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오키나와 슈리성
[경향신문] “정전은 그야말로 바다의 왕국답게 용궁처럼 보였다. 일층은 정면 좌우로 길게 벌린 것 같았는데 정중앙에 두 겹의 지붕이 높직하게 올려다보였다. 맨 꼭대기의 용마루에는 황금의 용 머리가 푸른색 뿔을 세우고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붉은 기와를 얹은 지붕에는 흰 회칠과 붉은 전돌로 나무 잎사귀를 새겨넣었고, 이층 지붕의 활처럼 둥그런 가리개에는 황금색과 푸른 비늘에 뿔을 쳐들고 이빨을 드러낸 용두가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황석영 <심청> 중 슈리성에 대한 묘사)
일본 오키나와현 나하에 있는 슈리성(首里城)은 중국과 일본의 건축양식이 어우러진 독특한 건축물이다. 옛 류큐(琉球)왕국의 정치·군사·문화의 중심지로 14세기 축성됐다. 왕의 거처인 정전(正殿)은 옻나무로 붉은 칠이 돼 있고, 기와 형태에도 중국의 영향이 배어난다. 용의 장식이 많이 쓰인 것도 일본 건축물과 다른 점이다. 반면 일본에서 온 사절의 접대를 위해 지은 남전(南殿)에는 일본풍의 장식이 도입됐다. 1492년 건국 이래 중국,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꾀해야 했던 류큐왕국의 처지를 엿볼 수 있다.
류큐왕국은 1879년 일본에 병합돼 오키나와현으로 바뀌면서 근·현대사의 격랑에 본격적으로 휩쓸렸다. 그 상흔이 지금도 슈리성터에 남아 있다. 태평양전쟁 막바지 일본군은 슈리성 지하에 깊이 30m의 참호를 파고 미군과의 결전에 대비했다. 가지 모양으로 뻗어나간 전체 갱도의 길이는 1㎞를 넘는다. ‘슈레이문’을 지나 ‘소노향우타키석문’ 옆 계단을 내려가면 참호 출입구가 보인다. 1945년 3월 말부터 3개월간 오키나와 전투에서 10만명이 넘는 오키나와 주민들이 희생됐다. ‘철의 폭풍’으로 불리는 공중폭격, 함포사격, 지상전투의 총·포탄에 수많은 주민들이 스러져갔고, 슈리성도 파괴됐다. 전후 성터는 류큐대학 캠퍼스로 사용되다가 1992년 오키나와의 일본 복귀 20주년을 기념해 국영공원으로 복원됐다.
31일 새벽 슈리성에 불이나 정전을 포함한 주요 건물 7채가 전소됐다. 현지 주민들은 “신과 같은 존재가 타버렸다”고 탄식했다. 슈리성은 아픈 역사를 겪어온 오키나와인들의 혼이 깃든 영지(靈地)였던 것이다.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깊은 마음의 위로를 전한다.
서의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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