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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를 폭력 진압 실험장으로...도망가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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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를 폭력 진압 실험장으로...도망가라고요?"

[팩션] 실록소설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 <30>

해방 후 왜곡된 역사 속에서, 지금까지의 한일 관계는 효용을 다했다. 그러나 예고된 갈등이었다. 일본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35년, 8.15 광복과 분단체제, 그 이후 70년의 강고한 구 체제 시스템 속에서 우리 내부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알게 모르게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그 안에 우리 내부의 모순과 고뇌가 응축되어 있다. 이 모순과 고뇌를 탐구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한 개인사를 통해 시대와 사회를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하는 것이 문학의 영역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외세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이 우선이었던 관계로 자기 자신을 앞세우지 못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렸고 안일했다. 그러다보니 역사는 박물관에 소장된 문화재인 양 화석화되고, 현대의 역사는 더군다나 묻혔다.

기자 출신 이계홍 작가의 실록소설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은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이 소설은 2016년 10월호부터 2019년 6월호까지 문예월간 '월간문학'에 연재되었던 소설이다. 월간문학 연재를 마친 뒤 많은 부분을 수정 보완해 프레시안에 재수록한다.

이 연재물은 이른바 '팩션(Faction)'이다. 팩트와 픽션의 사이 어디에서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논픽션' 형식의 소설이다. 필자는 취재의 일환으로 일제강점기 말 일본 육사 출신 젊은 생도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어지러운 시대, 그 안에서 제국주의 광풍에 휘말린 젊은이들의 시각을 잡아내려 했다. 이계홍은 "일본의 극우 정권이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사실들까지도 왜곡하는 역사 모독에 대해 하나의 담론시장을 형성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은 총 33회로 나뉘어 연재될 예정이다.(편집자)


제30장 박정희 정보국과 점과 선

“쌍간나 새끼, 너 같은 게 정보장교믄 갯지렁이가 용이디. 새앙쥐가 호랑이란 말이다. 정보장교란 자의 역할이 뭐간? 동태 파악은 내팽개치구, 반란군 편에 서?”
“아입니더. 정탐할래믄 그들 속으로 들어가야지예. 그렇게 보지 마이소.”
이동락이 강한 경상도 말씨로 대꾸했다. 그의 고향은 울산이었다.
“그기 아이라니? 내내 동조했대믄서 뭐가 아이라는 기야?”
김창동이 눈썹을 여덟팔자로 말아 올리며 이동락을 노려보았다. 박진경 연대장 암살 직후 제주도로 급파된 김창동 국방경비대 정보국 수사관은 11연대 정보장교 이동락을 앞에 세워놓고 조지고 있는 중이었다.
“너는 김익창 연대장과 김달삼 폭도대장, 김익창이 쫓겨난 뒤엔 오민균 대대장과 폭도대장간에 후속 비밀회담을 주선한 놈 아니간?”
1948년 5월 중순 오민균 소령과 김달삼간에 비밀회동이 있었다는 첩보를 받고 김창동은 이를 싸잡아 추궁하고 있었다. 거기서도 박진경 암살의 단초가 나올지 모른다.
“그건 4.28 화평회담 실패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한 입장 전달이었습니더. 화평회담은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되어뿟고, 상부에서 인정하지 않았으니까네 우리가 오해를 사게 한 건 맞십니더. 거지발싸개하고의 약속을 파기해도 그 이유를 알려야지예. 후사를 위해서도 신의는 지켜얍니더. 오라리 사건에 대해서 그 자들의 소행인가 아닌가도 파악했심더. 혐의는 없었심더.”
“개노무시키, 니가 폭도대 대변인이니? 사실대로 정직하게 말하는 공산주의자 봐서?”
그러나 이동락은 회평회담을 성사시켜놓고 약자인 그들이 휴전을 깰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상식에 관한 문제다. 경찰이 비틀어버리고, 충돌을 불렀다. 경찰 지휘부는 화평회담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그 후과로 김익창 연대장이 보직 해임되지 않았던가.
“적군에게 기밀을 토설(吐說)하는 자는 총살감이야!”
김창동이 으름장을 놓았다. 도대체 이 자가 속이 있는 것인지, 순진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박진경 연대장 암살은 폭도대와 비밀 라인이 작동한 연장선에서 나온 사건이라고 김창동은 단정하는데, 이 자는 태평한 모습이다. 부대 내에 간자(間者)가 있고, 그 비선 중에 이 자도 포함되지 않았을까? 박진경 연대장 암살은 분명 어떤 맥락과 흐름이 있었다.
박진경 연대장의 강공토벌 드라이브에 대한 견제, 그리고 저항. 그래서 필시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캐내면 고구마 줄기같이 배후가 줄줄이 엮어져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 라인 선상에 이동락이 끼어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는 함께 근무하는 이휘락 정보 장교의 친제(親弟)였다. 이휘락이라면 그와 호흡을 같이하는 머리 좋고 눈치 빠른 에이스급 정보 장교였다. 김창동의 말이라면 먼저 알아차리고 먼저 행동에 옮기는 순발력과 민첩성을 보이고 있고, 어느 곳에서든 기밀을 뽑아오는 데 귀신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이동락이 그가 신임하는 자의 동생이니 따끔하게 훈계나 하고 육지부로 쫓아버릴 심산이었다. 귀찮은 장애물은 빨리 배제시키는 것이 좋다.
“대책없이 제주 주민과 폭도대 편에 서지 말라우. 니 봐주는 건 니 형 덕분이야, 알간?”
싸구려 정의감이 인생을 파국으로 몰고 간다는 것을 모르는 감성파 청년장교. 정말 이휘락의 동생이 아니라면 그는 벌써 사라졌을지 모른다.
“주민 동향 살피는 것이 제 역할입니더. 주민 개개인의 억울한 사정도 있십니더.”
“뭐야 새끼야? 넌 어린아이 코흘리개도 빨갱이로 죽여야 하나?며 항변했다며? 야, 아이들도 모두 세뇌된 공산주의자야. 리승만 박사 교시 못들었네? 공산주의자는 그 자식까지도 빨간 물이 들었다고 말씀하셨디.”
김창동은 사명감이 투철했다. 본시 그랬지만, 미 CIC 실력자 하우스만의 전폭적인 지지가 그 바탕이 되었다. H로 통하는 하우스만은 언제나 장막 뒤에서 움직였다. 그러나 그의 힘은 군부 고위 지휘관은 물론 각부 장관까지 교체할 능력을 갖고 있었다. H는 미국의 밀가루, 쌀, 피복, 군화와 담배 따위 원조물자 배급권을 쥐고 있었다. 어느 곳에 피복 한 차분 보내라, 어느 지역에 밀가루 두 차분 보내라, C레이션 한 차분, 팔말과 말보로, 샐럼 오백 보루 보내라... 그러면 그대로 이행되었다. 이러니 군부와 권력층은 그의 신분과 계급에 상관없이 깎듯이 모셨다.
이승만이 총애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이박사가 H의 조종을 받고 있었다. 나이 스물여덟에 지위는 대위 계급장이었지만 남한 사회에서 그가 휘두르는 힘은 막강했다.
김창동은 이동락을 육지로 쫓아버리고 오민균을 정보대로 호출했다. 그와는 구면이었지만, 사실은 악연이었다.
“당신은 론리가 앞서는 장교디? 론리가 많은 건 공산주의자들이라는데 말이디...”
김창동은 야지부터 놓았다. 김창동의 표정은 늘 그렇듯이 그늘지고 차가운 인상이었다. 그는 ‘스네이크 김’이라는 닉네임을 갖고 있었다. 오민균을 보자 그는 더욱 쌍통을 찌푸렸다.
국방경비대 사관학교 응시생 때, 면접관이던 오민균은 김창동의 전력을 보고 퇴짜를 놓았다. 만군 시절 헌병 보조에서부터 정식 헌병이 된 후 계속 항일운동자들을 잡아들인 인물이라는 것을 오민균은 확인했다. 당연히 불합격 조치했는데 청주 연대로 전속간 사이 어찌어찌 입교해 졸업하더니 지금은 대위 계급장을 달고 그의 앞에 불쑥 나타난 것이다.
오민균은 처량한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김창동은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실내를 왔다갔다 했다. 너 같이 새파란 어린 장교는 밟을 수 있다... 그의 나이는 오민균보다 열 살이나 많았다.
정보국 출신들은 대부분 만군의 헌병 출신이거나 일본군 정보팀 출신들이었고, 일제 고등계 사찰반 출신 경찰들이었다. 이들이 하는 일은 사상불온자 체포였지만 저항 단체의 분열과 이간책이 포함되었다.
군의 움직임, 고급 장교들의 사상검증, 세상의 민심 등 모든 첩보를 수집하는데, 그 전제는 일제 때 사상범으로 몰렸던 좌익 색출과 단체의 와해, 그리고 훼방이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이념의 문제는 민주주의 국가 체제에서 용납되고, 민주주의라는 용광로에서 모든 이념이 용해될 수 있다고 했지만, 경비대 정보팀과 경찰 사찰계가 전면에 등장하면서부터 노선이 확 바뀌었다. 일제 때보다 더한 미행, 감시, 체포, 구금이 자행되었다.
국방경비대 정보국에는 박정희도 투입되었다. 경비대사관학교 생도대장으로 있을 때, 만군 시절 가깝게 지냈던 백선진 정보국장 주선으로 그는 정보국에 차출되었다. 그러나 김창동, 이휘락과는 결이 달랐다. 사회주의 사상이 드셌던 대구 출신에, 신간회 이후 사회주의 운동을 펼치면서 여운형과 함께 건준-인민위원회 선산 구미지부를 이끌었던 중형(仲兄) 박상희가 경찰 총에 피살된 이후 그는 늘 마음 속으로 원한을 품고 살고 있었다.
그런 어느날 박정희는 오민균을 불러 격정적으로 토로했다.
“사태를 파악하그라. 점과 선을 유지하라. 내 뒤에 누가 있는 줄 알고 있재? 이승만 박사가 정치 전면에 나서지만, 사실 핵심 역할은 훌리 풀러 대령과 H라는 미 육군 대위데이. 이들을 유의하래이.”
“훌리 풀러와 H 대위는 누굽니까.”
“베일에 가려져 있어. 아마 가명일 거야. 그중 H의 손에 의해 한반도가 설계된다고 보아야 된다. 정국에 강한 텐션과 프레스를 가하고, 대결 구도로 끌어간 뒤 새 판을 짤 기야. 그 전위 행동대가 백의사, 간토 토쿠세스부타이(간도특설대), 서북청년단, 대동청년단 등 아이가. 테러, 폭력, 암살도 거기서 나온다. 자기들 입맛에 안맞으면 좌건 우건 닥치는대로 제거한데이.”
“선배님은 만주군 출신이라 그들과 선이 닿잖아요. 그들이 정보 부대를 장악했잖아요.”
“나는 달라.”
박정희는 분명한 어조로 짧게 응수했다.
“남한에는 수천 명, 아니 수만 명의 밀정과 공작반이 암약하고 있다는 것 알아두라. 친분, 또는 선후배 관계에 따라 적이 되고 아군이 되는 풍토야. 정통성이 약할수록 음모와 배신이 판을 친데이. 미 공작팀 H를 살피그라. 연탄가스처럼 냄새는 있지만 형체가 없다. 공산주의 박멸이라는 이름으로 양심세력을 제거하는 거야. 남한의 우파 테크노크라트들과 결탁해 나라를 그들 식으로 디자인하고 있다.”
“남한의 우파 테크노크라트라면 일본 제국주의를 떠받든 세력들 아닙니까.”
“그렇지. 그들은 해방이 마땅치 않은 기라. 이익을 쫓아다니는 족속들이니까 양심세력과는 같이할 수 없지. 외세와 자본, 인적 네트워크를 확보했으니 그들이 판세를 끌고 간다고 봐야지. 수천 명의 검은머리 미국인, 수만 명의 조선 쪽바리들이 미국과 일본의 앞잡이로서 공작하고, 분단 현실을 이용해 이익을 추구하는 거이야.”
그는 부족했던지 덧붙였다.
“제주 사태를 보자. 희생자들은 대부분 이념과 무관한 일반 주민, 농어민, 여자, 어린이, 노약자임에도 불구하고 미군정은 합법적인 조사와 재판 과정없이 연행, 고문, 집단학살을 자행하는 우익단체를 지원했어. 공권력과 극우단체에 의한 폭력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졌는데도 묵인하는 거야. 마치 차도살인처럼... 남의 칼을 빌려 살인을 저지르는 것 말이야.”
외세 배격은 제주에서 5.10선거 보이콧으로 표출되었다. 남로당 세력까지 결합돼 제주 전역은 전국 유일하게 5.10선거를 치르지 못했다. 미군정은 외부 공산주의자들의 조종에 의한 거부라고 보고, 해상 봉쇄와 함께 경찰과 청년단을 조종해 좌익세력 소탕작전을 벌였다.
남로당 군사부장 이재복과 선을 대고 있는 박정희는 사태를 그렇게 보고 있었다. 이재복은 그의 형 박상희의 둘도 없는 친구였다.
“제주항쟁은 민족의 독립,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억압하는 악과 불의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는 운동이다. 그러나 미군정은 미국의 이익에 충실한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세우고자 하는 목적을 이행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남로당을 따른다는 제주를 배격했고, 박진경 연대장이 암살되자 제주 초토화 작전으로 그 실천 의지를 확실하게 펴나가는 기라.”
이로써 미군사 고문단과 방첩대, 범죄수사대, 그리고 미군정 중대가 제주에 총출동했다. 이들은 제주 해안에 괴선박이 출몰했다거나, 소련의 기지설 등의 가상 첩보를 유포했다. 극우 세력의 무자비한 진압행위를 때로 제어한다고 했으나 실제적으로는 부추기는 이중성을 보였다.<이상 제주4.3희생자유족회 주최 '제주4.3, 미국의 책임을 묻는다' 심포지엄 일부 인용>
“점과 선을 분명히 확보하그래이.”
오민균은 김창동 앞에 서니 박정희의 이런 말이 더욱 생생하게 귓전을 울렸다. 그의 생각을 꿰뚫기라도 하듯 김창동이 물었다.
“박정희 소령 만나나?”
“존경할만한 분이니까요.”
“만나나 안만나를 묻잖네? 존경하냐를 묻디 않았다!”
김창동은 경비대사관학교 응시 때 오민균 앞에서 멸시받던 때를 회상했다. 괘씸한 새끼, 그때 이 자는 이렇게 물었었지...
“조국이 진정으로 해방이 되었다고 보는가?”
“물론입네다.”
“그렇다면 신생 조국 건설의 주체는 누구여야 하나?”
김창동은 우물쭈물했다. 그러자 훈계하듯 오민균이 말했다.
“낡고 썩은 구폐(舊弊)를 청산해야지. 썩은 것은 어떤 무엇도 만들 수 없으니까. 하지만 새로운 시대는 쉽게 오지 않아. 왜 그렇다고 보는가.”
“나쁜 놈들이 있으니까요.”
김창동은 오민균이 요구하는 답을 편리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나쁜 놈은 누구인가?”
“못된 놈들입니다.”
그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일제에 협력하고, 애국자들을 탄압한 과오에 대한 반성은 준비돼있나?”
일제가 좀더 지속되어야 하사관이 되고, 고급장교도 되는데 패전해버린 것이 두고두고 가슴 아픈데, 반성이 준비되어 있느냐고? 어린 놈이 장교랍시고 건방떠는군.....
“적폐라는 건 악성 종양이야. 친일 세력들이 너무 많은 종양을 배양했어. 이익에만 충실했지. 이런 걸 고치는 건 신생독립국의 지상 명령 아닌가?”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라니. 솔루션을 말해야지.”
김창동은 “이 새끼가 날 떨어뜨리려구 작정했구나” 라고 생각하며 멀뚱히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는 결국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꾸중 듣고 모욕을 당하고 나온 기분이었다. 낙방소식을 듣고 그는 이를 갈았다.
“리론이 분명한 대대장이니까니 얘기 한번 해보자우. 악성 종양이란 무슨 뜻인가.”
김창동이 경비대사관학교 입시 때의 면접을 기억하고 물었다. 너무도 모욕을 당했기 때문에 그는 지금까지 그걸 잊지 않고 있었다.
“이론이 많다고 했으니 길게 얘기하겠습니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서 왕이 흔들릴 때, 수구세력이 구정치로 원위치 시켜놓을 수 있었던 건 외세인 청나라 군대의 지원 덕분이었습니다. 전주성을 동학군에게 빼앗기고 공포심에 사로잡혔던 왕실이 동학군을 섬멸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군의 진압작전이 성공했기 때문이지요. 해방이 된 지금 자주적으로 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건준이 와해된 것은 친일 진영이 미군에 기대어 밟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외세를 끌어와 민족자주를 분쇄했습니다.”
“반미구먼?”
단박에 김창동은 단정했다. 이제 반미는 약도 없다.
“이 땅에서 미국의 역할이 무엇이오? 정의롭고 양심적인 나라의 탄생과, 그에 앞서 식민지 백성을 탄압한 일본을 응징하며 질서를 잡아주었다면 나라의 정통성이 세워지겠지요, 이런 혼란이 나올 턱이 있겠소?”
“고래서 5.10선거를 보이콧한 거이야? 그기 정의로운 일인가? 박진경 대령의 암살을 정당화하는 건가?”
“박 연대장 암살은 분명 잘못된 비극입니다. 엄청난 보복극이 일어날 거니까요. 그래서 어리석은 자들의 망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해결될 일은 없습니다.”
“당신 연루됐다는 투서가 이서!”
“웃기지 마시오. 난 그의 강경토벌작전을 반대했을 뿐, 암살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소. 탈영한 병사 20여명을 생포해서 장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총살했을 때 절망했을 뿐이오.”
“총살이 상부 지시라면?”
“당연히 불복해야지요.”
“그러니 문제고, 그게 반미야.”
그가 벽에 붙어있는 비상전화기를 들어 귀에 대더니 짧게 영어로 말했다.
“Commander, can you come to my room for a moment?(지휘관, 나의 방으로 잠깐 와줄 수 있소?)”
잠시 후 육중한 체구의 미군 장교가 들어왔다. 그는 선글라스를 낀 채 들어왔으므로 눈빛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자기 소개는 아예 생략했다.
“폭도대에게 무기를 지급한 지휘관이군.”
그가 또렷한 한국말로 말했다. 그러자 김창동이 보탰다.
“탈영 병사들에게 M1 소총과 탄환 2000발을 제공했다는 첩보요.”
“증거 수집했소?”
그가 바로 H라는 하우스만이었다. H가 오민균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오민균은 작전에 나가 산골짜기에서 일본군이 버리고 간 무기고를 발견하고, 그중 일부를 운반 도중 한 하사관에 의해 분실했던 것이 떠올랐다.
“폭도대장 참모와 비선 라인을 구축한 것은 어떻게 된 건가?”
김창동은 오민균과 현호진과의 관계를 파악한 모양이었다. 모든 것이 하나로 귀결되는 양상이었다.
“박진경 연대장 살해사건과 연관 짓습니까?”
오민균이 물었다.
“트러블이 있었던 건 사실 아닌가?”
“트러블이 있으면 혐의가 있다는 것이오?”
“그건 수사의 기초디. 불만과 트러블은 범죄와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지. 연대장의 강공작전에 불만을 갖고, 갈등이 생기고, 그래서 충돌한 것이라는 가설은 얼마든지 가능하디. 그리고 대대장의 흉중을 알고 따르는 부하들이 행동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김익창 연대장의 진압방식과 박진경 연대장의 진압방식이 구분되고, 박 연대장의 진압방식이 우려되는 바가 커서 불안하게 지켜보았을 뿐, 이견을 표출한 바는 없습니다. 나의 부대는 불과 한달 전 부산 연대에서 파견된 독립 대대고, 주요 병력이 제주읍에 주둔했기 때문에 연대와는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이 이유가 될 수 없디. 비밀리에 활동하기가 더 수월할 수 있으니까니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디... 김익창 연대장 시절에는 귀관이 9연대장 참모로서 함께 살다시피 하지 않았나.”
어떻게든 그는 엮을 모양이었다. H가 검은 선그라스 안경알 속에서 그를 뚫어져라 응시했지만 오민균은 그의 눈빛을 가늠하지 못했다. H가 김창동을 향해 말했다.
“킴과 오, 두 사람 사이에 사적으로 감정이 있습네까?”
“수사 경험상 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조선 말로 촉이라는 것인데, 이것이 수사에 명확한 나침반 역할을 하지요.”
김창동이 차갑게 웃었다. 오민균은 아득한 절망감을 느꼈다.

실성한 사람들

박진경 연대장 피살사건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소강상태를 면치 못했던 제주 상황이 다시 악화되었다. 초여름의 날씨가 후덥지근하던 어느날 밤, 화북리의 김상복 소년은 예의 집 담 밖을 주시했다. 그것은 거의 습관이 되어버린 행동이었다. 열다섯 살의 소년에게는 상황이 너무 무거웠다. 한동안 졸고 있는데 밖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무장자위대가 마을을 습격한 것이다. 무장자위대는 서부락 구장을 끌어내 살해했다. 구장은 지역 5.10선거관리위원장이었다. 그들은 동부락에 들어가더니 김상복의 당숙을 살해했다. 그 역시 선거관리위원이었다. 그들은 김상복의 부친을 살해하고자 집을 기습했으나 그의 부친은 낌새를 알고 미리 피신했다. 부친이 피신한 것은 그의 팔촌 형이 “내일 밤 폭도대가 당숙 집을 습격할 것”이라고 미리 정보를 알려준 덕분이었다.
김상복은 큰아버지 집에도 화가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고 큰댁에 달려가 알려주었으나 한발 늦었다. 큰 아버지는 강직한 성격파답게 “그놈들한테 나쁜 짓하지 않았으니 걱정할 것 없다”고 버티고 있다가 피살되었다.
김상복의 집안은 대대로 지역의 부르쥬아지였다. 그의 부친은 제주에서 양파, 대파, 당근 등 특용작물로 이문을 남겼으며, 일본에서 들여온 버크셔 종돈을 번식시켜 돈을 모았다. 화북리번영회에 발전기금을 기탁하고, 5.10선거에선 화북리 선거관리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위에서 시키니까 했을 뿐이었다.
김상복은 친구들이 민애청 회의에 참석하길 권할 때, 아버지로부터 전해들었던 말을 되새기고 가지 않았다. 각 학교에서는 동맹휴학, 백지동맹, 동맹파업이 이어졌다.
김상복은 얼마 전 선생님을 잃은 이후 무서워서 어떤 단체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그는 양치명 화북초등학교 교사가 살해된 현장을 목격했다. 김상복은 초등학교를 졸업했으나 그 무렵 아버지가 일본에 체류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학교 진학 문제를 결정하지 못하고 집에서 쉬고 있었다. 이때 양치명 교사가 그를 불러내 초등학교 고등반격인 학습소에 다니도록 주선했다. 재수학원인 셈인데 양치명이 무료교사로 직접 지도하고 있었다.
양치명은 공부할 여건이 못된 어린이들을 모아 열성적으로 가르쳤다. 어느날 그는 마을 사람들을 모아 화북초등학교 교정에서 면민대회 약식 행사를 갖고 이들을 관덕정으로 인솔해 갔다. 광장에서 조선독립만세를 부른 후, 신탁통치 결사반대, 양과자 결사반대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때 기마경찰이 군중 속을 누비며 사람들을 해산시키려 했으나 군중이 불어나 사건이 크게 터졌다. 여기저기서 총을 쏘는 가운데 사람이 죽고 다쳤다. 집으로 돌아오니 그게 3.1사건이었다.
“절대로 함부로 나서지 말아라.”
나중 귀국한 아버지의 엄명이었다. 공포스런 나날이 지속되었다. 파업도 전도민적(全島民的)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얼마 후 친구들과 집 앞에서 놀고 있는데, 양치명, 문선호, 김규태, 세 청년이 포승줄에 묶여 토벌 경찰관에게 연행되어 벌랑동 버렁 쪽으로 끌려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또래들과 함께 양치명 선생님의 뒤를 따랐으나 순경들이 총으로 위협하며 따르지 못하도록 쫓고, 양치명 역시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 숙제해라”라는 말을 듣고 마을로 돌아왔다. 30분쯤 지났을까 고개 너머에서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경찰관 일행이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이상하다. 총소리 난 쪽으로 가보자.”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친구들과 함께 총성이 울렸던 곳으로 가보니 양치명 선생님과 그 일행이 길 옆 빈 개울에 총살당해 쓰러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선생님과 마을 청년들이 왜 그렇게 처참하게 죽어갔는지를 알지 못했다. 끙끙 앓다가 밤이면 신열로 헛소리를 냈다.
“얘야, 못볼 것을 보면 헛것이 보인다. 절대로 밖으로 나대지 말아라.”
어머니의 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장자위대가 아버지를 죽이러 다닌다고 했다. 이유는 아버지가 돈을 많이 가지고 있고, 선거관리위원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고, 경찰에 협력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집에서 키우던 돼지를 모두 팔고, 평소 타고 다니던 말도 팔아치웠다. 아버지는 피신생활을 하면서도 늦은 밤 몰래 월담하여 집안을 살피고, 뒤쪽 오름 주변의 보리밭에 은신했다. 그런 어느날 대문 부숴지는 소리가 나더니 일본군모를 눌러쓰고 군도를 옆구리에 찬 복면 무장자위대 수 명이 들이닥쳐서 안채, 바깥채, 변소칸을 샅샅이 뒤졌다. 아버지를 찾지 못하자 지휘자인 듯한 사내가 어머니 가슴에 총을 들이대고 위협했다.
“당신 남편 어디다 숨겼나? 사실대로 말하라. 우리가 다 정탐하고 왔다.”
“나도 찾고 있소. 어디에 가있는지 내가 더 알고 싶소.”
“거짓말 말라. 당신 배 부른 것 보니 남편이 밤마다 배 맞추고 간 것이 아닌가. 그것이 아니라면 불륜 저지른 것인가?”
“옛기, 나쁜 놈들. 알아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어머니도 당차게 응수했다. 어머니한테서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자가 집에 들어와 있다가 튀는 것을 봤어. 이 근방에 은신처가 있을 거야. 제대로 대지 않으면 모두 몰살시킬 거야!”
“남편이 갯 것을 잘못 먹고 복통을 일으켜서 정약국에 약을 지으러 나간 후 아직까지 귀가하지 않았소. 그 냥반이 약골이라 걱정인데, 당신들이 찾아주시오.”
“말과 돼지 판 돈 있지?”
“남편이 가지고 갔소. 나한테는 생활비가 얼마간 남은 게 있소.”
“내놓으라.”
어머니가 치마폭에서 돈을 꺼내 내놓았다. 그들은 돈을 챙기고, 보리가마니를 창고에서 끄집어내 일본군용 마차에 싣고 사라졌다. 이때 6촌 누나가 울부짖으면서 집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아버지가 창에 찔려 죽었어요.”
김상복은 어머니와 함께 육촌 누나를 따라 당숙부 집으로 달려갔다. 당숙부는 마당에서 쇠창에 복부를 난자당해 살해되어 있었다. 내장이 빠져나오고,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 육촌 형도 쇠창에 찔렸지만 목숨만은 부지한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침이 되자 피신했던 아버지가 나타나 출동한 경찰 차를 타고 1구서(제주경찰서)로 가서 피해상황을 신고했다.

화북리에서는 일본군 지원병 출신인 무장자위대 특공대장 김주민과 동생 김주태, 그들의 부친 김우범 일가족의 독려 하에 5·10선거를 반대하기 위한 입산 작전이 전개되었다. 노약자를 제외한 남녀 모두 약간의 식량만 휴대하고 근처 산으로 입산했다. 김상복은 입산 동기도 모른 채 엄마와 동생들과 함께 주민들을 따라 입산했다. 용강동 오름 지점에서 철모를 쓰고 창을 들고 서있는 초등학교 동창생 김주생을 만났다.
그는 명령을 받은 듯 김상복 가족을 소나무 숲 건너편 밭으로 인도했다. 그곳에는 약 3m 깊이의 구덩이가 파여져 있었는데, 그 속에는 먼저 연행된 마을 사람들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동부락, 중부락, 서부락 사람들 가족 열댓 명이었다. 김상복 가족 역시 구덩이 속에 감금되었다. 김상복은 김주생에게 눈을 맞춰보려고 했지만 그는 구덩이 주변을 왔다갔다 하며 이상하게 헛소리를 내고 있었다. 머리가 돌아버린 것 같았다. 구덩이 속에 갇히자 두려움이 사라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살아날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단 체념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죽음을 앞둔 인간의 심리상태라는 것이 별게 아니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화북 출신 원로들과 민애청 간부들이 회동하여 숙청 여부를 결정하는 회의가 열렸다. 누군가가 특공대장 김주민을 설득한 끝에 모두 풀려나게 된 것이었다.
5.10선거 후에도 마을 한복판 광장에서 화북리 주민들과 인근마을 주민들이 모여 집회를 열었다. 특공대장 김주민은 붉은 깃발을 앞세우고 무력시위를 주도했다. 적기가, 김일성장군 노래, 혁명가를 부르고, 연설을 했다. 연설 내용은 잘 몰랐지만 적기가는 자주 들어온 터라 그도 힘차게 따라 불렀다. 행사가 끝난 후 주민들은 비를 맞으며 용강동 야산으로 올라가 은신했다.
5·10 선거 반대 입산을 주도한 세력은 무장 특공대원들로서 화북리 동부락 김주민 부자, 중부락 이한동, 허삼성, 서부락 양순달, 최이채, 웃무드내 유초식, 걸머리 문인수 등 화북 출신이 다수를 점했고, 삼양 도령 봉개 회천 용강 영평 월평 아라 등 타지역 출신도 상당해 제주읍 동쪽 마을은 거의 다 참여한 셈이었다.
특공대장 김주민은 일본군 복장에 철모를 쓰고 군도와 권총으로 무장했으며, 다른 대원들은 당꼬 쓰봉에 일본군모, 개머리판을 만들어 끼운 99식 장총, 개머리판 없는 99식 총과 각목으로 무장했다.
며칠 후 무장폭도대를 반대한 이웃마을 모창인과 현철수가 납치되었다. 모창인은 해방이 되자 일본에서 귀국하여 화북리 축구대표로서 명성이 높았다. 그는 인민재판 끝에 살해되었다. 걸머리 출신 현철하도 창에 찔린 처남을 치료해주려고 처가에 갔다가 모창인과 함께 납치되었으나 걸머리 무장폭도들의 보증으로 피살만은 모면했다. 죽고 사는 것은 친분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결정되었다. 김상복의 부친은 지인의 집 부엌에 숨어있다가 생포돼 김주민 일당에게 인계되었다.
“나는 너희들의 원수가 아니다. 너희들을 반대한 적도 없다. 나라에서 하는 선거는 치려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러나 그는 쇠창으로 가슴팍과 얼굴을 난자당해 현장에서 죽었다. 며칠 후 경찰토벌대가 용강동 동부락을 진압했다. 폭도대의 집에서 민애청 간부회의가 열릴 때, 그들은 포위되었다. 총격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민애청 간부 두 명이 사살되고 수 명이 부상했다. 가옥이 전소되면서 주인집 딸이 불에 타 죽었다.
김상복의 집은 동부락 버렁질 끝집에 있었기 때문에 사방을 관망하는 지리적 조건이 좋아 삼양지서와 토벌대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적소였다. 그의 가족들은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무장폭도들이 금전 또는 식량을 요구하면 다른 가정보다 더 많이 기부했고, 백지에 날인을 요구하면 내용도 모른 채 날인해주기도 했으나 참변을 피하지 못했다.
1948년도 저물어가는 세모,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날 아침, 슬픔이 일상인 듯 쓸쓸하게 남은 가족이 둘러 앉아 아침식사를 하는데 대문 밖에서 “상복아!” 하고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문을 열어보니 6촌 형 김은성과 김환성이 군인 십여 명과 함께 나타났다.
“빨리 나오라!”
그는 중학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초등학생 신분도 아니었지만 워낙 험한 세상을 살다 보니 어느새 늙은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았고, 어느새 집안의 가장이었다.
“경찰지서로 가자.”
언덕을 넘어 초등학교 모퉁이에 임시 설치된 화북지서로 향하던 중 몇몇 집에 하얀 천을 단 깃대가 세워진 것을 발견했다. 마을에는 그런 깃발이 수십 개 세워져 있었다. 그중에는 초등학교 동창생 집도 섞여 있었다.
“형 저게 뭐야?”
“그냥 따라와.”
화북지서에 도착하여 대기하는 동안 서부락 쪽에서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그 너머 곤을동 쪽에서는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동부락과 중부락에서도 콩 볶는 듯한 총소리가 들렸다. 경찰은 하얀 천의 깃발이 휘날리는 집들만 골라 모조리 소각했다.
“산간은 군대가 밀어붙이고, 해안 마을은 경찰이 소탕 정리하고 있다. 당분간 집에 들어가지 마라. 당숙모랑은 안전지대에 계시다.”
6촌 형 김은성이 설명했다. 며칠 후 경찰 인솔하에 집으로 돌아가니 엊그제와 다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집을 떠나올 때 마을에 우뚝 서있던 유서깊은 초등학교 건물이 모조리 불타고 없었다. 그 잔해만이 남아 아직도 연기 속에 매캐한 냄새를 내뿜고 있었다.
“건물은 다시 지으면 된다. 사람은 한번 죽으면 두 번 다시 살아나오지 못해. 그러니 목숨만은 아껴야 한다.”
김은성의 말이었다. 김은성의 집도 무장자위대의 습격을 받아 안채는 전소되고, 마당 가에는 누군가 살해되어 흘러나온 혈흔이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시체는 없었다.
“너의 누부가 죽창을 맞고 죽었다. 시신이 상할까봐 뒷 터밭에 가매장했다.”
이웃집 노파가 메마른 목소리로 말하고 멍하니 빈 하늘을 바라보았다. 혈흔이 흥건한 주인공이 육촌 누나였던 것이다. 다시 경찰이 마을을 접수했다. 구장 장용식과 전날 무장대의 습격 당시 보초근무자 5명을 무장 폭도대와 내통했다는 죄명으로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모두 총살했다.
며칠 머물렀던 경찰이 물러가고 밤이 깊자 무장자위대가 다시 마을을 습격해 경찰의 친인척을 골라내 살해했다. 화북리는 무장폭도들의 습격과 군·경에 의한 수색작전, 총살 등으로 사람의 씨가 마를 지경이었다. 무장폭도들로부터도 당하고, 토벌대로부터도 당하니 남아나는 것이 없었다. 생존한 사람 중에는 그 후유증으로 머리가 돌아버린 사람이 많았다.
김상복은 실성한 어머니를 찾아 친척집에 셋집을 얻어 생활하게 되었으나 막내 여동생은 영양 결핍으로 죽었다. 별도봉과 원당봉에 봉화가 오르는 밤이면 그는 버릇처럼 깜짝깜짝 놀랐다. 화북 남문 쪽에서 무장폭도와 민애청원들이 모여 왓샤왓샤 하며 무력시위를 하는 날 밤이면, 실성한 어머니를 그대로 두고 어린 남동생을 안고 울타리 안에 있는 고구마 저장용 구덩이 속이나 마루장 밑에 숨고, 어떤 때는 울타리 넘어 보리밭, 돼지우리 속에 숨어 밤을 지샜다.
그 사이 하나 남은 어린 동생도 죽었다. 부모님과 칠남매 중 생존자는 실성한 어머니와 그 자신 단 둘 뿐이었다.<이상 ‘김하영 수기’ 일부 참고>.

이시하라 겐지 상은 성산포구를 지나 성산봉을 오르고 있었다. 일출봉에 이르러 그는 평평한 분지로 들어섰다. 키높이 자란 풀들을 헤치며 천천히 걸을 옮기다가 가끔씩 저 멀리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길게 뻗은 만과 우아한 한라산을 손으로 햇빛을 가리고 바라보았다. 너무나 아름다운 경치다. 이곳에 사는 것만으로도 축복이 되는 것 같다.
그는 난리가 진행중인 제주도 처갓집에 머물렀다. 그에게는 방관자였지만 아픔은 배가되었다. 그런 중에도 성산포구와 성산봉에 오르면 누군가로부터 위안을 받는 기분이었다.
바로 눈 아래엔 항구가 펼쳐져 있는데 한가로워 보인다. 어항인 듯 돛배가 몇 척 정박해 있으나, 정물처럼 고정되어 있다. 모든 것이 한 폭의 풍경화 같다. 오래 전에 개항되었다고 하지만 태초의 고요가 어항에 내려앉아 있는 것 같다.
포구 건너편 쪽엔 제주에서 볼 수 없는 사구가 형성되어 있었다. 파도가 모래를 밀어와 사구가 되어 띠처럼 육지로 이어졌다. 그것이 방파제 구실을 하여 천연의 피항이 되고, 접안시설을 대신하고 있었다.
이시하라 상은 얼마 전 고길자와 야학반 청년 교사들과 성산포를 찾았다. 성산봉을 올라 풀밭을 거닐었다. 풀밭은 누워서 깨어나지 않고 영원히 잠들고 싶을만큼 안온하고 평화로웠다. 낙원에 온 기분에 젖었다.
파도 소리와 풀벌레 소리와 바다 냄새. 그것에 젖으며 진실로 세상의 평화를 맛보았다. 그런데 지금 그런 평화가 산산조각이 나고, 젊은 그들을 만나볼 수가 없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행방을 알 수 없으니 마음이 무거웠다. 마음이 울적해서 처갓집을 나와 그는 길을 걸었고, 성산봉을 오른 것이다.
제주 땅에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 생사를 걱정하는 일이 일과처럼 되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며 때로는 열광하고, 때로는 탄식하던 젊은이들. 그들을 만날 수 없다는 안타까움으로 그는 마음이 괴로웠다. 그가 그들을 충동시켜 꼭 죽음의 길로 인도한 것만 같다.
그가 수풀을 헤치고 분지의 중간쯤 갔을 때, 두 장정이 불쑥 얼굴을 내밀어 그에게 총을 겨누었다. 그중 하나가 거칠게 물었다.
“누구냐?”
순간 이시하라 상은 말문이 막혔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다른 장정이 소리쳤다.
“이 새끼, 간첩이다!”
그러자 반대 쪽에 매복해있던 장정 두 명이 풀숲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들은 경찰 복장에 국방군복 차림이었다.
“나 일본 사람이오.”
“이 새끼 조선말도 안쓰네?”
당장 장정 하나가 개머리판으로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는 반사적으로 옆구리를 싸안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잡아라!”
이시하라 상은 더욱 빠르게 달렸다. 무섬증과 공포감이 몰려와 일단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그때 빵빵빵 연속적으로 총소리가 났다. 그리고 이시하라 상이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머리와 가슴에서 피를 쏟고 쓰러져 그는 곧 숨을 거두었다. 한 순간의 일이었다. 장정들이 달려와 그의 호주머니를 뒤지더니 지휘관인 듯한 자가 투덜댔다.
“진짜 일본놈 간첩인가봐. 작전 나오길 잘했다. 아직도 물정 모르고 헤매는 놈들이 있단 말이야. 2진은 우도 쪽으로 들어가라우.”
돌아서던 그들 중 하나가 권총을 빼들어 이시하라의 가슴을 겨냥해 확인 사살하고, 시체를 그대로 둔 채 이동했다. 키 높이 자란 풀들이 바람을 따라 한쪽으로 쓸리며 서걱거리고, 여전히 파도 소리와 풀벌레 소리, 향긋한 바다 냄새가 분지 상에 가득 넘치고 있었다.

신문사를 접수하라

문용철이 조카 박찬욱을 인계받아 경찰서 밖으로 나오는데 한 무리의 청년단이 경찰청사 안으로 들이닥쳤다. 부상자를 들것에 메고 들어오는 자, 붕대로 두상을 감고 들어오는 자, 다리를 절뚝거리는 자와 일부 몸이 성한 자들이었다. 어디서 또 부딪친 모양이었다. 문용철이 멀대처럼 키가 큰 박찬욱을 향해 한마디 했다.
“너는 서울로 올라가거라. 아버지 생각이시다.”
“갈 수 없어요, 외삼춘.”
“떠나라니까.”
“그런 말씀 마세요. 여기 있을 겁니다.”
“여기 있으면 뭘하니. 신문사도 문닫았는데....”
“상관 없어요.”
“종이가 없는데 펜은 무슨 필요가 있냐? 혈기만 가지고 나설 때가 아니다.”
“외삼춘, 눈 앞에서 폭력이 벌어지고 있잖아요. 총으로 세상의 질서를 잡겠다고 하잖아요. 이러니 제가 이곳을 떠날 수 없잖아요,”
문용철은 조카의 ‘-잖아요’라는 반어법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앞서 가선 안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아세요? 왜 평화로운 제주가 부숴지는지 아시냐고요?”
그는울상을 짓고 있었다.
“아서라.”
“문제는 친일 집단들이 미국과 야합해서 양심세력을 제거하고 권력의 중심부로 이동해가기 때문이죠. 공산당은 개뿔, 그런데 숨으라고요? 제주도를 폭력 진압의 실험장으로 삼고 있는데 비겁하게 도망가라고요?”
“힘 약한 백성은 숨죽이고 사는 것이 그나마 안전하다.”
“외삼춘까지 그러니 나라 꼴이 이 모양이지요. 왜 매번 이래야 합니까. 배운 사람들이 더 비겁하고 잔인해요.”
“날뛰어봐야 한 손에 나가는 수가 있어. 사람 다치고, 집안 다쳐. 패가망신한다.”
“외삼춘, 보시다시피 지금 다시 적폐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친 듯이 숭미로 바뀌어서 공안체제를 굳히고 있습니다. 일제의 마름들이 전권을 장악하고, 다시 세상의 주류로 나서고 있죠. 이런 세상을 방임해야 하나요?”
“너 혼자 우국지사연하지 말아라. 무장폭도들도 잘한 것은 없어.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제주연대장 암살이 더큰 재앙을 불러온다는 것을 알았어야지. 토벌명분이 더 강화됐다.”
“침묵하면 저들은 더 자기들이 옳다고 가열차게 밟아요. 저 먼저 갑니다.”
박찬욱이 겅중겅중 뛰듯이 청사 밖으로 나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문용철은 그런 그를 암울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말이 통했던 서청의 사진봉이 사라진 뒤 그는 더욱 마음이 쓸쓸했다.

“구대구 단장, 단장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하오. 단원 수도 배 이상 늘었으니까니 제주읍 서청조직이 빡세고만! 역할이 막중하오.”
제주경찰비상경비사령관이 구대구를 불러 다과를 베풀었다. 구대구는 사진봉 후임으로 제주읍 서청단장으로 취임했다.
“단장 취임 기념 선물이 있어야갔지?”
그는 두둑한 봉투를 내밀었다. 이런 애들은 공명심을 살려주면 불길도 마다 않고 뛰어든다. 구대구는 그에 대한 예의로라도 한 건 올릴 생각이었다.
“토벌대장 각하, 제주신문사가 좌익의 온상입네다. 홑이불에 이 박히듯 깊숙이 세포들이 박혀서 드러나디 않디만 내 다 알디요.”
“그야 김재풍 제주도본부청년단 위원장이 작업하는 거 아니가. 그를 만나봐야갔구먼.”
김재풍은 제주도 전체를 아우르는 서북청년회 총단장이었다. 육척 장신에 무릎까지 차오르는 장화를 신고, 말가죽으로 만든 회초리를 들고 다니며 여차하면 누구에게나 휘두르고, 밤에도 검은 선그라스를 끼고 다녔다. 선그라스는 눈밑에 난 상처를 가리기 위해서였지만 상대방을 위협하고 이쪽의 의중을 감추는 위장술을 보여주기에 딱 맞는 기호품이었다.
제주신문은 4.3 이후 구성원 모두 집단 무력감에 빠져있었다. 계엄령하 경찰의 지침대로 보도해야 하니 그것은 곧 토착 주민을 배신하는 행위가 되었다. 보도관제가 심해 진실보도를 기대할 수도 없었다. 중앙에서 내려온 기자들은 경찰토벌대의 입맛에 맞춰 르뽀 기사를 써서 내보내는데 대개는 여관에 눌러앉아 쓴 창작이었다. 토착 신문마저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사실을 꿰뚫고 있는데 거짓말을 쓸 수는 없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경우를 그들이라도 가려주어야 했다.
“이 자들, 뭘 보고 이렇게 갈겨쓰는 거야?”
편집국 기자들은 중앙의 신문보도를 보고 분개했다. 중앙지 기자들은 미 군정이 제공한 비행기를 타고 오거나 해군함대나 경찰토벌사령부의 편의를 제공받아 내도했다. 토벌사령부에서 제공한 여관에 투숙하고, 밤이면 경찰과 관이 돌아가며 제공하는 술과 여자에 빠졌다. 직접 뛰는 것이 아니라 경찰이 제공하는 자료에 기초해 써서 본사에 올리고는 줄창 먹고 마시고 여자에 빠졌다.
“비뚫어진 입이라도 말은 바로 해야지. 한데 이 자들은 한 수 더 뜬단 말이야. 기자란 새끼들이 이렇게 한심한 종자들인가?”
토벌대는 선이고 폭도는 악이라는 이분법적 논리. 거기에 진실과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향토 신문마저 그런 편파와 왜곡과 조작 기사를 쓸 수 없었다. 제주도민에 대한 배신행위를 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억울하고 분한 사정을 누구에게 호소할까.”
신문을 읽을 줄 아는 주민들은 망연히 먼 하늘을 바라보며 절망에 젖었다. 이때 서청은 벼르고 있었다. 제주신문을 없애버려야 한다. 아니다.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어야 한다.
“조져야디. 멋대루 갈기는 게 신문 기사가?”
김재풍은 향토신문 쪼가리를 북북 찢으며 이를 갈았다. 봉개리 작전을 소홀히 다룬 신문이 그는 두고두고 불쾌했다. 그의 맹활약상은 여지없이 뭉개졌다.
“그 새끼들 성분조사 해보라우.”

제주경찰비상경비사령관의 부추김을 받고 구대구는 한달음에 서청 중앙본부로 달려갔다. 김재풍 총단장은 의자에 깊숙이 파묻혀 드르렁드르렁 코를 곯고 자고 있었다. 구대구는 잠시 망설였지만 곧바로 김 총단장을 흔들어 깨웠다.
“김재풍 총단장 각하!”
김재풍이 잠꼬대하듯 뭐라고 지껄이다가 턱밑으로 흐르는 침을 손으로 닦으며 눈을 떴다.
“아니, 신임 구대구 단장 아이가.”
그 역시 이북에서 내려온 사람이었다.
“그렇습네다. 보고드릴 것이 있어서 왔습네다.”
“고단해서 오늘은 좀 쉬려고 했더니 구 단장이 왔구만. 차 한잔 줄까? 아이디, 배암술 한잔 해야디. 이거 한잔 먹으면 시들해진 좆이 꼿꼿이 서디. 완전 쇠말뚝인 기라. 지리산에서 남원 단장 동지가 보내왔디. 제주도는 뱀이 없지만 권력이 있으면 산에 가서 고래도 잡아오디, 하하하.”
그들은 불콰할 정도로 뱀술을 주고 받았다.
“그래, 보고 드린다고? 말해보라우.”
“네, 제주신문사를 손봐야가습네다.”
“어뜨렇게 고런 걸 다 알았네?”
“다 알디요.”
“고렇디, 고렇구 말구. 고 자들 고저 밟아주어야디. 서울의 신문들은 우리말 척척 알아듣구 애국적으루 잘도 써 제끼는데 고 자식들은 언제나 폭도들 편이란 말이야. 완전 반동이야.”
“맞습네다. 봉개리작전 기사 보구 분개해서 밤잠을 설쳤습네다. 갈아먹어두 분이 안풀리디오. 총단장 각하께서 심혈을 기울여 벌인 봉개리작전을 모기 콧구멍만한 지면에 두어줄 끼적거린 것 보구 내 환장해서 팔딱팔딱 뛰었습네다.”
“자네두 글씨를 보았댔구만. 내가 화가 나서 이 새끼들 가만 안놔줄려고 했디. 내 생각이 이서.”
봉개리 작전은 경찰과 서청·대청이 총동원된 합동작전이었다. 이 작전에서 주민이 많이 죽었다. 참상을 안 신문사는 경찰이 요구한대로 기사를 쓸 수 없었다. 주민의 참상을 제대로 고발하지 못한다면 신문을 내지 않는 것이 나았다. 그래서 한두 줄 쓰다가 말고 자체 정간해버렸다.
“구대구 단장, 이거 두 번 볼 거이 없어. 당장 뿌솨버려야갔지?
“두말 하면 개소리디오. 고래서 제가 왔잖습네까. 먹물들 몇 주먹 날리면 고냥 납작 엎드립네다. 싹싹 빌 거우다. 내 본떼기를 보여주갔수다.”
“고래고래, 지금 가자우. 아예 접수해야디. 내 어뜨렇게 사장놈의 멱다귀를 따는지 관찰해보라우. 고 사진봉인가 지식인 흉내 내는 단장처럼은 하디 말라우. 고런 인간은 환멸스럽디.”
“물론이디요. 고래서 내 손으루 즉결처분했지 않았습네까.”
“대단히 잘해서. 뽄대를 보여주었대서.”
김재풍이 앞장섰다. 구대구와 똘마니 열두어 명이 따라붙었다. 신문사는 관덕정 광장 건너편에 있었다. 제주신문사는 판매부수가 육천부가 넘는 도민의 대변지였다. 제주항에서 여객선으로 가장 먼저 닿는 육지부의 목포에서 발행하는 목포일보는 발행부수가 삼천 부였다.
김재풍은 소 좆을 말린 쇠좆메를 휘두르며 의기양양하게 앞서 걸었다. 신문사를 제압할 건수는 많았다. 김익창 연대장과 무장대와의 비밀협상이 백지화된 이후, 제주신문사는 무장대와 또다른 비밀협상을 추진하고 있었다. 토벌대가 어승생진지 작전을 전개하던 때 지원 차 파견된 총사령부 정보고문 김종평 중령과 제주신문 김영수 기자, 무장대장 김달삼이 비밀접촉을 가졌다는 것이다. 세 사람이 공교롭게도 같은 학교 출신이라서 김종평 중령이 김영수를 설득해 비선을 통해 김달삼과 접촉했다. 그러나 경찰이 미리 알고 교섭로를 차단해버렸다. 그것만 가지고도 족칠 수 있는 근거는 충분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암암리에 신문사가 무장폭도대의 포고문과 담화문을 인쇄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폭도 소굴이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다.”
김재풍은 일부러 화를 끌어올린 다음 가래침을 칵 길바닥에 뱉었다.
“총단장 각하, 제가 있지 않습네까. 고저 갈아먹어버리갔습네다.”
“구 동지의 애국충정은 력사에 길이 빛날 것이야. 내 그 정신을 믿어 의심치 않는 바이야.”
김재풍이 가능한 한 애정어린 시선으로 구대구를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육척 장신에 비해 구대구는 땅개처럼 작지만 무슨 일이든지 시키면 충성스럽게 따른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지난 봄에는 제주신문이 송신기를 비밀리에 갖춰두고 누군가와 무전 송신했다는 것을 적발했다.
“그자들이 빨갱이들과 송수신하지 않나 의심했대서. 고래서 무전송신기를 차압하구, 송신기 사용을 금지하는 동시에 봉인을 하구 체신부에 통보했대서. 그런데두 이 자들이 고대로 계속 사용하고 있다는 첩보를 받았디. 모스끄바와 통신하는지도 몰라. 필시 고첩들과 접선하는 길 기야. 한마디루 빨갱이 소굴이디. 빨갱이는 두 말이 필요없어. 족쳐야디. 사장 아들놈 김영수란 놈과 이종조카 박찬욱이란 놈이 강성이디. 내 일찍 인적 조직도를 파악해두었디. 제주도는 왜 그리 친인척으루 얽히고 설키는지 머리가 돌 지경이다. 좌우간 고 자들 군말없도록 족치라우.”
“족치는 데는 제가 참피온 아닙네까, 하하하.”
“하지만 조목조목 이유를 대라우. 신문사한테는 리론이 있어야디. 불온삐라가 모두 제주신문사에서 찍혀져 나오지 않았나, 폭도대장하구 비선을 유지하지 않았나, 무전송신기는 폭도대와의 접선용 아니가. 그리구 우리 서청 활약상을 깔아뭉갠 이유가 뭐냐. 조목조목 따지라우. 먹물들은 리론이 분명하니까니 리론과 논증과 근거로 들이대라우. 막히면 우리가 좆뱅이치게 돼 이서. 제 놈들이 좋아하는 육하원칙에 입각하여서 들이대라우. 우리도 그런 지식이 있다는 것 보여주라우. 고렇게 증거주의에 입각하여 입을 봉해놓구서리 패는 기야. 뼈도 못추리게 아작내버리라우. 암, 가루가 되도록 뽀사버려야디.”
“알가습네다, 각하.”
마침내 신문사에 도착했다.
“김석표 나오라우.”
김재풍의 당당한 체격에서 터져나온 목소리가 편집국을 쩌렁 울렸다. 구대구와 뒤따르는 청년들이 거리낌없이 한쪽 벽면에 줄지어 붙어서있는 캐비넷을 뒤집어 엎어 서류를 헤집고 책상의 잉크병과 화병들을 내팽개쳤다.
“무슨 일입니까. 웬 행팹니까.”
젊은 기자가 김재풍의 앞에 나섰다.
“이런 씹할 놈, 니까짓 거는 상대할 거이 없어. 김석표 나오라우!”
“행패 부리면 안됩니다. 나가주세요. 여긴 신문사 편집국입니다.”
“여기가 폭도 본부디 글씨 쓰는 신문사간? 내 모르고 온 줄 아넹? 김석표 사장 나오라우!”
밖의 소란스런 소리에 김석표 사장이 편집국 귀퉁이에 붙어있는 사장실에서 나왔다.
“이게 무슨 짓이요?”
“나 모르가서? 나 김재푸이야. 당신 왜 모른 척 하오?”
그는 애초에 시비쪼였다. 직원들이 김재풍을 둘러쌌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그의 위세는 주위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김석표 사장은 그가 물품을 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한 제주도청 총무국장을 서청 본부로 끌고 가서 패 죽인 장본인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빨갱이를 잡아 처벌했다고 해서 사태는 묻히고, 그는 무공 포상을 받았다. 그런 사건이 바로 엊그제였기 때문에 김 사장은 아연 긴장했다.
“무슨 일이시오?”
“김 사장, 길게 얘기 않갔소. 무전송신기 어뜨렇게 됐소?”
“없앴습니다.”
“왜 없앴소?”
“없애건 말건 무슨 상관이오. 경찰에서 없애라고 하지 않았소? 그것을 따랐소.”
“봉인하구 체신부에 통고하란 거디, 없애라구 한 것은 아니디.”
“봉인된 것 있으나마나 아니오?”
“봉인한 것을 그대로 두라면 두는 것이지 왜 없앤 거요? 몰래 사용할 생각 아니었소? 고것은 엄연히 불법이디.”
어이가 없다는 듯 김석표 사장이 한동안 말문을 잃고 서있었다. 김재풍이 말을 돌려 물었다.
“왜 봉개리 작전을 고따구로 보도했댔소? 우리가 얼마나 혁혁한 전공을 세웠느냔 말이오. 기자가 현장에 갔다면 여실히 보지 않았네?”
“양민 살상이 컸습니다. 억울한 사람이 많습니다.”
“살상? 폭도가 아니구 양민이라구? 당신 사상이 어뜨렇게 된 인간이오?”
김석표 사장이 어이없다는 듯 잠시 그를 노려보았다.
“눈알 굴리지 말라우. 편집국장 놈이 폭도대사령관 명의의 포고문과 담화문을 몰래 인쇄해주구, 이런 반동 집단이 어디 있소?”
결국 편집국장은 체포됐으며, 전격적으로 처형되었다. 이래저래 신문사는 수난을 겪고 있었다.
“빨갱이 새끼들, 물러서지 못하간?”
그들을 둘러싼 직원들을 향해 구대구가 버럭 소리 질렀다. 박찬욱이 앞에 나섰다.
“이건 언론자유를 침해한 중대한 사태요. 미군정에 고발하겠소.”
김재풍은 허우대가 멀쩡한 박찬욱을 노려보았다. 한 놈 제대로 패주어야 다른 놈들이 기가 죽을 것이다. 그 대상을 만난 것이다.
“너 지금 뭬라 했네? 이 전쟁 시국에 언론자유? 나라가 백척간두에 서있는 마당에 언론자유 찾게 돼이서? 이 간나새끼야, 나라가 이서야 신문이 있구, 회사가 있구, 가족이 있구, 조국이 있는 기야. 그런 개좆같은 문자 쓰려거든 저 평화로운 아라사로 가라우!”
그의 주먹이 단박에 날아갔다. 한 방에 박찬욱이 쓰러졌다. 서청대원들이 달려들어 그를 직신작신 밟더니 두 바지가랑이를 끌고 복도로 나갔다. 거기서 집중적으로 매타작이 시작되었다.
“이게 무슨 짓이오?”
김석표 사장이 소리쳤지만 김재풍이 그의 멱살을 쥐어잡았다. 한 직원이 대들자 발길로 그의 샅을 걷어찼다. 그리고 김석표 사장의 면상을 갈겼다. 김 사장의 코에서 피가 주루룩 흘러내렸다. 그와 동시에 서청 대원들이 몽둥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기물이 부숴지고 직원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비명을 질렀다.
“왜 빨갱이들이 쓴 맛을 보아야 하는지를 똑똑히 보여주가서. 편파 왜곡보도에 좆맛대로 글씨 쓰는 놈들 다 뿌솨버리는 기야. 리승만 각하께서 이런 고약한 공산당 놈들은 일찍이 쓸어버리라구 하명하셨디. 내가 책임질 거니까니 모두 뿌솨버려!”
서청 대원들이 책상을 엎고 유리창을 박살내고, 조판공 인쇄공 모두 한 두름으로 엮어서 매타작을 한 뒤 한순간에 썰물 빠지듯 물러났다. 편집국은 완전 전쟁 폐허 같았다. 박찬욱이 피범벅이 된 얼굴로 사무실로 들어섰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김석표 사장이 우두커니 서서 나직이 말했다.
“흥분들 하지 마시오. 그나마 조판대와 인쇄기가 성한 것만으로 다행으로 여기시오.”
사장의 침착한 어조에 직원들은 분노를 삼키고 있었다.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절망하지 마시오. 우리는 기록자요. 사회의 거울로서 영원한 기록자요. 오늘을 바르게 기록해야 바른 역사가 씌어지는 거요. 후세 사가들이 제주를 재해석하고 재구성하게 될 것이오.”
“사장님, 미안합니다.”
마침내 한 기자가 울음을 터뜨렸다. 김석표 사장이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울긴. 더 강인해야 하오. 역사란 박물관에 보관된 화석이 아니오. 생물처럼 살아 숨쉬는 우리 삶의 거울이오. 반드시 오늘의 사건을 재생시켜야 해요. 야만을 분노로 엮지 마시오. 오늘의 시련은 결코 시련이 아니라고 기뻐하시오. 불행한 시대일수록 우리가 할 일이 있다는 것에 행복해하시오. 기자로서 얼마나 기쁜 일인가. 도민을 생각하면 우리는 그래도 선택받은 행운아들이오.”
박찬욱이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김석표 사장도 치밀어 오르는 울음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녹은 쇠를 먹듯이 위선과 허위는 영혼을 먹습니다. 저 자들의 폭력성은 녹과 같은 거요. 그것은 멀지 않아 부식하게 될 것이오. 영혼이 파괴될 것이오. 역사의 유용성, 기록의 유용성을 믿읍시다. 누군가 말했지요? 고통의 역사에 침묵하면 야만의 역사는 계속된다고...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김석표 사장을 둘러싼 모든 직원들이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다. 김사장은 울지 않았다.
그는 보수적인 한학자의 집안에서 태어난 제주 지역의 대표적 민족주의자였다. 굳이 말한다면 선친을 닮아 유림 정신이 뼛속까지 박힌 사람이었다. 선친은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는 이웃 마을 사람들에게 절간고구마를 풀어주었다. 그러나 표내는 법이 없었다. 김석표는 선친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면서, 보수의 가치, 사회적 책무의식을 배웠다. 이웃에 대한 연민과 아량과 포용과 헌신과 책임. 선친이 보수주의가 무엇이고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알 턱이 없었겠지만, 마을 어른으로서의 삶이 어떤 것인가를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것이 일관되게 그의 핏줄에도 관류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는 빨갱이가 되었다. 경찰은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였고, 서청은 그를 신문사 바닥에 자빠뜨려 밟았다.

서청 본부로 돌아온 김재풍은 구대구 이하 행동대를 세워놓고 일장 연설을 했다.
“친애하는 애국동포, 애국대원 여러분, 여러분의 양양한 영웅적인 행동은 영원히 력사에 길이 빛날 것이오. 조국건설의 대오에 앞장선 영용한 모습은 양양한 앞 길을 열어줄 것이요. 오늘 저녁 질탕하게 마시자우. 갈보들을 차출하겠소.”
“요씨 요씨, 브라보!”
청년단원들이 환호성을 올렸다. 김재풍은 구대구 단장을 총단장실로 별도로 불렀다.
“내가 그렇게 한 건 다 이유가 이서. 며칠 후 접수하러 간다는 거 명심하라우. 겁을 주어야 접수하는 데 용이하디. 알가서? 구 단장은 날 수행하라우.”
“합, 각하! 알갔습네다!”
구대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부동자세를 취하고 거수경례를 착 올려붙였다. 그런 구대구를 지켜보며 만족한 웃음을 짓던 김재풍이 입이 근질근질했던지 설명했다.
“고 자들 3.1절 발포사건 때 유가족돕기 조위금 모금운동을 주도했디. 우리가 얼마나 분개했는 줄 아니? 돈 거둬서 폭도들을 도와준다? 우리에 대한 반대 여론전을 펼친다? 고때 신문사를 없애버리려 했대서. 미군정이 만류해서 그만두었디만 이제 잔명이 다한 기야. 접수할 거니까니. 구대구 단장은 신문사 총무국장을 맡으라우. 국문 좀 알면 편집국장을 시킬 텐데 그건 좀 어려울 거 같구, 대신 살림 맡는 총무국장 하라우. 어때?”
“영광입네다, 각하. 충성을 다하가습네다, 각하.”
“총무국장으로서 첫 사업을 무엇으로 할 수 있네?”
구대구는 얼른 떠오른 것이 없어서 김재풍이 금방 말한 것에서 힌트를 얻었다.
“우리도 모금운동 같은 걸 해야디오. 희생된 경찰과 국군장병을 위한 위문금품 모집을 해야디오. 마을마다 일정액을 할당해서 내도록 해야디오.”
“야, 그것 좋은 아이디어다만 그건 좀 무리다야. 마을이 모두 불타 없어져버렸으니까니 성과가 있갔나?”
“그래두 짜내면 나옵네다. 저것들이 언제 자발적으로 낸 적 있습네까. 쥐어짜면 다 나옵네다,”
“하여간에 구단장은 머리가 비상하다. 여러모로 쓸모가 이서. 고렇게 모금해서 경찰에 일부 보내구, 나머진 우리가 관리하여야갔디?”
“하모요. 여부가 이습네까. 총위원장단장 각하께서 관리하시믄 되갓지요.”
“돟아. 구단장은 열심히 국문 익히라우. 언제 편집국장 중책이 떨어질지 모르니까니.”
“알가습네다, 각하.”
그가 구대구를 그의 앞으로 바짝 다가앉도록 손짓을 했다. 구대구가 길들여진 강아지처럼 그의 턱밑까지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구단장, 그 집 아들놈과 김달삼간에 밀거래가 있었다는 거 알고 있네? 멋있지 않네, 하하하.”
그가 큰 소리로 웃었다. 큰 건을 잡았다는 유쾌한 웃음이었다.

며칠 후, 김재풍은 구대구 일당을 이끌고 다시 신문사를 찾았다. 김석표 사장을 바닥에 메다꼰고 제작진을 각목을 휘두르며 밖으로 몰아냈다.
“폭도대장과 선을 대구, 간첩질이나 해대구, 김달삼이가 니네 조상이간? 이승만 박사가 아니라 김달삼 폭도대장을 지도자로 모시갔다구? 에라이, 개씹할 자식들!”
기자들의 저항은 한 주먹도 안되었다. 완력으로 신문사를 접수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러나 김석표 사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나를 밟고 가라.”
실제로 서청 대원들이 그를 밟았고, 그리고 그를 계엄사로 끌고 갔다.
“반항하는 빨갱이새끼들은 처단만이 해결책이디.”
김석표와 전무 신두방은 계엄사 취조실에서 떡실신이 되도록 두둘겨맞고 구속되었다. 이에 반발한 기자들이 집단사표를 내자 얼씨구나 하고 모두 수리하고 육지인들로 새 기자를 선발했다.
신문사를 접수한 김재풍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구대구를 총무국장에 발령 낸 일이었다. 다음으로 제주읍 간판집에서 주문해온 ‘대표이사 사장 김재풍‘이란 패를 테이블에 올려놓는 일이었다. 구대구가 그대로 따랐다. 구대구가 총무국장석에 앉아 필터 담배를 한 대 뽑아 입에 물고 불을 붙이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의젓해 보였다. 생김새가 꾸중꾸중해도 자리가 신분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신분세탁 치고는 멋진 변신이었다.
10개월 후 계엄령이 해제되자 전임 사장과 기자들이 법원에 고소장을 냈다. 서청의 불법 부당성은 입증되었다. 경영권과 편집권이 김석표 사장에게 다시 돌아갔다. 서청 단원들은 창간 이후부터 자신들이 발행한 10개월여의 신문과 서류들을 모조리 소각하고 철수했다. 이로인해 이 신문사의 초기 자료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신문 발행이 쉽지가 않다야. 건어물상이나 포목점, 또는 술집 운영이 더 나을 뻔 했디.”
김재풍이 물러난 것은 법원의 판결문 때문이라기보다 취재 보도와 편집, 판매망 구축이 엉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해본 전문직이 해야 하는 것이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제주신문사는 기자들을 맨먼저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에 종군기자로 파견했다. 이들은 미군의 인천상륙작전 승전보를 전국 언론사 중 가장 먼저 보도했다. 서청이 종북 빨갱이신문으로 낙인찍었던 이 신문은 어느 매체보다 북의 남침을 비판했다.

박진경 연대장의 영결식은 엄수됐다. 경향신문은 다음과 같이 영결식 소식을 전했다.

지난 18일 새벽 제주도 연대 숙소에서 암살당한 국방경비대 제11연대장 朴珍景 대령의 장의는 22일 오후 2시부터 서울 남산동에 있는 국방경비대사령부에서 部隊葬으로 엄숙히 거행되었다. 이날 장의식에는 통위부장을 비롯한 부대 관계자와 유가족, 군정장관 딘 소장, 安在鴻씨 등 각계 인사 다수가 참석하였으며, 통위부차장 宋虎聲 준장의 고인을 추모하는 애끓는 조문낭독에 참여자 일동은 눈물을 금치 못하였다.<경향신문 1948년 6월23일자>

그에 앞서 6월21일 수원 11연대장 최경록 중령이 박진경 대령의 뒤를 이어 제주 연대장으로 부임했다. 부연대장은 송요찬 소령이었다. 11연대가 제주 9연대를 접수해 제주연대는 11연대로 개편되어 있었다.
딘 군정장관은 최경록에게 박진경 암살자를 한달내에 체포하라고 특명을 내렸다. 딘 소장은 경무부 사찰계는 물론 미군 CIC(방첩대), CID(범죄수사대) 요원들을 대거 제주에 투입했다. 이때 엉뚱한 투서가 날아들었다. 익명의 하사관이 정보참모에게 “9연대 문상길 중위를 조사하라”는 투서였다.
문상길과 그 약혼녀, 연대 정보계 선임하사를 포함해 4명의 하사관이 당장 체포돼 11연대 영창에 갇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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