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아진 감염병 사이클..최소 5년 뒤 변종 감염병 다시 온다

최준호 2020. 2. 1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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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메르스, 올해 신종코로나
변종 출현 빨라지고 전파력 강해
국가중앙감염병원 서둘러 설립
보건 비상사태 사령탑 역할해야
국제 공조로 범용백신 개발해야
보건안보 시대에 경제성만 따지면
신종 바이러스 돌 때마다 패닉


김명자 객원기자가 본 신종 코로나
‘차이나 엑소더스(exodus)’. 지난 7일 오후 롯데마트 서울역점을 찾았을 때의 느낌이다. 남대문시장과 함께 외국인 관광객의 필수 코스인 이곳은 외국 쇼핑객 중 중국인이 절반을 차지한다. 요즘은 평소보다 20% 손님이 적고, 중국 손님은 며칠 전부터 자취를 감췄다. 매장 직원들의 설명을 듣노라니 마스크를 낀 채 매장을 다니는 손님들이 보인다. 마트 측은 전 직원에게 마스크와 손 소독을 의무화하고, 하루 다섯 차례 카트·문 손잡이·에스컬레이터 등을 소독하고 있었다.

김명자(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전 환경부 장관) 중앙일보 객원기자가 지난 7일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 본관 앞에 마련된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을 상대로 취재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인공지능 등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을 논하던 차에 돌연 바이러스 공포의 세상으로 바뀌어 버렸다. 전 세계 독감 사망자 수가 연평균 65만 명에 이르는데,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공포가 이렇게 큰 이유는 뭘까. 정체를 모르는 신종이라서 진단·치료·백신이 없는 상태에서 확진자와 사망자 수 통계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데다 지구촌으로 엮인 상태에서 앞으로 어떻게 번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1918년 스페인 독감 대유행에 대한 트라우마도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번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H1N1)는 3년간 당시 세계 인구 18억 명 중 5억 명을 감염시키고, 5000만~1억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두 차례 세계대전의 사망자 수를 넘어서는 인명피해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무오년(戊午年) 역병’이란 이름으로 14만 명이 사망했다.

질병과의 투쟁에서 1940년대 페니실린, 50년대 솔크 소아마비 백신 등의 개발은 한때 희망적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에볼라 등 신종 전염병이 줄을 잇고 있다. 사라졌다고 했던 페스트는 인도에서, 콜레라는 페루에서 재등장했다.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는 1999년 국제항공편으로 미국으로 들어간 뒤 2800명 감염에 1100명의 희생자를 냈다. 2002년 발생한 사스(SARS-CoV)는 8096명 감염에 774명의 사망자를 냈다. 2009년 신종 플루는 미국에서 유행한 지 한 달 만에 34개국으로 퍼졌고, 수십만 명 감염에 3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에볼라는 2014년에 서아프리카에서 창궐해 1만 명이 사망했다. 과학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의술도 화타를 울고 가게 할 정도로 발전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기후변화·세계화·고령화, 바이러스엔 기회 인간엔 위기”

김 객원기자가 서울대병원 본관 로비에서 방역복을 입은 직원에게 병원 측의 방역조치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전문가들은 21세기의 세계화, 도시화, 기후변화, 생태계 파괴, 고령화를 원인으로 꼽는다. 이들 조건은 바이러스에는 기회이고, 인간 사회로서는 위기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의하면, 2018년 비행기로 이동한 사람은 43억 명이고, 계속 증가세다. 지구촌의 너도나도 항공기로 이동하는 초연결 세상에서 바이러스는 무방비로 온 세계로 전파된다. 이대로 간다면 인류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산이 없어 보인다.

14세기 페스트 창궐, 1918년 스페인 독감 등 과거 문명사적 사건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 대유행병에 앞서 여러 해 동안 냉해 등 기상이변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신종 바이러스도 기상이변에 항생제 내성과 면역력 약화 등이 더해진 탓도 있다.

신종 코로나, 증상 초기에 전염성 강해

김 객원기자가 롯데마트 서울역점을 둘러보며 중국 관광객들이 매장에서 자취를 감춘 모습을 확인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롯데마트 서울역점을 떠나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으로 취재를 갔다. 본관 바깥쪽에 마련된 임시 선별진료소에는 찾아오는 사람이 하루 30명에 달했다. 전날보다 배 이상 늘어난 수치라고 한다. 본관 입구엔 방역복을 입은 직원 여섯 명이 양쪽으로 도열해 병원을 찾은 사람 전원의 발열 체크부터 했다. 체온 37.5도 미만으로 이상이 없는 경우 파란색 ‘출입허가증’을 내줬다. 본관 건물 내에 확진 환자 네 명이 격리 수용돼 있었으나 다행히 미열·목아픔·기침·근육통 정도의 증상이었다. 국내 확진자 24명(8일 기준)은 인공호흡기를 쓰지 않고 있다. 이번에는 메르스 때와는 달리 병원 내 발병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활동하다 감염된 경우라서 기저질환이 없는 탓도 있다. 감염에는 나이나 성별에 뚜렷한 특이성은 없으나 면역력이 변수다.

서울대병원에 따르면 잠복기(2~14일) 상태에서는 바이러스 양이 적어 증상도 없고 진단 결과가 음성으로 나올 수 있다. 이번 바이러스는 감염된 뒤 증상이 나타나자마자 바이러스가 피크를 이루다가 더 진전되면 떨어지는 특성을 보인다고 한다. 따라서 14일 동안 격리 상태에서 증상을 관찰하는 것이고, 증세가 나타날 때 검사를 다시 하면 바이러스 증식으로 양성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이번 신종 코로나는 증상 초기에 전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 이전의 사스나 메르스와 다른 점이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김연수 서울대병원장은 단호하게 경고했다. “최소 5년 뒤 전 세계적인 변종 감염병이 다시 올 겁니다. 관련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 그렇습니다.” 돌이켜보면 사스는 2002년부터,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는 2012년(한국 2015년), 신종 코로나는 2019년(한국 2020년)에 발병했다. 세계적으로는 9년에서 7년 주기로 감염병 출현이 잇따르고, 한국에서는 5년까지 좁혀졌다.

사스와 메르스에 이어 신종 역시 코로나바이러스 계열이다. 전자현미경에서 크라운(왕관)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20여 가지 중 일곱 가지가 인체에 감염을 일으킨다. 더욱이 이 세 가지는 RNA 바이러스로서 단일 염기서열이라 돌연변이가 더 빠르다. 1918년 스페인 독감에 대한 책 『더 그레이트 인플루엔자(The Great Influenza·2004)』를 쓴 존 배리(John Barry)는 21세기 대유행병의 출현은 시간문제일 뿐 불가피하다면서, 초연결 때문에 1918년의 재앙보다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렇다면 생존을 위협하는 신종 감염병에 우주까지 진출한 인류 문명은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의 공격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걸까. 김 원장은 “더 늦기 전에 ‘국가중앙감염병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했다. 평상시에는 일부 병상만을 운영하면서 전국 병원 의료진들과 시민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고, 공중보건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중앙병원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김 원장은 “관련 의료 인력을 국가중앙감염병원과 일반 병원 양쪽에 소속하도록 하는 제도를 운영하면 된다”면서 보건안보 시대에 “전염병 관리는 경제성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변종 바이러스가 이번이 끝이 아니고 계속 출현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럴 때마다 번번이 패닉 상태에 빠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한때 반짝하고 마는 정책이 아니라 보건안보 체계를 확실히 구축해야 한다. 여기에 필자는 한 가지 제안을 더하고 싶다. 국제 공조에 의한 ‘범용(universal) 백신’의 개발이다. 코로나바이러스만 하더라도 쉼 없이 변이를 일으키고 있으니 뒷북을 치는 방식이 아니라 이들 유형의 바이러스에 공통으로 두루 적용될 수 있는 백신에 대한 연구개발이 현실화돼야 한다는 바람이다. 세계적인 대유행병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국가별 대응은 물론 진정한 협력 정신에 기반한 국제 공조의 공동 연구개발로 기간을 단축해야 한다.

마스크, 실내서 사람 접촉 때 더 필요

또다시 닥쳐올 감염병도 문제지만, 당장 발등의 불을 끄는 것이 다급하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의 확산을 차단하는 수단은 국가 간 사람들의 이동을 제한하는 것이고, 별수 없이 그것이 조기에 전파를 종식시키는 길이다. 백신이 없다 보니 개인위생과 국가 방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선 손 씻기다. 마스크는 감염자의 경우 반드시 써서 비말로 인한 전파를 막아야 한다. 의료인이나 환자가 아닌 경우에는 실내에서 사람과 접촉할 때 오히려 필요하다. 마스크의 효과는 손으로 입·코·눈을 만지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할 정도다. 2003년 중국 아파트 단지에서의 사스 전파가 화장실에서 번진 것에서 보듯이 공중화장실의 철저한 소독을 잊지 말아야 한다.

■ ◆김명자

「 한국 과학기술계를 대표하는 지성이다. 1944년생인 그는 서울대 화학과 학부를 거쳐 미국 버지니아대에서 화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숙명여대 교수와 제7대 환경부 장관(1999~2003), 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17년부터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산업혁명으로 세계사를 읽다』(2019) 등 다수가 있다.

김명자 객원기자 과총 회장·전 환경부 장관

김명자 객원기자·과총 회장·전 환경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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