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단편상' 최종 후보 이승준 감독 "세월호 아픔 공감해준 美관객 놀랍다" [인터뷰]

이유진 기자 8823@kyunghyang.com 2020. 1. 1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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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고 먹먹하다.

이승준 감독의 다큐멘터리 ‘부재의 기억’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총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과 더불어 국가적 낭보이자, 국내 다큐멘터리 영화계에 활기를 불어넣는 일이다. 반면 2014년 ‘세월호 참사’의 생생한 기록을 다시 대면하자니 가슴 한 구석이 묵직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부재의 기억’은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안산 단원고 학생 및 교사 포함 승객 304명이 사망한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한 26분 분량의 단편 영화다. 이 감독은 당시 현장에 남겨진 영상과 통화기록으로 ‘국가의 부재’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했다.

■외국 관객도 공감했다

이승준 감독의 목소리는 영화의 서술 방식만큼이나 담담했다. 영예로운 수상보다는 외국 관객들의 공감에 더 주목했다.

“최종 후보는 예상도 못 했던 일입니다. ‘부재의 기억’을 뺀 나머지 작품들이 모두 미국 작품이라 수상 기대를 하고 있진 않아요. 다만 영화제 출품을 준비하면서 아카데미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상영회를 뉴욕과 LA에서 진행한 바 있는데 그 안에서 보여준 관객들의 반응이 우리와 다르지 않아 좀 놀랐어요.”

아이를 잃은 부모의 모습, 국가 재난 비상 시스템의 허점…, ‘부재의 기억’ 속 이야기들은 우리만의 것은 아니었다.

“영화 속에서 선장이 빠져나오는 모습이 나오자 외국 관객들이 웅성거렸어요. 우리 표현으로 하자면 ‘어머 세상에 어쩜 저럴 수가!’였죠. 상영회가 끝나고 일부 관객들은 제 손을 꼭 잡고 ‘고맙다.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이다’라고 말했어요.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 또한 말할 필요 없는 공통된 슬픔이구요. 이런 메시지들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이 감독이 어떤 관련 다큐멘터리보다 생생한 기록을 담을 수 있었던 건 세월호 유가족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재의 기억’은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공식적인 지원을 받아 제작된 작품이다.

“많은 분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유가족들이 확보한 자료들을 받았고 또 참사가 일어난 직후 현장에 내려간 동료, 선후배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기록한 자료들도 큰 도움이 됐어요. 유가족을 대상으로 영화 상영을 진행했을 때 한 분이 ‘딱 한 가지만 부탁하자. 세월호 참사를 세계에 알려달라’고 했는데 이번 아카데미 후보로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어요.”

이승준 감독

■어린 시절 꿈, 다큐 감독

이승준 감독은 아카데미 시상식 참여를 위해 조금 빨리 출국길에 나선다. 미국 영상 저널리즘 프로젝트 사이자 파트너사인 ‘필드 오브 비전’이 영화 상영회 일정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설 명절을 보내고 바로 출국해야 할 것 같아요. 뉴욕과 LA에서 열리는 상영회에 참석하기로 했거든요. 어떤 성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많은 분께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수년이 흘렀으나 그 고통은 아직 치유되지 않았다. 그는 고통에 대한 이야기는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잊지 않기 위해서다.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30분부터 두 시간. 고통의 근원은 국가의 부재였다.

이 감독은 카메라 포커스를 늘 다양한 분야의 ‘소수자’에 맞춘다. 국제 다큐 영화제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달팽이의 별’은 중복 장애인의 삶을 다뤘고 2019년 장편 다큐멘터리 ‘그림자꽃’은 가족이 있는 평양으로 돌아가고 싶은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소재의 방향성이나 지향점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저 현실에서 행복하지 않은 풍경,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꾸 마음이 가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치적 이슈와는 상관없이 한 인물을 통해 사회의 왜곡된 모습을 짚어보고 싶어요.”

그는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유독 좋아했던 소년이었다. 여전히 같은 시선으로 세상 눈길이 미처 닿지 않는 이곳저곳을 훑어본다.

“중고등학생 시절 MBC 휴먼다큐 ‘인간시대’라는 프로그램을 너무나 좋아해서 즐겨봤어요. 꿈은 현실이 됐지만 어린 시절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 존재하죠. ‘이거 힘드네~’할 때도 있지만 후회하지 않아요.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이고 좋아하는 일이니까요.”

이승준 감독은 이번 성과가 앞으로 다큐멘터리 제작 환경을 좀 더 튼실하게 하는 실마리가 되길 희망한다.

“다큐멘터리 분야는 산업적 논리로 접근할 수 없는 공적 미디어 분야잖아요? 국내 감독들은 작품 활동으로 명예는 얻을 수 있겠지만 늘 생존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있어요. 다양한 작품들이 나올 수 있는 환경과 지원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이승준 감독은 누구?

1971년생. 서울대 동양사학과 졸업.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 영화제’ 대상(‘달팽이의 별’ 2011), ‘캐나다 핫독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뉴욕 다큐멘터리 영화제’ 단편 부문 대상(‘부재의 기억’ 2018)을 거듭 수상하며 국제적 입지를 다지고 있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상 최종 후보에 오른 ‘부재의 기억’은 필드 오브 비전(field of vision) 공식 유튜브 계정에서 볼 수 있다.

이유진 기자 88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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