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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개도국 지위 사실상 포기 농업계 타격 우려.. "새 협상까지 특혜 유지"

김서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0.25 09:54

수정 2019.10.25 09:55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 결과 관련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 결과 관련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파이낸셜뉴스]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특혜 지위를 주장하기 않기로 했다. 사실상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 셈이다. 차기 WTO 협상까지는 현재 특혜를 누릴 수 있지만 농업계는 피해를 우려하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농업분야 대책으로 내년 농업 예산을 최근 10년내 가장 높은 증가율 수준(4.4%)인 15조3000억원을 편성하고, 공익형 직불제의 조속한 도입을 추진키로 했다.


정부는 25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을 포함한'WTO 개도국 특혜 관련 안건'을 논의했다.

홍 부총리는 회의 직후 가진 브리핑에서 "미래에 WTO 협상이 전개될 경우 우리 농업의 민감 분야는 최대한 보호될 수 있도록 유연성을 협상할 권리를 보유·행사한다는 전제하에서 WTO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만, 쌀 등 민감 품목에 대한 별도의 협상 권한은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홍 부총리는 개도국 특혜 관련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대외적 위상, 개도국 특혜 관련 대외 동향,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및 대응 여력 등 3가지 요인을 꼽았다.

홍 부총리는 "1995년 WTO 가입 이후 약 25년이 지난 지금 우리 경제는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12위, 수출 세계 6위, 국민소득 3만 불 등 이미 선진국 반영에 올랐다"며 "이들 3개 이상을 모두 충족하는 국가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세계 9개국에 불과해 우리의 대외적 위상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홍 부총리는 "이런 경제적 위상 감안시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개도국으로 더이상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부연했다.

홍 부총리는 또 "우리나라의 경제규모, 위상과 비슷하거나 낮은 싱가포르, 브라질, 대만 등 다수 국가들이 향후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라며 "현 시점에서 개도국 특혜에 관한 결정을 미룬다 하더라도 향후 WTO 협상에서 우리에게 개도국 혜택을 인정해줄 가능성은 거의 없고, 결정이 늦어질 수록 대외적 명분과 협상력 모두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홍 부총리는 이어 "우리가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더라도 이는 미래의 WTO 협상부터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협상이 시작되어 타결되기 전까지는 기존 협상을 통해 이미 확보한 특혜는 변동없이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며 "현재 WTO 도하개발어젠다(DDA) 농업 협상이 장기간 중단돼 사실상 폐기된 상태로 향후 협상이 재개돼 타결되려면 상당히 장기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 향후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더라도 당장 농업분야에 미치는 영향은 없고, 미래 협상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대비할 시간과 여력이 충분하는 것이다.

다만, 정부는 농업 분야에 대한 대책도 적극 추진키로 했다.

우선 농업인 소득안정과 경영 안정을 위해 공익형 직불제의 조속한 도입을 위한 농업소득보전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공익형 직불제는 WTO에서 규제하는 보조금에 해당되지 않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 공익형 직불제로의 전환을 전제로 직불금 예산안을 올해 1조4000억원에서 내년에는 2조2000억원으로 증액해 국회에 제출했다.

재해를 입은 농업인의 경영안정을 위해 농업재해보험의 품목을 확대하는 등 재해보험 제도도 개선할 계획이다. 국내 농산물의 수요기반을 넓히고 수급조절기능도 강화해나갈 방침이다.

농업의 지속 가능성과 경쟁력에 필수인 청년·후계농 육성을 위해 청년영농정착지원금 제도(최대 3년간 월 80~100만원), 농지은행 등 청년농에 대한 농지·자금 지원에 대한 확대 방안도 검토키로 했다.

정부는 이미 내년 농업 예산을 최근 10년내 가장 높은 증가율 수준(4.4%)으로 확대한 15조3000억원으로 편성한 바 있다.

홍 부총리는 "앞으로 농업계, 전문가 등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농업 경쟁력 대책을 지속적으로 추가·보완해 나갈 것"이라며 "우리 농업의 미래를 위한 투자 차원에서 보다 선제적이고 적극적으로 농업정책을 추진해 나가는 출발점으로 삼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월 26일 경제적 발전도가 높은 국가가 WTO내 개도국 지위를 이 용해 특혜를 누리고 있다며 WTO가 이 문제를 손봐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WTO가 90일 내 실질적 진전을 이뤄내지 못하면 미국 차원에서 이들 국가에 대한 개도국 대우를 일방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WTO에서 개도국 여부는 회원국이 스스로 판단해 밝히는 '자기 선언' 방식을 따른다. 한국은 자기 선언을 통해 개도국 지위를 계속 유지해왔다.
다만 농업 부문을 제외하고는 개도국으로서의 혜택을 받고 있지 않다.

ssuccu@fnnews.com 김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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