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 성준·유리 파멸 원하는 시청자들, 왜 이 지경이 됐나

김종성 입력 2019. 12. 11. 20:45 수정 2019. 12. 11.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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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리뷰] 전형적인 막장 불륜 드라마가 된 < VIP >가 아쉽다

[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SBS 월화드라마 < VIP >의 한 장면
ⓒ SBS
 
'고구마 전개'를 통해 시청자들의 인내심을 한계까지 끌어올린 다음에 '욕받이'를 세워놓고 처절한 응징을 가하는 스토리는 쉽다. 흔히 '막장'이라 이름붙여진 그 이야기는 그저 쓰여지는 대로 쓰면 된다. 어떤 세계관이나 철학이 요구되지 않으며, 인문학적 고민이나 캐릭터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지 않다. 그냥 욕 먹을 상황들을 잔뜩 만들어 놓고, '매우 쳐라!'고 외치면 된다. SBS 월화 드라마 < VIP >처럼 말이다. 

야심차게 출발했던 < VIP >는 '불륜 드라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드라마로 전락했다. 초반에만 해도 < VIP >는 백화점 VIP들의 세계를 조명하고, 그들의 민낯을 파헤치는 예리함을 선보였다. 하루아침에 졸부가 된 VIP 고객(배혜선)의 이야기는 흥미롭기까지 했다. 또, 시청자들과 성준(이상윤)의 불륜 여부를 두고 교묘한 머리 싸움을 하며 심리 게임을 시도하기도 했다. 

시청자들은 성준이 정말 불륜을 저질렀는지를 두고 갑론을박했다. 혹시 회사 내의 권력 다툼 과정에서 나온 음모는 아닌지, 엄마의 외도를 경험했던 정선(장나라)이 심리적 트라우마 속에서 성준이 대해 오해를 하는 건 아닌지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더구나 부사장의 명을 받은 성준이 부사장의 내연녀를 정리하기 위해 돈을 건넨 후 구토를 하는 장면은 성준의 결백에 무게를 더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 VIP >는 탄력을 잃고 '불륜 대상(내연녀) 찾기'로 접어들었다. '사무실 내에 범인이 있다'면서 의심과 오해를 조장했고, 그 과정에서 이현아(이청아), 송미나(곽선영), 온유리(표예진) 등 각자의 이야기를 갖고 있는 캐릭터들이 망가졌다. 캐릭터들은 '불륜'이라는 틀 안에 갇혔고, 시청자들은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불륜 대상이 누구인지에만 관심을 갖게 됐다. 

정선을 기망한 성준, 그리고
 
 SBS 월화드라마 < VIP >의 한 장면
ⓒ SBS
가장 안타까운 건 < VIP >가 기존 '(막장) 불륜 드라마'의 전형성을 강하게 띠는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점이다. 부사장의 내연녀라는 의심을 받으면서도 꿋꿋함을 잃지 않는 모습이 기특했던 유리는 알고보니 부사장의 혼외 자식으로 밝혀졌다. 갑작스러운 신분 상승이었다. 캐릭터의 기존 색은 완전히 퇴색됐다. 거기까진 이해한다고 해도 성준과 유리를 묶는 방식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혼외 자식인 성준은 같은 처지의 유리를 보며 동병상련을 느꼈고, 측은지심은 사랑으로 발전했다. 와이프도 모르는 자신의 비밀을 알게 된 유리에게 마음을 터놓게 됐다는 어이없는 전개였다. 유산의 아픔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정선을 외면하고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났으면서 성준은 자신도 힘들어서 그랬다고 항변했다. 겉으로는 다 끝났다는 거짓말을 하며 정선을 기망한 채 몰래 유리를 만나고 있었다. 

급기야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있는 유리에게 달려가 곁에 있겠다고 선언했다. 이와 같은 성준의 행동은 전반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고, 개연성이나 설득력도 떨어졌다. 유리는 또 어떠한가. 그는 제자리를 찾으려는 성준을 계속해서 유혹했고, 심지어 당돌하게 정선에게 '당신 팀에 당신 여자가 있어요'라는 문자를 보내 지금의 파국을 열 장본인이었다.

이로써 성준과 유리는 '분노유발자'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아무리 뜯어봐도 두 사람에게 공감할 여지는 없었다. 시청자들은 정선에게 과몰입할 수밖에 없었고, 정선이 성준과 유리를 어떻게 응징하는지만을 기다리게 됐다. 이제 시청자들은 성준과 유리의 완전한 파멸이 아니면 만족할 수 없는 지경에 빠졌다.
 
 SBS 월화드라마 < VIP >의 한 장면
ⓒ SBS
표독스러워진 정선은 유리의 뺨을 한껏 올려 붙이고,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의 유리는 더욱 집요하게 성준을 잡으려 든다. 성준은 애매한 입장을 취하면서 유리를 뿌리치지 못한다. 복수에 성공하더라도 정선은 무엇을 손에 넣을 수 있을까. 

자극적인 전개를 통해 시청률 면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둘 순 있겠지만(12회 시청률 13.2%, 닐슨코리아 기준), 두고두고 좋은 드라마라는 평가를 받긴 어려워보인다. 남은 4회 분량은 욕받이들을 향한 공허한 '매우 쳐라!'만 남겨질 듯한데, 알다가도 모를 < VIP >의 막장 테크가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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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그리고 '너의길을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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