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사상의 최전선>Q : 매체는 인간의 인식을 어떻게 바꾸는가

기자 2019. 10. 1.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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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호 작가

A : 축음기는 소리의 발견을, 타자기는 개인의 해체를 가져왔다

⑤ 프리드리히 키틀러 (Friedrich Kittler, 1943∼2011)

매체 = 정보 저장·전달 수단

문화사도 매체史로 재편 가능

인류 최초의 매체는 ‘문자’

獨낭만주의 여성찬미 많은 건

어머니에게 글쓰기 배운 까닭

20세기 들어 기술 급속 발전

축음기·영화 등 새 매체 등장

다다이즘·정신분석학에 영향

AI스피커 보편화하는 시대

우린 어떻게 세계를 읽게 될까

◇속삭이는 어머니의 목소리

최근 국내의 한 이동통신사는 ‘부모의 목소리로 동화책을 읽어 주는’ 인공지능(AI) 스피커를 출시했다. 부모가 기본 문장 300개를 낭독해 녹음해 놓으면, 아이는 이를 통해 다양한 동화책을 들을 수 있다. 인공지능 스피커가 딥 러닝 기술로 목소리를 분석한 뒤 음성 합성 기술로 부모의 육성과 매우 흡사한 음색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한때 아이들은 아버지 앞에 반듯이 앉아 성독(聲讀)을 하거나 동화책을 읽어 주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이제는 인공지능 스피커가 부모의 목소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과연 오늘날 아이들은 누구의 목소리로 세계를 읽으며, 이로 인해 어떠한 영향을 받게 될까?

이 물음과 관련해 독일의 매체학자 프리드리히 키틀러는 문자를 배우는 방식이 개인의 사고에, 그리고 더 나아가 한 시대의 문화 형성에 깊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통찰했다. 키틀러에 따르면, 낭만주의 시대 독일 문학에 어머니, 여성, 자연에 대한 찬미가 나타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여기에는 1800년을 전후로 어머니의 역할이 크게 확대됐다는 점이 주요하게 작용한다. 당시 새롭게 부상한 부르주아 계급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글을 읽고 쓸 수 있도록 가르치는 일이 어머니의 새로운 가정적·사회적 책무로 요구됐다. 이들은 어머니가 낭독해 주는 최초의 소리를 듣고 낯선 단어의 발음을 익혔다. ‘가르침을 속삭이는 어머니’라는 관념이 새롭게 발명된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의 낭독을 통해 아이들이 배운 문자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었다. 문자는 숭고한 내면의 소리, 즉 어머니의 목소리를 그 이면에 담고 있다고 여겨졌다. 아이들은 문자를 처음 읽을 때부터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은 까닭에, 성장한 뒤에도 독서를 할 때마다 행간에서 어머니의 목소리를 떠올리게 된다. 괴테와 같은 남성 작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이 글쓰기를 통해 어머니의 목소리와 마주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괴테는 이 시대의 대표작인 ‘파우스트’를 이렇게 끝맺는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올리도다.”

◇기록 체계: 매체사로 재편성된 문화사

이 논의에서 중요한 사실은 키틀러가 문자를 매체라고 본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매체가 인간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키틀러는 정보를 저장, 전달, 재현하는 방식을 매체라고 정의하며 문자를 최초의 매체라고 선언했다. 현대의 많은 매체 이론가가 중요하게 다뤘던 언어나 음성은 정보를 저장하지 못한 채 사라진다는 점에서 매체가 아니다. 따라서 문자는 최초의 매체이자, 20세기 무렵 아날로그 기술 매체가 등장하기 전까지 유일한 매체였다. 키틀러는 인류 역사를 매체 변화의 관점에서 재구성하고자 했고, 문자 문화에 기반한 낭만주의 시대를 ‘기록 체계 1800’으로 명명했다. 키틀러가 제시한 ‘기록 체계’라는 개념은 인류의 문화적 정보를 저장, 전달, 재현하는 기술적 네트워크를 뜻하며 그 자체가 역사의 단위다.

키틀러가 보기에 정치 제도, 사상 등의 상부 구조는 역사의 단위를 구성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에서 중요시했던 노동, 생산성 등의 하부 구조도 마찬가지다. 시대 구분의 기준이 되는 요소는 다름 아닌 정보 처리 기술이다. 다시 말해 한 시대의 동질성이란 그 시대에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 동일하게 지속되고 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역사 단위의 변화는 의심할 여지 없이 이를 주도하는 매체 변화에 의해 벌어진다. 정보를 처리하는 새로운 기술 매체가 도입되면 문화적 상부 구조 전체가 전복된다. 따라서 새로운 매체 기술의 침투와 균열은 언제나 사회 변화의 징후다. 키틀러의 매체 이론에서 인류의 문화사는 이러한 역사적 구도 속에서 매체사로 재구성되며, 인간 주체에 대한 기존의 인식 역시 극적으로 변한다.

◇매체 기술은 인간 주체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20세기 초반은 매체사에 중요한 변화가 벌어진 시기다. 문자를 대신하는 새로운 정보 처리 기술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과학 기술의 발달과 함께 축음기, 영화, 타자기가 발명됐고, 이로써 소리, 이미지, 기호라는 정보를 따로따로 기록할 수 있게 됐다. 키틀러는 아날로그 기술 매체가 처음 등장한 이 시대를 ‘기록 체계 1900’이라고 일컬었다. 기록 체계 1900에서도 키틀러는 인간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키틀러가 중시하는 것은 인간 삶의 가장 근본적인 조건을 구성하는 매체의 물질적 형식이다.

기록 체계 1900에서 축음기는 시기적으로 가장 앞서고 청각적 정보를 최초로 기록한 기계다. 축음기에서는 모든 소리가 동일한 가치로 재생됐다. 축음기가 발명되기 전 소리는 문자로 기호화된 채 저장됐으며 인간의 음성이 아닌 소리나 소음은 중요하게 인식되지 않았다. 그러나 축음기가 발명되자 각종 잡음이나 소음도 날것 상태 그대로 저장할 수 있게 됐다. 이전에는 존재감이 없던 소음이 한꺼번에 쏟아지자 인간의 인식도 새롭게 깨어났다. 인간은 녹음된 소음을 듣고 나서야 자신들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한 소리만을 선택적으로 들어 왔음을 깨달았다. 이 점에서 축음기는 정보 저장의 영역뿐만 아니라 문화와 예술 전반에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 결과 문학에서는 다다 등의 실험이, 음악에서는 쇤베르크의 무조 음악이, 학문에서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시작됐다.

뒤이어 영화가 등장했다. 영화는 시각적 정보를 기록하는 매체다. 하지만 영화는 한 번도 실재를 보여 준 적이 없다. 영화는 움직이지 않는 사진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도록 1초에 스틸컷 24장을 제시해 시각적 착시 효과를 일으킨다. 각각의 스틸컷은 실제로 움직이지 않지만 인간의 지각은 이를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기록 체계 1900을 형성하는 마지막 기술 매체는 타자기다. 이전에도 문자라는 매체가 존재했지만, 타자기가 발명되면서 문자를 기록하는 방식에 커다란 전환이 일어났다. 우선 여성 타자수가 새롭게 등장하며 글을 쓰는 사람의 성별이 뒤바뀌었고, 남성 작가로만 이뤄져 있던 문자 세계가 전복됐다. 또한 개인의 개성적인 생각이 손을 통해 글로 곧장 드러나는 수기(手記) 방식과 달리, 타자기는 모든 것이 규격화된 새로운 기록 방식을 제시한다. 사람들은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는 수기 방식의 글쓰기를 통해 독립적 개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반면 분절된 알파벳을 불연속적으로 입력하는 타자기로 글을 쓰면서 개인은 익명화된 존재로 해체된다. 키틀러는 타자기의 등장으로 비로소 현대가 시작됐으며 낭만주의 시대부터 이어진 문자의 독점 역시 무너졌다고 지적한다.

◇인간 주체가 사라진 매체의 무대에서

인류 역사를 정보 처리 과정의 역사로 재해석해 낸 키틀러의 매체 이론은 서구 사상사에서 매우 특별한 위치에 놓여 있다. 키틀러 이전의 매체 이론에서는 사용자나 인간이 기계와 매체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줄곧 집중했다. 하지만 키틀러는 기술에 의해 의미가 생산되는 방식, 기술이 사용자를 제어하는 방식에 주목해 기존과 다른 시각을 제시했다. ‘매체 유물론’이라고도 불리는 키틀러의 관점은 현대 문화 이론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고, 그 결과 정보를 처리하는 기술적 조건에 주목해 문화를 이해하는 문화 기술학적 경향이 최근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키틀러는 매체의 변화를 역사를 진행시키는 유일한 동력처럼 기술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인간과 기술이 어느 때보다 가까워진 시대에 새로운 방식으로 인간을 논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키틀러의 통찰에 따르면, 현대의 디지털 네트워크로 이어지는 매체의 역사에서 정보 처리 기술은 끝없는 순환을 통해 스스로 자율성을 획득하면서 인간의 설 자리를 축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 없이 사물끼리 소통하는 사물인터넷의 시대에 이와 같은 고찰은 매우 시급하다. 이렇듯 키틀러는 역사 속에 인간의 빈자리와 매체가 늘 존재했음을 다시 일깨우며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기술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유현주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공동기획 :이감문해력연구소

■ 프리드리히 키틀러는

분야- 미디어 연구, 독일어 문학, 문화학

사상- 미디어 고고학

주요 활동·사건- 베를린 매체 학파 결성

약력-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독일의 매체 이론가. 매체의 개념과 역할에 대해 혁신적이고 대담한 주장을 펼쳤다. 1943년 독일 작센 주 로흘리츠에서 태어났다. 1963년 프라이부르크대에 입학해 독일어문학, 로망어문헌학, 철학을 공부하며 하이데거, 니체 외에도 라캉, 데리다, 푸코 등 당시 새롭게 등장한 프랑스 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1976년 스위스 작가 마이어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 독일 문학사 전공 교수 자격 취득을 위해 논문 ‘기록시스템 1800·1900’을 제출했다. 하지만 논문은 파격적인 형식과 내용 때문에 2년 만에야 통과됐다.

1987년 보훔대 현대 독일 문학 교수로 부임했고, 1993년 훔볼트대 문화학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시기에 ‘베를린 매체 학파’를 만들어 독일 매체 이론을 본격적으로 이끌었다.

저서- 주요 저술로 ‘기록시스템 1800·1900’(1985)과 ‘축음기, 영화, 타자기’(1986)가 있고, 이 두 권의 책으로 독창적인 매체학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기록시스템 1800·1900’은 박사 논문을 단행본으로 펴낸 책으로, 19세기 이후 문화사를 매체 변화의 관점에서 재구성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축음기, 영화, 타자기’에서는 최초의 아날로그 기술 매체가 태동한 1900년대를 집중적으로 분석하며, 이들 기술 매체가 불러온 혁명적 변화상을 세밀하게 추적한다. 이들 저서에는 매체가 정보를 저장하고 전송하는 방식에 따라 인간의 감각과 지각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잘 드러나 있다. 또한 푸코의 고고학적 분석을 매체 이론의 관점에서 전유함으로써 동시대 매체를 새롭게 바라보는 분과인 ‘미디어 고고학’이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2000년 이후에는 고대 그리스에 대한 문화 기술학 연구로 선회했다. 고대 철학, 음악, 아름다움, 숫자와 같은 근원적 문화를 현대 디지털 문화와 연결하는 폭넓은 사유를 펼쳤다. 그러나 2011년 10월 만 68세의 나이로 사망하며 전체 프로젝트는 미완의 상태로 남았다. 그 밖에 ‘드라큘라의 유산’ ‘광학적 미디어’ ‘그리스로부터’ ‘소음과 계시 사이’ 등 다양한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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