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48% '경고 신호' 보냈는데.. 위험 징후 알아채지 못했다

이동수 2019. 10. 1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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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학생들의 '극단적 선택' / 교육부 '사후 심리부검' 보고서 / 2018년 자살 144명 중 97명 주변 문제 / 겉보기 멀쩡해도 내적 갈등 시달려 / 가족문제 75건 최다.. 절반 '가정폭력' / 학업·개인사·중독문제도 배경 지목 / 카톡 등 SNS서 친구 비방 영향 증가 / 56명 여러 형태 '자살 암시 기록' 남겨 / 언어·행동·정서 등 신호 보낸 사례 67건 / 학교, 위험 인지해 기관연계 조처 34% / 전문가 아닌 담임교사 징후 파악 애로

출석 양호(69.3%), 교우관계 원만(88.1%), 높은 학교 소속감(4점 만점에 3점대) 등.

지난해 우리 곁을 떠나간 초·중·고 학생 자살자 144명을 통계상 분류한 내용이다. 이렇다 할 특징이 없어 겉보기에는 사전에 위험을 알아채기 힘든 ‘평범한 학생’으로 보인다.
교육 당국이 이들을 대상으로 사후 심층연구를 진행한 결과, 학생 자살자들은 사망 전 직간접적인 징후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 자살자 10명 중 7명가량(67.4%, 이하 미응답 제외 비율)은 평소 학업·가족·개인 문제 등을 겪었다. 절반 가까이는 자살 직전 가족·친구와의 갈등(46.8%)이 있었고, 자살을 암시하는 기록물(47.5%)을 남겼다. 그러나 일선 학교에서는 전문성 부족으로 학생들이 보내는 ‘경고신호’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어 교육 당국의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2018 학교보고기반 심리부검’ 보고서에는 이 같은 내용이 담겼다. 학생 자살자 발생 이후 담당 교사들이 관련 배경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학생 자살자 144명 중 97명은 주변 문제로 내적 갈등을 겪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가족문제(75건, 이하 복수응답), 학업문제(67건), 개인문제(55건), 중독문제(26건), 친구문제(22건) 등이 극단적 선택을 내리게 된 배경으로 지목됐다.

가족문제가 있었던 학생 자살자 절반(48%)은 가정폭력 등 부모·자녀 사이 갈등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 간 갈등(17.3%)이나 경제적 어려움(16%)에 시달린 학생도 눈에 띄었다. 학업문제로는 전공·진로 부담(28.4%), 성적부진·하락·경쟁과열(20.9%) 등이 주요 요인으로 지목됐다. 부모의 성적 압박(16.4%), 학업 실패에 대한 두려움(13.4%), 학습량 과다(7.5%) 등의 사례도 보고됐다.

개인문제로는 학생 자살자가 정신건강(36.4%), 신체건강(20%)에 문제가 있었다는 응답이 많았다. 우울증, 공황장애,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 구체적인 정신질환이 보고된 사례는 22명으로 미응답 제외 시 5명 중 1명(19.6%)꼴이며, 두통·복통·위염 등 신체증상이 나타난 학생도 22명(17.3%)이 있었다. 이밖에 중독문제로는 게임중독(52.6%), 친구문제로는 이성문제(27.3%) 등의 응답이 많았다.
자살 직전 사건 유무를 살펴본 결과 52명의 학생이 부모와의 갈등(56%), 문제행동의 발각(12.2%), 교우 갈등(10%), 기타(10%), 이성문제(6%), 형제자매와의 갈등(4%) 등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특히 교우 갈등 중 카카오톡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친구들의 비방을 받기도 하고, 기타의 내용 중 인터넷상에서 성 문제에 연루돼 협박을 당했던 다수의 사례가 보고됐다”며 “자살 촉발 사건 가운데 온라인상에서의 영향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자해 시도 경험이 있었던 학생은 18명이 보고돼 2017년(5명)보다 3배 이상 증가했고, 자살 시도 경험은 5명으로 전년과 같았다. 그러나 보고서는 “교사가 자해·자살 시도 행동을 파악하는 데 제한적일 수 있기에, 실제보다 적게 보고됐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살을 암시하는 기록물을 남긴 학생은 56명이 보고됐다. 기록물 유형은 유서(36.4%), 카카오톡(18.2%), SNS(15.2%), 문자메시지(12.1%), 메모·포스트잇(10.6%) 순이었다. 보고서는 “2017년과 비교해 SNS 비율(8.8%→15.2%)이 증가한 특징을 보인다”며 “지난해 (‘자살송’ 등) SNS상에서 자해 관련 콘텐츠들이 범람했던 사회문화적 배경을 고려하면, 평소 정신건강 위험이 있었던 학생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데 SNS 등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언어·행동·정서 등의 경고신호를 보낸 것으로 보고된 사례는 67건이다. 각 항목에서 가장 많이 보고된 내용으로는 언어의 경우 자기비하적인 말, 정서 경고신호는 죄책감·수치심·외로움·절망감·무기력감 등 감정상태의 변화, 행동은 평소보다 너무 많거나 적게 자는 등 수면상태의 변화가 꼽혔다.

지난해 자살 사안이 발생한 학교에선 전체 학생 자살자 144명 중 139명(972%)에게 자살예방조치를 내렸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교육 당국이 시행하는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초1·4학년, 중1, 고1 대상)상의 ‘관심군’이거나 학교 자체적으로 정신건강위험을 인지해 기관 연계 및 개입 조처를 한 학생은 총 49명으로 전체 학생 자살자 10명 중 3명(34%)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학생의 문제를 인식한 경로는 담임교사 관찰(43.6%)이 가장 많았으나, 이외에도 기숙사 사감, 교육복지사, 보건교사 관찰 등 학교 구성원의 관심으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인식되는 비율이 예년보다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학생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선 담임교사 등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지만 교사는 관련 전문가가 아니므로 사전 징후 파악, 위기관리 및 대응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학생의 자살은 위중한 사안이다 보니 학교에서 개입을 많이 어려워했고, 전문적인 지원 요청이 있었다”며 “자살위기 학생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춘 정신과 전문의 혹은 상담전문가에 의한 신속한 개입 및 지속적인 상담, 학교에서 취해야 할 개입 조치에 대한 자문 및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동수 기자 ds@segye.com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1577-0199), 희망의 전화(129), 생명의 전화(1588-9191), 청소년 전화(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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