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 버거, 콩 치킨, 토마토 스시.. 美 증시 흔들다

시애틀/박지원 탐험대원 입력 2019. 11. 25. 03:04 수정 2019. 11. 2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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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미래탐험대 100] [50] 美시애틀의 '인조 고기' 열풍.. 채식을 좋아하는 박지원씨
- 윤리적 소비 추구하는 밀레니얼들
아마존·MS 본사 있는 시애틀, 패스트푸드점마다 가짜고기 메뉴
- 2000년 닷컴 버블 연상
업계 1위 비욘드미트, 주식상장 첫날 163% 급등
임파서블푸즈 기업가치 20억달러

겉모습으로는 일반 소고기 버거와 구분하기 어려웠다. 패티(버거에 든 고기) 겉면엔 자글자글한 기름이 흘렀고, 안에는 불그스름한 육즙까지 배어났다. 하지만 이 패티는 진짜 고기가 아니다. 콩과 아몬드, 감자 등 비(非)육류 재료로 만든 인조 고기다. 기름은 코코넛·해바라기 기름이고 패티 안쪽 핏빛은 채소의 일종인 비트 추출물이다. 미국 시애틀 패스트푸드 식당 레드로빈에서 주문한 인조 고기 버거 '임파서블 치즈버거'는 지금껏 경험 못한 새로운 먹거리였다.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본사가 있는 미국 시애틀의 패스트푸드점을 얼마 전부터 '특이한 녀석'이 점령하기 시작했다. 고기란 이름표를 달았지만 육류가 아닌, 이른바 대안 고기(meat alternatives)가 미국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대안 고기는 콩·버섯·호박·밀 같은 식물성 재료나 실험실에서 배양한 단백질을 활용해 고기와 비슷한 형태와 맛을 내게끔 한 식품이다.

두툼한 소고기 패티로 유명한 버거킹은 대안 고기로 만든 '임파서블 와퍼'를 지난 8월 내놓았고, 육즙 가득한 닭튀김을 앞세워온 KFC는 콩 단백질을 배합한 '비욘드 치킨'을 9월에 시범 출시했다. 햄버거 체인 화이트캐슬의 '임파서블 슬라이더', 멕시칸 패스트푸드점 델타코의 '비욘드 타코' 등 시애틀 골목을 돌 때마다 패스트푸드 식당에 붙은 인조 고기 홍보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5700억달러(약 672조원)에 달하는 패스트푸드 시장이 대안 고기에 입맛을 다시기 시작한 것이다.

◇"10년 새 10배 성장"

대안 고기 열풍은 올해 미국 주식 시장을 뒤흔들었다. 2013년 첫 대안 고기를 출시했던 업계 1위 비욘드미트는 지난 5월 나스닥 상장 첫날, 주가가 공모가(25달러)보다 163% 올랐다. 상장 당일 주가가 2.6배 이상 뛴 것은 2000년 '닷컴 버블' 이후 처음이다. 주가는 234달러까지 폭등하다 지금은 공모가 3배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경쟁사 임파서블 푸즈는 지금까지 투자금 7억5000만달러(약 9000억원)를 유치했다. 빌 게이츠, 유명 가수 케이티 페리, 제이 지(Jay Z) 등이 투자했다. 기업 가치는 20억달러에 이른다.

성장 가능성은 더 크다. 글로벌 금융회사 바클레이스는 대안 고기가 지난해 미국에서만 1조4088억원어치, 영국·독일에서는 각각 4664억·2356억원어치씩 팔려나갔다고 밝혔다.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견고하게 지속 성장할 시장이다. 10년 전 전기차 시장을 연상케 한다"란 분석도 덧붙였다. 바클레이스는 2029년까지 세계 대안 고기 시장 규모가 지금보다 10배 가량 늘어난 1400억달러(약 164조원)로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풍성한 육류의 맛" vs "야채가 낫다"

미 서부에서 대안 고기 소비는 일상처럼 보였다. 아마존이 인수한 대형 수퍼마켓 체인 '홀푸즈'는 대안 고기 코너를 별도로 만들어놓고 있었다. 토마토로 만든 가짜 참치(굿캐치)도 보였다. 대안 해산물 스타트업 오션허거푸즈는 대안 참치로 만든 스시, 가지로 만든 가짜 장어를 선보였다.

도대체 무슨 맛일까. 채식을 즐기는 나와 고기 마니아인 동행 기자 평가는 갈렸다. 먼저 나의 소감이다. "버거킹 임파서블 와퍼는 전에 먹어본 소고기 버거와 비슷했습니다. 가격도 일반 와퍼와 1달러 차이니 크게 부담되진 않았어요. 맛이 풍성했습니다. 저는 육식을 피하고 있는데 이 정도 맛이라면 진짜 고기를 먹을 이유가 없을 것 같아요." 고기를 좋아하는 동행 기자는 "삼키기 어려운 맛"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레드로빈 임파서블 버거를 씹는 순간 덜 익은 콩 비린내, 몇 해 묵은 것 같은 퀴퀴한 곡물 냄새가 미각과 후각을 덮쳤습니다. 차라리 신선한 토마토와 아보카도 혹은 콩비지 찌개가 훨씬 더 맛있고 건강에 좋지 않을까요."

◇윤리적 소비 중시하는 청년들이 동력

대안 고기 인기는 윤리적 소비를 중시하는 밀레니얼(1980~2000년대 초 출생)들이 동물 복지와 환경 보호를 이유로 채식 대열에 합류한 것이 동력이 됐다.

미시간대 조사 결과, 20대 42%와 30대 54%가 지난 1년 동안 대안 고기를 먹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40~54세는 이 비율이 35%, 55세 이상은 19%에 그쳤다.

대안 고기 업체도 동물 복지나 축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 감축 등 윤리적 측면을 내세운다. 닭의 체세포를 배양한 고기를 실험실에서 생산하는 '저스트'는 귀여운 닭이 뛰어노는 발랄한 유튜브 광고를 통해 이렇게 강조한다. "이 닭의 이름은 이안입니다. 이 (실험실) 고기도 이안에서 나왔어요. 하지만 이안은 저렇게 건강히 살아 있죠? 맘 편히 드세요." 토마토로 가짜 참치를 만드는 굿캐치 CEO 크리스 커는 한 인터뷰에서 "죽기 전까지 10억 마리의 동물을 구하겠다"고 했다.

회의론도 만만찮다.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가공 식품이 진짜 고기보다 건강과 환경에 좋으리라는 보장이 있느냐는 것이다. 가짜 고기의 포화지방·칼로리·염분이 진짜 고기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높다는 주장도 있다.

댄 글리크먼 전 미국 농무부 장관은 "식물성 고기가 진짜 고기보다 뛰어난 영양학적 요소를 지녔는지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미탐100 다녀왔습니다] "美 인조고기 열기 예상보다 뜨거워… 한국도 이런 도전 나왔으면"

대안 고기 현장 찾아간 23세 박지원씨.

올해 영국에서 '개발학' 석사과정을 시작한 대학원생입니다. 개발과 환경보호의 공존은 저의 오랜 관심사였습니다. 패스트푸드와 대안 고기의 만남이 반가웠던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 대안 고기는 식품인 동시에 환경문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여겨집니다. 현장에 가보니 열기가 생각보다 뜨거웠습니다. 대안 고기 상점 앞에 길게 늘어진 줄에서 수십조 단위 시장 규모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탐험 후 환경, 건강, 맛, 가격 등 모든 요소를 충족하는 대안 고기를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아직 냉정한 평가도 많다고 푸드 테크 기업인들 스스로 얘기합니다.

전문가들은 2050년까지 세계 인구의 육류 소비량이 지금보다 70%가량 늘어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쇠고기 1㎏을 얻기 위해선 물 15.5t과 사료 7㎏이 필요합니다. 온실가스 문제 또한 만만치 않아 축산업은 자동차에 맞먹는 심각한 환경 파괴범으로 꼽힙니다. 미국의 푸드 테크 기업들은 대안 고기를 선택이 아닌 미래를 위한 일로 바라보고 시장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국내 식품업계에서도 이런 도전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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