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인의 경제노트]팩트로 확인된 삼성의 꼼수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2019. 11. 2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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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번 칼럼에 원래 쓰려고 했던 내용은 ‘아이즈원을 위한 변명’이었다. 인적 자본 형성의 특수성과 공정 경쟁에 대한 내용으로 써 보려고 했었다. 그런데 며칠 사이에 대형 ‘단독’ 보도들이 줄을 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칼럼의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다. 아이즈원 문제는 다음 기회를 이용하려고 한다.

최근 불거진 대형 사건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수뢰 혐의를 받던 유재수 전 금융위 금정국장의 구속이고, 다른 하나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과 관련한 여러 언론의 단독보도들이다. 둘 다 중요하다. 하나는 진보 정권의 부패 가능성과 연관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 독점 권력의 전횡에 관한 것이다. 일단 오늘은 이 중에서 삼성 문제를 다루기로 한다. 유재수 사건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직 실체적 진실의 상당 부분이 수면하에 잠복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삼성 합병과 관련한 새로운 단독보도의 핵심은 미래전략실 문건의 발굴에서 비롯된다. 먼저 지난 11월27일 삼성그룹의 미래전략실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앞두고 주가조작을 모의했다는 한겨레신문의 단독보도가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이 문건은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그룹의 실질적 총수로 등장하기 직전인 2015년 4월경 작성된 것으로, 2015년 6월22일을 합병 발표일로 상정하고 합병 기준일은 2015년 10월1일을 목표로 했다. 그리고 국민연금을 ‘설득’하고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축소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주가에 손댈 각종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한편 28일에는 경향신문이 단독보도를 통해 위 문건상의 합병 발표일인 6월22일과 합병 기준일인 10월1일이 각각 5월26일과 9월1일로 앞당겨진 배경을 제시했다. 보도에 따르면 제일모직 계열사에 악재가 발생, 이것이 부각될 것을 염려하여 모든 일정을 대략 1개월 정도 앞당겼다는 것이었다.

2015년 5월26일을 전후한 시기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에 상당한 시련의 시기였다. 우선 5월25일 새벽에 김포시 고촌읍에 위치한 제일모직 통합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소방서 추산 약 280억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피해액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었으나 평소 ‘안전경영’을 표방하던 삼성의 입장에서는 악재가 아닐 수 없었다. 또한 5월26일에는 삼성물산이 지방계약법 위반 때문에 서울시로부터 24개월 동안 관급공사 입찰참가자격 제한을 통보받았다(27일에 일부 내용 수정 공시). 과거 거래규모는 약 2조원으로 제일모직 전체 매출액의 약 7.4%에 달하는 대규모 계약이었다. 따라서 이 처분이 최종적으로 법원에서 어떻게 정리되건 간에 눈앞의 주가에는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두 건의 단독보도는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를 앞두고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얼마나 전력을 다해 승계 계획을 세우고 이를 밀고 나갔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특히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그동안 ‘상장 회사의 주가를 어떻게 조작한단 말이냐?’는 말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주가를 조작(또는 유리한 방향으로 관리)했다는 지적을 피해갔던 삼성이 사실은 수많은 꼼수와 불법을 통해 실제로 주가를 조작했다는 점이다.

혹자는 이런 보도를 보면서 다음과 같이 반문할 수도 있다. ‘합병을 시도하는 입장에서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한 합병비율을 얻기 위해 합병 시기를 저울질하고 뉴스의 배포 시점을 조정하는 것이 뭐가 나쁘냐? 오히려 그런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주주에 대한 배임 아니냐?’

이 말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적용될 수 없는 말이다. 왜일까?

우선 기업의 경영자가 자신(또는 자기 회사의 주주들)에게 유리한 합병비율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고 이를 게을리한다면 오히려 그것은 주주에 대한 신의성실 의무 위반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회사 경영자의 주주 특히 소수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인정하는 데 인색하기 때문에 배임이라고까지 몰고 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신의성실 의무 위반은 분명하다.

둘째, 그러나 유리한 합병비율을 얻기 위한 경영자의 노력은 ‘적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안된다. 따라서 악재를 미리 공개하여 이를 투자자에게 조속하게 알리는 것은 무방하다 치더라도 악재건 호재건 그 정보를 고의로 은폐하여 시장가격과 기업의 실제 가치가 괴리되도록 하는 것은 범죄다.

자본시장법이 상장회사의 합병비율을 주가의 가중평균으로 결정하도록 한 근본적인 이유는 주가가 기업의 실제 가치를 가장 잘 반영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런데 특정 세력이 자신의 이익 때문에 주가를 기업의 실제 가치와 괴리되도록 유도한다면 이런 행위는 주가를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결정하도록 한 전제를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경영자는 최선의 합병비율을 얻으려고 노력하더라도 고의적으로 주가를 조작해서는 안된다.

셋째, 무엇보다도 이런 주장은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모두의 경영진(사실상의 이사)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합병비율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은 반드시 반대쪽 회사 주주에 대한 의무를 위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 부회장이 이 ‘난국’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는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합병비율을 도출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작금의 단독보도들은 모두 이 실낱과 같은 가능성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쩌다가 이 칼럼이 게재되는 오늘 보도된 경향신문의 또 다른 단독보도 내용을 미리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그 내용은 더욱 충격적인 것이다. 삼성이 2012년 말부터 이미 이재용 부회장을 위해 에버랜드를 활용하여 삼성물산을 합병하되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도록 이런저런 방안을 모색해 왔다는 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재단을 동원하고, 자사주를 활용하고 사회적 논란은 ‘돌파’하는 꼼수가 거기 적나라한 민낯을 보이며 적혀 있었다. 우리들이 말해왔던 꼼수는 팩트였던 것이다. 추상같은 사법적 판단을 고대한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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