가도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업무량에 비명을 질렀습니다. 시상식 이후 언론은 날마다 온갖 관련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영화에서 기택(송강호)이 피자 상자를 접으며 본보기 삼은 유튜브 영상 속 캐나다의 피자 상자 접기 달인에 관한 기사까지 등장했습니다. <기생충>에 관한 거라면 복숭아털까지도 기사가 될 판이었습니다. 그만큼 온 국민의 관심이 뜨거웠다는 얘기죠.

지난해 5월을 떠올려봤습니다. <기생충>이 한국 영화 최초로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탔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칸영화제는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영화제입니다. 봉 감독은 지난해 10월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 “지난 20년간 한국 영화는 영향력을 행사했는데도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적이 없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좀 이상하긴 하지만 별것 아니다. 아카데미는 국제적인 영화제가 아니라 로컬 시상식이다”라고 답했습니다. 그의 뼈 있는 말마따나 아카데미는 한 나라의 로컬 시상식일 뿐인데 왜 사람들이 더 열광할까요?

그 나라가 미국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최초의 영화는 프랑스에서 나왔지만, 현재 전세계 영화산업의 중심은 미국입니다. 미국과 캐나다를 합친 북미 영화시장은 2018년 기준 119억달러 규모로 세계 시장의 29%를 차지하는 1위입니다. 이렇게 큰 시장에서 자국인 미국 영화 점유율은 90%를 넘습니다. 그뿐인가요? 할리우드에서 만든 영화는 자국뿐 아니라 전세계 영화시장을 휘어잡고 있습니다. 생산과 소비 모두 압도적 1위인 미국의 로컬 시상식이 단순한 로컬에 그치지 않는 까닭입니다.

지난 칸영화제에선 심사위원 9명이 특정 출품작을 대상으로 수상작을 선정했습니다. 반면 이번 아카데미에선 8000여명의 회원이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역 극장에서 일정 기간 이상 상영된 영화들을 대상으로 투표해 수상작을 뽑았습니다. 아카데미 회원은 제작자, 감독, 배우, 스태프 등 다양한 영화인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런 차이 때문에 칸영화제가 예술적 성취를 중심으로 수상작을 고른다면, 아카데미는 대중의 눈높이에 좀 더 가까운 영화들에 상을 주는 경향이 강합니다. 역대 아카데미 다관왕을 보면 <타이타닉>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벤허> <쉰들러 리스트> 등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가 대부분입니다. 이들 사이에 <기생충>이 들어갔으니 더 뜨겁게 환호할 수밖에요.

지난 칸영화제 수상 때는 <기생충>이 아직 국내 개봉하기 전이었습니다. 영화를 못 본 상태라 궁금증은 증폭됐지만, 아무래도 세세한 관심은 덜했습니다. 이번에는 상당수가 영화를 본 뒤라 <기생충>과 관련한 세세한 이슈 하나하나에 공감하며 함께 즐길 수 있었습니다. “너는 계획이 다 있었구나” 같은 명대사와 짜파구리, 제시카 징글 등 영화 속 갖은 요소를 응용한 놀이 문화가 유행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칸 황금종려상과 오스카 작품상을 석권한 영화는 미국 영화 <마티>(1955) 이후 <기생충>이 두번째입니다. 그만큼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은 드문 사례라는 뜻이죠. 이처럼 걸출한 한국 영화가 또 나오는 한편, 나름의 분야에서 성취를 이루는 다양한 영화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말 <기생충>을 다시 보는 것도 좋지만, 미래의 <기생충>이 될 또 다른 영화를 발견해보는 건 어떨까요?

서정민 문화팀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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