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마크 못 달았지만, 분석·노력으로 우뚝선 김학범

입력 2020. 1. 28. 00:03 수정 2020. 1. 28.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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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 달인' 된 무명선수 출신 감독
경기마다 선발진 5~7명씩 바꿔
도쿄올림픽 본선 목표 3위 이상
훈련 장비를 옮기는 김학범 감독. 무명 선수였던 그는 노력으로 성공을 일궜다. [연합뉴스]

김학범(60) 한국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 감독은 ‘우승 청부사’다.

김 감독은 27일 끝난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한국을 대회 첫 우승으로 이끌었다. 한국은 결승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1-0으로 꺾었다. 2년 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이어 또 한 번에 또 하나의 우승을 선물했다.

김 감독은 이번 대회 우승 후 “아시안게임 경험이 큰 도움을 줬다. 두 팀으로 이번 대회를 준비했던 게 잘 맞아떨어졌다. 선수들이 믿음에 보답해줬고 잘해줬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한국팀에 원톱 스타 플레이어는 없었다. 김 감독은 매 경기 베스트11을 바꿨다. 누가 출전해도 이길 수 있도록 그때그때 ‘맞춤형 전술’을 펼쳤다. 조별리그 1차전 중국과 2차전 요르단과 2차전을 비교하면 선발 라인업만 7명이 바뀌었다. 우즈베키스탄과 3차전에서는 또다시 6명을 교체했다.

선수를 대거 바꾸는 ‘팔색조 전술’은 계속됐다. 8강전 요르단전에서도 베스트11을 8명 교체했다. 준결승전 호주전에 또다시 5명을 바꿨다. 결승전에서는 왼쪽 풀백 김진야(서울)를 오른쪽 날개로 투입하는 변칙 전술까지 썼다.

김 감독이 ‘전술의 달인’이 될 수 있었던 건 피아에 대한 철저한 분석 덕분이다. 그게 가능했던 건 자기 관리를 잘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축구계에서 ‘잡초’로 통한다. 선수 경력은 보잘것없다. 프로 무대도 못 밟아봤다. 실업팀 국민은행에서 은퇴한 뒤 은행원으로도 일했다. 태극마크 경험도 물론 없다.

1998년 성남 일화(성남FC 전신) 수석 코치를 맡은 김 감독은 부족한 경험을 채우기 위해 분석에 매달렸다. 경기를 앞두고 상대 분석으로 밤을 지새우곤 했다. 2006년에는 명지대에서 운동 생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비시즌엔 사비를 들여 유럽이나 남미로 날아가 선진 축구를 경험했다. 그렇게 공부하는 지도자였다.

김 감독은 성남 코치로 세 차례(2001~2003년), 감독으로 한 차례(2005년) K리그에서 우승했다. 2014년에는 시민구단 성남FC를 축구협회(FA)컵 정상에 올려놨다. 그는 2018년 U-23 대표팀 감독을 맡을 때 철저한 분석과 준비로 어필했다. 아시안게임 감독 최종면접 당시 24개 참가국 분석을 프레젠테이션으로 준비한 건 유명한 일화다.

U-23 팀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은 강한 소신으로 “태극마크 한번 못 달아봤는데 무슨 대표팀 감독이냐”는 편견에 맞섰다. 대표적인 사례가 황의조 선발 이다.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그는 와일드카드(24세 이상 선수)로 황의조를 뽑았다. 일부에서 “성남 시절 제자를 인연으로 뽑았다”며 ‘인맥 축구’라고 비난했다. 그 당시 그는 “나만큼 학연·지연과 먼 사람도 없다. 오로지 실력으로 뽑았다”고 자신했다. 황의조는 골 폭풍으로 이를 증명했다.

김 감독은 1960년생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젊은 선수들조차 세대 차이를 잘 못 느낀다. 김 감독은 하루 담배 2~3갑을 피우는 골초다. 그래도 자기 관리만큼은 철저하다. 17일 KFA(대한축구협회) TV가 영상 하나를 공개했다. 김 감독은 선수들 앞에서 다리를 들고 몸을 L자로 만들어 하는 ‘엘싯풀업’을 10차례나 가볍게 해냈다. 간신히 11개를 한 중앙수비수 김재우(대구)가 “감독님 신체 나이는 20대 같다”고 부러워했다.

김 감독과 선수들은 28일 오전 금의환향한다. 귀국한 이후에도 김 감독은 바쁘다. 도쿄 올림픽 개막까지 6개월간 또 한 번 옥석 가리기에 나서야 한다. 이번 대회 출전 선수는 23명, 올림픽은 18명이다. 또 누구를 3명의 와일드카드로 뽑을지 고민해야 한다. 김 감독은 “한국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이번에는 그 이상이 목표”라고 말했다.

피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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