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잊혀진 계절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10월의 마지막 날이면 생각나는 노래다. 1980년대 이용이 불러 인기를 얻었던 ‘잊혀진 계절’이다. ‘10월의 마지막 밤’에 애절한 의미를 부여하며 가슴속에 남아 잔잔히 흐르는 노래다. 오늘이 바로 그 10월의 마지막 날로 다시 이 노래가 생각난다.
만약 이 노래의 제목을 ‘잊힌 계절’로 바꾸어 부르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많은 사람이 맛이 나지 않는다고 할지 모른다. ‘잊혀진’이란 단어에 익숙해져 있어 ‘잊힌’이라고 하면 무언가 어색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잊힌’이 바른 표현이다.
‘잊다’는 단어의 피동형은 ‘잊히다’이다. 따라서 ‘잊힌’이 돼야 마땅하다. ‘잊혀진’은 이미 피동이 된 ‘잊히다’에 ‘지다’가 덧붙여진 이중피동(잊혀지다)이 활용된 형태다. 이중피동은 무의미하게 피동을 겹쳐 쓰는 것으로 바른말이 아니다.
하지만 ‘잊혀진 계절’이라는 노래가 많은 사람의 뇌리에 박히면서 ‘잊힌’을 밀어내고 ‘잊혀진’이 자연스럽게 쓰이게 됐다. 글을 쓰면서 ‘잊힌’이라고 제대로 적는 사람이 드물 정도다.
‘잊혀지다’ 형태는 바른말이 아니므로 “오래전에 잊혀진 일이다”는 “오래전에 잊힌 일이다”, “첫사랑의 상처도 이젠 잊혀졌다”는 “첫사랑의 상처도 이젠 잊혔다”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보여지다(←보이다)’ ‘쓰여지다(←쓰이다)’ ‘짜여지다(←짜이다)’ 등도 무의미하게 피동을 겹쳐 쓴 것이다.
배상복 기자 sb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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