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당구 여제'의 솔직한 매력..김가영이 말하는 차유람, 피아비, PBA

정명의 기자 2020. 1. 1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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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볼 최강자→LPBA 우승..성공적인 3쿠션 전향
차유람과 '라이벌 구도'에 숨김없는 답변
당구 선수 김가영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당구장에서 뉴스1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1.10/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뉴스1) 정명의 기자 = '포켓볼 여제'에서 3쿠션 선수로 변신에 성공한 김가영(37)이 유쾌한 매력을 뽐냈다. 당구 팬들이 궁금해하는 차유람(33)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솔직한 답변을 내놨다.

김가영을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의 한 당구장에서 만났다. 무표정한 표정으로 당구장에 들어서던 김가영의 얼굴에 '딱딱한 인터뷰'를 각오했지만, 예상과 달리 그는 재밌는 사람이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우승 당시 입었던 경기복을 꺼내 입으면서 "패치가 떨어져서 세탁을 못한다. 냄새나는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털털한 성격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가영은 포켓볼 선수 시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차례(2004, 2006, 2012년)나 우승한 실력자다. 한국 여자 포켓볼 선수 중 세계선수권 우승자는 김가영이 유일하다. 3쿠션으로 전향하기 전 마지막으로 출전한 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해 정상에서 물러남과 동시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프로당구(PBA·LPBA) 출범과 함께 김가영은 포켓볼에서 3쿠션으로 종목을 바꿨다. 6월 열린 1차 대회에서 4강에 오른 뒤 5차 대회까지 부진을 이어갔으나 지난달 6차 대회에서 마침내 정상에 섰다.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한 결과였다.

사실 김가영에게는 새로운 종목인 3쿠션을 준비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짧은 기간 안에 우승이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포켓볼과 3쿠션은 완전히 다른 종목인 탓에 어려움도 많지만, 포켓볼로 쌓은 탄탄한 기본기 덕분에 적응이 어렵지 않았다.

김가영은 "원래 포켓볼에서 공격적인 스타일이다. 인터벌도 짧다. 빨리 치는 걸로 따지면 아마도 세계에서 3위 안에 들 것"이라며 "하지면 3쿠션으로 넘어와서는 시간 제한(30초)에 많이 걸렸다. 그만큼 나만의 루틴이 확실하지 않고 경험이 적다는 뜻"이라고 겸손한 자세를 취했다.

당구 선수 김가영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당구장에서 뉴스1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1.10/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당구를 시작한 계기가 아버지 때문이라고 들었다. 유도선수 출신 아버지가 당구장을 경영하셨다고 하던데.

▶그렇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권유하신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께서 큰 그림을 그리셨는지는 모르겠지만, 환경이 그랬기 때문에 쳤을 뿐이다.

-운동선수 출신 아버지라면 왠지 엄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엄하셨다. 무언가를 시작할 땐 항상 아버지와 약속을 했다. 그 내용은 '끝까지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중도에 포기하는 걸 안 좋아하셨다.

-큐를 잡을 때부터 포켓볼을 쳤나.

▶시작은 4구였다. 2000점이 될 때까지 치겠다는 생각이었다.

-2000점을 찍었나.

▶아니다. 중학교 1학년 때 700점을 찍은 뒤 포켓볼로 전향했다. 3쿠션 선수가 될 수도 있었지만 여자가 나갈 수 있는 대회가 많지 않았다. 당구장에 걸려 있는 달력이나 포스터에 나오는 여자 선수들의 모습이 어린 나이에 멋있어 보였다. '미국에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웃음)

-포켓볼을 시작하면서 세운 목표는 무엇이었나.

▶세계챔피언.

-세계챔피언이 됐다. 그것도 3번이나. 그 뒤로는 어떤 목표를 갖고 선수 생활을 이어갔던 것인가.

▶사실 그만두려는 생각도 많이 했다. 막연하게 포켓볼로 부와 명예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너무 배가 고팠다. 세계챔피언인데도 대회에 나갈 때마다 경비 걱정을 해야 했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차유람 선수가 '당구 얼짱'으로 큰 주목을 받은 것과는 대조적인 것 같다.

▶2006년이 피크였다.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후 그해 도하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은메달을 땄는데, 메달을 못 딴 그 친구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그 때 '난 뭐지, 잘 치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자각 타임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성적이 좋을 때 더 치기가 싫었다.

-대중은 여자 선수들의 외모에 주목한다.

▶(차)유람이가 예뻐서 주목을 받는 것은 괜찮았다. 내가 봐도 예뻤다. 그런데 나와 외모를 비교할 때는 속상했다. '내가 절세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실력까지 저평가를 받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렇다면 나는 뭘 목표로 노력을 해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등등의 고민을 했다.

-이제는 옛날 이야기가 된 것이라고 보면 될까.

▶2006년 얘기다. 그 땐 20대 초반이었지만 이제는 늙었다. (웃음) 많이 단단해지기도 했고.

당구 선수 김가영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당구장에서 뉴스1과 인터뷰하고 있다. 2020.1.10/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포켓볼에 미련은 없는지.

▶또 기회가 올 것이라 생각한다.

(김가영은 LPBA 1차 대회에 초청선수 신분으로 출전하면서 대한당구연맹으로부터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연맹이 승인하지 않은 단체 대회에 출전하면 등록선수 자격을 말소한다'는 당구연맹 규정에 따른 처분이다. 이에 따라 포켓볼 선수 활동을 계속하려던 김가영은 3쿠션으로 종목을 전환해 LPBA 투어에 참가 중이다.)

-3쿠션 전향 후 가장 어려운 점은.

▶포켓볼에 젖어 있는 습관들을 버리는 것이다. 포켓볼은 적구(맞는 공), 3쿠션은 수구(치는 공)의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가야 한다. 많이 고쳐지기는 했는데, 가끔 정신줄을 놓을 때가 있다.

-키스를 피하기 위해서는 적구의 움직임도 파악해야 하는 것 아닌가.

▶키스를 피하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수구의 움직임을 먼저 봐야하는 수준이다.

-그럼 3쿠션 선수로서 강점은.

▶힘이 좋다. (웃음) 아버지도 '우리 딸은 힘이 세요'라고 말씀하신다. 체력도 좋은 편이다. 이제 나이가 적지 않은데, 젊은 선수들에게 체력에서 밀린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워낙 운동을 좋아한다. 웨이트트레이닝도 열심히 하고 여름에는 수상스키, 겨울에는 스키를 즐긴다.

-다른 인터뷰를 보니 국내 랭킹 1위인 '캄보디아댁' 스롱 피아비(30)와 붙어보고 싶다는 말을 했더라.

▶하도 주변에서 피아비 얘길 많이 해서 '붙어보면 재밌겠네요'라고 말한 것이다.

-당구 인기에는 라이벌 구도도 필요한데.

▶라이벌 구도는 굉장히 좋은 것 같다. 예전에는 라이벌 구도가 만들어지면 마음이 불편했는데, 지금은 재밌다고 느껴진다.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누가 우승해도 상관없어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제가 이겨야죠'라고 하는 게 재밌지 않나.

그렇다고 지금 내가 세계랭킹 2~3위 하고 있는 피아비를 라이벌이라고 한다면 건방진 얘기고, 시간을 주신다면 1년 후에는 한 번 그런 말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웃음) 포켓볼로 붙는다면 얼마든지 '큐만 들고 오세요'라고 말 할 수 있겠지만, 지금 피아비도 3쿠션에 있어서는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 같다.

19일 오후 고양시 한 호텔에서 열린 PBA투어 6차대회 SK렌트카 PBA-LPBA 챔피언십 대회 결승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김가영 선수가 상금과 우승트로피를 받고 있다. (PBA 투어 제공) 2019.12.20/뉴스1

-차유람과 대결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다.

▶만나면 좋을 것 같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재미도 있을테고. 포켓볼 선수들의 기본기에 대한 자부심도 생길 수 있다. 유람이하고 같이 잘하면 '포켓볼을 기본으로 했을 경우에 3쿠션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데이터가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고 들었다.

▶서서아라는 포켓볼 선수가 있는데 2018년 세계선수권에서 준우승을 했다. 내가 알기로는 나 이후로 처음으로 10대 때 한국 랭킹 1위에 올랐다. 그런데도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내가 개인 레슨을 해주고 있는 선수다.

-프로당구 출범으로 달라진 점이 있나. ▶이런 질문도 대답하기가 어려운 것이, 나는 원래 프로였다. 2003년부터 미국에서 프로로 활동했다. 나 스스로는 프로당구라고 해서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당구계 전체를 봤을 때는 당구 선수들이 좀 더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경기복도 정말 편해서 좋고, 대회 장소 또한 정말 프로페셔널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훌륭하다.-프로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당구만 쳐서 생활할 수 있는 수준인가. ▶나는 오히려 상금이 줄었다. (웃음)-설 연휴(23일~27일 소노캄 고양)에 LPBA 7차 대회가 열린다. 목표는 2연패인가. ▶그냥 잘하는게 목표다. 우승이야 하면 할수록 좋고, 모든 대회에 우승을 목표로 나간다. 하지만 우승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잘' 하는 것이다. 훈련한대로 잘하고, 발잔한 것을 확인하는 것. 결국 그게 결과를 만든다. 너무 재미없고 식상한가? 하지만 그게 목표다.

당구 선수 김가영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당구장에서 뉴스1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1.10/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doctor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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