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민의 B:TV] 악플의 덫, 신음하는 연예계 ①

홍혜민 입력 2019. 11. 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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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가 지속적인 악플 문화에 신음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2000년 초 국내 주요 포털 사이트에 도입된 이후 네티즌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데 날개를 달아 줬던 인터넷 ‘댓글’ 제도.

댓글이 우리의 인터넷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화로 자리 잡은 지도 어느덧 1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 네티즌들에게 소통의 ‘날개’를 달아줬던 댓글 문화는 이제 누군가를 향한 ‘칼날’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지난 14일 고 설리의 비보가 전해진 이후 네티즌 사이에서는 악플에 대한 자성의 물결이 일었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난 14일, 고(故) 설리의 비보가 전해졌을 당시 상당수의 대중은 그의 극단적인 선택에 대한 이유로 ‘악플’을 꼽았다. 그간 다소 파격적인 행보를 걸어왔던 만큼, 이를 향한 원색적인 악플이 생전 설리가 앓고 있던 우울증을 깊어지게 만든 원인이었을 것이며 결국 안타까운 선택까지 이어지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여기에 유아인, 하연수, 탑 등 동료 연예인들이 SNS를 통해 설리에 대한 애도를 표함과 동시에 악플러들에 대한 일침을 가하며 악플을 향한 대중의 반감은 가열됐다.

이는 곧 네티즌들의 자성의 물결로 이어졌다. 실제로 설리의 사망 이후 그녀의 기사에서 악플을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기사에 악플이 달리기라도 하면 곧바로 이를 질타하는 수많은 댓글들이 줄을 이었다. 그녀의 사망 직전까지 악플이 끊이지 않았던 것과는 너무나도 상반된 모습에 마음 한 켠의 씁쓸함을 지울 순 없었지만, 이는 분명 긍정적인 변화였다.

하지만 설리가 악플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대중의 추측은 긍정적 자성에서 끝나지 않았다. 비보에 대한 안타까움이 예상치 못한 분노로 번지며 또 다른 악플을 양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네티즌들은 ‘악플’이 설리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고 지적하면서도 또 다시 악플러의 가면을 쓰길 자처했다. 설리의 전 남자친구인 최자부터 장례 기간 동안 SNS 게시물 업데이트 등을 일체 하지 않은 채 근황을 드러내지 않았던 에프엑스 멤버 크리스탈, 비보에 힘든 심경을 드러냈던 구하라, 안재현 등 악플의 대상 역시 다양했다. 또한 악플을 달게 된 이유가 오롯이 언론의 자극적인 기사 때문이었다는 ‘책임 회피론’을 펼치며 각종 기사에 악플을 남기는 악플러들도 종종 찾아볼 수 있었다.

과연 이들이 설리의 비보 직후 “악플 탓이었다”며 자성을 요구하던 이들이 맞는지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대상만 옮겨갔을 뿐 이들에게선 일말의 반성도, 변화도 찾아볼 수 없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박대출 의원은 '인터넷 준실명제'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했다. 연합뉴스 제공

이러한 상황 속 국회는 법안을 통한 악플러 규제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지난 2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박대출 자유한국당 의원은 포털에 댓글을 달 때 전체 아이디와 IP(인터넷주소)를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의 ‘인터넷 준실명제’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했다고 밝혔다.

해당 개정안 발의와 관련해 박 의원은 “준실명제 도입으로 자신의 댓글에 부여되는 책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익명에 숨은 폭력이자 간접살인이 벌어지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넘어 언어폭력의 자유, 간접살인의 행위는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털 사이트 다음은 이달 안에 뉴스서비스 연예 섹션에서 댓글창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다음 제공

포털 사이트 다음 역시 지난 10월 부로 뉴스서비스 연예 섹션에서 댓글창을 폐지하며 악플 근절 방안 대책 마련에 동참했다. 이와 더불어 인물 키워드 연관 검색어 서비스 역시 중단된다.

지난 25일 경기도 성남 카카오 판교오피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카카오 조수용 공동대표는 댓글 서비스 폐지 결정 이유에 대해 “선제적 사회적 책임을 다 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여민수 공동대표 역시 “댓글은 누구나 볼 수 있는 사회적 광장인데 연예 섹션은 개인 자체를 조명하는 게 많고,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많다”며 “개인에 대한 악플 때문에 잠정 폐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법적 제재, 포털 사이트의 서비스 폐지 등이 실질적인 악플 근절을 향한 해답을 마련할 수 있을 지는 아직까지 미지수다. 앞서 지난 2007년 한 차례 인터넷 실명제가 도입됐지만 2012년 헌재의 위헌 판결로 인해 해당 제도가 폐지되기 전까지의 기간 동안 실질적인 악플이나 사이버 모욕의 절감 효과는 미비했기 때문이다. 현재 많은 전문가들이 인터넷 실명제 재도입을 두고 “과거 실패했던 제도”라는 반응과 함께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 연예계 관계자 역시 “현재 많은 아티스트들이 악플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과연 단순한 ‘실명 공개’나 ‘댓글창 폐지’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지금도 당당하게 실명을 공개하며 도를 넘는 악플을 다는 경우가 줄을 잇고 있으며, 대형 포털 사이트 한 두 곳이 댓글창을 폐지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다양한 루트로 악플은 양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악플러들에 대한 소속사의 법적 대응 시 양형기준을 강화하는 등의 대안을 마련해 주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욱 도움 되는 방안이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끊임없이 연예계를 좀먹고 있는 악플과 지금도 키보드 뒤에 숨어 이를 양산하고 있는 악플러들. 과연 이 같은 굴레를 만들어낸 악플러들의 심리는 무엇이며, 이 ‘덫’을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 [홍혜민의 B:TV] 악플의 굴레, 끊어낼 방법은 없나 ② (http://www.hankookilbo.com/v/86aa31e9b6e44dc9a20cb1c8efa933f9) 에서 계속..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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