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은 잠시, 그만큼 빨리 도착한 속초에서 보충하면 된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는 기본이고, 변함없이 병풍을 치고 있는 설악산 울산바위의 위용까지 떠오르는 곳, ‘속초’라는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이 겨울, 속초로 향한다면 세 가지 목적을 갖고 떠나 보자. 첫째, 산과 바다를 동시에 즐기는 자연 관광, 둘째, 독특한 지역문화를 체험하는 문화 관광, 셋째, 속초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들을 먹는 맛집 관광이 그것이다.
우선 속초는 한라산과 지리산에 이어 남한에서 세 번째로 높은 설악산의 정문이다. 설악산 울산바위와 권금성에 오르는 등반객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등산을 시작한다. 권금성은 케이블카로 그리 어렵지 않게 꼭대기에 올라 속초 시내와 푸른 동해를 한눈에 넣을 수 있기에 이 코스를 선호하는 이들이 많다.
또한 속초는 동해연안항로가 개설된 이후 수산물과 철광석의 반출항으로 천혜의 기항지인 속초항을 중심으로 대포항과 동명항, 장사항, 외옹치항 등이 이어지는 동해의 전진 기지다. 여름엔 오징어, 겨울엔 명태를 잡는 배들이 밤낮없이 속초 앞바다를 가득 메우던 시절이 있었다.
항구와 항구 사이에 자리한 속초의 해수욕장들은 국내 어느 곳보다도 탁 트인 전망을 자랑하는 시원하고 너른 휴양지다. 여름이면 전국에서 몰려온 피서객으로 인산인해가 되긴 하지만 38선 이북이라는 위치로 인해 경계가 삼엄해서 접근 금지 구역이 최근에야 풀린 곳들이 있다. 남쪽 해수욕장들에 비해 그리 붐비지 않았던 것도 속초의 해수욕장들이 맑음을 유지할 수 있던 이유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것이 2018년 개방된 외옹치항 바다향기로다. 여전히 철조망이 쳐있어 안보 체험을 할 수 있을 정도지만 바닷가를 따라 나무 데크로 이어 놓은 산책로는 절경 중의 절경이다.
두 번째는 문화 관광이다. 속초는 석호로 유명한 영랑호와 청초호, 설악산의 정기를 받은 척산온천 등 자연의 혜택을 받은 명승지가 많은 전설적인 관광 도시지만 최근에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속초 토박이들이 오랫동안 가꾸어 온 문화를 체험하는 활동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SNS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단연 칠성조선소다. 6.25 이후 북에서 내려온 고 최철봉 씨가 만든 조선소를 3대손이 문화 공간으로 바꾸었다. 박물관, 공방, 카페 등으로 구성해서 다시 문을 여니 푸른 바다 앞에 서 있는 낡은 목조 건물의 분위기가 뉴트로 트렌드와 맞물려 시간 여행을 하는 젊은이들에게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또 하나의 문화 체험 공간은 바로 서점이다. 1956년부터 속초에서 64년째 운영 중인 속초 동네서점의 맏형 격인 ‘동아서점’, 1984년부터 속초 토박이 가족이 세련된 디자인과 소신 있는 도서 추천 시스템을 갖추고 운영하는 ‘문우당서림’, 서점과 게스트하우스를 함께하는 복합 문화 공간인 ‘완벽한 날들’ 등 서점 3곳이 함께 ‘바다 보고, 책도 보는’ 속초 서점 투어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서점마다 정체성을 살려 개성 있는 큐레이션, 다양한 문화 이벤트, 지역 기여형 서점 문화 등으로 전국적 화제를 모으고 있다.
세 번째는 맛집 관광. 예전 같으면 여름엔 피서를 위해, 겨울엔 겨울 바다를 보러, 봄가을엔 단풍 구경하려고 속초로 향했던 관광객들이 요즘 속초 시내로 몰려드는 것은 다양한 콘셉트로 속초를 보여 준 여행과 음식 프로그램들 덕분이다. ‘1박2일’ 방영 후 인파가 급증한 아바이마을이 대표적이다. 아바이마을은 6.25 이후 북한에서 피난민들이 내려와 정착한 곳으로, 시내로 가는 지름길인 좁은 하천을 건너기 위해 줄을 잡아 끌어 이동하는 형태의 갯배를 놓고 생활하던 곳이다. 방송 이후 갯배를 타 보려는 이들이 몰려들었고, 섬 아닌 섬 안에 있던 ‘단천식당’의 이북식 오징어순대가 속초에 오면 꼭 먹어 봐야 하는 음식으로 입소문이 났다.
시내에 자리한 속초중앙시장 역시 음식으로 유명해졌다. 닭강정 명소로 소문이 난 원조 ‘만석닭강정’과 달인 ‘중앙닭강정’ 앞에는 끝을 알 수 없는 줄이 늘어서 있다. 닭강정 찾아 시장에 들어섰던 이들은 순대국밥, 옹심이 칼국수, 씨앗호떡에도 마음을 뺏긴다. 중앙시장 맛집을 섭렵하고 나면 ‘봉포머구리집’이나 ‘청초수물회’ 등 바닷가 횟집과 물회 맛집 또는 속초의 명물인 홍게나 순두부 등을 먹으러 ‘속초대게’, ‘김영애할머니순두부’ 등으로 방향을 튼다. 그밖에도 산으로든 바다로든 겨울에 맛볼 수 있는 제철 음식이 지천인 곳이 속초다.
설악산 관광의 1순위로 꼽히는 시설인 설악산케이블카는 50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수학여행 와서 단체로 우르르 타 본 기억뿐이어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던 곳이 권금성인지 울산바위인지를 떠올리기는 어렵지만, 하도 오래 그곳에 있었기에 진부한 여행 리스트라고 생각한다. 미시령휴게소가 문을 닫으니 힘들이지 않고 높은 곳에서 속초 시내와 동해를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이 케이블카 탑승밖에 없다는 게 행운일까?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도착한 권금성은 동쪽으로는 속초 시내와 너른 동해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북쪽으로는 웅장한 울산바위가, 서쪽으로는 변화무쌍한 모습의 만물상까지 한눈에 보여 주는 보석 같은 곳이다. 위로 갈수록 바람이 거세져서 봉화대까지 올라가서 고려 때 몽골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성벽 터를 찾아보는 일이나, 에델바이스를 비롯해 1200여 종의 희귀 식물과 반달곰 등을 발견하는 일은 쉽지 않다.
설악케이블카는 2002년에 알프스의 나라 스위스 전문 회사의 최신 기술을 도입하고, 최고의 전자동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다. 20여 명 정도가 한번에 탑승할 수 있지만 기상 상황에 따라 운영하고 당일 현장 구매만 가능하니 오전에 일찍 가야 대기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주소 강원 속초시 설악산로 1085 운행 시간 오전 9시~오후 5시
탑승 요금 대인 1만1000원, 소인 7000원(설악산 신흥사 입장료 3500원, 1일 주차권 4000원 추가)
바다향기로는 바닷바람 맞으며 명상하면서 걷는 대나무 명상길, 탁 트인 하늘과 바다를 보며 걷는 하늘데크길, 분단의 현실을 체감할 수 있는 철책으로 이어진 안보체험길, 크고 작은 암석과 그 위로 날아드는 새들의 아름다운 풍광을 관찰할 수 있는 암석관찰길 등 4개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4개 코스를 다 걸으면 30분 정도 걸리는데, 어느 산책로보다도 상쾌하고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다음 번 속초행은 이 외옹치 바다향기로를 걷기 위해서일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진 길이다.
주소 강원 속초시 대포동 712 개방 시간 오전 7시~오후 6시
바다 보고 책도 보는 문화 체험 ▶이제는 문화를 만드는 칠성조선소
주소 강원 속초시 중앙로46번길 45 운영 시간 오전 11시~오후 8시
주요 메뉴 아메리카노 4500원, 카페라테 5000원, 유자진저티 6500원
▶책과 사람의 공간, 문우당서림
2017년에 디자인을 전공한 딸이 전격적으로 가업에 뛰어들면서 서점의 모양새와 구성이 확 바뀌었다. 모던한 서점 로고가 생겼고, 서가마다 담당자들의 큐레이션 노트가 붙었다. 서가를 꾸민 이의 담백한 설명을 읽고 책들을 보니 희한하게도 책들이 잘 보였다. 마치 핀 라이트를 비춘 것처럼. 특히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참에 문우당서림 로고의 ‘ㅁ’ 형태를 닮은 네모난 공간을 만들어 다양한 도서 속 문구들을 발췌한 문장 보드를 비치한 238서가는 서점을 찾는 이들의 인증샷 성지가 되었다. 보드 하나하나를 찍어 자신의 SNS에 올리는 이들도 많다. 또한 ‘가족, 식물, 걷기, 편지’ 등으로 뽑아낸 키워드에 맞는 책을 전시하고, 이벤트를 열기도 하는데 키워드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도 좋다. 오랫동안 런던, 도쿄, 리스본에 있는 명망 있는 서점들을 부러워해 왔다. 속초 문우당서림을 만난 이후로, 그 서점들이 그리 부럽지 않아졌다.
주소 강원 속초시 중앙로 45
운영 시간 오전 9시~오후 10시(연중 무휴, 설과 추석은 오픈 시간 변동)
바닷내음 물씬 풍기는 맛집 ▶서빙 로봇이 있는 물회 맛집, 봉포머구리집
주소 강원 속초시 영랑해안길 223 영업 시간 오전 9시 30분~오후 9시 30분 주요 메뉴 전복해삼물회 2만 원, 섭국 1만 원, 홍게살비빔밥 1만5000원
▶닭강정의 원조, 만석닭강정
닭강정의 특성상 바로 먹는 것보다 살짝 식은 후가 더 맛있다고 알려져 시장에서 먹는 것보다 들고 가는 이들이 많으니 포장법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뜨거울 때 김이 나도 축축해지지 않을 방법을 고안해서 포장 상자를 만들어 특허까지 받았다. 맛과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가맹점이나 체인점을 만들지 않고, 속초에서만 영업을 하며 전국 백화점 팝업 스토어만 임시 운영하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주소 강원 속초시 수복로 195(시장 2호점) 영업 시간 오전 9시 30분~오후 7시 30분
주요 메뉴 보통맛(뼈) 1만7000원, 보통맛(순살) 1만8000원, 핫끈한맛(뼈) 1만8000원
▶도루묵과 양미리구이 포차 맛집, 뱃머리야식
주소 강원 속초시 설악금강대교로 213-1
영업 시간 오전 11시~다음 날 오전 3시
주요 메뉴 모듬생선찜 3만 원, 홍게탕(소) 3만 원, 도루묵구이 2만 원
▶커피와 빵이 있는 바다 사진관, 카페 바다정원
주요 메뉴 모찌크림치즈빵 2500원, 꽃게파스타 1만8000원, 아메리카노 4500원
[글과 사진 신혜연(헤이컴 대표, 콘텐츠 기획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13호 (20.01.21)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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