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첫 공개청문회.. 트럼프 호위무사 의원들, 증인 난도질

정시행 기자 2019. 11. 15. 03:5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탄핵 사기에 동원된 정치관료 못 믿겠다"며 증언 무력화 시도
CBS·CNN 등 5시간 넘게 전국 생중계.. 트럼프 "마녀사냥극"
증인들 "사실만 증언, 정권에 상관없이 나라위해 일할뿐" 방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탄핵 조사 공개 청문회가 13일(현지 시각) 시작됐다. 미 3대 공중파 방송사인 CBS·ABC·NBC와 CNN·폭스 같은 케이블 채널들이 5시간 넘게 전국에 생중계했다. 미 역사상 대통령 탄핵 조사가 TV로 전국에 생중계되는 것은 세 번째다. 증인들의 증언이 여과 없이 미 국민에게 직접 전달되는 상황은 탄핵 여론을 크게 좌우하거나, 내년 대선 판도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러나 이날 청문회는 트럼프 시대에 진실과 법치(法治)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줬다.

이날 연방하원 정보위원회가 연 청문회에 공개 증인으로 나선 첫 타자는 두 명의 현직 외교관이었다. 윌리엄 테일러 주(駐)우크라이나 대사 대행과 조지 켄트 국무부 유럽·유라시아 담당 부차관보로, 우크라이나 문제에 정통한 엘리트 외교관들이다. 두 사람의 공직 경력을 합치면 70년이다. 이들은 백악관과 국무부의 의회 소환 불응 지시에도 얼굴을 드러내고 출석, 최고 인사권자인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언을 6시간 동안 이어갔다.

백악관 지시 거부하고 청문회 나온 두 외교관 - 조지 켄트(왼쪽) 미 국무부 유럽·유라시아 담당 부차관보와 윌리엄 테일러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 대행이 13일(현지 시각) 미 의회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탄핵 조사 공개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해 선서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테일러 대사 대행은 "지난 7월 26일 트럼프 대통령이 고든 선들랜드 주EU 대사와 통화에서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수사' 진척 상황에 대해 물었고, 선들랜드는 '우크라이나 측이 수사에 착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답하는 것을 내 보좌관이 들었다"고 증언했다. 트럼프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전화에서 '바이든 수사'를 논의한(7월 25일) 바로 다음 날에도 여러 경로로 집요하게 수사를 종용했다는 뜻이다. 켄트 부차관보는 "러시아의 위협에 노출된 우크라이나에 미국의 군사 지원은 생사를 가르는 문제였다"며 "미 대통령이 이를 미끼로 정적 표적 수사에 몰두한 것은 우크라이나는 물론 미국 안보까지 저해할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외교관들의 명예를 건 증언은 의회 내 '트럼프 호위무사들'에게 사정없이 물어뜯겼다. 공화당 소속 정보위원들은 "민주당의 2016년 대선 불복 피날레"(데빈 누네스) "탄핵 사기에 동원된 정치적 관료들을 못 믿겠다"(짐 조던)고 맹폭했다.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가 바이든 수사를 한 것도 아니고, 군사 지원도 이뤄졌는데 뭐가 문제냐"는 말도 나왔다. WP는 "청문회장이 또 다른 트럼프 쇼로 전락했다"고 했고, 폴리티코는 "공화당은 아무 진흙덩이나 마구 던져 어떤 게 벽에 붙나 보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일부 여당 의원들은 재킷을 벗고 달려드는 등 탄핵의 공수(攻守)가 바뀐 듯했다. 야당은 탄핵 조사의 합법성과 비(非)정치성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민주당 소속 애덤 시프 하원위원장은 "이 청문회는 트럼프 개인을 단죄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 민주주의 미래, 행정부와 입법부의 상호 감시·견제에 대한 공론의 장"이라면서 건국 정신과 헌법, 역사를 수차례 거론했다. 외교관들도 "난 탄핵 결정하러 나온 게 아니라 사실만 증언할 뿐" "공화·민주당 정권에 상관없이 나라를 위해 일해왔다"고 방어했다.

그 시각 트럼프는 에르도안과 회담 - 13일(현지 시각) 첫 공개 청문회가 진행되는 동안,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청문회에 대한 관심을 돌리기 위한 정치 이벤트”라는 비판이 나왔다. /AP 연합뉴스

장외에서도 트럼프 측은 청문회를 '음모론' '재미없는 TV 프로'로 만들어버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청문회는 마녀사냥 사기극"이라며 "난 단 1분도 안 봤다"고 말했다. 스테퍼니 그리셤 백악관 대변인은 "알맹이 없는 지루한 사기극은 세금 낭비"라고 트윗했고, 트럼프의 차남 에릭도 "더럽게 재미없다"고 했다. 폭스뉴스는 중계 화면에서 외교관들의 직책 대신 '트럼프 반대파(Never Trumper)로 지목된 그 관료' 같은 자막으로 도배했다.

이렇게 정치적으로 양극화된 환경, 특히 트럼프가 실체적 진실이나 의회의 권능을 무시하는 상황에선 공개 청문회로 기존의 여론 구도에 균열을 가하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WP는 이번 청문회를 "소셜미디어를 통해 즉각적인 정보 조작이 가능한 시대에 열리는 첫 탄핵 조사"라고 했다. '단일한 팩트'가 존재하지 않고, 어떤 정치적 렌즈를 끼었느냐에 따라 보고 싶은 대로 보는 '대안적 진실'만 판친다는 것이다.

앞선 미 대통령 탄핵은 양상이 달랐다. 1973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 탄핵 땐 3대 공중파가 저녁 황금시간대에 청문회를 똑같이 생중계했고, 국민은 의회 조사를 신뢰하면서 탄핵 쪽으로 돌아섰다. 1998년 빌 클린턴 대통령 탄핵 때는 케이블 채널 확대로 정파적인 보도가 늘면서 여론이 갈렸지만, 정치권이 스타 특검의 수사를 폄훼하지는 못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