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펼친 책처럼 비밀이 없는 그 사람

임희윤 기자 2019. 10. 1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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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15일 화요일 흐림.

타히티 80의 보컬 그자비에 부아예는 여섯 살 때 아버지가 타히티에 다녀온 지인에게 선물 받은 티셔츠에 쓰인 'TAHITI'라는 이국적인 이미지에 매혹됐다.

그때가 1980년이었다.

감자칩처럼 사각대는 드럼 하이햇 박자에 맞춰 분주히 음계를 오가는 전기기타의 영롱한 소리. 그들의 2002년 앨범 'Wallpaper for the Soul'에 담긴 발라드 'Open Book'이 시작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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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앨범 ‘Wallpaper for the Soul’의 표지.
2019년 10월 15일 화요일 흐림. 펴놓은 책. #325 Tahiti 80 ‘Open Book’(2013년)

U2, 더 1975, M83, UB40, B612, 1415, 49 몰핀즈, 36 크레이지피스츠….

고유명사에 숫자가 들어가면 일이 커진다. 언어권을 막론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음악 그룹 이름들. 우주 공간의 숱한 소행성들처럼 숫자들엔 하나같이 사연이 있다.

타히티 80는 프랑스 루앙 출신 밴드다. 타히티는 남태평양에 있는 섬. 화가 폴 고갱에게 새로운 예술세계를 열어준 곳. 타히티 80의 보컬 그자비에 부아예는 여섯 살 때 아버지가 타히티에 다녀온 지인에게 선물 받은 티셔츠에 쓰인 ‘TAHITI’라는 이국적인 이미지에 매혹됐다. 그때가 1980년이었다.

타히티 80는 한마디로 메이저세븐의 그룹이다. 기타로 C 코드를 쳐야 할 때 이들은 보통 ‘도미솔’에다 ‘시’를 하나 더 얹어 Cmaj7 코드로 치는 편이다.

이런 아련한 화성의 연쇄 위를 걷는 부아예의 보컬은 해변의 조약돌 같다. 솜사탕처럼 몽글몽글하면서도 어딘가 시원한 그 목소리. 예쁜 멜로디의 계단을 밟고 이국의 바다 위 구름을 떠돈다.

‘아무것도 숨길 게 없는 것 같겠지/별처럼 눈부시다고 하지만, 뭔가가 안에 있지/아름답고 위험해, 장미처럼…’

감자칩처럼 사각대는 드럼 하이햇 박자에 맞춰 분주히 음계를 오가는 전기기타의 영롱한 소리…. 그들의 2002년 앨범 ‘Wallpaper for the Soul’에 담긴 발라드 ‘Open Book’이 시작하는 방식이다.

‘날개가 불타 땅으로 추락할지 모르지만/실종돼 영영 발견되지 않아 버리기를 바라기도 하지’

‘Open Book’은 펴놓은 책만 뜻하지 않는다. 비밀이 없는 사람, 뭔가 숨기면 기어코 얼굴에 티가 나는 이를 의미한다.

13일 내한공연에서 타히티 80는 1부 마지막 곡으로 이것을 연주했다. 최근 어쿠스틱 앨범 ‘Fear of an Acoustic Planet’에 담은 버전으로. 전기기타 대신 청초한 글로켄슈필 소리가 노래를 열었다.

가끔 몰래 겨울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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