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이 결핍된' 시대..슬픔을 말한다는 것은
테러블 / 이르사 데일리워드 /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1만3800원
그러나 전혀 다른 측면에서 슬픔을 공감받으려는 시도는 있다. 1989년생 이르사 데일리워드라는 이름의 '흑인 소녀'는 수년 전부터 인스타그램에 이미지 대신 텍스트(text)를 올리기 시작했다. 소비적 이미지와 전혀 달랐고, 심연의 상처를 고백하는 문장은 어느덧 시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인스타그램 문학'으로 추앙받은 데일리워드의 감각은 유럽 출판계를 뒤흔들었다.
영국 잉글랜드 북부 소도시 촐리 출생인 데일리워드의 이야기는 빠르게 퍼져 나갔다. 2014년 인스타그램에 발표한 시를 자비로 출판하자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2017년에는 유서 깊은 출판사 중 하나인 펭귄북스에서 정식으로 출간됐다. 한국에 번역 출간된 '뼈'가 그 시집이고 함께 출간된 '테러블'은 자서전이다. 흑인, 여성, 성소수자, 시인, 모델의 정체성은 큰 공감을 받았다.
홀로 양육비를 감당하는 싱글맘 밑에서 자란 데일리워드는 '흑인 여성은 헤프고 까졌다'는 편견에 몸을 맞추며 살았다. 술, 마약, 섹스는 일상이었다. 성폭력에 늘 노출돼 있었고 동생은 자살을 시도했으며 내면의 모든 걸 바쳤던 연인마저 그의 청혼을 거절했다. 호스피스에서 어머니가 사망하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떠난 데일리워드는 만취한 채 한 술집 문을 연다.
술에 취해 들어간 곳에선 기이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 글을 읽는 시낭독회였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저 삶을 이야기했을 뿐이었는데 기구하고 경악할 현대 흑인 여성의 생생한 삶의 모습에 사람들은 눈물의 박수를 쳤다. 시를 바라보며 쓰지 않고 삶을 쳐다보며 끄적였다. 세상은 그의 이야기에서 '세계의 민낯'을 발견해 버렸다.
상처의 내면을 들여다본 고백이 다수다. "시는 기억에 처박혀 살고, 기억은 뼈에 처박혀 산다." 자기 신체 부정은 심리를 응시하게 한다. "몸은 함정, 몸은 실재하지 않는 유령의 집으로 떠나는 함정문." 흑인 정체성을 고민하는 대목에선 귀기가 느껴진다. "어쩌면 어둠 속 검은 형상이 나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라거나 "그 전조들이 네게 경고했던, 크고 검은 이방인이 나다"라는 대목이 그렇다.
데일리워드 인스타그램(@yrsadaleyward) 폴로어는 현재 15만7000명이다. 모델이자 활동가로도 여러 페르소나를 가진 그의 이야기가 이미지와 텍스트로 가시화됐다. 직접 쓰거나 카드뉴스처럼 제작된 시를 읽다 보면 '다중(多重) 소수자'의 삶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소수자는 대상화됐다가 배제되지만 데일리워드는 결핍을 고백하면서 성원권을 획득했다.
데일리워드의 시집과 자서전을 두고 주요 매체에서 찬사가 빗발쳤다. 뉴요커는 "긴장감 있으면서도 대단한 슬픔을 유발한다. 데일리워드는 '테러블'로 인스타그램 문학을 넘어섰다"고, 파리 리뷰는 "순식간에 빠져들게 만드는 시적 자서전"이라고, 보그는 "깊이 배고 들어오는 강렬한 스타카토를 통해 우울, 사랑에 빠지고 헤어 나오는 경험, 섹슈얼리티를 모두 다룬다"고 평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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