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오만에 대한 '4色 비판'

엄주엽 기자 2019. 11. 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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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없음의 과학 / 리처드 도킨스 등 4인 공저, 김명주 옮김 / 김영사

도킨스·데닛·해리스·히친스

‘新무신론’ 네 기수들의 대담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현상은

논리·이성으로 납득 가능해야

믿음 선호하는 종교는 위험해

“종교는 무지를 죄악으로 치부”

“영성과 신비를 위한 영역존재”

네 학자간 미묘한 차이 보여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가 책 서두의 해제에서 말하듯 “유신론의 도전에서 무신론을 지키려는 한 편의 ‘어벤져스’ 영화”와도 같은 책이다. 책은 ‘만들어진 신’의 리처드 도킨스, ‘주문을 깨다’의 대니얼 데닛, ‘종교의 종말’의 샘 해리스, ‘신은 위대하지 않다’와 ‘자비를 팔다’를 쓴 저널리스트로 지난 2011년 사망한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2007년 대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국내에서 대표작들이 거의 번역돼 나온 저자들이다.

이 책의 원제목은 ‘네 기사(The Four Horsemen)’이다. 신약성서 요한계시록에서 세상의 종말이 왔을 때 말을 타고 나타난다는 ‘네 기사’에 빗댄 말로, 신무신론(新無神論·the New Atheists)의 기수인 네 저자를 가리킨다. 신무신론은 2001년 이슬람 테러조직 알카에다가 자행한 것으로 알려진 9·11테러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 지식인들 중에 9·11 테러와 그에 대한 보복으로 이어진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근본주의 그리스도교와 중동의 근본주의 이슬람의 충돌이라는 우려들이 적지 않았다.

이러한 시기에 ‘종교의 종말’(2004), ‘만들어진 신’(2006), ‘주문을 깨다’(2007), ‘신은 위대하지 않다’(2007)가 잇따라 출간돼 신앙이라는 ‘금기’를 건드렸고 열띤 논쟁을 불렀다. ‘신무신론’과 ‘네 기사’는 모두 언론이 이들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책은 사전 계획이나 의제, 사회자도 없이 이루어진 네 기사들의 대담에다가 고인이 된 히친스를 제외한 3명이 에세이를 추가해 올해 뒤늦게 출간됐다. 이미 유튜브 등을 통해 이들의 대담이 알려졌으나 뒤늦게 책을 낸 이유도 있어 보인다. 무신론에 대한 철학·과학적 입장을 담은 저술들은 이들의 책 이외에도 적지 않다. 하지만 지구촌의 주요 분쟁지역뿐 아니라 근래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반하는 일부 종교의 행보, 믿음과 사실이 혼재해버린 가짜뉴스와 탈진실(post-truth)의 시대에 이들의 대담은 종교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영국의 배우이자 저술가인 스티븐 프라이는 책의 머리말에서 “(책을 읽다 보면) 이념이나 신념에 대한 대화는 모두 종교논쟁의 부분집합임을 깨닫게 된다”고 말하는데, 현재 지구적 현상들과 견주어 볼 수 있다. 신앙이나 믿음을 정치적 주장이나 이념으로 바꾸어도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예컨대 대담의 핵심 주제 중 하나는 ‘겸손과 오만의 관점에서 종교와 과학이 어떻게 다른가’라는 것이다. 겸손과 오만은 진실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에 속한다. 도킨스는 “과학자에게 무지란 긁어주기를 바라는 가려움증 같은 것”으로, “답을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며, 증거가 확실할 때 알려진 사실을 말하는 것”이 과학의 겸손이라고 말한다. 반면 종교에서 무지는 “뻔뻔하게 뭔가를 지어내어 없애버려야 할 것”이며 “한 의견에 대한 믿음에 오랜 전통이 있다는 것은 그 의견이 진리라는 증거로 간주된다”고 종교의 오만을 비판한다. 그는 “우주가 탄생한 것이 ‘정확히 기원전 4004년 10월 22일’이라고 주장한 17세기 대주교 제임스 어셔와 같이 신학자들은 마음대로 지어내고, 이슬람 신정국가에서 만들어진 율법들은 지금도 지키지 않으면 고문과 죽음의 처벌이 따른다고 위협한다”고 비판한다.

네 사람은 무신론자인 점에서 공통적이지만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자연과학자로 가장 전투적인 무신론자인 도킨스는 “교회가 텅 비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만, 역사적 이유로 “‘성경’을 모르고는 문학, 미술, 음악, 그 밖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성경에 대한 ‘무지’는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철학자인 데닛은 “인생이 황량하고 외로워질 사람들을 위해 구제하고 위로하는 데 있어서 종교의 역할”을 인정하지만, 종교의 비합리성과 믿음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신경과학자이자 철학자로 명상 등 신비주의에도 관심이 있는 해리스는 종교의 비과학적인 폐해를 막아야 하지만, “이 세상에는 영성과 신비를 위한 영역이 존재한다”고 본다. 그는 “내가 바라는 것은 다른 종류의 교회”라며 “허튼소리를 하지 않는다면, 심오한 뭔가를 추구하는 것이 쓸모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히친스는 논쟁 상대로서의 종교가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으며 이 대화가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란다.

네 명의 기사들이 주장하는 바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모든 현상은 무조건적인 믿음이 아니라, 인간의 논리와 이성으로 충분히 납득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네 명의 기사들은 “모든 종교가 똑같이 거짓이라는 주장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종교는 이성보다 믿음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거짓이고 적어도 잠재적으로는 똑같이 위험하다”고 말한다. 인구의 80% 가까이가 그리스도 교인으로 그리스도교 국가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 근본주의의 횡행은 전 세계의 안녕에 영향을 미친다. 그곳에서 무신론자라고 하는 건 ‘커밍아웃’에 가깝다. 이들 ‘어벤져스’들이 무신론자의 커밍아웃 운동을 강력히 펼치는 이유다. 208쪽, 1만48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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