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통한 마네킹·트랜스젠더 모델..패션, '편견'을 벗다

이윤화 2019. 10. 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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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브랜드, 성소수자·유색인종·과체중 모델 적극 고용
이상적인 외모 아닌 나다움 강조하는 '보디 포지티브' 열풍
안다르·삼성물산 하티스트 등 국내 패션 업계도 변화 활발
영국 런던 플러스 사이즈 모델 다이애나 시로카이가 나이키 마네킹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다이애나 시로카이 인스타그램)
[이데일리 이윤화 기자] 깡마른 체형에 큰 키, 이상적인 비율. ‘모델의 조건’이라 여겨지던 기준들이 깨지고 있다. 현실적인 체형을 반영한 마네킹이 스포츠 매장 한 자리를 차지하는가 하면, 몸집이 비대한 사람들이 스포츠웨어와 속옷 모델로 활동하는 시대가 왔다.

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패션 업체들 사이에서 과체중 모델, 유색인종부터 성소수자까지 브랜드 모델로 기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패션업계의 ‘보디 포지티브’(Body Positive·자기 몸 긍정주의) 열풍은 인종·민족·언어·종교·성차별 등의 편견을 없애자는 일종의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 중 하나로 분류된다. 보디 포지티브는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사회적 캠페인으로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가꾸자는 취지다. 뚱뚱한 몸, 장애가 있는 몸, 성적 지향과 맞지 않는 몸 등 모든 몸을 혐오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운동이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변화의 흐름은 전 세계 다양한 소비자를 고객으로 두고 있는 해외 글로벌 브랜드들이 이끌고 있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가 대표적이다. 나이키는 2016년 작가이자 플러스 사이즈 모델인 팔로마 엘세서와 클레어 파운틴을 모델로 내세웠다. 인플루언서 그레이스 빅토리·다니엘 바니에 등과 손잡고 XL~XXXL 사이즈의 여성복을 선보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영국 런던의 메인 쇼핑거리 옥스포드 플래그십 스토어에 플러스 사이즈 마네킹을 선보여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 겨드랑이 털을 드러낸 나이지리아계 미국인 가수 아나스타샤 에누케를 스포츠 브라 모델로 기용하기도 하는 등 외모의 자유로움을 강조하고 있다.

나이키 측은 “스포츠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반영하기 위해 최초로 매장에서 플러스 사이즈 마네킹을 선보였다”면서 “런던에 이어 전 세계 매장에 플러스 사이즈 마네킹을 늘릴 계획”이라고 전했다.

브라질 출신 모델이자 트랜스젠더 여성인 발렌티나 삼파이우는 지난 8월 빅토리아 시크릿 사상 첫 트랜스젠더 모델로 발탁됐다. (사진=AP연합뉴스)
8등신 몸매에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하는 모델들이 탄탄한 몸매를 뽐내던 속옷 브랜드들도 변화의 물결에 합류하고 있다. 미국의 속옷 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은 지난 8월 처음으로 트랜스젠더 모델인 발렌티나 삼파이우를 카탈로그 모델로 내세웠다. 캘빈클라인 또한 지난 5월 미국 뉴욕 소호의 대형 옥외 광고판에 플러스 사이즈 체형의 흑인 여성 래퍼 치카 오라니카의 사진을 내걸었다.

팝가수 리한나의 란제리 라인 ‘새비지×펜티’는 2019 봄·여름 뉴욕패션위크 런웨이에서 30AA부터 44DDD까지 모든 사이즈의 모델을 등장시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돌체앤가바나 역시 지난 7월 여성복 사이즈를 UK22까지 넓혔다. 통상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들이 L(UK14)~XL(UK16) 사이즈를 가장 큰 제품으로 출시하는데 비해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힌 것이다.

이외에도 갭·H&M 등이 트랜스젠더를 모델로 기용하는가 하면, 자라·H&M 등은 온라인 쇼핑몰에 다양한 사이즈의 모델이 제품을 착용한 사진을 올리고 있다.
안다르 플러스 사이즈 모델 촬영 영상. (사진=방데이지 유튜브 캡쳐)
편견을 깨고 나다움을 강조하는 흐름은 국내 패션업계에도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국내 액티브 웨어 판매·제조업체 ‘안다르’는 지난달 프리랜서 플러스 사이즈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유튜버 방데이지와 배우 황미영을 모델로 기용해 ‘모두의 레깅스’라는 마케팅을 선보였다.

방데이지는 여행 애플리케이션(앱) 회사에 다니면서 메이크업, 패션 등과 관련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안다르 모델이 된 황미영은 해당 캠페인 영상에서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멋진 댄스를 춰 보이며 ‘맞는 동작, 맞는 몸이 어딨어? 내가 즐거우면 그게 맞는 거야’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신애련 안다르 대표는 “이번 ‘모두의 레깅스’ 캠페인은 Z세대가 원하는 애써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여성의 이미지를 부각해 많은 여성들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안다르와 함께 더 많이 성취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제작하게 됐다”며 “앞으로 안다르는 다양한 활동을 위해 누구나 입을 수 있고 모두가 좋아하는 브랜드로 성장하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 의류업체에서 만드는 최대 사이즈는 88~99 사이즈 정도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좀 더 큰 사이즈를 입어야 하는 고객들은 빅사이즈 전문 브랜드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안다르처럼 운동복 브랜드들도 플러스 사이즈를 출시하고 있어 방데이지와 같은 국내 플러스 사이즈 모델들의 활동 영역이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티스트 ‘매직핏 코트’.(사진=삼성물산 패션부문)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어댑티브 패션(Adaptive Fashion)’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도 등장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지난 4월 패션 대기업 중 최초로 장애인을 위한 전문 비즈니스 캐주얼 브랜드 ‘하티스트(Heartist)’를 론칭했다.

하티스트는 ‘모든 가능성을 위한 패션(Fashion for All Abilities)’을 콘셉트로 패션 전문가와 삼성서울병원 재활의학과 전문의,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와 협업하며 함께 연구해 탄생시킨 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전문 브랜드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플러스 사이즈 패션 시장 성장은 일반 패션 시장에 비해 4배 이상 성장했다는 글로벌 통계가 있다”면서 “그만큼 현실에 있는 소비자들은 마네킹 몸매에 맞춘 상품보다 훨씬 더 다양한 선택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윤화 (akfdl34@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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