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공연 아니라도..볼게 널렸죠" 공연장 떠나는 20代

서정원 2019. 12. 10.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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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 고객층 변화 바람
인기 있으면 10만원대 훌쩍
"1년 2~3번 보는것 마저 호사"
지갑 얇은 20대엔 '그림의 떡'
'주고객층' 자리 30대에 내줘
2인관객도 '나홀로'보다 줄어
특화마케팅 펼치며 20대 잡기

◆ 문화예술계 밀레니얼 쇼크 ③ ◆

1970년대 세계를 강타한 스웨덴 그룹 아바 노래로 만든 뮤지컬 `맘마미아`는 중장년 관객의 힘으로 롱런하고 있다. 30대 이상 관객이 전체 60% 이상을 차지한다. [매경DB]
"맘마미아! 나 또 시작이에요, 마이 마이, 내가 어떻게 당신을 거부하겠어요?" 지난 8일 대구 계명아트센터 공연장에 스웨덴 그룹 '아바'의 노래 '맘마미아'가 울려퍼졌다. 뮤지컬 맘마미아를 보러온 관객들 중에서는 배우들의 열창을 들으며 옛날을 추억하는 중년 관객이 유독 눈에 많이 띄었다. 맘마미아는 관객 중 30대 비중이 30%에 이르고, 40·50대 비중이 38%에 달한다.

공연장에서 이런 풍경은 이미 낯설지 않다.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콘텐츠를 앞세운 유튜브·넷플릭스 등 '가성비' 스트리밍 서비스 공세에 공연장을 찾는 20대 관객이 줄고, 구매력이 높은 30·40대가 이들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공연 시장 중심축은 이미 20대에서 30대로 이동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와 BC카드가 공연 소비데이터를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공연 주 소비자는 30대 여성과 40대 남성이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6월까지의 공연 소비 금액 중 20.8%가 30대 여성의 지갑에서 나왔다. 40대 남성과 여성 비중은 각각 15.6%와 14.1%였다. 20대 여성과 남성 비중은 각각 10.5%와 4.3%에 불과했다. 경제적 독립이 늦어 부모의 신용카드를 쓰는 20대들이 많은 세태를 감안해도 현격한 차이다.

2017년 인터파크 티켓 웹 예매자 164만여 명을 분석한 데이터에서도 예매자 중 여성이 71%를 차지하는 가운데, 여성 중 30대 비중이 34.3%로 가장 높다. 20대 비중은 33.7%로 그 뒤를 이었다. 2016년 30대 여성이 20대 여성을 제치고 최다 관객층으로 떠오른 뒤 그 격차가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그간 공연시장 큰손이었던 20대 데이트족의 감소는 이 같은 '밀레니얼 쇼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터파크 티켓에 따르면 2005년 전체 예매 건수 중 70%에 육박했던 2인 관객 비중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2018년에는 40%까지 떨어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공개한 '2018 공연예술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4년 기준 국내 공연시장 규모는 7593억원, 2015년은 7815억원으로 성장세를 이어왔으나 '촛불정국'이 이어졌던 2016년 7480억원으로 매출이 꺾였다. 2017년에는 8132억원까지 매출이 늘어났지만 성장세는 주춤한 모양새다. 2000년대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많게는 1년에 수십 개에서 100여 개까지 증가하던 전국 등록공연장도 2015년 이후 뚜렷한 정체상태에 접어들었다.

공연장에 청년들 발길이 뜸해지는 이유는 높아진 티켓 가격과 매력적인 대체재의 출현이다. 공연계에 따르면 2014년 5만3000원이던 연극·무용의 중간급 티켓 좌석 평균가는 2018년 6만3000원으로 뛰었다. 음악 공연도 6만원 수준에서 7만원으로 올랐다. 특히 인기 있는 대극장 뮤지컬은 대부분 최하석이 6만원이고 VIP석의 경우 14만원에 달한다. 취업문이 갈수록 좁아져 가는 현실에서 지갑 사정이 얇은 20대들에게는 꽤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공연장에서 만난 20대 최 모씨는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작품들이 많지만 티켓 값이 비싸 살 때마다 망설인다"며 "'얼리버드' 예매 등을 활용해 할인 티켓을 구하려 애를 쓰지만 1년에 2~3번 즐기는 공연은 사실 사치에 가깝다"고 했다. 원종원 뮤지컬평론가는 "높은 티켓 가격은 쉽게 관객이 되지 못하도록 하는 가장 큰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미국, 영국 등에서는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학생 할인'을 제공하고 있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성장이 정체된 공연계를 지탱하는 이들은 동일 작품을 여러 번 관람하는 공연 마니아들을 가리키는 이른바 '회전문 관객'이다. 인터파크 티켓에서 지난해 뮤지컬 티켓을 예매한 73만명 중 동일 작품을 동일 아이디로 3회 이상 관람한 관객이 5만1600여 명이고, 그중 10회 이상 관람한 관객도 4900여 명에 달했다. 회전문 관람은 좋아하는 뮤지컬 배우에 대한 '팬심' 때문으로 특정 배우 팬으로 한정된다.

공연계는 웹툰, 유튜브, 브이로그 등 젊은 관객들을 겨냥한 뉴미디어 마케팅을 펼치며 새로운 활로를 모색 중이다. 지난달 국립발레단이 발레 '호이 랑'을 선보이며 인기 웹툰 작가 양경수와 협업한 게 대표적이다. 20만명 팬과 폴로어를 보유하고 있는 양경수 작가는 국립발레단 인스타그램에 발레단 단원들을 그린 웹툰을 연재했다. 국립발레단 관계자는 "발레를 어렵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웹툰 등 대중적인 콘텐츠로 다가가고자 한 시도"라고 했다.

웹드라마로 화제를 모은 곳도 있다. 지난 8~10월 뮤지컬 '시라노' 공연 전 계열사 '디지털스튜디오 tvN D'와 합작해 '잘빠진 연애'를 만든 CJ ENM이다. 드라마 속 등장인물 이름이 '시란호'와 '노옥산'으로 원작의 '시라노'와 '록산'을 떠올리게 할 뿐 아니라 뮤지컬 노래를 편곡해 드라마 배경음악으로 삽입하기도 했다. CJ ENM 관계자는 "짧은 웹드라마 소비를 많이 하는 10·20대를 겨냥했다"며 "공연을 위해 홍보성 웹드라마를 제작한 것은 이번이 최초"라고 전했다. 국립극장 등 공공극장도 주요 관객들이 고령화되며 미래 소비층이 될 수 있는 젊은 관객들을 잡는 데 열심이다.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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