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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 갈 곳 없는 아이들 쉼터 맘’ 되준 AOA 찬미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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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2-27 14:57:44 수정 : 2019-12-27 16:4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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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KBS1TV 시사교양프로 '사미인곡'에 출연했던 인기 걸그룹 AOA 멤버 찬미의 친어머니 임천숙씨. KBS1TV '사미인곡' 갈무리


인기 걸그룹 AOA 멤버 찬미의 친어머니가 경북 구미의 한 자리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오갈 곳 없는 청소년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며 이들을 마음으로 품어주는 ‘엄마’역할을 해왔다는 따듯한 소식이 27일 전해졌다. 그의 이 같은 선행의 밑바탕엔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이 있었다. 엄마의 미용실 일을 손수 도우며 성장한 찬미 또한 자신을 ‘진짜 금수저’라며 어머니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존중을 언급했다.

 

한국일보는 이날 찬미의 어머니 임천숙 씨와의 단독 인터뷰를 공개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어린 시절 임씨는 경북 상주시 함창읍에 위치한 문간방에 네 식구가내수공업으로 삼베짜는 일을 하는 등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한다. 특히 임씨는 술과 노름에 빠진 아버지 폭력에 여덟살 어린 나이에 한 살 터울 언니와 함께 소매치기를 강요 받을 만큼 불우한 성장과정을 겪었다고. “손만 내밀어 주면 고아원이라도 가고 싶었다” 임씨가 고백한 어린 시절에 대한 감상이다.

 

임씨는 열일곱 살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준 미용실원장님에게 ‘미용에 소질이 있다’는 칭찬을 들은 후에 미용사가 되기로 결심했고, ‘힘 들때 손 을 잡아주는 어른의 한 마디가 지닌 힘’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 같은 힘은 그가 20여년 동안 청소년들을 도울 수 있는 지렛대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한다. 26살 나이에 경북 구미시 황상동에서 1999년 21평(69㎡) 남짓한 규모의 미용실을 개업한 그는 해당 자리에서 미용 외길을 오롯이 걸어 왔다. 그가 가진 것은 월세 살림살이라도 할 수 있는 방 한 칸 딸린 미용실과 가위 한 자루.

 

임씨는 야무진 손놀림으로 오갈 곳 없는 아이들의 머리를 다듬어 주고 밥을 해먹이면서 미용실마저도 쉼터로 내줬다. 둘째인 찬미를 포함해 세 자매를 남부럽지 않게 키워냈다. 그렇게 임씨의 따듯한 손길을 잡은 아이들만 200∼300여명에 육박하며 아직까지 연락이 닿는 아이들은 100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임씨의 따듯한 마음을 접한 아이들은 그를 '아줌마'에서 이제는 '이모', '엄마'라고 부른다는 전언이다.

 

KBS1TV '사미인곡' 갈무리

 

임씨는 미용실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집안 형편 때문에 고1때 자퇴 했다”면서 “열일곱살 때 처음 시작한 게 미용 일이었다”고 했다. 학교를 그만 둔 후 주중엔 직장 생활에 가능한 대구에 있는 산업체 부설학교에 다시 입학한 그는 회사에 다니며 주말엔 미용 일을 했고 미용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결혼한 그는 “두 달 연애하고 결혼했는데, 남편이 아버지와 똑같았다. 술값과 노름으로 대출에 사채까지 끌어 쓴 바람에 진 빚이 1억2000만원이나 됐다”라며 “7000만원 빚을 떠안고 (당시 임신 중이던 막내를 포함해) 자녀 양육권을 넘겨받았다. 미용실 10년을 하며 빚을 다 갚았다”고 고백했다.

 

임씨는 청소년들이 미용실에 드나들게 된 계기에 대해서 “처음 미용실 열었을 때가 26살. 젊은 미용사가 하는 미용실에 학생들이 몰려 왔다. 청소년들과 대화를 잘하고 싶어 미술 심리치료, 심리 상담을 배웠다”고 했다. 임씨는 빠듯한 살림에도 아이들을 돌본 이유에 대해 “나 역시 힘들게 살아봤고, 나쁜 짓도 해봤다. 한 겨울 논바닥을 쌓아 놓은 짚을 파헤치고 구멍 안에 들어가 잠도 자봤다. 사람이 먹을 것, 잘 곳이 없으면 자기도 모르게 나쁜 짓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안다”라며 “그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도움만 줘도 나쁜 마음은 안 먹을 것”이라 답했다.

 

‘아이들에게 이곳이 미용실 이상의 곳이었을 것’이란 질문에 대해서 임씨는 “(아이들에게 내가) 엄마이지 않을까 한다”면서 “엄마 없는 아이들이 많다. 내 자식으로 생각하고 건사했다. 한 아이가 ‘엄마’라고 불러도 되냐길래 ‘그래라’고 했다”라며 “한 아이는 진짜 장가 보내 좋은 가정 꾸릴 때까지 책임질 생각도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혼 서류를 정리한 후 모자 가정 지원을 신청해 정부에서 다달이 나온 쌀 20㎏과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급되는 저렴한 쌀을 구입해 아이들을 돌볼 수 있었다는 ‘팁’도 전했다.

 

‘힘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임씨는 “나는 어른이고 돈을 벌 수 있으니 아이들에게 ‘그렇게 해줘야 한다’고 당연하게 여겼다”라며 “내 자식만 잘 키우면 무슨 소용인가. 내 자식이 귀한 만큼 남의 자식도 잘되면 좋지 않나”고 답하며 소탈한 모습을 보였다.

 

2015년 11월 딸 AOA찬미와 함께 MBC예능프로 '위대한유산'에 출연한 임천숙씨. MBC'위대한유산'갈무리.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댄스를 배우며 가수로서 끼를 보였던 찬미가 FNC 연습생이 돼 2012년 걸그룹 AOA로 데뷔 했던 과정을 전한 임씨는 “1년 2개월 동안 힘든 과정을 거쳐 AOA로 데뷔했지만 데뷔 5년 만에 처음으로 정산을 받았다”면서 “또 데뷔 3년쯤 됐을 때 우울증을 심하게 앓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는 FNC를 나오고 싶어하는 찬미에게 FNC에 위약금을 물릴 수 있는 돈이 없어 ‘우울증 쯤은 엄마가 책임 지겠다’고 하며 두 달 동안 구미와 서울을 기차로 오가며 찬미를 직접 돌봤던 이야기도 전했다. 엄마의 극진한 정성으로 재기에 성공한 찬미에 대해 임씨는 “최근 3년 동안 AOA가 일이 거의 없었는데 ‘퀸덤’으로 잘 되어 정말 다행”이라면서도 ”딸들이 몸과 마음이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임씨는 인터뷰 말미에선 자신의 ‘삶의 철학과 꿈’ 대해 “돈을 따라가면 절대 내 돈이 되지 않는다, 즐겁게 재미있게 일하다 문득 뒤돌아보니 와 있는 돈이 내 돈”이라는 지론을 밝히면서도 “지금도 월세로 살고 있지만 지금 이렇게 사는 게 정말 좋다. 돈이 좀 없지만 빚도 다 갚았고. 과거로 돌아가라면 절대 가고 싶지 않다. 지금이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교도소에서 나온 뒤에라도 사회에 나와 써먹을 수 있는 미용 기술을 가르치는 봉사를 하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JTBC ‘아는 형님‘

 

한편, 2009년 KBS1TV 시사교양프로 '사미인곡'과  MBC 예능프로 '위대한 유산' 등을 통해 임씨의 미용실 일을 거두는 모습을 보여주든 중학생 및 갗 데뷔 했던 걸그룹 아이돌 찬미는 이젠 데뷔 8년 차 아이돌 AOA 의 핵심 멤버로 우뚝 성장했다.

 

그는 최근 JTBC 예능프로 ‘아는 형님‘에 출연,  엄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당시 방송에서 패널들이 찬미에게 “진정한 금수저라는 별명이 있다”고 언급하자 찬미는 “어머니가 구미에서 유명하다”며 “우리 집이 잘 살진 않았지만, 그런 것과 관계없이 나누며 살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엄마도 어릴 때 어렵게 사셨고 그 시절을 겪어서 어린 친구들이 최소한의 선을 넘지 않도록 어른들이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라며 임씨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또한  2015년 MBC ‘위대한 유산‘에서 연예인이 되고 싶었던 이유에 대해 “엄마가 매일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데 집도 없고, 꼬박꼬박 월세를 내고 우리 학원비를 내면 엄마가 모을 돈이 없는 걸 아니까 일찍 돈을 벌고 싶었다”고 밝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

 

장혜원 온라인 뉴스 기자 hoduja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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