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간 미래 기술 분야 20조원 등 총 61조원을 투자하겠다."

현대차가 4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기관투자자들을 상대로 '전략 2025' 발표회를 열고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혔다. 천문학적 투자 금액뿐 아니라 '서비스 기업'이 되겠다는 선언이 큰 관심을 끌었다.

그동안 단순 제조업에서 벗어나 '모빌리티(이동 편의)' 서비스 기업이 되겠다고 공언해 온 현대차는 이날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혁신안을 내놨다. 현대차 고객뿐 아니라 벤츠·BMW 등 다른 회사 차량 고객들도 이용할 수 있는 '통합 모빌리티 플랫폼'을 자체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네이버나 카카오처럼 한 앱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사업은 그동안 IT의 영역이었지만, 전통 완성차 제조업체가 이 사업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전 세계 자동차 업계에서 이미 모빌리티 플랫폼 선점 경쟁이 치열하다"며 "서비스 관련 업계의 반발 등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반(反)대기업 정서를 어떻게 뛰어넘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네이버·카카오가 경쟁 상대

"현대차의 2대 핵심 사업은 '디바이스(device)'와 '서비스'가 될 것이다."

이날 발표에서 현대차는 완성차를 휴대폰이나 태블릿PC 같은 '스마트 디바이스'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이 디바이스를 활용하는 서비스 사업을 새롭게 추가하겠다고 했다. IT 업체처럼 디바이스만 파는 것이 아니라, 제반 소프트웨어 등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제품·서비스 통합' 기업이 되겠다는 것이다.

현대차가 플랫폼을 통해 제공하려는 모빌리티 서비스는 '자동차와 이동 편의 관련 모든 서비스'가 망라돼 있다. 먼저 자동차 제품 관리와 관련된 서비스다. 자동차 리스(장기 대여)부터 보험 가입이 가능해지고, 주유소, 전기차 충전소, 정비소와 세차장 정보 등이 구축된다. 타이어 구매나 중고차 거래도 현대차 앱에서 할 수 있게 된다. 초기엔 현대차 고객을 중심으로 서비스하지만, 앞으로 벤츠, BMW, 도요타 등 다른 브랜드 차량 고객들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플랫폼 회원이 어느 정도 확보되면 쇼핑과 배송, 음식 주문, 영상 스트리밍 등 복합 생활 서비스까지 추가한다는 계획이다. 킥보드·택시·버스부터 기차·비행기까지 모든 교통수단을 한 앱에서 '길찾기'를 통해 이용할 수 있는 '멀티모덜(multimodal·다중적)' 이동 편의 서비스도 구축한다.

현대차는 이를 위해 고급형 호출 택시인 마카롱 택시를 운영하는 KST모빌리티에 50억원을 투자하고, 이 회사와 수요 응답형 버스·택시 사업을 벌이는 등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해외에선 동남아 그랩에 투자하고, LA에서 시와 협력해 차량 공유 사업을 진행 중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앞으로 우리의 플랫폼 안에서 택시·버스 업체들이 최적 이동 경로를 제공받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국내에선 네이버나 카카오, 해외에선 구글이나 우버와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현실화된 사업이 많지 않아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6년간 61조원 투자… 2024년 완전 자율차 양산

현대차의 이날 비전 발표는 올해만 두 번째다. 지난해 지배 구조 개편이 무산된 뒤 시장과 소통하는 일을 강화하기로 한 현대차는 지난 2월 5년간(2019~2023년) 45조원을 투자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이날은 2020년부터 2025년까지 6년간 총 61조1000억원을 투자하겠다면서, 투자 금액을 늘렸다. 이 중 전동화·모빌리티·자율주행 등 미래 기술에는 2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2025년 전기차·수소차의 연간 판매는 총 67만대(전기차 56만대, 수소차 11만대)로 늘린다.

한국·미국·중국·유럽 등 주요 시장은 2030년부터, 인도·브라질 등 신흥 시장은 2035년부터 신차 전동화를 본격화한다. 이원희 사장은 "세계시장 점유율 5%, 글로벌 전동차(전기차·수소차) 3위로 도약하겠다"고 했다. 세계적 자율주행 기업 앱티브와 합작사를 만들기로 한 현대차는 2025년까지 자율주행 2·3단계와 주차 ADAS(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기술을 전 차종에 적용하기로 했다. 이날 투자자들의 관심은 "투자금은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에 집중됐다. 재무 사정에 밝은 CFO(최고재무책임자) 출신인 이원희 사장은 "부품 공용화 등으로 수익성을 개선할 것"이라며 "현재 3%대인 영업이익률을 연평균 1%포인트씩 올려 2025년 8%까지 달성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