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규, 몽상가의 열변 [인터뷰]

우다빈 기자 2019. 12. 2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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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 한석규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기자가 만난 한석규는 배우의 모습보다는 몽상가에 가까웠다. 세상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가득한 중년 남자와의 대화는 뜬 구름 같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마냥 가볍지 않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감독 허진호·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는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한석규)과 장영실(최민식)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극 중 한석규이 맡은 세종은 관노 출신인 장영실의 재능과 천재성을 알아보고 신분에 상관없이 그를 임명할 만큼 장영실을 아낀 인물이다.

한석규는 1990년 드라마를 통해 데뷔 후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역할의 한계를 두지 않고 변화를 거듭, 독보적인 존재감을 빛내고 있다. 특히 2011년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을 맡았던 한석규는 이번 작품을 통해 또 다른 세종으로 거듭났다. 한석규가 '뿌리깊은 나무'에서 카리스마 있는 세종의 모습을 보였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날카로우면서도 자애로운 성군의 모습을 드러낸 것.

천문 한석규 / 사진=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공식 스틸컷


한 배우가 같은 캐릭터를 다시 만나는 일은 국내에서 꽤 드문 일이다. 특히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세종이라는 역사적 인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한석규는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듯 세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렇다면 한석규가 두 번째로 만난 세종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에 대해 한석규는 '천문' 속 한석규 만의 세종을 위해 엄청난 상상력을 펼쳤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가 바라본 세종은 어머니가 핍박 받는 과정을 보고 엄청난 한을 품은 인물이다. 그는 과연 어땠을까. 어린 청소년 때 왕이 됐고 그렇게 어른이 됐다. 착한 세종은 전대 왕들을 보며 절대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을 것이다. 그래서 세종을 더욱 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장영실과 세종은 당대 사회를 뛰어넘은 관계다. 신분제도가 뚜렷한 사회에서 장영실은 당시 종교도 못 가지는 '불가촉천민'이다. 그런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던 인물이 사람 중에 가장 높은 위치인 세종을 만났다."

이처럼 평행선 양 끝에 서 있는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를 두고 한석규는 자신과 최민식의 우정을 떠올렸다. 그러니 더욱 상상력이 풍부해질 수밖에. 세종과 장영실이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듯 한석규와 최민식은 선후배 관계를 뛰어넘었다.

이를 두고 한석규는 "누군가가 어디가 잘 나가고 돈이 된다는 이야기를 하면 나는 맥이 빠진다. 이는 최민식도 마찬가지다. 대학교 때 최민식과 공상을 하곤 했다. 당시에는 천만원이 생기면 담배 백 보루를 산다는 상상을 했다. 이 놀이는 커서도 했다. 우리가 1억이 생기면 뭐할지 단위만 커졌다. 우리는 이와 같은 농담을 즐기는 사람들일 뿐"이라 말했다.

그의 말처럼 '농담을 즐기는 두 벗'이 만났고 시너지 효과는 더욱 극대화됐다. 서로가 서로를 두고 '눈만 봐도 아는 사이'라 칭했다. 한석규는 '서울의 밤', '쉬리' 이후 최민식과의 세 번째 연기 호흡을 맞이했고 이번 작품 역시 완벽했다고. 현장에서 한석규는 최민식에게 "우리, 재즈 연기하듯 해보자"고 제의했고 최민식은 이에 응했다. 남다른 호흡을 자랑한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결코 나오지 못했을 아름다운 장면이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특히 극 중 세종과 장영실이 처소에서 둘 만의 시간을 갖는 장면은 흡사 로맨스 분위기를 방불케 했다. 한석규는 연기에 대해 남다른 가치관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연기는 액션과 리액션의 만남이다. 연기를 하고 싶어서 시작했고 앞으로도 하고 싶다. 시간이 흐를 수록 내가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토로했다.

앞서 최민식은 한석규를 두고 '늘어진 테이프'같다고 표현한 바 있다. 최민식의 말에 따르면 한석규는 '천문' 촬영 현장에서 조주연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 결국 신구에게 꾸지람을 들었다고. 이를 두고 한석규는 "저는 주연부터 조연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소통하는 기계들이 많아졌지만 서로가 말을 더 안 듣는 세상이다. 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같은 배우들끼리 공통분모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다들 이야기를 하다보면 공통의 관심사는 '나'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석규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딱 한 마디를 내뱉기도 했다. "죽어야 끝난다." 허공에 툭 던져진 이 말을 두고 한석규는 홀로 되새김질을 했다. 그가 갑자기 뱉은 이 한 마디는 사실 최민식이 연기 인생을 두고 표현한 말이다.

한석규는 다시 한 번 이 말을 읊조리며 "그동안 나는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서, 나에 대해 알고 싶어서 연기를 했다. 최민식 역시 이런 지점에서 그 말을 뱉은 게 아닐까. 역시 최민식과 나는 동반자"라면서 그가 느낀 지점을 밝혔다.

자연스럽게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한석규는 스스로를 두고 원래 추억을 많이 회상하는 편이라면서 "나이가 들수록 연기 욕심이 더 생긴다. 60대에는 연기적으로 헛다리 안 짚을 자신이 있다. 여러 생각을 하면서 인물을 상상하고 이미 내가 다 겪은 슬픔, 상실감 같은 감정을 대입할 것"이라 표현했다.

이처럼 한석규는 마지막까지 마음 속 있던 말을 모조리 꺼내놨다. 그는 이제야 사람에 대해 조금 알게 됐고 또 연기에 대해 이해하게 됐노라 표현했다. 이처럼 사람에 대해 늘 진지한 태도로 임하는 한석규의 또 다른 미래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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