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보호 약화 우려 속에 입법절차를 밟아 온 ‘데이터 3법’이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넘어 본회의 표결만을 앞두고 있다. 데이터 3법은 개인정보와 관련된 3개 법률 개정안(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을 뜻한다. 이날 국회 법사위와 기자회견장에선 3법 개정을 이대로 개정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국회 법사위는 이날 전체회의에서 정보통신망법, 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법 개정안을 차례로 의결했다. 여상규 법사위 위원장(자유한국당)이 정보통신망법에 이어 두 법안을 의결하려 하자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이 이를 막아섰다. 채 의원은 각 법안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려 했으나 의결이 너무 빠르게 진행됐다며 법안에 대한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채 의원은 “‘가명처리’한 정보도 보호대상인 개인정보에 속한다. 최초의 정보처리자는 가명정보와 실명정보를 모두 갖고 있기 때문에 가명정보를 실명으로 전환하는 데 문제가 없다”며 “당연히 정보주체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권한이 적용돼야 하는데, (개인정보법) 개정안에는 그 주어가 ‘가명정보’로 되는 바람에 모든 정보처리자가 그러한 권한을 정보주체로부터 빼앗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신용정보법 개정안에 대해선 “민병두 정무위원장이 수정이 필요하다고 인정을 했다. 해당 상임위에서 인정했기 때문에 반려시키는 게 오히려 관행에 맞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의료(건강)정보도 가명정보로 활용할 수 있느냐는 쟁점에 대해선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질의가 이어졌다. 채 의원은 “지난번 개인정보법과 의료법 중 뭐가 더 우선적용돼야 하느냐 물었을 때 (장관이) 의료법이라 하셨는데, 밖에서 다른 설명을 하고 다니시더라. 명시적 규정이 없으니 해석이 중구난방으로 이뤄져서 이대로 법이 통과된다면, 민감한 개인인권 정보들을 기업들이 얼마든지 민감정보 가명정보로 만들어서 활용한 다음에 정부가 이렇게 (활용가능하다고) 설명할 것”이라며 “이 부분도 다른 법과 관계를 명확히 하지 않은 문제가 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2소위에 보내서 체계자구심사와 다른 법령 충돌에 대한 정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향해서도 채 의원은 “의료정보 같은 민감정보를 가명정보로 만들어 활용하는 걸 개인정보법, 일반법에서 허용해버리면 이후에 막을 법이 없다”며 “19대 국회에서 박근혜 정부가 (3법 개정을) 추진했을 때 민주당이 반대하고 막았다. 이번 정부 들어와서 추진하는 것은 또 다른 ‘내로남불’이라 생각한다. 경제 성장, 성과에 대한 압박에 눈이 멀어서 이러고 있다고 생각한다. 굉장히 후회할 일이라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진 장관은 이에 “(가명처리된 개인정보) 재식별처리 자체가 금지돼있고, 사실상 (정보주권을 행사하려는) 한 사람을 위해 다 재식별처리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런 부분은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별도 중앙기관으로 설립되니까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더욱 더 보호 강화하는 방향으로 갈 것 같다”며 “개인정보보호법을 개정하는 이유는 데이터를 활용해 우리도 연구를 진전시키고 사회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목적”이라 답했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 ⓒ연합뉴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 ⓒ연합뉴스

채 의원은 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기면서 ‘부대 의견’을 달았으나,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했다. 과방위는 앞서 가명정보 처리 시 정보주체 권리를 보호하고, 개인정보 활용이 오·남용돼선 안 된다는 취지로 △개인정보처리자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 용어를 재검토·개선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제28조)에 ‘정보주체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할 우려가 없는 경우에 한하여’라는 조건 추가 △가명정보의 목적 외 이용 또는 제3자 제공 처리시 공표 추가 등 6개 항목의 부대의견을 밝혔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은 이 의견이 개정안에 누락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법사위에서 논의하신 결과에 따라 수용하겠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답했다. 채 의원은 “방법이 없는 거 같다. 본회의장에서 반대토론 하는 수밖에. (개정안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의원들께서 제가 문제지적한 것들을 읽어주셨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법안 처리 자체를 반대하지 않은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개정안 내용에 우려를 표했다. 이 의원은 법사위로 오기 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관련 법안을 발의·검토한 바 있다. 이 의원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유럽연합(EU) 개인정보보호규정(GDPR) 기준으로 강화해야 EU와 실질적 교역이 가능하다. 채 의원 지적처럼 개인정보 주체의 권리들이 GDPR만큼 보호돼야 하는데 미흡한 게 개정안 내용”이라며 “향후 EU 적정성 평가를 받아야 개인정보 ‘역외이전’이 가능한데 과연 지금 개정안이 충분조건을 갖췃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라 말했다.

이후에도 채 의원 질의가 이어지자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여상규 위원장에게 “(의원들 발언을) 그렇게 막으시더니 이건 왜 이렇게 아량을 베푸시나. 왜 화를 안 내시느냐”며 항의했다. 여당 의원들도 법안에 아쉬운 점은 있지만 통과를 시켜야 한다고 촉구하자, 여 위원장은 3개 개정안을 모두 처리했다.

이날 의료·정보인권·소비자 단체를 비롯한 13개 시민단체들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와 국회는 개인정보 3법 처리 시도를 즉각 중단하고, 최소한의 보호 규정이라도 마련한 후 입법화해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개인정보 3법은 ‘상품구매나 서비스 이용’이 아닌 ‘개인정보 거래’가 목적이 되는 개인정보 체계 근간을 바꾸는 중대한 사안임에도 사회적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기업 측 요구에 호응하며 추진되어 왔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대 국회에서 마치 민생법안인 양 국민을 호도하며 통과를 서두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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