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수술 이겨낸 '당구천재' 이미래 "내 당구는 이제 시작"

이석무 2019. 11. 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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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프로당구 5차 대회 ‘메디힐 LPBA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인터뷰하는 이미래. 사진=PBA 제공
여자 프로당구 ‘메디힐 LPBA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신중하고 공을 치는 이미래. 사진=LPBA 제공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여자 프로당구 LPBA 새로운 챔피언에 등극한 ‘3쿠션 샛별’ 이미래(23)는 10대 시절부터 ‘당구 천재’로 불렸다. 당구를 좋아하는 아버지를 따라 12살 때 당구를 처음 시작한 뒤 고등학교 때 정식 선수로 데뷔했다.

어릴 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이미래는 각종 대회 우승을 휩쓸었다. 심지어 2015년에는 남자 선수들과 경쟁을 이기고 당구 특기생 1호로 한국체대에 합격하기도 했다. 대학생이 된 이후 국내 여자 당구 랭킹 1위에 올랐다.

2016, 2017년 2년 연속 세계여자3쿠션선수권대회 준우승을 차지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3쿠션 여자 당구선수로 우뚝 섰다. 지난해 대한당구연맹회장배 전국대회 여자부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래의 당구 인생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길지 않은 당구 인생은 자기 자신과 싸움이었다. 당구는 누구에게 즐거움이자 취미지만, 이미래에게는 큰 짐이었다. 의무감 때문에 억지로 당구를 쳐야 했다.

이미래는 “당구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대회장에 들어가기 싫다는 마음이 떠나지 않았고 대회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가장 큰 시련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인 2013년에 찾아왔다. 당시 이미래는 어린 나이에 뇌수술을 경험했다. 그전부터 당구에 대한 스트레스로 두통을 앓았다. 가벼운 두통으로 생각했다. 어느 날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져 응급실로 갔다. 곧바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병명은 ‘폐쇄성 뇌수두증’이었다. 뇌수두증은 뇌 안에 흐르는 체액인 뇌척수액이 제대로 흐르지 않아 뇌실이 커지고 머리 안 압력이 올라가는 병을 말한다. 다행히 수술은 잘됐다. 하지만 뇌 압박을 피하려고 한 달 동안이나 눕지 못하고 앉아서 잠을 잤다.

놀라운 것은 그런 큰 수술을 받고 2주 뒤 경기도민체전에 출전했다는 점이었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모자를 쓴 채 당구 큐를 잡았다. 이미래의 악바리 근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미래는 당시를 떠올리며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도 대표로서 책임감이 정말 컸던 것 같다”고 밝혔다.

대학 학업과 당구 선수 생활을 병행하기 벅찼던 이미래는 큰 결심을 했다. 부모님 그늘에서 벗어나 자기 스타일대로 당구를 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다니던 학교도 휴학했다. 다른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고 연구하면서 자신의 스타일을 새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 썼다.

이미래는 “휴학을 하고 부모님에게 내가 해보고 싶은 대로 해보겠다고 한 뒤 1년 반전부터 당구를 즐기면서 공을 치고 있다”며 “당구를 시작한지는 11년이 됐지만 내 진짜 당구가 시작한 것은 2년 밖에 안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이미래가 크게 느낀 것은 운동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몸과 마음을 적절히 쉬게 해야 당구가 잘 된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당구를 시작하고 나서 내 삶은 휴식이 없었다”며 “최근 들어 적절한 휴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올해 여자 프로당구 LPBA가 출범한 뒤 이미래는 첫 대회부터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다. 4차 대회까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새 경기방식에 적응하는대 시간이 필요했고 주변 기대도 영향을 미쳤다.

마침내 지난 24일 의정부에서 막을 내린 5차 대회 ‘메디힐 LPBA 챔피언십’ 결승에서 김갑선(42)을 이기고 첫 우승을 달성했다. 우승을 확정 지은 뒤 그동안 마음고생이 떠오른 뒤 펑펑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미래는 “그동안 성적이 잘 안 나와서 조급한 마음이 컸는데 부진했던 경기들을 뒤로 하고 좋은 경기력으로 대회를 마무리해 기뻐다”며 “세계선수권대회 준우승 두 차례 했을 때 아쉬움이 너무 컸는데 우승하니 너무 좋다”고 말했다.

올해 오른손 손목 터널 증후군으로 고생하면서 왼손으로 당구를 칠까도 고민했다는 이미래는 컨디션을 조절하는 법도 스스로 터득하는 등 점점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번 LPBA 우승으로 자기 이름처럼 ‘밝은 미래’를 활짝 연 이미래는 ‘즐기면서 당구를 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준비한 대로 하자고 마음을 다잡으니 긴장이 저절로 풀어졌다. 그전에는 죽도록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이제는 웃으면서 즐겁게 당구를 치고 싶다. 저를 응원해준 따뜻한 지인과 팬들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석무 (sport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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