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스럽다" vs "즐기면 그뿐".. 한국인에게 핼러윈이란

문수정 기자 2019. 10. 2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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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식품·호텔업계, 10월 내내 '핼러윈 시즌'
롯데월드 어드벤처에서 핼러윈 분장을 하는 모습. 롯데월드 어드벤처 제공

대형 쇼핑몰이나 마트, 커피전문점이나 빵집, 인테리어 소품을 파는 매장 등에 가면 핼러윈 데이(10월 31일)를 기념하는 제품이나 소품들이 즐비하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크리스마스 기분이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는데, 10월엔 핼러윈 데이 분위기가 곳곳에 흐른다. 핼러윈을 즐기는 문화가 확산되는 현상에 대해 “남의 나라 명절에 유난스럽다”는 의견과 “즐겁게 즐기면 그 뿐”이라는 의견이 갈린다.

10월은 한 달 내내 ‘핼러윈 시즌’

24일 유통·식품·호텔업계에 따르면 최근 3~4년 동안 핼러윈 데이를 즐기는 분위기가 커지면서 관련 업계도 이벤트와 프로모션을 늘리고 제품 구성도 다양화하고 있다. 스타필드, 롯데몰, 홈플러스 등 유통업계에서는 곳곳에 핼러윈 장식품들을 꾸며놓고 소소한 이벤트를 제공하며 소비자들을 모으고 있다.

식품업계에서는 관련 상품 출시가 급증하고 판매 시기도 늘었다. 파리바게뜨만 해도 2010년 핼러윈 관련 제품이 3종 정도에 불과했는데 2017년 14종으로 늘었고, 올해는 30종으로 9년 만에 10배 증가했다. 관련 상품 판매 기간도 2010년엔 핼러윈 데이를 앞두고 6일 정도만 짧게 진행했는데 2017년엔 9일, 올해는 28일로 늘었다. 사실상 10월 내내 핼러윈 관련 제품을 판매하는 셈이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3~4년 소비자 수요가 증가하면서 업계에서도 관련 제품이나 행사를 점차 늘려가고 있다”며 “올해는 10월 내내 관련 행사가 계속될 정도로 핼러윈이 일종의 소비 진작 효과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파리바게뜨 핼러윈 데이 시즌 한정 제품들. SPC그룹 제공

뚜레쥬르나 스타벅스 등 식음료 업계의 다른 대표 브랜드들도 비슷하게 핼러윈 관련 상품들을 일찌감치 출시해 인기를 끌고 있다. 스타벅스가 내놓은 핼러윈 이벤트 음료들은 매장마다 금세 품절되곤 한다. 뚜레쥬르를 운영하는 CJ푸드빌 관계자는 “핼러윈 데이를 적극적으로 즐기지 않는 분들도 디저트나 베이커리류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용하는 것 같다”며 “소비자 뿐 아니라 매장의 점주들에게도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10~20대는 주로 놀이공원이나 카페, 호텔 등에서 적극적으로 핼러윈을 즐긴다. 특히 롯데월드 어드벤처, 에버랜드 등 대표적인 놀이공원에서 진행하는 핼러윈 행사들은 10~20대들이 주 소비층이다.

롯데월드 어드벤처에 따르면 최근 3~4년 동안 매년 10월 방문객 수는 전월 대비 8% 안팎 증가한다. 롯데월드 관계자는 “입장객 수를 연령대별로 분류하지 않아 정확한 통계를 내기는 어렵지만 현장 분위기를 보면 핼러윈 축제를 즐기는 연령대는 초등학생부터 20대 초반이 가장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호텔업계도 20~30대 젊은층을 공략하는 핼러윈 프로모션을 다양하게 내놨다. 밀레니엄 힐튼 서울에서는 19일부터 이달 말까지 핼러윈을 주제로 꾸민 레스토랑 ‘카페 395’에서 ‘스푸키 할로윈 디저트 뷔페’를 진행한다. 워커힐 호텔앤리조트는 26일 핼러윈 파티를 열고, 신라스테이는 ‘핼러윈 나이트 패키지’를 출시했다.

“남의 나라 행사에 유난” vs. “부담 없이 즐기는 축제”

핼러윈 데이는 영국에서 죽은 자들의 영혼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귀신 분장을 하고 하루를 보낸 것에서 기원했다고 알려졌다. 이후 종교적인 의미가 더해지고 유럽과 미국 등에서 축제처럼 즐기게 된 게 우리나라에까지 전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종교적 색채는 사실상 없고 독특한 분장이나 의상, 각종 소품이나 관련 먹거리로 분위기를 내는 게 일반적이다.

올해는 특히 10월에 곳곳에서 관련 행사가 펼쳐질 만큼 핼러윈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분위기다. 그럼에도 탐탁찮다는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적잖다. 특히 핼러윈 데이를 경험하지 못한 기성세대들은 젊은 세대의 기괴한 분장이나 눈에 띄는 핼러윈 의상이 낯설고 때로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직장인 최모(50)씨는 “세상이 많이 변했다지만 남의 나라 축제에 열광하는 게 자연스럽게 보이진 않는다”며 “우리 고유의 명절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은 사라지고 서양 풍습을 좇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유치원생 아이를 둔 김모(36)씨는 “유치원에서 핼러윈 파티를 한다고 해서 너무 당황스러웠다”며 “핼러윈 파티 하루 입힐 옷을 새로 장만하자니 아깝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영어 사교육이 늘면서 영어학원을 중심으로 핼러윈을 본격적으로 즐기는 분위기도 많아졌다. 핼러윈을 전혀 경험하지 못 하고 유아 시절을 보내도 영어학원을 다니면서 이 문화를 접하게 된다는 것이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최윤영(42)씨는 “굳이 알려주고 싶지 않았는데 영어학원에서 알아서 오더라”며 “부모가 어떻게 핼러윈에 대해서 알려주고 지도해줘야 할지 고민스럽다”고 했다.

롯데월드 어드벤처에서 이달에 진행 중인 '호러 할로윈' 축제에서 방문객들이 공연을 보며 즐기고 있다. 롯데월드 어드벤처 제공

일부 기성세대에겐 어딘지 거북한 ‘남의 나라 명절’이지만 젊은층 사이에서는 이날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인기다.

서울 송파구의 한 중학교에 재학 중인 이모(14)양은 “중간고사 끝나고 친구들과 핼러윈 복장을 하고 롯데월드에 다녀왔다”며 “시험기간 동안 받은 스트레스도 풀고 너무 재밌었다. 다들 진짜 이날만을 기다렸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집에서 소소한 파티를 하기로 한 김정은(29)씨는 “남의 나라 명절까지 챙겨야 하느냐는 비판을 들으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나라 명절만 챙겨야 한다는 건지 고루하고 답답하다”며 “재밌어서 즐기는 건데 사대주의라던지 마냥 한심하게만 보는 시선이 오히려 불편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핼러윈에 대한 편견이 없어졌다는 경우도 있다. 즐길거리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핼러윈이 일상의 특별함을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의견도 적잖다.

중학생 자녀를 둔 이민아(44)씨는 “스트레스 많은 10대들이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 고깝게만 보는 이들도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오히려 아이들이 건전하게 즐기는 모습을 보니 핼러윈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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