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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 붕괴 30년...나는 이렇게 겪었다

1989년 11월10일 당시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시민들이 브란덴부르크문 앞의 베를린 장벽에 올라서 있다. AP연합뉴스

1989년 11월10일 당시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시민들이 브란덴부르크문 앞의 베를린 장벽에 올라서 있다. AP연합뉴스

30년 전인 19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됐다. 우연이 강하게 작용했다. 동독 공산당 정치국 대변인 귄터 샤보브스키는 당일 기자회견에서 동독 주민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여행 자유화 조치를 발표했다. 한 기자가 여행 자유화가 언제부터 시작되느냐고 물었고, 샤보브스키는 노트를 뒤적이더니 “지금부터”라고 답했다. 실제로는 그 다음날부터였고 자격 제한도 있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방송을 보고 흥분한 동독 시민들이 몰려나왔고 장벽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여러 인사들이 장벽 붕괴 30주년을 앞두고 그때의 감격을 되돌아봤다.

미국 NBC의 탐 브로코가 1989년 11월9일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베를린 장벽 붕괴 소식을 전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미국 NBC의 탐 브로코가 1989년 11월9일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베를린 장벽 붕괴 소식을 전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미국 NBC의 전설적 앵커 탐 브로코는 당시 현장에 있었다. 브로코는 지난 2일(현지시간) 독일 공영 ZDF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놀라서 옆에 있던 동료를 쳐다봤다”면서 “짜릿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5일 가디언 인터뷰에 따르면, 1961년 이후 28년간 베를린으로 반으로 갈라놓았던 장벽이 무너진 것은 이를 경험한 모든 이들에게 깊게 각인됐다.

다니엘 바렌보임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계의 거장 다니엘 바렌보임(76)은 당시 오페라 녹음을 위해 베를린에 머물고 있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11월12일 장벽 붕괴를 기념하는 특별 콘서트를 열기로 하고 바렌보임에게 지휘를 요청했다. 동독인들만을 대상으로 한 무료 콘서트였다. 바렌보임은 5일 가디언 인터뷰에서 “공연장에 도착했을 때 수천명이 줄 서 있었다. 관객들과 오케스트라가 뿜어내던 희열과 에너지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공연 후 무대 뒤에서 꽃을 들고 있던 한 60대 여성이 바렌보임에게 특별한 사연을 들려줬다. 장벽 붕괴 이틀 뒤인 11월11일 밤 30년 전 갓난아기일 때 서독으로 보냈던 아들이 찾아와 재회했다. 모자는 재회를 기념하기 위해 콘서트장을 찾은 것이다. 바렌보임은 “너무나 감동했다. 내가 베를린에서 지휘하는 콘서트에 언제라도 오라고 초청했다”고 말했다. 바렌보임은 오는 12일에는 장벽 붕괴 30주년 기념 콘서트를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지휘할 예정이다.

빔 벤더스

빔 벤더스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를 감독한 서독 출신 빔 벤더스(74세)는 호주의 사막에서 영화를 찍고 있었다. 벤더스는 발을 다쳐 들른 병원에서 의사가 건네준 팩스를 보고서야 독일에서 일어난 상황을 알았다. 그는 처음에는 ‘장벽이 무너졌다고? 소련 탱크가 침공했나?’라고 생각했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벤더스는 독일에 전화를 걸어 사실을 확인한 뒤 그날 밤 갖고 있던 술을 모두 마셔버렸다고 회고했다.

동독에서 태어난 영화 감독 크리스티안 슈보호우(41)는 당시 11살이었다. 그의 가족은 11월9일 아침에 당국으로부터 여행 허가를 받고 출발을 사흘 앞두고 있었다. 그날 밤 장벽이 붕괴했고, 다음날 아침 그는 부모와 함께 서독으로 건너갔다. 슈보호우는 “연극 <지하철 1호선>을 보러 갔는데 돈이 없었다”면서 “엄마가 뒷자리에 서서라도 보게 해달라고 했더니 극장 관계자가 우리에게 맨 앞줄을 내줬다”고 말했다.

동독 출신 음악가이자 시인인 볼프 비어만(83)은 5일 슈투트가르트차이퉁과 인터뷰에서 11월4일에 동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에서 열린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장벽을 넘으려다가 실패했다면서 “그때까지만 해도 장벽이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우테 렘퍼

우테 렘퍼

장벽은 무너졌지만 마음의 장벽은 남았다는 지적도 있다. 서독 출신 배우 우테 렘퍼(56)는 가디언에 “1988년 몇몇 동독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했을 때 곧 혁명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를 감지했다”면서 “장벽이 무너졌을 때 엄청난 기쁨과 안도를 느꼈다”고 밝혔다. 렘퍼는 그러나 “30년 동안 패인 상처는 깊었다”면서 “장벽 붕괴 후 오랜 기간 정체성 위기를 겪은 많은 동독인들이 극우 정치에 기울고 있다. 상처를 치유하는 데 한 세대 이상이 걸릴 것 같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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