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기도 미안하기도"..한국 첫 '오스카 후보' 이승준 감독 [인터뷰]

김경학 기자 2020. 1. 14.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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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영화 <부재의 기억>의 한 장면. EIDF 제공

지난 13일(현지시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24개 부문 후보가 발표됐다. 진행을 맡은 한국계 배우 존 조와 세네갈계 배우 이사 레이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아카데미 박물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부문과 후보로 선정된 영화들의 제목을 읽어 나갔다.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에 <In the Absence>가 호명됐다. <신의 아이들>(2008) <달팽이의 별>(2012) <달에 부는 바람>(2014) <그림자꽃>(2019) 등으로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이승준 감독(49)의 영화 <부재의 기억> 영문 제목이었다. 다큐멘터리 부문이 <기생충>이 후보에 오른 다른 부문보다 더 빨리 발표됐으니 어떤 면에서는 한국 극·다큐멘터리 영화 중 처음으로 아카데미 후보가 되는 순간이었다.

<부재의 기억>은 세월호 참사를 담은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는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52분 전남소방본부 119상황실에 접수된 첫 신고로 시작한다.

“119 상황실입니다” “살려주세요! 배가 침몰되는 것 같아요” “배가 침몰해요?” “네. 우리 제주도 가고 있었는데… 여기 지금 배가 한 쪽으로 쓰러진 것 같아요… 지금” “잠깐만요. 지금 타고 오신 배가 침몰한다는 소리에요? 아니면 옆에 있는 다른 배가 침몰한다는 소리에요?” “제가 탄 배…” “위치를 말해주세요, 위치. 배가 어디 있습니까?” “위치를 잘 모르겠어요, 지금 여기가…” “위치를 모르신다고요? 거기 뭐 GPS 경·위도 안 나오나요? 배 이름 뭡니까?” “세!월!호!요. 세월호”.

이어 세월호 내부 주차 공간을 촬영한 폐쇄회로(CC)TV 영상이 나온다. 주차된 차들이 한 쪽으로 기울더니 벽에서 물이 새고, 금새 바닷물이 카메라를 덮친다.

영화는 내레이션이 없다. 배경음악도 최소화했다. 그저 자막과 세월호 내부 CCTV, 세월호에 탑승했던 학생들이 휴대전화로 찍은 영상, 구조정과 헬기가 찍은 영상 등 세월호 참사 당시 영상들을 시간 순으로 보여준다. 배가 점점 기울고, 뒤집어진채 가라앉는 영상 위로 당시 진도 연안해상교통관제센터(VTS)·세월호·해경·청와대·해경 123정·해양수산부 등끼리 주고 받은 통화와 무전이 흘러나온다.

“청와댄데요, 영상 가지고 있는 해경 도착했어요?” “아직 도착 안 했습니다” “얼마나 남았어? 그걸 빨리 가져와야 하는데…”. 탑승자 구조보다 오로지 상부 보고를 위한 자료 확보에 혈안이 됐고, 자료 미확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생생하게 전달된다.

세월호 유족과 생존자, 민간 잠수사 등의 인터뷰도 담겨 있지만 최대한 담담하게 보여준다. 담담한 전개는 참사 당시 정부 등 구조 책임자들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무능했는지를 더 도드라지게 한다. 세월호 침몰부터 인양까지 약 3년의 시간을 사건의 본질을 놓치지 않으며 30분 안에 담아낸다. 탑승자·유족·잠수사 등이 겪은 아픔을 과장하지도 대상화하지도 않고 오롯이 전달한다.

이승준 감독

이 감독은 14일 경향신문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겠다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저희가 주목한 건 ‘고통’이었다. 제가 촬영을 시작했을 때는 3년이 지났을 시점이었는데 해결 안 된 게 너무 많고, 그로 인해 유가족과 잠수사들의 고통과 트라우마도 굉장했다”며 “‘이제 그만 얘기하라’는 사람도 있다.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 ‘그만하라’ 이야기하는 건 폭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영화 속 영상과 소리들이 뉴스에서 많이 봤을 것이라 아주 새로운 건 없다. 그렇지만 시간적으로 정확하게 구성해보자고 생각했다. 첫 신고부터 완전히 침몰할 때까지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가고 어떤 풍경이었을까,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때 어른들은 무슨 얘기를 했는지 담담하게 시간 순으로 보면 지독한 고통의 시작점이 보일 것 같았다. (시간 순으로 다시 보니 참사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국가의 부재로부터 나온 것이었다”고 말했다.

영화 전반부를 구성하는 참사 초기 영상 등은 이 감독이 416기록단과 유족 등에게 받은 영상이다. 이 감독은 “세월호가 있고 나서 동료, 선후배들이 ‘미디어들이 제대로 된 역할을 못할 때 기록해야 한다’며 416기록단이란 이름으로 내려갔다. 그 때부터 계속 촬영했던 게 있다. 많은 부분 협조를 구했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의 고통이 그대로 담긴 수십 테라바이트 분량의 영상을 재구성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세월호 처음 선후배들이 416기록단으로 작업을 시작했을 때 ‘도울 수 있는 일은 도와달라’고 했다. 개인적인 이유로 시간 안 됐던 것도 있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그 고통 앞에서 촬영할 자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많은 영상을 보면서 굉장히 힘들었다. 지금도 여전히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때는 416기록단으로 기록한 선후배를 떠올렸다. 그들은 훨씬 더 심한 트라우마를 겪겠구나, 힘들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소식이 알려진 이날. 이 감독은 수많은 사람과 통화했다. 그 중에는 세월호 유족도 있었다. 그는 “제일 많이 도와주셨던 유족 분과 통화했다. 시작할 때 ‘이것 잘 만들어 해외에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아카데미 후보가 돼 너무 잘됐다’며 고마워하셨다. 단순히 내가 작품 잘 만들어 오스카 가는 건 아니다보니 저도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했다. 세월호를 담은 것이라 만감이 교차했다”고 말했다.

세계 여러 영화제를 다닌 이 감독이지만 아카데미 후보 선정은 색다르게 다가왔다. 그는 “어마어마한 관심에 놀랐다. 국내는 물론 해외 친구들도 엄청 축하한다고 연락이 왔다. 미국적이고 백인중심적이라는 논란을 떠나 아카데미란 게 힘이 크고, 많이 알려질 수 있는 훌륭한 플랫폼이구나 싶었다”고 했다.

이 감독의 영화들은 주로 상처나 아픔이 있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그는 “사실 고통만 다루고 싶은 건 아니다. 저는 감정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 사람들의 감정이 던지는 풍경과 이야기에 집중하려는 편이다. 워낙 아프고 고통스러운 분들이 세상이 많지 않나. 그런데 세상은 아닌 척 돌아간다. (다른 사람들도) 알 필요가 있고, 공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꿈을 물었다. 이 감독은 “바람이 있다면 작업을 계속 꾸준히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라며 “작품적으로는 세상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다. 인물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는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 궁극적인 꿈이라면 나이가 더 많이 들고, 머리가 하얘도 카메라를 들고 다닐 수 있는 체력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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