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 "한복도 전통 이전에 패션.. 혁신 있어야 더 아름다워"

기자 2020. 1. 23.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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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해석으로 우리 시대의 아름다움을 담은 김영진 디자이너의 패션 한복. 차이 김영진·차이킴 제공
김영진 디자이너가 의상 작업을 한 오페라 ‘동백꽃 아가씨’의 포스터 이미지. 강렬한 붉은빛으로 주인공을 표현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 김영진 한복 디자이너 인터뷰

전통도 당대에는 위대한 발명

디자이너의 창의성 더해지면

디올 ‘뉴룩’처럼 새로움 선도

어릴때부터 ‘우리 것’에 관심

탈춤·판소리 찾아 전국일주

다음 목표는 ‘샤머니즘 시리즈’

두 밤만 더 자면 설날이다. 설날은 무슨 날인가? 긴긴 시간의 흐름 속에 어제와 다름없이 다가온 또 다른 하루일 뿐인데, 우리는 점을 찍고 축제를 지낸다. 그렇게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날을 내다보며 살아 있음을 기념한다. 그래서 설날을 앞둔 오늘, 바로 오늘 김영진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한복 디자이너 김영진. 한복을 디자인하고 영화, 드라마, 무대 의상을 만들며 전시를 하고 예술 작업을 하는 김영진을 이 두 마디로 표현하는 건 언제나 미흡하다. 차라리 탐구자라고 말하고 싶다. 아름다움을, 시간을, 삶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김영진의 한복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정통 침선을 통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우리가 그동안 봐왔던 한복과는 다르다. 프랑스산 레이스부터 이탈리아 수입 원단, 레오퍼드 패턴과 타탄체크까지 다양한 외래 소재가 한산모시, 상주 명주 같은 전통 원단과 어우러진다. 조선시대는 물론 1930년대, 1950년대, 1960년대 등 여러 시대의 한복이 새롭게 소환되는가 하면, ‘미스터 션샤인’에서 김태리가 입고 나온 사대부 아기씨의 기품 있는 한복부터, 남녀의 경계를 허물고 시공을 넘나들며 의식을 벌였던 무당의 무복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펼쳐진다. 조선시대 군관의 공복이었던 철릭은 현대적인 원피스가 돼 젊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연안 김씨 저고리, 배냇저고리도 디자인을 입고 우리 시대의 옷이 됐다. 김영진의 옷은 한마디로 차이 나는 한복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요구하지만, 유독 전통에 대해서만 완고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새로운 해석을 지닌 김영진의 한복 역시 그런 면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2018 서울 패션 위크 헤라 패션쇼에서 김영진의 작품을 본 미국 ‘보그’의 칼럼니스트이자 저명한 패션 비평가인 사라 모워(Sarah Mower)는 본국에 돌아가서도 차이 김영진의 숨 막히게 아름다운 한복 사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모워는 자신의 개인 SNS와 미국 ‘보그’에 김영진에 대해 이렇게 썼다. “젊은 여성들을 전통 의상으로 매혹시킨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이 특별한 디자이너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녀 앞에선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아이덴티티를 보고 싶었던 나오미 캠벨이 차이 김영진을 찾아와 찬사를 보낸 일이나 틸다 스윈턴이 차이킴을 입고 ‘보그’ 화보를 찍은 건 유명한 이야기다. 또 영국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뮤지엄은 차이 김영진 한복을 한국 대표 패션으로 선택해 전시하고 있다.

오페라 ‘동백꽃 아가씨’, 연극 ‘햄릿’, 판소리 ‘이방인의 노래’, 영화 ‘해어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김영진의 의상은 때론 붉게, 때론 푸르게, 때론 서럽게, 때론 농염하게, 때론 결기 있게 이야기와 하나가 됐다. 특별한 날, 차이 김영진 한복은 특별함을 더하고, 보통의 날엔 차이킴 옷이 감각을 드러내준다. 무엇보다 한복도 입고 싶은 옷이 됐다. 김영진은 유연한 시각으로 사람들의 편견을 깨뜨리며 한복을 패션으로 끌어들였다.

―설날인데, 설빔이 사라져 가고 있다.

“낭만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작년에는 ‘차이킴의 낭만주의’라는 주제로 작업했다. 먹고 입는 데는 옛날과 달리 풍족하지만, 아름다움을 누리고 즐기는 데는 오히려 검소해진 것 같다. 인간이기 때문에 먹고사는 것 외에 뭔가를 만들어서 추구해야 하는데, 요즘은 모든 걸 가성비로 따진다. 하지만 세상 사는 걸 어떻게 가성비로만 따지나? 가성비가 아닌 자기 내면의 잣대로 가치를 판단해줬으면 좋겠다. 좀 더 아름다움을 누리고 삶의 순간들을 즐겼으면 좋겠다.”

―한복에 대해서는 유독 엄격한 전통의 잣대를 적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복도 전통이기 이전에 패션이다. 패션은 언제나 새롭고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전통이란 무엇일까? 지금 우리가 전통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당대에는 위대한 발명이었다. 현대 서양 복식의 바이블이 된 디올의 뉴룩만 봐도 그렇다. 1950년대에 처음 선보였을 땐 너무 새로워서 이름에 ‘뉴’라는 형용사까지 붙지 않았나. 전통은 창의성의 결정체다. 과거의 전통을 바탕으로 오늘의 혁신이 미래의 전통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장인이 아니다. 디자이너다. ‘전통이 김영진이라는 디자이너의 필터를 통하면 무엇이 나올까’가 중요하다. 나는 2020년의 전통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오늘 작업한다.”

―그렇다면 2020년, 김영진은 무엇에 관심 있고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

“오는 2월 무대에 오를 국립극단 70주년 기념 연극 ‘화전가’의 무대 의상을 만들고 있다. 배삼식 작가의 작품으로 1950년 한국전쟁을 목전에 둔 경북의 한 반가가 배경이다. 굴곡진 역사 속에서 아들은 죽고 남편은 행방불명된 김씨 부인이 환갑잔치 대신 딸과 어머니, 며느리와 시어머니, 행랑어멈과 그 딸을 데리고 꽃놀이를 간다는 내용이다. 여자들이 꽃놀이 가는 기분, 그 기분이 어떨지 알 거 같아서 이 작품을 하게 됐다. 또 1950년대 한복, 그것도 꽃놀이 한복은 한 번도 안 해본 의상이라서 해보고 싶었다. 개인 작업으로는 샤머니즘을 주제로 한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의 샤머니즘은 한복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무녀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존재다. 박수도 그렇다. 남녀를 넘나드는 의상을 입고 초자연적인 의식을 펼친다. 자유롭고 아방가르드하다. 형식이 있는 샤머니즘 의상에 판타지를 담아 더 비주얼하게 표현하려고 한다. 그래서 요즘 ‘한국민속신앙사전’을 파고 있다. 샤머니즘은 시리즈로 계속할 계획이다.”

―영감과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는가.

“내 영감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데서 나온다. 특이한 책, 전시, 박물관, 민속박물관. 거기서 흥미로운 걸 발견하면 그걸 실마리로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파고든다. 그러면 끝없이 발견하게 된다. 저고리를 하면 저고리에서 파생하는 수십 가지, 수백 가지를 만난다. 하나의 모티브가 나를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데려다주기도 한다. 이런 발견은 죽을 때까지 해도 다 못할 거 같다.

―다양한 경력을 거쳤는데, 결국에는 왜 한복인가.

“어릴 때 언니가 한국 무용을 했다. 언니의 무용복에 매료됐다. 그 색감하며, 너무 아름다웠다. 언젠가는 꼭 한복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한복을 하는 건 ‘나는 누구일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된다. 어려서부터 나는 우리 것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는 우리 것에 대한 갈망이 없는 시대였고, 모두가 서양 문물을 동경했다. 그런데 나는 왠지 우리 것에 대한 갈구가 잦아들지 않았다. 20대 때는 아예 탈춤, 마당놀이, 판소리, 고성오광대를 공부하겠다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한복은 한마디로 나의 정체성이다. 나는 와인도 마시고 김치도 먹는 사람인데, 나의 정체성을 표현하려면 한복으로 한다. 한복일 수밖에 없다.”

안나량 스타일 에디터

■ 김영진…

전통 맞춤 한복 브랜드 ‘차이 김영진’과 한복을 모티브로 한 독창적인 기성복 브랜드 ‘차이킴’의 대표다. ‘차이’라는 이름은 서로 다름, 차이를 인정하고 상생하는 삶에 대한 바람을 담아 지었다. 연극배우, 패션 바이어, 루이비통 슈퍼바이저 등 다양한 이력을 거쳐 서울시 무형문화재 박선영 선생의 제자가 돼 바느질과 한복을 배웠다. 과감하고 감각적인 한복과 기성복은 물론 오페라 ‘동백꽃 아가씨’, 연극 ‘햄릿’, 판소리 등 다양한 무대 코스튬과 영화, 드라마 의상을 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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