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맛있는 가을 전어 고를 땐 '18cm' 기억하길!

2019. 10. 3.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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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어 찾는 소식에 가을 도착 느껴
흔하고 하찮던 생선, 마케팅으로 거듭나
써는 방식 따라 차지거나 부드러워져
전어 '위'만 모은 '돔배젓'은 밥 도둑 왕
전어 구이. 박미향 기자

대한민국의 며느리들을 열 받게 하는 전어의 계절이 왔다. 매년 여름 끝자락이면 남해안, 서해안 곳곳에서 전어축제가 열린다.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 각종 미디어는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문구로 도배하기 시작한다. 전어 주가를 띄우려다 보니 나온 말이겠지만 세상 며느리들을 우습게 만들어도 여간 우습게 만드는 게 아니다. 고민 끝에 집 나간 며느리를 식탐을 못 이겨서 돌아가는 지질한 걸신으로 만드니 말이다. 한술 더 뜨는 건 ‘가을 전어는 며느리 친정 간 사이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는 이야기다. 전어가 아무리 맛있어도 그렇지 세간의 시집 식구들을 이렇게 몹쓸 인간들로 몰아서야 되겠는가. 그런 왕따 시집살이를 감내할 며느리는 요즘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근자에는 더한 말도 나도는데 며느리가 돌아간 건 전어 굽는 냄새 때문이 아닌 농번기(농사일로 바쁜 시기)가 끝나서라거나, 심지어는 돌아가신 시어머니 화장하는 냄새 때문이라는 해괴한 이야기까지 회자된다. 재밌자고 하는 이야기겠지만, 전어 살리려고 이 양성평등 시대에 며느리들을 너무 비하하고 가족 간의 불화를 심하게 조장한다는 생각마저 든다. 혹시 ‘전국며느리연대’같은 단체가 있다면 전어를 규탄하는 촛불시위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아무튼 전어는 요사이 졸지에 가을을 대표하는 스타가 되었다. 이제는 가을이 와서 전어를 찾는 게 아니라 전어 소식을 듣고 가을이 온 걸 느끼는 사람도 많다. 가을이면 사람들 입을 즐겁게 해온 광어, 고등어, 갈치, 꽁치, 삼치가 분해서 땅을 칠 일이다. 사람 팔자 이상으로 생선 팔자도 시간문제인 것 같다. 전어는 김려의 <우해이어보>에 이름조차 못 올렸다. 전어의 메카라 할 수 있는 진해에서 김려가 유배 생활을 하며 저술한 어류학서인데 말이다. 허균이 쓴 조선 최초의 음식품평서 <도문대작>에도 전어는 나오지 않는다. 두 분이 전어를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 흔하고 하찮은 생선이라 빼버렸지 싶다. 그랬던 전어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얼마나 될까. 물론 왕년에 진상된 기록도 드물게 발견은 된다. 그건 운송이 어렵던 시절 잘 나갔던 한때의 이야기다. 30~40년 전에 남해안이나 서해안에 살아본 사람이라면 그 무렵 전어가 얼마나 천대받던 생선인지 잘 안다. 많이 잡히면 버리거나, 다른 생선을 사면 덤으로 얹어줄 정도로 전어는 한심한 신세였다. 1963년의 어떤 신문에는 50마리 든 전어 한 상자가 570원이라는 기사가 나와 있다. 어림잡아 1마리에 11원꼴이다. 1970년 기사에는 전어 1마리가 80원인데 명태는 1마리에 230원이었다. 1992년 신문에는 손바닥 크기의 전어가 10마리에 천원인데 고등어는 큰 것 1마리가 1500원, 병어는 1마리가 2천원이다. 전어가 받던 대접을 대충 짐작할 수 있는 시세다. 이때 까지만 해도 가을 전어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1990년대 말에야 가을 전어라는 표현이 조금씩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전어 마케팅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전어 회무침.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어쨌거나 가을 전어는 맛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도 전어가 ‘기름이 많고 달곰하다’고 했다. 서유구의 <난호어목지>는 “귀천이 모두 좋아하고 맛이 좋아 사는 사람이 돈을 생각하지 않고 산다”고 했다. 그래서 ‘돈 전’(錢)을 써서 전어(錢魚)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약전은 화살촉같이 생긴 전어의 외관 때문인지 ‘화살 전’(箭)을 써서 전어(箭魚)라고 했다. 돈이 됐건 화살이 됐건 가을 전어는 봄 전어보다 지방을 서너 배나 품고 있어서 그 고소함이 절정에 달해 있다. 전어의 지방 함량은 크기에 따라 편차가 심하다. 당연히 클수록 기름이 많고 맛있다. 그래서 큼직한 진해만 떡 전어의 성가가 높은 것이다. 흔히들 전어 회를 뼈째 썰기로 즐기는데 그럴 경우 뼈가 연한 것을 찾다, 너무 작은 것을 고르면 고소한 맛은 줄어든다. 따라서 전어는 적어도 2년 이상 자란 18㎝ 내외의 크기를 고르면 뼈째 썰기로도 맛있고, 포를 떠서 먹어도 좋다. 큰놈을 고르는 것은 양식 전어를 피하는 방편도 된다. 솜씨가 좋은 횟집은 일정크기 이상의 전어를 다양한 방식으로 썰어낸다. 뼈째 썰어도 어슷어슷 길게 쓴 것이 부드럽고 맛있다. 포를 뜬 것은 큼직하게 썰면 차진 맛이 있고, 채처럼 썰면 문문한 것이 입에 착 붙는다. 어떻게 썰어도 전어회는 우리식으로 깻잎 두어장에 양념 된장을 듬뿍 찍은 마늘쪽과 고추를 함께 싸서, 한입 가득 넣고 우적우적 씹어 먹어야 제맛을 즐길 수 있다. 경상도 쪽 남해안 일대에서는 아예 전어 온마리를 피도 빼지 않고 대가리와 내장, 꼬리만 제거한 뒤 통째 김치에 싸먹기도 한다. ‘전어 통마리’라고 배 위에서 어부들이 먹던 거친 방식이다. 전라도 쪽은 미나리, 깻잎, 풋고추 등 야채를 듬뿍 넣고 초고추장과 함께 버무린 달콤새콤한 무침을 즐겨 먹는다. 참고로 일본 사람들은 전어를 회로 먹지 않는다. 초절임해서 초밥으로만 먹는다. 구이는 아예 먹지 않는다. 그 이유는 옛날 일본의 어느 지방에 미모의 딸을 둔 부부가 살았는데 영주가 그 딸을 소실로 삼으려고 하자, 부모가 딸이 병들어 죽었다고 소문을 냈다. 그러고는 화장을 한다며 딸의 시신 대신 전어를 관에 넣고 화장을 했다. 전어 타는 냄새를 맡은 신하가 영주에게 그 딸이 진짜 죽었다고 보고했다. 그때부터 전어를 자식 대신 태운 물고기라는 뜻의 ‘고노시로(子の代)’라 불렀고, 일본에서 전어 구이를 먹지 않는 습속도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전어.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우리가 크게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전어 회를 먹지 않고 구이도 먹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전어 구이는 씨알이 굵은 것을 골라서 대가리와 내장 제거하지 않고, 칼집 낸 뒤 굵은 천일염 술술 뿌려서 숯불에 직화로 구워야 제맛이 난다. ‘가을 전어 대가리 속에 참깨가 서 말’이라는 말도 과장법의 ‘끝판왕’이라 생각하지만 이렇게 구워서 손으로 잡고 머리부터 씹어보면 깨가 서 말까지는 아니라도 그런 말이 나온 연유는 짐작할 수 있다. 전어 구이는 내장이나 껍질도 놓치면 안 된다. 전어는 자라면서 맛도 달라지지만 이름도 달라진다. 그래서 출세어라고 한다. 예전에는 일본인만 쓰던 말인데 요즘은 우리 국립국어원도 출세어란 단어를 신어자료집에 수록했다. 대개 작은 것은 전어사리, 중간 크기는 엿사리, 큰놈은 대전어 등으로 부른다. 전어의 명칭도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데 전라도 쪽에서는 되미 또는 뒤에미, 엽삭 등으로 부르고 경상도에서는 전애라고 부른다. 강원도에서는 새갈치라고도 한다. 전어는 젓갈을 담가도 맛있는데 전어 새끼로 담근 것은 엽삭젓 또는 뒈미젓, 내장만을 모아 담근 것은 전어 속젓이라 한다. 내장 중에서도 위만을 따로 모아 담근 것을 전어밤젓 또는 돔배젓이라 하는데 밥 도둑 중의 밥 도둑이다. 호남지방에서는 전어를 넣고 깍두기도 담가 먹는데 그 맛 또한 일품이다.

서울에서 남해안의 자연산 전어를 맛볼 수 있는 곳으로는 잠원동의 진동둔횟집(02-544-2179)이 있고, 진해에서는 도선장횟집(055-552-2244), 보성에서는 행낭 횟집(061-852-8072)을 추천한다. 남해안 쪽은 전어 철이 일찍 끝나므로 사전에 확인이 필요하다.

예종석 음식문화평론가(사랑의열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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