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손담비 "악플 없는 건 처음, 향미로 훨훨 날아 이제 시작"

최지윤 2019. 11.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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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배우로 10년만 연기 인생 제2막
'동백꽃 필 무렵', '인생작 만났다' 호평
손담비

[서울=뉴시스]최지윤 기자 = 탤런트 손담비(36)는 '향미' 그 자체였다. 어촌마을 옹산의 카페 '카멜리아' 알바생이다. 트레이닝복에 뿌리염색을 하지 않은 머리, 까진 매니큐어까지 촌스럽기 짝이 없었다. 섹시 가수 이미지가 강해 '향미 캐릭터를 제대로 살릴 수 있을까?'라는 우려의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KBS 2TV 수목극 '동백꽃 필 무렵'으로 '인생작을 만났다'는 호평이 끊이지 않았다. 연기자로 전향한지 딱 10년 만이다.

"태어나서 악플을 하나도 안 받아본 적은 처음이다. 시청자들이 자기 일처럼 좋아해줘서 신기하다. 향미에게 감정이입해 함께 울고 위로해주는데 기분이 날아갈 것 같더라. 촬영장에 가면 혼자 웃고 있었다. '한 번도 이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향미를 연기할 때는 편안했고 자신감도 있었다. 그 동안 똑같이 해왔는데 10년간 내공이 쌓여셔 포텐이 터진게 아닐까. 첫 작품이었으면 이런 평은 못 들었을 것 같다. 향미를 떠나 보내는 마음으로 염색을 했는데 엄청 울었다."

'동백꽃 필 무렵'은 세상의 편견에 둘러싸여 있는 여자 '동백'(공효진)과 그만 바라보는 파출소 순경 '용식'(강하늘)의 로맨스를 그렸다. 향미는 공단 뒷골목 창문없는 술집 '물망초'의 딸이다. 친구인 미혼모 동백처럼 어렸을 때부터 차별을 감내하며 살았다.

향미는 많은 연기자들이 탐냈을 만큼 경쟁이 치열했다.

차영훈 PD는 처음 손담비를 만났을 때 향미와 비슷한 점을 발견했다. "향미는 상대방을 보면서 얘기하지만,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지 않았느냐. PD님이 나에게 '날 보는거 같은데, 날 보는거 같지 않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PD님이 '향미가 제일 표현하기 어려운 캐릭터라서 페이스 유지를 잘 해야한다'고 조언해줬다"며 "이렇게 연습을 많이 한 적은 없다. 공을 많이 들였고 최선을 다해 캐릭터에 몰입했다"고 돌아봤다.

손담비는 느릿느릿한 말투, 초점없는 눈빛까지 디테일하게 캐릭터를 살렸다. "향미는 말투부터 특이했다"며 "물망초에서 자라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사랑을 주는 방법도 몰랐다. 연민이 느껴지는 캐릭터라서 더 매력적이었다"며 "나만 내레이션이 없었는데 뇌를 거치지 않고 바로 말하는 성격 때문 아닐까. 원래 말이 빠른데 어눌하지 않으면서도 느릿하게 하는 등 템포를 조절하는데 신경을 많이 썼다"고 짚었다.

예쁘게 보이고 싶은 욕심은 전혀 없었다. '망가질 거면 제대로 망가지자'고 마음 먹었다. "어설프게 망가지면 대중들도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동백 언니가 예쁘게 나와서 아쉬움은 없다"며 "향미는 너무 꾸미고 싶은데 염색할 돈도 없을 것 같더라. 뿌염을 하지 않고 손톱도 다 칠 안하고 옷을 촌스럽게 있는 것 모두 다 내 아이디어였다"고 귀띔했다.

평소 영화배우 공효진(39)과 친해 함께 연기할 때 시너지 효과가 났다. 차 PD가 '동백과 연기할 때 제일 자연스럽다'고 한 이유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신은 동백과 함께 한 마지막 장면이다. 향미는 동백에게 '물망초 꽃말은 뭔줄 알아? 나를 잊지 마세요'라며 '너도 나 잊지마. 너 하나는 그냥 나 좀 기억해주라. 그래야 나도 세상에 살다 간 거 같지'라고 말했다.

"그 신이 가장 짠했다. 너무 많이 울어서 가슴이 저리더라. 돈을 훔쳤는데도 동백 언니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왜 언니는 이런 나까지 보듬어줄까?' 싶더라"며 "꾹꾹 참았던 울음이 한 번에 터져서 너무 슬펐다. 향미가 죽었을 때 시청자들이 '내가 미안해'라며 함께 슬퍼해줘서 고마웠다"고 한다.

향미는 자신을 버리고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떠난 남동생(장해송)의 유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3000만원을 훔쳤다. 동백에게 "내가 어떻게든 네 돈은 갚고 갈게"라고 말한 뒤 폐기 직전의 스쿠터를 타고 야식 배달에 나섰다. 이후 저수지 한가운데서 죽은 채 발견됐다. 처음부터 죽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연기하면서 아쉽더라. '안 죽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임상춘 작가님이 멋있게 써줘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작가님이 향미 캐릭터는 애착도 많고 걱정도 많았다고 하더라. 죽은 뒤 작가님에게 잘해줘서 고맙다며 장문의 카톡이 왔다. 감동 받아서 울었다. 작가님이 '우비소녀'처럼 엄청 귀엽고 피부도 하얗다. '어떻게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을까?' 싶더라. 의문의 여인이다. 극본을 보고 잘 될 수 밖에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향미는 연쇄살인마 '까불이' 후보로도 지목됐다. 초반에 '까불이가 누구냐' '향미가 죽느냐, 동백이갸 죽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며 "얘기할 수 없어서 입을 꾹 닫고 있었다. 향미가 트렌스젠더라는 설도 있었다. 라이터를 훔치고 의미심장한 말을 많이 했는데, 트렌스젠더설은 깜짝 놀랐다. 까불이가 누군지는 다른 연기자들도 알고 있었는데 바뀌었다. (흥식이 아버지가 까불이로 밝혀졌지만) 새로운 반전이 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해 궁금증을 샀다.

일상에서는 그룹 '샤크라' 출신 탤런트 정려원(38)이 동백같은 존재다. 두 사람 모두 가수로 데뷔한 후 연기자로 전향해 공통점이 많다. 무엇보다 정려원, 공효진 등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 받아서 좋다"며 미소지었다.

"효진 언니는 연기자 선배로 만났지만 개인적으로도 친해 편안했다. 언니가 아이디어를 많이 주고, '이렇게 하면 더 좋을거 같다'고 조언도 해줬다. 향미는 동백을 보며 '나도 저렇게 살고싶다'며 동경하는 마음이 있었다. 동백에게 '우린 도긴개긴이야. 왜 너만 세상을 밝게 살고 품으려고 하느냐'고 하는 대사가 있다. 언니와 워맨스가 돋보여 만족스럽다. 평소에는 려원 언니가 힘이 돼 준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다'며 걱정을 하더라. 이번에도 언니가 대사를 맞춰줬는데, 조언을 받아서 연기했다."

손담비는 2007년 가수로 데뷔해 '미쳤어'로 신드롬을 일으켰다. 섹시한 이미지는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 과감히 버리고 연기자로 돌아섰다. 드라마 '드림'(2009)을 시작으로 '빛과 그림자'(2011~2012) '가족끼리 왜이래'(2014~2015) '미세스캅2'(2016) 영화 '탐정: 리턴즈'(감독 이언희·2018) '배반의 장미'(감독 박진영·2018) 등에서 활약했다. 2017년 연극 '스페셜 라이더'는 연기력을 쌓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됐다.

'동백꽃 필 무렵'은 연기 인생 제2막을 열어 준 작품이다. 연기자는 공백기 동안 가장 고민이 많다며 "3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나이 고민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캐스팅 제의가 왔을 때 '이 작품을 거절하면 기회가 안 오는 것은 아닐까?'라며 불안해하곤 했다. 향미를 만나 제 옷을 입은 듯 훨훨 날아다녔지만, "이제 시작"이라며 겸손해했다.

"향미가 꿈을 이루게 됐다. 화보 촬영을 하러 코펜하겐으로 떠난다 하하. 이번 작품으로 스펙트럼이 넓어졌는데, 물 들어올 때 노를 젓고 싶다. 형사, 가수, 철부지 딸 등 다양한 역을 연기했지만 한 번도 로맨스를 안 해봤다. 이번에 향미만 사랑이 없지 않았느냐. 동백만 바라보는 용식이 부럽더라. 동백 역할도 자신있냐고? 맡겨만 달라. 잘할 수 있다. 또 이런 호평을 받을 수 있을까 싶은데, 이제 1막이 끝났으니까. 좀 더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장이 펼쳐질 것 같아서 기대된다. '향미야, 걱정 많이했지만 잘 이겨내줘서 고마워. 너무 고생했어'라고 말해주고 싶다."

◎공감언론 뉴시스 plai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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