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젤예' 유선, '공감'은 나의 힘 [인터뷰]
[스포츠투데이 김나연 기자] 나의 연기를 누군가 공감하고, 또 위로받는다는 것. 데뷔 18년 차 배우 유선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을 통해 그 힘을 다시 한번 느꼈다.
최근 서울시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최근 종영한 KBS2 주말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극본 조정선·연출 김종창)의 배우 유선과 만나 드라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은 국밥집을 운영하며 세 딸을 힘겹게 키운 엄마 박선자(김해숙)와 큰 딸 강미선(유선), 둘째 강미리(김소연), 막내 강미혜(김하경) 등 전쟁 같은 하루 속에 애증의 관계가 돼버린 네 모녀의 이야기를 통해 이 시대를 힘겹게 살아내고 있는 모든 엄마와 딸들에게 위로를 전한 드라마다.
마지막 회가 각각 33.2%와 35.9%(닐슨코리아 제공, 전국 기준)를 기록하며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 유종의 미를 거뒀다.
긴 주말드라마를 끝낸 만큼 소감도 남다를 터. 유선은 "중간에는 조금 지치는 순간이 오긴 온다. 늘 그렇지만 끝날 때가 되면 긴 시간 동안 그 캐릭터로 살았던 시간이 있고 함께 정들었던 사람들과의 이별이 있기 때문에, 그게 안타깝다"며 "후련함보다는 멍하고, 뭔가 빠져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밝혔다.
시원함보다는 섭섭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그가 종영 직전 3주에 걸쳐 찍었던 엄마와의 이별 장면 때문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은 암으로 투병 중이던 엄마 박선자(김해숙)가 사망하며 극이 마무리됐다. 특히 박선자의 장례식장 장면은 마지막회 총 30분에 걸쳐 방송됐다. 이는 많은 시청자들을 울렸지만,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담아냈다고 지적했다.
유선은 "3주 동안 이별이 고통과 아픔에 실제로 아팠다. 그래서 끝이 더 헛헛했던 기분이 들었다"며 "장례식장 장면을 찍을 때는 하루종일 그 장면만 찍었다. 눈물이 없는 신이 없을 정도였다. 엄마의 병원을 오가는 신에서 이미 많은 눈물을 흘려서 체력적으로 지쳐있는 상태에서 장례식장 장면 찍기 전에 걱정이 됐다. 중요한 신이라 잘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고 운을 뗐다.
장면을 잘 찍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기자 주변 배우들과 서로 고민을 나누기 시작했다고. 그는 "후반부는 같이 만들어갔던 것 같다"며 "입관식 찍을 때도 격한 오열보다는 가슴 깊은 눈물을 흘리자고 동생들이랑 얘기를 나누고, 서로 상의를 해서 수위를 조절했다"고 설명했다.
길게 느껴지는 장례식장 장면은 과한 것이 아닌 새로운 시도라고 밝혔다. 그 어떤 드라마에서도 이렇게 죽음을 정리하는 과정을 면밀하고 세세하게 다뤄본 적은 없다는 것. 그는 "깊은 여운을 남겨준 의미 있는 마무리를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러나 이뿐만이 아니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은 방송이 진행되는 내내 출생의 비밀, 재벌과 권력 싸움, 암과 죽음 등 자극적인 소재의 등장으로 흔하디흔한 막장드라마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유선에 따르면 엄마 박선자가 죽음으로 향하는 결말은 시놉시스에 내정돼 있었던 것. 결말을 처음 접했을 때는 아쉬움도 있었다고. 그는 "'결말이 이렇게만 가야 하나?' 하는 안타까움도 들었는데 한 선배님이 '결국은 죽음으로 가는 길목에 누구나 서게 되는 거기 때문에 피해갈 수 없다. 언젠가 직면해야 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화두는 죽음이다. 자주 소재로 다뤄질지언정 다른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얘기할 거리도 과정만으로도 변화를 줄 수 있고 모두가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건 우리 이제의 종착역인 죽음이 아니겠느냐'는 얘기를 들었을 때 공감했다"고 밝혔다.
이렇듯 드라마 속 기나긴 죽음의 과정은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슬픔으로 다가왔지만,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또한 처했었던 누군가에게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다가왔다. 이러한 시청자의 반응은 유선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드라마가 끝난 후 유선의 개인 SNS에는 5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모두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의 마지막회 소감이었다. 그는 "하나부터 열까지 읽으면서 너무 울고 가슴이 아파서 잠을 못 잤다. 부모님께 잘해야겠다는 느낀 분들이 많더라. 모두가 자식이고, 또 부모 아닌가"라며 "이 이야기를 통해서 나를 되돌아보고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는 시간이 된 것 같다"고 밝혔다.
유선은 "현실적인 장면이 많기 때문에 공감돼서 좋아하는 분도 있고, 너무 현실적이어서 피하고 싶다는 분도 계셨다"며 "작가님이 리얼하게 담아냈다. 반응은 반반이지만 리얼한 현실을 담아내는 게 더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 게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은 시청자들뿐만 아니라 유선 본인도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결혼하고, 또 아이를 낳은 후 현재 '워킹맘'인 자신의 상황이 극 중 강미선과 똑같았기 때문. 친정엄마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 또한 비슷했다.
그는 "환경이 비슷하다 보니까 감정적인 몰입이 쉽게 이뤄졌다"며 "시댁에 맡기면 불평을 못 하고, 친정엄마한테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게 현실이다. 엄마한테 맡기면서 엄마가 하는 잔소리를 감내하면 되는데, 친정엄마기 때문에 싸우고, 소소하게 부딪힌다. 강미선이 엄마와 싸우는 장면이 현실적으로 많이 와닿았다"고 했다.
그 장면이 나가고, 많은 딸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공감을 해줘 고마웠다고. 유선은 "일하면서 아이를 부모님께 맡겼다가, 또 시부모님한테 맡겼다가, 육아 도우미를 썼다가 결국 일을 그만두게 되는 상황이 저도 이해가 되고 공감이 돼서 연기하기에도 좋았지만 또 다른 비슷한 환경의 여성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드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한 공감의 반응들이 감사했던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유선이 자신의 실제 상황을 연기로 승화시킨 덕분일까. 누군가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을 유선의 '인생작'이라고 부른다. 그는 이러한 반응을 고맙게 생각하면서도 "인생작보다는 좋은 인연, 좋은 기억을 많이 남겨준 작품"이라고 말했다. 좋은 인연의 중심에는 김종창 감독과 조정선 작가, 그리고 배우 김해숙이 있었다. 특히 조정선 작가와 김해숙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유선을 고민 없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로 이끌었다.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는 시놉시스도 나오지 않은 상태. 유선이 알고 있는 것은 조정선 작가가 쓴 작품에 김해숙이 엄마로 출연한다는 것. 조정선 작가는 유선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첫째 딸 역할을 제안했고, 유선은 내용과 상관없이 출연을 결정하게 됐다.
유선은 김해숙과 15년 만에 모녀 관계로 재회했다. 그는 "김해숙 선생님을 15년 만에 엄마로 다시 만났을 때 느낌이 너무 좋았다. 15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에 내가 엄마가 되고, 아내가 돼서 선생님을 다시 만나니까 더 모녀로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김해숙 선생님과 초반과 후반부에 교감이 많았는데, 인생 얘기도 많이 나누고 배우로서 가야 할 길에 대한 조언도 얻었다. 정말 귀하고 감사한 인연을 모녀로 두 번이나 만나게 됐다는 것에 감사했다"고 말했다.
조정선 작가와도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 이후 두 번째 만남. 유선이 똑같은 작가와 두 번의 인연을 맺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조정선 작가님이 한 번 더 불러주셔서 두 번째 작업을 함께한 것도 의미가 있다. 인연에 대한 감사함이 큰 작품이다. 특별하게 기억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배우 간의 인연, 작가와의 인연. 그리고 가장 뜻깊은 시청자와의 '인연'. 유선은 오랜 시간 자신과 함께 울고 웃고 공감해준 시청자들에게 마지막까지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워킹맘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미선이는 드라마 안에서 가장 현실적인 상황에 놓여있는 인물이에요. 시댁에 치이고, 또 철없는 남편에 치이고, 육아에 치이죠. 그렇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공감과 반응을 가장 가깝게 느끼고 체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세상에 일이 하고 싶지 않아서 전업주부가 된 사람 없고, 아이보다 일이 소중해서 워킹맘 된 사람 없잖아요. 온전히 자기가 원해서 선택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아이와 일 중 선택할 수밖에 없는 아픔들이 있어요. 살면서 그 선택이 힘겨움을 줄지언정 모두 다 힘을 내서 그 안에서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스포츠투데이 김나연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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