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외제차·가슴크기까지..소개팅 앱 이런 건 왜 묻죠?

2019. 11. 1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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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5명의 소개팅앱 도전기

“무제한 훈남훈녀 소개팅- 지금 다운로드 하세요”

지난 10월 광고를 보고 소개팅 앱(애플리케이션)에 가입한 국민일보 인턴 영철이(26·남). 매일 혼자 먹는 저녁이 지겨웠던 영철이는 앱에 가입만 하면 훈녀 소개팅을 할 수 있다는 말에 혹했다. 그래, 내게도 여친이 생길 때야.

그림 = 김희서

하지만 영철이의 사랑 찾기는 순탄치 않았다. 사진 3장을 바치고 들어가 본 소개팅 앱 ‘아만다(아무나 만나지 않는다)’. 셀카 잘 찍는 방법을 알려주는 강의까지 듣고 따라 해봤지만 결과는 외모 점수 2.7점. 가입 불가였다. 아만다에 가입하려면 사진을 제출한 뒤 외모점수를 평가받아야 했다. 커트라인은 5점 만점에 3점 이상. 영철이에게는 0.3점이 부족했다.

실망한 마음을 달래며 도전한 또 다른 소개팅 앱 ‘스카이피플’. 이번엔 학력이 문제였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믿었는데 스카이피플의 문턱(학력 기준)은 너무 높았다. 또 탈락. 마지막으로 시도한 ‘골드 스푼’ 앱에서는 외제차가 없어 포기해야 했다.

얼굴, 학력, 재력, 3종 패키지 미달이라니. 연이은 탈락으로 충격에 빠진 영철이는 깊은 고민에 휩싸였다. 앱 리뷰에는 성공 사례들이 넘쳐났다. 그렇다면 외모, 학벌, 재력을 다 갖춘 사람들이 세상에 그렇게나 많단 말인가. 영철이는 궁금했다. 소개팅 앱에 절망한 건 정녕 나 혼자인가.

국민일보 인턴들은 좌절한 영철이와 함께 소개팅 앱 사용자들의 솔직한 속내를 듣기 위해 취재에 나섰다.

얼평에서 탈락했다

소개팅 앱의 인기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국내 비게임 앱 중 매출 1위인 ‘카카오톡’을 제외하면 2위부터 5위까지 전부 ‘정오의 데이트’ ‘심쿵소개팅’ ‘아만다’ 등 데이트앱이 순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난 7일 구글플레이스토어에 접속해 보니 소개팅 앱 수만 250종이 넘었다.

이 중에서도 아만다는 100만명 이상이 다운로드 할 정도로 인기 있는 앱이다. 아만다의 가입 절차에서 가장 중요한 건 외모다. 개인 프로필에 최소 3장의 사진을 올려 5점 만점에서 3점 이상의 외모 점수를 받아야 앱을 이용할 수 있다. 평균 이상의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게 강점이 되기도 하지만 ‘외모지상주의의 끝판왕’이라는 수식어도 늘 따라다닌다.

인턴 영철이가 데이트앱 아만다에서 외모 불합격 통보를 받은 화면 캡처

최근 아만다에 가입한 대학생 박모(21·남)씨는 얼마 가지 않아 휴대전화에서 앱을 지웠다. 앱에서 새로운 인연을 맺을 수 있을 거란 기대와는 달리, 외모 평가에서 3점을 넘지 못해 가입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나도 남들처럼 새로운 인연을 만나 연애를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박씨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는 “새로운 사람과 대화를 해보기도 전에 자존감만 떨어졌다”며 “외모 점수가 미달이라니 내가 못나 보이는 듯싶었다. 마치 내 외모로 연애는 ‘꿈도 못 꾼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취업준비생 오모(25·여)씨 역시 아만다 가입이 쉽지 않았다. 오씨는 “대학도 한 번에 붙었는데 소개팅 앱 가입에서만 4수를 했다. 그랬는데도 떨어지더라. 진짜 짜증 났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인턴들도 직접 가입해봤다. 홍근이와 실이는 아만다에, 지은이와 설희는 각각 틴더와 스카이피플에 도전해봤다. 가까스로 얼평(얼굴평가)을 통과해 아만다에 들어가니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큼지막한 얼굴 사진들이었다. 짤막하게 성격과 관심사가 적혀있긴 했지만 사진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앱 화면의 대부분을 사진이 차지하기는 틴더와 스카이피플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생 고모(21·남)씨도 이런 지적에 공감했다. 그는 “일단 사진을 휙휙 넘기다가 맘에 드는 외모가 눈에 띄면 그제야 소개 글을 읽는다”며 “열심히 적어도 어차피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보지도 않는데 소개 글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가슴 크기는 왜 묻는 거지

소개팅 앱 실제 대화창 캡처

친구의 추천으로 소개팅 앱 ‘틴더’를 내려받은 김모(24·여)씨는 제일 처음 받은 메시지 내용에 당황했다. 상대방은 너무나 당당하게 “원나잇 파트너 구합니다. 질병은 없어요”라고 적었다.

틴더 역시 이용자의 사진·프로필을 보고 직접 호감을 표현할 수 있는 소개팅 앱이다. 다만 아만다에 비해 익명성이 더욱 잘 지켜지는 게 특징이다. 이름, 사진, 직업 등을 공개하지 않아도 가입이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자유로운 성적 표현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많다. FWB(파트너·Friends With Benefit )나 ONS(하룻밤 상대·One Night Stand) 등을 프로필에 기재한 뒤 적당한 파트너를 찾아 만남을 가지곤 한다.

김씨는 “가슴 크기를 묻거나 자신의 몸을 찍어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며 “오프라인에서는 분명 하지 못할 얘기를 너무 쉽게 한다. 사회가 개방적으로 변한 건지 온라인이어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고 불쾌함을 드러냈다.

틴더를 수년간 이용한 직장인 마모(30·남)씨는 “‘FWB, ONS 사절’이라고 써놔도 대화하다 보면 결국 성적인 대화로 이어지는 일이 진짜 많다. 건전한 만남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소개팅 앱이 불쾌한 성적 대화로 이어지는 배경에는 앱 구성 자체의 문제도 있는 듯했다. 일부 앱에서는 가입자가 성적 매력을 어필하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아만다의 경우 여성은 ‘마름’ ‘보통체형’ ‘약간 통통’ ‘글래머’ 중에서 체형을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또 다른 앱인 ‘스카이피플’ 역시 ‘보통(약간 볼륨 있는)’ ‘볼륨 있는’ ‘글래머한’ 등 성적 특징에 맞춰 체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놨다.

남성은 ‘마른’ ‘슬림 탄탄’ ‘보통체형’ ‘통통한’ ‘근육질’ ‘건장한’ 총 6가지 종류의 체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소고기 등급 표시같다면 과장일까. 어쨌든 기분 좋은 분류는 아니었다.

소개팅 앱 아만다 (왼쪽)와 스카이피플(오른쪽) 화면 캡처

20대 남성 커트라인 연봉 6000만원?

남성의 경우 외모뿐만 아니라 학벌이나 경제적 능력도 중요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스카이피플은 여성의 경우 가입 조건이 따로 명시돼 있지 않은 반면 남성에게는 까다로운 가입 조건을 요구했다. SKY 등 상위권 대학 출신이거나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여야 한다.

스카이피플 남성과 여성 가입기준. 해당 홈페이지 캡쳐

골드스푼의 가입조건은 취재한 소개팅 애플리케이션 중 가장 엄격했다. 가입을 위해선 외제차를 보유해야 하거나 의료인, 법조인, 5급 이상 공무원 등의 전문직에 종사해야 한다. 또 20대의 경우에는 연 소득이 6000만원 이상, 30대의 경우엔 7000만원 이상 수입을 증명할 수 있어야 가입이 가능하다.

소개팅 앱 '골드스푼' 가입기준. 어플 소개 화면 캡처

학력 기준 미달로 소개팅 앱에 가입하지 못한 대학생 이모(25·남)씨는 “학벌 때문에 앱 가입이 불가능한 것을 보며 우리 학교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그는 “공부 잘하고 학력 좋은 사람은 이런 (소개팅) 앱이 없어도 연애를 잘할 것”이라며 “사람 간에도 마치 등급이 나뉘어 있는 것 같아 억울한 기분”이라고 불만을 표했다.

소개팅 앱에서는 왜 모두를 ‘루저’로 만드는 이런 기분 나쁜 조건을 요구하는 걸까. 소개팅 앱 관계자들의 대답은 대동소이했다.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준이 설정된 건 앱 사용자들의 요구사항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얼굴과 몸매를 보는 남자들과 학력·재력을 따지는 여자들의 눈높이가 앱 설계에 반영됐다는 것이다. 니들이 원하니까 이렇게 만든거야, 요약하면 이런 얘기다.

스카이피플 최호승 대표는 “사용자들이 원하는 이성상이나 스펙, 가입 기준 등이 다르다 보니 현실적인 부분을 감안해 (가입 기준을) 선정했다”며 “(가입 기준에 있어서) 기존 사용자들의 의견이나 선호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골드스푼 관계자도 “2030 남녀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결혼적령기 여성은 남성의 경제력을 제1순위로 생각하고, 남성은 여성의 외모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며 “사용자들이 갖고 있는 생각의 차이점에 주목해 플랫폼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연애도 무한경쟁…모두가 루저가 되는 세상

소개팅 앱 가입에 연이어 실패한 영철이. 얼굴이 못나고 능력이 없으면 어플 가입도 못 하나. 자괴감이 들었다. 답답한 마음에 교수님을 찾아갔다.

영철이의 소개팅 앱 실패담을 들은 경희대 사회학과 김종영 교수님은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사랑의 상대가 양적으로 무한히 제공된다”며 “시장에서 상품을 고르듯이 상대방도 고를 수 있는 사랑의 시장이 확대되고, 한눈에 반하는 사랑이 아닌 상대방의 외모, 조건, 능력을 합리적으로 계산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영철이가 겪는 자괴감은 모든 앱 사용자가 경험할 수 있는 현상이라며 위로했다. 교수님은 “상대의 등급을 매기고 교환하는 과정에서 육체 자본(섹시함), 경제 자본(돈), 문화 자본(학벌)을 모두 소유한 남녀들이 승자가 되어 불평등이 나타날 수 있다”면서 “상대방을 일시적으로 소비하고 버리는 사랑의 자본주의화가 일어나면 깊은 관계를 맺기가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교수님 설명인즉 인터넷 세상을 사는 영철이의 경쟁자는 같은 동네 철수나 인턴 동료들만이 아니다. 영철이는 평생 한번도 마주칠 일 없는 갑부 아들과도, 라이벌이라고 여겨본 적 없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출신과도 소개팅 앱이라는 한 링 위에서 뛰어야 하는 신세다.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연애조차 글로벌 무한경쟁이 필수인 거다.

상담을 마치고 문밖으로 나온 영철이. 아, 이번 생은 망한 걸까. 높고 푸른 하늘에 더욱 마음이 서글퍼졌다. 귓가엔 노랫말이 맴돌았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 어느 누가 쉽다고 했나~”

김영철·이홍근·박실·소설희·김지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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