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드립니다' 정민식 PD "어려운 책 소개 통했죠"[직격인터뷰]

한해선 기자 / 입력 : 2019.12.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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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vN


'사피엔스' '징비록' '군주론' '멋진 신세계' '신곡' '총, 균, 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백범일지' '넛지' '이기적 유전자' '팩트풀니스' '데미안' '정의란 무엇인가'...

제목은 숱하게 들어봤지만 막상 범접하기 힘들었던 도서들. 혹자에겐 학창시절 필수도서로 내용을 재점검하는 방송, 혹자에겐 책을 읽지 않아도 읽은 것 같은 '꿀 교양' 방송이 등장했다. tvN '요즘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이하 '책 읽어드립니다')가 단 1시간 만에 난해하고 유명한 책들을 독파하며 최근 시청자들에게 기대 이상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 9월 방송을 시작해 어느덧 13회째인데, '책 읽어드립니다'가 선정한 책들로 새삼 책장을 빼곡히 채워나가는 '책 매니아'들이 제법 많다.


강독자 설민석이 매주 선정된 책을 연극하듯 강의하듯 흥미롭게 읽어주면, 독서 비기너 전현무가 내용을 스펀지처럼 쏙쏙 흡수하고 책을 안 읽었어도 읽은 듯한 완독자가 된다. 평소 애독가인 책 쓰는 뮤지션 이적, 학구파 독서가 윤소희, 소설가 장강명은 심도 있는 독서토론을 나누고, 대학 교수 등 전문가들의 설명으로 풍성한 지식을 만든다.

'책 읽어드립니다'의 이러한 방식이 기존의 독서 프로그램과는 또 다른 시청욕구를 만든다. 이전 프로그램들에선 출연자 모두가 과제의 책을 읽고 그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시청자가 개입하기 어려웠다면, '책 읽어드립니다'는 과감히 책 내용을 모르는 이로 시청자 공감도 주면서 심도 높은 학자들의 추가 토론으로 지적 욕구를 충족시킨다. '지적 허영심'을 채우고 싶어하는 한국인들에게 제격인 방송이다.

출판 업계에서도 '책 읽어드립니다'를 주목하고 있다. '군주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같은 난해한 책에 '책 읽어드립니다 방송도서'란 띠지를 둘러 스테디셀러가 베스트셀러로 재탄생하는 광경을 보여준다. 쉽게 소비하고 잊어버리는 '스마트기기 세대'에 깊이 있는 '책 사고'의 물결을 만들고 있는 것. 정민식 PD는 이 같은 변화에 "송구할 정도로 감사하다"며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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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vN '책 읽어드립니다' 방송화면 캡처


-최근 '책 읽어드립니다'에 대한 호평이 많다. 매회 소개되는 책들이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

▶굉장히 기쁘다. 우리가 소개하는 책들이 제목은 유명한데 20장 이상 잘 안 넘어가지 않는 어려운 책들이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이 좋아해주셔서 감사하다.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3가지 중요한 포인트를 생각했다. 첫 째는 최고의 이야기꾼 설민석 강사가 책 내용을 이야기해 줄 것, 두 번째는 사람들이 읽기 어려운 책들을 읽어줄 것, 세 번째는 읽고 나서 진짜 전문가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볼 것이었다.

-'책 읽어드립니다'를 기획하게 된 계기와 이유는?

▶내가 이전에 '스타특강쇼' '김미경 쇼' '어쩌다 어른' 등을 연출했다 보니 인문학에 관심이 많은 PD가 됐는데, 20대 때부터 책 보기를 좋아했고 인문학 강의 듣기를 좋아했다. 최근 디바이스도 다양해지고 플랫폼도 다양해지면서 책 읽을 시간이 없어진 환경이 됐길래 책 프로그램을 해보고 싶었다. 사람들이 힘들고 지칠 때 강연 프로그램을 많이 찾는 것 같은데 책 프로그램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책을 주제로 다룬 프로그램이 잘 되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책 읽어드립니다'가 매니아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본질적인 것 같다. 책의 선한 영향을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 우리 프로그램에 대해 부모님이 자녀들과 본다는 댓글이 많은데 좋은 일인 것 같다. 나는 지식을 전달하기 이전에 책을 읽고 수다를 떨 수 있다는 것만 알려줘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책 준비를 하면서 적어도 한 줄은 기억하려 하는데, '어쩌다 어른' 때도 그랬듯 시청자들이 우리 방송의 60분 중 1분 정도만이라도 가져가셔서 생각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매주 다른 분야의 전문가 섭외로 지식 전달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지금까지 김상욱 물리학과 교수, 윤대현 정신의학과 교수, 양정무 미술이론 교수, 김경일 인지심리학 교수, 유성호 법의학자 교수, 장대익 과학철학자, 이진우 철학박사, 김태경 범죄 심리 전문가, 김상균 강원대 산업공학과 교수, 배우 윤주빈, 최재봉 4차산업 전문가, 김범준 통계물리학자, 서천석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가 출연했다.

▶책을 읽은 후 교수님들과의 토의, 토론 시간에 가장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기존의 책 프로그램들은 책을 읽고 전문가가 아닌 개인의 견해를 나눴다. 요즘엔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창구가 많아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바로 인터넷 검색을 할 수 있는데 '책 읽어드립니다'는 더 깊이 있게 가보자고 생각했다. 각 분야에서 공부하신 학자들이 나오게 하자는 게 목표였다. 우리 프로그램에서 제일 신경 쓰는 게 책 선정과 전문가 섭외인데, 매주 공감할 만한 주제를 선정하고 그에 맞는 교수님을 섭외한다.

-고정 출연자로 설민석, 전현무, 이적, 윤소희, 장강명이 있다. 각자의 역할은?

▶설민석은 책을 잘 읽어주는 사람, 전현무는 시청자 입장에서 질문하는 입장이다. 정말 궁금해 하는 날 것의 느낌 그대로를 담고 싶었다. 이적은 학구파여서 지식을 잘 파고들고 지정 도서의 원서까지 사더라. 윤소희도 궁금증이 많고 매주 열심히 공부해 온다. 장강명은 책을 쓰는 사람으로서 보여주는 역할이 있다. 우리 프로그램에선 전현무를 제외하고 다른 분들이 다 완독을 하고 오는 게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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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vN '책 읽어드립니다' 방송화면 캡처


-일각에선 여성 출연자를 배우인 문가영, 윤소희로 선정한 이유가 있냐는 질문도 있다.

▶젠더의 문제를 떠나 본질을 먼저 생각하고 섭외했다. 문가영, 윤소희도 충분히 책을 완독하고 자신희 생각을 잘 얘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이었고, 서로 다른 직업군의 출연자를 섭외하자는 목표와도 부합했다. 매주 한 권씩 완독하는 것이 서로의 약속인데 '총, 균, 쇠' 800페이지를 읽을 수 있는 분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최근 문가영의 뒤를 이어 고정 출연자로 윤소희가 발탁됐다. 윤소희에 대해 평가하자면?

▶지금 충분히 잘 해주고 있다. 아직도 녹화 때 긴장을 하는 게 보이는데 재미있어 한다. 너무 착한 분이다 보니 의견을 말할 때 아직 조심스러워 하는데 앞으로 더욱 자신의 지식을 뽐냈으면 좋겠다.

-역사 전문 강사 설민석이 매회 다양한 분야의 책 강독자 역할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을 재미있게 읽어주는 이유가 가장 크다. 애초에 우리가 섭외할 때도 강독자를 설민석 강사로 염두했던 터다. 처음엔 설민석 강사도 교수님들 앞에서 다른 분야의 책을 어떻게 읽을지 걱정했지만 전문 연구팀을 꾸려서 미리 준비해 오고 교수님들도 "잘 읽어주시잖아요"라며 좋아해주셨다. 사람들이 우리 방송을 보고 책을 좋아하게끔 만들어줬으면 했다.

-'사피엔스' '징비록' '군주론' '멋진 신세계' '신곡' '총, 균, 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백범일지' '넛지' '이기적 유전자' '팩트풀니스' '데미안' '정의란 무엇인가'로 다양한 분야의 도서를 소개했다. 매주 책을 선정하는 기준은?

▶시청자들이 혼자 읽기 어려운 책이다. 책을 선정하기 위해 20여 분 정도의 자문단이 계신다. 교수, 출판업계, 동네책방 주인 등 다양한 분야의 분들이다. 동네책방 주인은 책, 손님과 조금 더 밀접한 스킨십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어떤 편이 가장 다루기 난해했나.

▶'군주론' '총. 균. 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이 세 책이 어려우면서 시청자 반응이 가장 좋았고, 그 중 난해했던 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다. 공판 기록서를 통해 악의 평범성을 다뤘는데 오스트리아 나치 친위대 아돌프 아이히만의 법 집행 과정을 다룬 내용으로 감정선이 들어가면 안 됐다. 책도 논문 두께였고 읽기 어려웠다. 아이히만의 만행을 평가했고 아이히만 자신은 '나는 무죄'라고 주장했는데, 현실의 나를 되돌아보게 되면서 모든 사람들이 그와 다를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내가 과연 누구를 평가할 수 있을까도 싶었다. 그 책은 굉장히 많은 사고를 하게 만드는 책이고 불편하지만 계속 맴돌았다.

-최근 서점에선 '책 읽어드립니다' 소개 도서들에 '책 읽어드립니다 방송 도서'란 띠지를 붙여 홍보하더라. 출판업계에서 체감하는 인기가 크겠다.

▶엄청나게 송구할 정도로 감사하다. 띠지는 출판사에서 저희쪽을 통해 만든다. '어쩌다 어른' 때도 교수님들 책에 띠지를 많이 만들어 붙였는데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었다. '어쩌다 어른' 책 판매를 통해 들어왔던 1억 5천 만 원의 수익을 다 기부했고, '책 읽어드립니다'도 굿즈 판매금을 다 기부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하고 싶다. 이건 '어쩌다 어른' 때부터 지키는 철학인데 작은 출판사도 선한 영향을 받으면 좋겠다. 우리 또 다른 PD들과 작가들이 매주 정말 많이 노력하는데 사랑한다고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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