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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설리 발인에 부쳐...`고블린` 아름다운 그대에게 [MK스타]

박세연 기자
입력 : 
2019-10-17 09:54:55
수정 : 
2019-10-17 10:4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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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설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요?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뒤늦은 얘기지만, 고(故) 설리(본명 최진리, 25)가 SNS 관련 이슈로 악플러의 공격을 받을 때마다 소속사 관계자가 오프더레코드로 전했던 하소연이다. 사실 그랬다. 설리가 범법행위로 물의를 빚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카메라 밖 '자연인 최진리'로서의 자유분방했던 삶이, 그리고 온전히 자기만의 공간인 SNS에서 보여준 독특한 모습이 카메라 앞 '연예인 설리'에게 요구됐던 바와 조금 달랐을 뿐이다.

그 '다름'이 결코 잘못은 아닌데, 남들과 비슷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쩜 그리도 매도됐을까.

'기계적 중립'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온라인상 들끓는 여론을 그대로 가져다 전하며 은근히 설리의 행보를 기행으로 치부했던 기자 역시 머쓱함 한편 미안함이 컸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후부턴 알량한 펜대로 설리를 난타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또 대놓고 그의 행보를 지지하거나 응원하지도 않았다. 그저 때로는 그의 과감성에 혀를 내둘렀고, 때로는 알 수 없는 그의 내면을 안쓰럽게 여겼을 뿐.

지난 4~5년간 가요 취재기자로서 설리를 만날 수 있는 자리는 그리 많지 않았다. f(x) 탈퇴 후 배우로 전향하면서부터는 설리의 주 활동 무대는 영화로 옮겨졌고, 영화 제작보고회나 시사회가 아닌 한 그를 만날 수 있는 공식적인 자리는 포토콜 등 패션 행사가 대부분이었기 때문. 지난 6월 설리 솔로 앨범 '고블린'이 공개됐을 때도 아쉽게도 인터뷰나 음감회 등 공식행사는 없었다. 그래서 비교적 먼 발치서 그의 필모그래피를 지켜봐왔다.

최근까지 MC로서 활약했던 JTBC2 '악플의 밤'을 통해 간간이 설리의 발언과 안색을 접하긴 했지만 이렇다 할 특이점 없던 하루하루 속, 뜻밖의 부음이 들려온 건 지난 14일 오후였다.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충격적이고 믿기지 않는 소식. 측근에 따르면 최근 1~2개월 사이 개인적인 일로 불안장애가 심해지는 등 정신건강이 좋지 않아 프로그램을 하차하려 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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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실시한 부검에서도 타살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으면서 설리는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생을 마감한 것으로 '사건 종결'됐다. 아역으로 연예계에 첫 발을 내디딘 뒤 걸그룹 f(x)로 데뷔, 이후 솔로 가수이자 배우로 활동했던 설리. 스물 다섯 살을 끝으로 멈춰버린 그의 시간을, 많은 이들이 슬퍼하고 안타까워했다. 각자 추구하는 가치나 시선에 따라 고인을 기억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혹자는 설리가 여성 연예인을 바라보는 보수적 시선에 당당하게 맞선 점을 높이 사며 "여성 혐오에 온몸으로 맞선 여성 인권운동가였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생전 설리가 지독한 악플에 시달렸던 만큼, 악플에 의한 '사회적 타살'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일각에선 악플방지법 일명 '최진리법'을 도입하자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가 절대적으로 악플에 스러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고인이 떠난 뒤에도 인터넷을 뒤덮고 있는, 다수 공인을 향한 악플을 단절하는 일은 남겨진 이들의 숙제다.

'가수' 설리의 유작이 된 '고블린'을 뒤늦게 꺼내 본다. (참고로 '고블린'은 판타지 속 주인공 중 하나로 사전적 의미는 '장난만 치는 작은 귀(鬼)'다.) 설리가 직접 썼다는 가사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머릿속 큐브 조각들을 늘어놔/현실 속 늪을 찾아갈 시간이야/나쁜 날은 아니야 그냥 괜찮아/꽤나 지긋지긋한 건 사실이야 (중략) 널 가득 안고 싶은 건/너의 맘의 하얀 안개/까맣게 물들일게/내 방 숨 쉬는 모든 것/뭔가 잘못됐다고 느끼니?/나는 여기 있는데'

뮤직비디오는 해리성 자아를 가졌던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다. 픽션이겠지만 설리는 이 작품을 통해 상당히 복합적인 내면을 표현했다. 꾸러기 같은 고블린을 연기한 설리는 마지막 내레이션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녀는 그냥 인사만 하고 싶던 것일 뿐 일 거에요. 모두 다 사라진 것 같아요. 모두가 사라지는게 좋지 않을까요?'

어쩌면 악플보다 더 힘겨웠을, 자기 자신과의 긴 싸움에 마침표를 찍은 설리. 강한 듯 여렸고, 여린 듯 강했던 설리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웃음도 장난기도 많았지만, 그 속에서도 꽤 깊었던 슬픔이 엿보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간 참 고생했다고, 당신은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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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o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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