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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트롯’...나 때는 말이야, 보통사람들의 이유 있는 인기 [일상의 말들] (5)

입력 : 2020-02-06 10:00:00 수정 : 2023-12-28 2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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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 연휴 시댁과 친정에서 1박씩 하면서 난 올 한해 들을 트로트를 전부 들은 듯했다. 

 

가수 송가인(본명 조은심)이라는 2019년 최고의 핫 피플을 배출한 TV조선 경연 프로그램 ‘미스트롯’은 2020년 ’미스터트롯’(목요일 오후 10시 방영)으로 새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지난 1월30일 방송분에서 시청률 25.7%(닐슨코리아 기준)를 찍어  최고의 핫 프로그램으로 거듭났다. 사실 전편 미스트롯의 성공으로 미스터트롯의 흥행도 살짝 어림짐작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지난 설 연휴 양가 부모님댁에 들어서자마자 이 프로그램의 시청 유무를 묻는 부모님을 보면서 ‘이번에도 대박이군’이라고 속으로 되뇌긴 했다.  

 

트로트가 이토록 아름답고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는 장르라는 것을 알게 해준 게 미스트롯이었다면, 미스터트롯은 트로트의 장점은 당연히 ‘묻고’ 출연자들의 현란한 장기와 퍼포먼스가 ‘따블(?)’로 이어지는 알찬 구성으로 단숨에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까지 각종  퍼포먼스를 해내는 출연자들을 보며 ’도대체 얼마나 연습한 걸까’ 감탄하면서  그 노력에 물개박수가 저절로 나왔다. 

 

그들의 노력이 통했던 걸까. 70∼80대 어르신들은 명절 밥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그 흔한 정치 얘기 대신 이 프로그램을 논할 정도다. 

 

양가 부모님은 내가 머문 1박2일(각각 머문 시간, 두 집 합계 총 2박3일) 동안 재방송에 연속방송을 거듭하는 미스터트롯에 출연한 그들의 땀과 노력에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덩달아 함께 간 손자, 손녀들은 ‘할아버지 때는 말이야’ 대신 ‘저 사람들 봐라’는 말을 줄기차게 들어야 했다. 역사 교과서에만 나오는, 비현실적인 ‘나 때는 말이야’보다 눈앞에서 바로 펼쳐지는 출연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슬쩍 전달하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연초만 되면 새해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자는 말이 여기저기에서 나오지만 정작 한두 달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 싶어진다. 봄에는 꽃구경 가야 하고, ’워라밸’도 즐겨야 한다. 훌쩍 여행도 가고 싶고, 연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오는 맛집도 가고 싶어진다. 사방팔방에 유혹하는 것들뿐이다. 

 

뿐만 아니라 한 가지에 진득하게 집중하고, 한 분야를 제대로 파기 어려운 시대다. ‘N잡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기저기 다양한 영역에서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는 이른바 팔방미인도 많다. 과연 그게 전부일까. 

 

’한 우물만 파라’는 옛말이라고 놀리고 그런 발상 자체를 시대착오적인 전유물로 여긴 지 오래지만 어느 순간 빛을 보는 아는 그래도 한 가지 분야를 제대로 끊임없이 파고 견딘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각광받아야 마땅한 것이 공정하고 제대로 된 세상이다. 

 

미스터트롯에 보내는 광풍 같은 어르신들의 팬심을 보면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두렵고 불안한 이 시대에 외롭고 힘들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정말 언젠가는 빛을 보게 된다는 것을 누군가가 증명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부모님은 젊은 세대에게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꼰대의 잔소리가 아닌 애절한 트로트에 기대어서 말이다. 

 

이윤영 작가, 콘텐츠 디렉터 blog.naver.com/rosa0509, bruch.co.kr/@rosa0509

사진=TV조선 ’미스터트롯’ 캡처

 

*’한량작가’가 들려주는 일상의 말들은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낀 말들을 전합니다. 이 작가는 방송과 영화, 책 등 다양한 대중 콘텐츠를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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