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염한웅 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혁신성장, 과학기술 기반으로 틀 다시 짜야"

염한웅 부의장 <사진 이동근 기자>
염한웅 부의장 <사진 이동근 기자>

“현 정부의 핵심 정책인 혁신성장과 관련해 지난 2년간 성과가 두드러지지 않았습니다. 과학기술 연구개발(R&D)에서 출발해 창의적 연구와 인재를 만들어내는 새 혁신성장의 틀을 짜야 합니다.”

염한웅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포스텍 물리학과 교수)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어젠다인 '혁신성장' 정책의 대수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과기자문회의(의장 대통령)는 과학기술 분야 최상위 기구로 지난해 4월부터 국가과학기술 전략, 정책 방향을 자문하는 '자문회의'와 과기정책의 중기 계획, 예산을 심의 의결하는 '심의회의'가 통합 운영되고 있다. 염 부의장은 문재인 정부 들어 1, 2기 연속 부의장직을 맡았다.

염 부의장은 현 정부가 추진해 온 혁신성장 정책을 사실상 실패로 규정했다. 그 원인을 과학기술과의 단절에서 찾았다.

염 부의장은 “지금까지 혁신성장 어젠다를 경제관료가 주도하다보니 과학기술 등은 기초연구의 협소한 의미로 해석되는 경향이 생겼다”면서 “혁신성장 틀을 과학기술 중심으로 재설정하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정 산업, 이미 시장 전망이 생긴 산업을 선택해 집중 육성하는 것은 혁신성장의 기본 틀이 아니다”라면서 “기획재정부 등이 드라이브 해온 것을 보면 혁신에 집중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이어 “과학기술 등을 기반으로 한 혁신성장 정책으로의 전환을 이야기하면 너무 상식적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듣는다”면서 “그렇다면 지금까지 혁신성장이 '비상식적'으로 진행된 측면이 있다는 방증”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혁신성장 정책 방향 수정을 시사한 것은 다행이지만 과기자문회의와의 논의 없이 나온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인공지능(AI) 등 특정분야에 정책 관심과 지원이 쏠리는 것을 두고도 쓴 소리를 이어갔다. 그는 “빅데이터, AI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특정 분야에 정책 역량을 '올인'하면 균형 잡힌 R&D에 있어 구멍과 결핍이 생길 수 있다”면서 “다른 분야는 등한시되고 자금이 투입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장기적 운영 틀이 중요한 만큼 정부, 정권과 무관하게 R&D 컨트롤타워가 정책을 집행하고 다뤄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의장으로서 성과와 계획에 대해서는 “R&D 혁신 작업을 일단락 한 지금까지가 자신의 역할”이라면서 “국가 R&D에서 기초연구의 역할을 부각시키고 연구자 중심으로 이뤄지는 시스템을 조성한 것은 성과지만 출연연, 대학에 있는 연구자 처우 개선에 있어선 손대지 못한 부분이 많다”고 자평했다

대담=이호준 정치정책부장

염한웅 부의장 <사진 이동근 기자>
염한웅 부의장 <사진 이동근 기자>

-지난 2년간의 성과와 아쉬운 부분에 대해 말해 달라.

▲과기자문회의는 기초연구증액, 연구자중심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했다. 정부 R&D에 있어 기초연구의 역할, 비중을 대폭 확대하고 R&D가 연구자 중심으로 이뤄지도록 시스템을 바꿨다. 곧 체감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이런 작업은 잘 됐다고 본다.

연구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법을 개정하고 R&D 프로세스를 혁신적으로 개혁했다. 다만 이러다보니 '사람' 관점에서 놓친 것이 보인다. 출연연 소속 연구자와 대학에 있지만 상황이 좋지 않은 박사후연구원(포닥)이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됐냐고 물으면 체감도는 아직 미흡한 것 같다. 이 부분이 아쉽다. 연구 환경 개선에 집중하다 보니 사람을 잃어버렸다고 할까.

출연연만 놓고 보면 구조적 문제와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연구자가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만 집중적으로 볼 수 없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연구과제중심제도(PBS)를 개선하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지 않나. 각 부처 R&D 예산 문제 등과도 연결된다. 어디서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 나가야할지 폭넓은 합의가 필요했다. 젊은 연구자 문제만 떼어서 2년째 머리를 맞대고 있는데 정말 어려운 문제다.

-이 작업을 R&D 혁신의 전반이라고 보면 되나.

▲R&D 혁신은 훨신 더 큰 틀이다. 민간이 대거 참여하는 컨트롤타워를 구축하고 많은 권한을 기재부로부터 갖고 오고 기획·집행·평가의 틀을 과학기술혁신본부가 다시 짰다. 정부 R&D 프로세스 전반을 다 손본 것이어서 이해관계자가 아니면 당장 체감은 못하지만 관계자는 벌써 변화를 느끼고 있다. 향후 파급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현장에선 연차보고서가 없어지는 등 가장 말초적인 것부터 체감할 것이다. R&D 집행의 틀은 지난 20년간 가장 크게 바뀌었다고 본다.

-R&D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먼저 R&D 평가 지표, 성과를 논의하는 틀을 다시 정리해야 한다. 정부 R&D를 기초, 공공, 응용(산업) 분야로 나누고 각 분야에 맞는 성과를 요구해야 한다.

기초연구는 논문 등으로 성과가 나온다. 공공 R&D는 애초 미션이 명확하다. 미세먼지 없애고 감염병 예방하는 등의 정확한 목적이 있다. 응용 R&D는 산업적 목표를 명확히 정해야 한다. 그래야 성과를 얘기할 때 목표 대비 뭘 했느냐를 따질 수 있다.

응용 R&D의 성과가 없었다는 지적이 있지만 그것은 아니다. 주식시장에서 생명과학 등을 포함한 벤처 기업의 시가총액 점유율이 지금처럼 높은 적이 없었다. 기업 역량은 정부 R&D에서 나왔다. 거품론이 있지만 그렇다고 R&D 성과가 없었다는 것은 성과를 폄훼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응용 R&D를 두고 왜 좋은 논문이 나오지 않느냐고 비판하는 것이다. 심지어 부처 장관도 이런 이야기를 대통령 앞에서 했다. 응용 R&D의 성과는 당초 목표치와 비교해 평가해야 한다. 논문으로 성과를 따지는 분야가 아니다.

산업 R&D는 민간에서 약 60조원을 투자하고 있다. 정부 R&D 예산은 약 5조원 안팎이다. 민간 투자 대비 10%도 안 되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정부 자금이 어디에 쓰여야 할까.

정부 R&D 예산으로 신산업을 만드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삼성, LG 등 대기업이 정부 R&D 자금이 산업계 미래를 책임진다고 생각지 않는다. 대기업, 산업계가 기대하는 것은 인력이다. 잘 훈련받아서 기업에 필요한 연구를 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데 정부 R&D가 역할을 해야 한다.

산업 R&D 기획력은 한번 짚어야 한다. 제대로 기획하지 못하니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지 못했다. 앞으로 산업 R&D 기획 능력이 핵심 이슈가 될 것이다. 진짜 문제는 이것인데 중소기업에 왜 '눈먼 돈' 뿌리냐는 비판만 되풀이 된다.

성과를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기획, 평가 제대로 하고 산업 R&D의 방향성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이 때문에 부처를 아우르는 컨트롤타워 기능을 더 강화해야 한다.

공공 R&D도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지금까지 환경 R&D의 목표는 환경 산업 육성이었다. 수출을 얼마 해야 한다는 식의 목표다. 이러다보니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환경 개선 관련 기술이 보이지 않았다.

-국가 R&D 예산 편성 과정상 비효율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다. 기재부가 실링(총액)을 정하고 혁신본부가 조정, 배분하는 현 프로세스를 어떻게 보는가.

▲정부의 국가 R&D 예산 배분 구조는 크게 바뀌었다. 기재부가 전체 지출한도를 정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문제는 이후다. 당초 지출한도를 정한 예산 외 추가 예산의 심의, 기획이 제대로 안 되는 것은 문제다. 기재부에도 이 얘기를 강하게 했다. 물론 정부 예산이 각 부처에서 요청하는 실질적 수요만 갖고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정무적, 거시적 판단이 당연히 들어간다. 현재 흐름으로 봤을 때 기재부가 이니셔티브를 쥐는 것은 맞다.

기재부가 정무적 판단으로 예산 일부를 정책적으로 배분했을 때도 과학기술 컨트롤타워와 협의해야 한다. 그러나 한도 외 예산은 이 과정이 지켜지지 않는다. 한도 외 예산은 거의 기재부 주도로 편성된다.

과기자문회의 소속 전문위원이 있으니 협의해서 더 전문적으로 편성해야 한다고 본다. 기재부도 심의 필요성은 인정하는데 물리적으로 시간이 촉박하다. 충분히 심의할 수 있는 기간이 필요하다. 내년 R&D 예산만 봐도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예산을 비롯해 큰 예산이 과기자문회의 심의, 의결 이후 추가됐다. 이 과정에서 과기자문회의와의 협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 상황을 보면 평행적 협의는 아니다.

-일본 수출 규제를 통해 정부와 민간 R&D 사이 구멍이 드러났다는 지적도 따른다.

▲정부 R&D의 가장 큰 문제는 반성 없이 새 기획이 계속되는 것이다. '소부장'만 놓고 봐도 이 구멍이 왜 생긴 건지, 그동안 막대한 투자를 했는데 왜 기술공백이 발생한 것인지 진단이 부족한 상태서 처방이 나온 것 같다. 문제에 대한 진단이 필요하다. 이것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고 해야 한다.

소부장 문제가 과거 정부에서 주요 이슈가 아니었던 것이 아니다. 2016년경 소부장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후 방향성이 바뀌었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기 위해 새 소부장 연구를 한다고 틀을 전환했다. 아쉬운 대목이다. 정무적, 정치적 판단이 R&D의 중장기 틀을 자꾸 망가트린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현 정부 들어서도 소부장에 신경을 많이 못 쓴 측면이 있다. 정책 역량이 AI 등에 집중되면서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장기적으로 추진하는 틀을 만들어야 하는데 정무적 판단으로 뒤흔드니까 균형이 깨진다.

빅데이터, AI가 4차 산업혁명 핵심이라고 여기에만 집중하면 균형 잡힌 R&D가 되겠나. 그러면 또 다른 많은 분야가 묻힌다. 소부장도 예산이 확대된 것은 다행인데 현재 예산 규모에선 비정상적으로 비중이 크다. 이 규모가 지탱이 될지 의문이다. 이런 것이 다 정무적 R&D 셈법이 아닌가. 다시 말하지만 장기적 운영 틀이 중요하다. 정부, 정권을 넘어 연속성을 갖는 R&D 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과기자문회의 의장인 대통령이 자문회의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대통령 대면 보고를 못한 지 1년 됐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대통령의 과학기술 관심도와 결부하는 것은 억측이다. 대통령은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이 크다.

오히려 외적 환경을 봐야 한다. 문 대통령은 특히 과학기술 인재 양성 분야에 관심이 크다. 현재 혁신성장 정책은 경제관료 중심으로 추진했다. 그러다보니 과학기술은 혁신성장과 동떨어진 것, 기초적이라는 이미지가 생긴 것 같다.

국민이 볼 때 혁신성장은 과학기술 이슈다. 그런데 혁신성장 뒤에 과기자문회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보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로서는 아쉬운 대목이다. 혁신성장의 핵심은 R&D다. 현재 혁신성장의 틀은 잘못됐다고 본다. 이를 최근 홍 부총리가 인정하고 새로운 틀을 제시했다. 진작 이렇게 갔어야 했다. 다만 과기자문회의와 논의를 하지 않은 부분은 아쉽다.

-앞서 정부 4차 산업혁명 관련 정책을 두고 'AI 일변도' '균형 상실'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는데.

▲AI가 사회 전체를 바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AI가 향후 산업 미래에서 어느 정도를 차지할지 보고 싶은 것이지 전체를 지배할 파급력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현재 창출된 시장을 보자. 많은 기대가 있지만 아직은 크지 않다. 균형 잡힌 시각을 갖고 AI를 열심히 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 지금 주요 선진국 가운데 우리만큼 AI 역량이 떨어지는 나라가 드물다. 왜 이래 됐는지 반성도 해야 한다. 정부 R&D와 산업 간 균형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투자를 하드웨어 중심으로 하다 보니 SW를 못했고 OS를 포기했다. SW, 컴퓨터 공학 등 전 생태계가 망가진 것이다.

지금 와서 AI에 열심히 투자 하자고 구호만 외치는 것은 과거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학부생 전체를 대상으로 AI를 가르치면 다른 학문은 누가 하나. 정부가 정무적으로 사인을 주니까 자금이 모두 AI쪽으로 쏠린다. 지금 학부생 물으면 다 98%가 AI가 가장 유망하다고 한다. 이렇게 균형감이 상실된 구조를 만들면 다른 분야에서 구멍이 생긴다. 과거에 이 때문에 생긴 구멍이 아이러니하게 AI였고 소부장이었다.

-과기자문회의 부의장으로서 아쉬웠던 점은.

▲출연연 젊은 연구자 처우 개선 문제를 풀지 못한 것이 아쉽다. 현 정부의 후반기에서 R&D의 핵심 어젠다가 무엇인지 나도 계속 묻고 있다. 핵심 과제를 목표를 세워두고 진행해야 한다.

혁신성장 정책은 틀을 바꿔야 한다. 지난해부터 혁신성장 방향성에 의심이 확고해졌다.

주력산업, 신산업군을 혁신하는 것이 혁신성장이 아니다. 여기에 속하지 않은 분야, 기존에 없던 산업을 만들어야 한다. 기술이 나와서 마켓 비전이 생기면 이것은 이미 혁신이 아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 마켓이 없는 기술을 개발해서 발전시키는 것이 혁신성장이다. 그런데 정부는 기존의 것을 발전시키려 했다.

혁신성장의 핵심은 R&D다. 과학기술에 투자하며 창의적 연구, 인재를 만들어내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혁신의 특징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왜 상식적 이야기를 하냐고 한다. 그렇다면 현재 혁신성장은 비상식적이라는 말이 된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