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쿡방·팬시·팬덤…밀레니얼의 ‘5·18 기억법’

강현석 기자

5·18민주화운동 40주기…함께 부르는 ‘님을 위한 행진곡’

엽서·쿡방·팬시·팬덤…밀레니얼의 ‘5·18 기억법’

5·18 광주를 향한 끝없는 왜곡에
그날 도청의 새벽만큼 두려운 지금
새 방식으로 ‘진실’ 알리는 청년들
그 다섯 젊음에 ‘기억의 이유’ 묻다

박영순씨(60)는 두렵다. 1980년 5월27일 새벽, 그는 전남도청 방송실에서 “계엄군보다 먼저 발포해서는 안된다”는 마지막 방송을 했다. 전기가 끊겼고 공수부대 특공조는 어둠 속에서 도청 담장을 넘었다. 총소리가 이어졌다. 박씨는 계엄군에 끌려가 6개월 동안 수감됐다. 대학 유아교육과에 다녔던 스무 살의 꿈이 꺾였고,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도 너무 컸다.

하지만 박씨는 “지금이 그날 도청의 새벽만큼이나 두렵다”고 했다. 그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5·18을 직접 겪은 세대들이 죽고 나면 우리를 기억하고 5·18의 가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확신이 없다”고 말했다.

5·18민주화운동이 40년을 맞는다. 당시 항쟁의 주역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지만, 5·18에 대한 기억은 ‘광주’와 ‘광주 밖’에서 차이가 있는 게 현실이다.

국립5·18민주묘지에 따르면 묘역에 안장된 5·18유공자는 846명에 이른다. 1997년 조성된 5·18묘지는 매년 안장자가 늘고 있다. 2017년에도 21명이 안장됐고 2018년 24명, 2019년에는 26명이 이곳에서 영면에 들었다.

반면 5·18에 대한 왜곡은 끊이지 않는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밝혔는데도 “북한군 600명이 투입됐다”거나 “5·18유공자 자녀가 공무원시험을 싹쓸이한다”는 식의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여전히 돌아다닌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자신들의 방식으로 5·18을 기억하려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는 점은 희망의 싹이다.

청년들은 “5·18이 역사 속에만 남지 않기 위해서는 ‘엄숙주의’를 벗어나 일상에서 통용되는 정신으로 확장해야 한다”면서 “5·18을 경험하지 않은 이후 세대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5·18을 기억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일상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5·18을 이야기한다.

김지현씨(36)는 광주를 찾은 사람들이 1980년 5월의 현장에서 엽서를 보내는 프로젝트를 3년째 해오고 있다.

김소진(26)·이하영씨(26)는 청년들에게 인기가 많은 ‘요리 방송’으로 5·18 당시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박은현씨(30)는 ‘님을 위한 행진곡’이 흐르는 오르골로 일상에서 5·18을 떠올리게 한다. 박경록씨(21)는 5·18을 응원하는 서포터스를 이끌며 ‘5월 해설사’가 되기 위한 공부도 한다.

박씨도 이들에게서 5·18의 미래를 본다. 그는 “이제 우리는 빠지고 청년들이 나서야 광주를 벗어나 국민 모두가 공감하는 5·18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들이 왜 5·18을 기억하려 하는지 들어봤다.

■회화나무·금남로 그린 ‘안부 엽서’ 국내외 보내며 광주와 현재를 잇죠

2017년부터 ‘오월, 광주에서 보내는 안부’라는 주제로 엽서를 보내는 ‘오월 안부프로젝트’를 진행한 김지현씨. 김씨는 “1980년 5월의 현장에서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행위를 통해 5월 정신은 계속 이어진다”고 말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2017년부터 ‘오월, 광주에서 보내는 안부’라는 주제로 엽서를 보내는 ‘오월 안부프로젝트’를 진행한 김지현씨. 김씨는 “1980년 5월의 현장에서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행위를 통해 5월 정신은 계속 이어진다”고 말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오월 안부프로젝트’ 3년째 이어온 김지현씨

‘엽서’의 발신지는 1980년 5월 고립됐던 ‘광주’. 당시 2만여명의 계엄군을 투입한 신군부는 광주를 고립시켰다. 도시 밖으로 통하는 길목에는 탱크와 무장군인이 배치됐다. 다른 도시로 연결되는 전화가 끊겼고 생활물품도 반입되지 못했다.

김지현씨(36)는 “광주는 소통하고 싶어 하고 언제나 먼저 손을 내밀고 싶어 하는 도시”라고 했다. 40년 전 5월 광주와 지금을 연결하는 건 엽서. 김씨는 2017년부터 ‘오월, 광주에서 보내는 안부’라는 주제로 엽서를 보내는 ‘오월 안부 프로젝트’를 3년째 해왔다.

“손으로 직접 쓰는 글은 카카오톡처럼 잘못 썼다고 지울 수 없잖아요. 사람들에게 엽서에 적을 문장을 생각하며 서로를 살피는 그런 시간들을 주고 싶었어요.” 김씨는 “1980년 5월의 현장에서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행위를 통해 5월은 계속 이어진다”고 했다.

윤연우(그림)·김향득(사진) 작가와 함께 만든 엽서에는 5·18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장소들이 나온다. 처음 만든 엽서는 옛 전남도청 앞에 서 있었던 회화나무. 엽서 속 회화나무는 5·18의 참상을 지켜봤지만 2012년 태풍 볼라벤의 바람에 쓰러졌다. 시민들이 살리기에 나섰지만 회생 가망이 없었다. 그때 회화나무 밑에서 자라던 어린 묘목을 발견해 키우고 있던 시민이 나타났다. 회화나무는 기적처럼 대를 이었다.

회화나무 사연은 엽서에도 적었다. “전남도청 앞 회화나무는 80년 오월을 온전하게 지켜본 시간의 증인입니다. 후계목이 가신 나무의 숨결을 잇고 있습니다. 해마다 더 뚜렷해지고 빛나는 오월정신이 ‘죽어서도 살아’ 있음을 당당하게 보여주는 회화나무가 당신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그동안 제작한 엽서는 7종. 옛 전남도청 정문과 현판, 도청으로 향하는 금남로, 금남로에 쓰러져간 시민들을 목격한 수창초등학교 앞 육교, 2008년 전남도청의 봄, 시민 시신이 안치된 상무관, 계엄군이 헬기에서 쏜 총탄 흔적이 발견된 전일빌딩이다. 광주를 찾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지나쳤을 곳이다.

김씨는 “5·18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지만 광주의 거리를 걸으며 ‘왜 5월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광주를 떠나기 전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광주 전체가 5·18을 경험했다. 도로나 나무, 건물 등 그 시간을 견뎌낸 존재들이 증인이자 역사의 목격자”라고 말했다.

‘오월, 광주에서 보내는 안부’는 5월을 전후해 광주 곳곳에 비치된 엽서에 글을 써 ‘오월 우체통’에 넣으면 무료로 전국 어디로든 발송해준다. 해외도 가능하다. 지난해에는 5·18기념재단과 5·18기록관, 광주극장, 송정마을카페, 동네책방 숨 등 광주 20여곳에 비치됐다. 친구나, 가족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 등 마음 한쪽에 담아둔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월 엽서에 담겼다. 지금까지 광주에서 쓴 1만여통의 엽서가 전국으로 배달됐다. 해외로 보내진 엽서도 1500통에 달한다.

생각지 못한 일도 있었다. 5월 영령이나 사망한 사람들 등 주소가 없어 부치지 못한 엽서들도 500장이나 쌓였다. 소중한 사연들을 따로 모아 옛 전남도청에서 지난해 ‘부치지 못한 안부들’이라는 전시도 했다.

김씨는 “진상규명도 필요하지만 기억이나 정신을 이어가는 방식에 대해 젊은 세대의 방식을 차용하는 게 좋겠다”고 전했다. ‘오월 엽서’에는 “엽서를 쓰는 모든 사람들이 메신저가 돼 5·18이 세대를 넘어 계속 이어졌으면 한다”는 김씨의 바람이 담겼다.

■5·18 겪은 어머니들과 ‘쿡방·먹방’ 밥 먹듯이 일상에서 공감대 찾아요

5·18 이야기를 들려주는 ‘5월 식탁’을 진행한 독립큐레이터 장동콜렉티브의 김소진(오른쪽)·이하영씨. 동영상으로 제작된 8편의 5·18 음식 이야기에는 “밥 먹듯 5·18을 기억하자”는 메시지가 담겼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5·18 이야기를 들려주는 ‘5월 식탁’을 진행한 독립큐레이터 장동콜렉티브의 김소진(오른쪽)·이하영씨. 동영상으로 제작된 8편의 5·18 음식 이야기에는 “밥 먹듯 5·18을 기억하자”는 메시지가 담겼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5월 식탁’ 독립큐레이터 김소진·이하영씨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시민들은 어떻게 그 힘든 시간을 버텨냈을까? 어머니들은 가족들을 위해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었다. 계엄군의 눈을 피해 시장도 열렸다. 5·18 영화나 기사에는 나오지 않는 평범한 광주시민들의 일상이었다.

“5·18을 직접 겪었던 어머니들이 알려준 음식을 조리해 함께 먹다 보면 자연스럽게 5·18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독립큐레이터 장동콜렉티브 김소진씨(26)와 이하영씨(26)는 ‘음식’을 통해 5·18을 알리는 ‘5월 식탁’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광주의 어머니들이 5·18 당시 만들었던 음식을 다시 조리하면서 자연스럽게 5·18 이야기를 나누는 ‘5월 식탁’은 모든 과정을 동영상 콘텐츠로 제작해 유튜브를 통해 공개했다. 젊은 세대들이 음식을 다루는 동영상 콘텐츠에 관심이 많다는 점도 감안했다.

이씨는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들 중에 ‘광주 사람들은 5·18 이야기만 한다’거나 ‘5·18을 너무 우려먹는다. 지겹다’고 말하는 사람이 꽤 있다”면서 “이런 일을 접할 때마다 옅어져 가는 5·18에 대한 기억을 일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 숨 쉬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1980년 5월 어머니들이 차렸던 음식을 통해 5월을 기억하는 ‘5월 식탁’에는 ‘밥 먹듯 5·18을 기억하자’는 메시지가 담겼다. 이들은 총을 들었던 시민군보다 가족을 위해 밥상을 차리고 이웃을 위해 주먹밥을 뭉치며 삶을 지켜낸 여성들에게 주목했다. 이들은 “‘밥은 먹었냐’고 안부를 묻듯 일상의 중심에 음식이 자리하고 있다. 5·18 당시 시민들의 일상을 지켜준 음식을 조리해 함께 먹으면 자연스럽게 기억에 동참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5월 식탁’은 광주의 어머니들을 찾아가 음식 조리법을 듣는 것으로 시작된다. 공감대가 형성되면 자연스레 5·18 당시 있었던 일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장동콜렉티브는 어머니들이 알려준 조리법을 토대로 음식을 만든다.

완성된 요리는 청년들을 초대해 함께 나눠 먹으면서 조리법을 알려준 어머니의 5·18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머니께 직접 묻고 싶은 게 있으면 다시 찾아가 이야기를 듣는다. 5·18 당시 금남로의 한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어머니가 부상을 당해 피투성이가 된 시민을 치료해주고 계엄군의 눈에 띄지 않도록 옷을 갈아입혀 내보낸 일부터 찬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동네에 ‘반짝 시장’이 열린 생생한 5·18 체험담이 음식에 녹아 있다.

그동안 두릅전과 달래장, 상추튀김, 방아잎전, 애호박 요리, 설탕국수 등 8가지 음식에 담긴 5·18 이야기가 ‘5월 식탁’이라는 동영상으로 제작됐다. 김씨는 “5월 식탁은 역사 공부가 아닌 여성들의 생생한 삶을 듣기 위한 활동”이라면서 “그날의 광주에도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며 일상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장동콜렉티브는 수집한 어머니들의 음식 조리법과 5월 이야기를 책으로 엮을 계획이다. 5·18 40주년이 되는 올해에는 광주의 5월 음식들을 도시락이나 반찬 등으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밥을 먹으며 ‘5월 광주’를 떠올릴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김씨와 이씨는 “5월 식탁을 진행하면서 5·18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뤄낸 일이었다는 것에 감동했다”면서 “우리가 만든 동영상을 본 청년들이 5·18의 숭고함과 경이로움을 공감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진실 왜곡’ 두고 볼 수 없잖아요 제대로 배워서 똑바로 알려야죠

옛 전남도청 복원을 요구하며 1000일 넘게 농성을 벌였던 5월단체 회원들을 뒷바라지하고 응원한 5·18청춘서포터스 ‘오월잇다’ 대학생회 총회장을 맡고 있는 박경록씨. 5·18 해설사가 되기 위한 공부도 함께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옛 전남도청 복원을 요구하며 1000일 넘게 농성을 벌였던 5월단체 회원들을 뒷바라지하고 응원한 5·18청춘서포터스 ‘오월잇다’ 대학생회 총회장을 맡고 있는 박경록씨. 5·18 해설사가 되기 위한 공부도 함께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오월잇다’ 대학생회 총회장 박경록씨

축구와 야구 등 프로스포츠에서 팬들이 조직적으로 응원 활동을 펼치는 ‘서포터스’가 5·18민주화운동에도 있다. 청년들은 옛 전남도청에서 농성하던 5월 어머니들을 곁에서 지켰고,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 5·18을 공부하고 응원한다. 5·18 청춘서포터스 ‘오월잇다’다.

‘오월잇다’는 광주와 전남지역 고교생과 대학생 10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월잇다’는 2017년 고등학생들이 먼저 시작했다. 당시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에서는 5·18 관련 단체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5월 단체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도청 건물 일부가 훼손됐다며 2016년부터 복원을 요구했다.

전남도청은 1980년 5·18 당시 시민들이 끝까지 남아 계엄군에 맞섰던 곳이다. 정부가 이곳을 아시아문화전당 민주평화교류원으로 만들면서 5월27일 새벽 시민군들의 마지막 호소 방송 등이 있었던 방송실 등을 없애 원형 훼손 논란이 일었다. ‘오월잇다’ 대학생회 총회장을 맡고 있는 박경록씨(21)는 “2017년 3월 도청에서 만난 한 어머니께서 5·18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국가폭력으로 희생된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5·18 왜곡을 청년들이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 고등학교 건축동아리에서 활동하던 박씨는 동아리 학술제에서 옛 전남도청 복원 프로젝트를 주제로 연구하기도 했다. 5·18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친구들과 ‘박하 역사동아리’도 만들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도청으로 향한 박씨와 친구들은 5월 어머니회 회원들과 ‘옛 전남도청 복원 서명운동’을 함께하는 등 ‘도청 지킴이’로 나섰다.

활동에 동참하는 고교생이 늘면서 광주지역 10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모였다. 80여명은 2018년 5월18일 5·18 청춘서포터스 ‘오월잇다’를 정식으로 출범시켰다. 고등학생만 있었던 ‘오월잇다’는 2019년 5월 대학생회까지 확대됐다.

회원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옛 전남도청을 찾아 장기간 농성에 지친 어머니들을 위로했다. 2018년 크리스마스 때에는 선물을 준비해 파티를 열었다. 설과 추석 등 명절에는 도청에서 명절인사를 하고 윷놀이도 함께했다.

5월 어머니들은 단체복을 맞춰 주거나 간식을 사주며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옛 전남도청은 5·18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복원을 약속하고 정부가 지난해 9월 ‘옛전남도청복원추진단’을 출범시키면서 2022년까지 복원된다. 5월 단체는 1096일 만에 농성을 끝냈지만 여전히 도청 복원 현장을 지키고 있다.

박씨는 “지금도 도청에 계신 어머님·아버님들에게 인사를 가면 엄청 좋아하신다. 하지만 얼마 전 한 분이 돌아가셨고 건강이 좋지 않은 분들도 많다”면서 “우리가 빨리 5·18의 진실을 더 배워서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오월잇다’ 회원들이 5·18에 대해 체계적인 공부를 하는 이유다.

10여명의 ‘오월잇다’ 회원들은 시민단체 ‘오월광장’이 진행하는 5·18 역사해설사 육성 과정을 듣고 있다. 5·18 40주년이 되는 오는 5월, ‘오월잇다’ 회원들은 광주를 찾는 다른 지역 청년들에게 5월의 진실을 들려줄 생각이다. 박씨는 “주변 일부 청년들은 잘못된 정보를 그대로 믿고 5·18을 희화화한다. 왜곡된 기사 등을 보고 뭐가 진짜인지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믿어버린다”면서 “5·18의 진실을 한 명이라도 더 접할 수 있도록 청년들이 돕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DIY 오르골 상자의 태엽 감고 깨워주세요 ‘님을 위한 행진곡’

‘님을 위한 행진곡’ 멜로디가 나오는 ‘오월 오르골’을 만든 문화기획자 박은현씨. 박씨가 만든 오르골은 그동안 1000개 넘게 팔렸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님을 위한 행진곡’ 멜로디가 나오는 ‘오월 오르골’을 만든 문화기획자 박은현씨. 박씨가 만든 오르골은 그동안 1000개 넘게 팔렸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오월 오르골’ 만든 문화기획자 박은현씨

손바닥 위에 올려진 작은 종이상자 오르골은 손잡이를 돌리면 5·18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의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상자 위에는 옛 전남도청 등 5·18을 상징하는 여러 개의 장식들도 있다. 문화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박은현씨(30)가 만든 ‘오월 오르골’이다.

지금까지 5·18을 모티브로 제작한 기념품 중 수년간 꾸준히 판매될 정도로 오월 오르골은 상품성을 인정받는다. 2017년 처음 만들어진 이후 현재까지 1000여개가 팔렸다. 지난해 10월 광주에서 열린 ‘제9회 세계인권도시포럼’에서는 광주시의 주문으로 박씨가 제작한 ‘님을 위한 행진곡 오르골’이 참석한 시장들에게 선물로 전달됐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단체로 구매하기도 했다.

박씨는 “2016년 프랑스 여행을 갔을 때 오르골을 보고 ‘음악의 힘’을 느꼈다. 기억을 되살려주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누구에게나 거부감이 없고 새로운 공간으로 데려다줄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도 좋았다”고 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박씨는 촛불집회와 이어진 19대 대통령선거를 보면서 ‘민주주의 실천을 위해’ 광주에서 할 수 있는 게 뭔지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5·18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지만 나만의 방법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면서 “금남로에서 매년 열리는 5·18 기념행사는 1980년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런 방식으로 지금을 사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학교에서 직접 경험한 5·18 교육 방식도 영향을 줬다. 박씨는 “초등학교 시절 5월이면 ‘국립 5·18민주묘지 견학’이 숙제였다. 5·18과 8·15도 잘 구별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묘지에서 끔찍한 사진들을 마주하고 충격을 받곤 했다”면서 “무서운 이미지로 기억되니까 이후 5·18을 일부러 외면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일상에서 부드럽고 친숙한 이미지로 5·18을 기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오르골’을 택했다. 제작과정에서 몇 가지 원칙도 세웠다. 사용자가 오르골을 직접 조립하도록 해 재미도 느끼고 5·18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아가도록 할 것, 누구나 책상 등에 올려두고 일상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크기로 만들 것 등이다.

오르골 제작을 위해 ‘님을 위한 행진곡’ 작곡가인 김종률씨도 여러 번 만나 허락을 받았다. 이렇게 탄생한 오르골 상자 위에는 전남도청과 분수대, 촛불, 택시, 피리 부는 윤상원 열사, ‘님을 위한 행진곡’ 악보가 장식됐다. 모두 5·18을 상징한다. 박씨는 “5·18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일반적인 상징물을 선택하되 현재와 우리에게 5·18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했다”면서 “촛불은 ‘미래세대’, 분수대는 ‘공론의 장’, 도청은 ‘끝까지 싸웠던 시민들’, 택시는 ‘평범한 시민’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2018년에는 오르골 제작을 위해 스토리펀딩도 진행했는데 서울과 부산 등 다양한 지역에서 후원을 해줘 목표 금액을 훌쩍 넘겼다. 오르골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주문하면 택배로 받아볼 수 있다.

박씨는 5·18정신이 소외받는 다양한 계층으로 확장되고 젊은 세대와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5월정신은 이제 성소수자와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을 포괄해야 한다”면서 “5·18이 젊은 세대에게 흥미가 있는 것이거나 관심사는 아니지만 40주년 기념행사는 청년들과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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