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그냥 맡기세요"..5대그룹 불러모은 靑, 한숨짓는 재계

문창석 기자,류정민 기자,권구용 기자 2020. 1. 2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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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국내 5대 그룹을 불러모아 '공동 사업으로 추진할 아이디어를 내보라'고 요청한 것을 놓고 재계의 우려가 깊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현대자동차·SK·LG·롯데 등 5대 그룹의 사장급 이상 고위 임원들은 최근 서울 시내에서 모여 정부의 '공동 사업화' 과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동의 목표가 있는 상태에서 정부가 도와주겠다면 모를까, 필요성도 없고 준비가 안 돼 있는데도 직원에게 지시하듯 '사업 아이디어를 내보라'고 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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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삼성 등과 회동.."공동사업 아이디어 내라기보단 적극 돕겠단 것"
재계 "경제 현실 모르나..시대착오적 발상" 우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왼쪽)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2020.1.10/뉴스1 © News1 이종덕 기자

(서울=뉴스1) 문창석 기자,류정민 기자,권구용 기자 = 정부가 국내 5대 그룹을 불러모아 '공동 사업으로 추진할 아이디어를 내보라'고 요청한 것을 놓고 재계의 우려가 깊다. 경쟁사와 자사의 미래 계획을 어떻게 공유하느냐는 지적부터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나 가능했던 발상이란 우려도 나온다. 기업의 자율성을 보장해 사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현대자동차·SK·LG·롯데 등 5대 그룹의 사장급 이상 고위 임원들은 최근 서울 시내에서 모여 정부의 '공동 사업화' 과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논의는 지난해 말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5대 그룹에 '제2의 반도체가 될 만한 사업을 5대 그룹이 함께 찾아 공동 사업화에 나서주면 예산을 지원하겠다'는 요청에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날 모임에선 별다른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정부는 기업들이 힘을 합칠 경우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전날(22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본인도 당시 그 자리에 있었음을 인정하며 "여러 기업들이 공동 프로젝트가 있다면 정부가 지원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겠다(는 의미였다)"며 "공동 프로젝트를 제출하라는 의무감에 드린 말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도 이날 "이 자리에서 올해 R&D 투자가 24조원으로, 대한민국의 먹거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설명드린 것"이라며 "기업의 공동 신사업을 제출하라고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재계에선 정부가 경제 현실을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정부가 원하는 협력을 하기 위해선 각 기업이 자사의 전략을 놓고 논의해야 하는데, 기업의 미래와 직결되는 중요한 사안을 어떻게 경쟁 기업에 밝히냐는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어떻게 보면 정부가 (기업에게) 일종의 담합을 하라는 이야기"라며 "경쟁하는 선수들끼리 상의하고 게임해보라는 불가능한 미션"이라고 선을 그었다.

공동의 목표가 있는 상태에서 정부가 도와주겠다면 모를까, 필요성도 없고 준비가 안 돼 있는데도 직원에게 지시하듯 '사업 아이디어를 내보라'고 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5대 그룹 관계자는 "지난해 그룹 총수들을 불러 모았을 땐 최소한 일본의 수출 제한에 대한 대응이라는 명분이라도 있었다"며 "그런 것도 없이 '어디 한번 아이디어를 갖고 와 보라'는 건 사실 갑질 아니냐"고 지적했다.

재계에선 미래의 먹거리를 찾겠다는 정부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이렇게 기업의 중요한 부분까지 관여하겠다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우려가 높다. 기업의 미래에 이익이 된다면 알아서 협력하는데, 과거 권위주의 정권처럼 불러모아 '손 잡으라'며 사업 방향을 바꾸게 하는 건 아무리 선의라도 그 자체가 압박일 뿐더러 자유경쟁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정부 지원금이 없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는 게 아니라, 낡은 규제가 더 문제라는 의견이다. 또다른 재계 관계자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란 기업이 마음껏 사업할 환경을 만들어 준 뒤,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최대한 지원하는 나라"라며 "사업할 환경은 갖추지 않은 채 지원부터 하겠다고 하니 이렇게 앞뒤가 어긋나는 일이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차라리 대기업이 서로 필요성을 느낄 경우 바로 협력할 수 있게 하는 제도적 장치와 정책을 통해 기업의 자율성을 뒷받침하는 편이 옳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5대 그룹 고위 관계자는 "기업은 놔두면 알아서 한다"며 "Please, let it be(제발 그냥 맡기세요)"라고 말했다.

themo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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