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생명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다른 생명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골목 여기저기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땅따먹기, 고무줄, 숨바꼭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얼음 땡, 딱지치기, 오자미 놀이, 말뚝박기 등 종류도 다양했다. 아주 어렸을 때는 집에서 부모님과 형제들과 놀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부터는 쉬는 시간에 교실 뒤편에서, 점심 시간에 건물 밖에서 까르르 뛰어다니기 바빴다.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다른 생명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

신기한 것은 아이들이 놀이의 규칙을 지켰다는 점이다. 그렇게 하라고 지시하는 어른도 없고 법도 없었지만, 형·누나를 따라온 너무 어린 동생들을 제외하면 아이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규칙을 지켰다. 술래는 술래의 역할을 수행했고, 땅따먹기를 하다가 금을 밟으면 차례를 바꾸었다. 그런데도 재미있었다. 규칙이 자유를 제한하는 셈인데도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놀이에 참여했다. “누구야, 노올자~”라는 소리는 초저녁까지 흔하게 들렸다.

놀이를 즐기는 것은 동물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반려동물을 길러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강아지들은 공을 물고 와서는 내가 물어올 테니 던져달라는 거절하기 힘든 눈빛을 보내고, 고양이도 근처를 맴돌며 놀아달라는 신호를 보내곤 한다. 심지어 종이 다른 존재와도 규칙에 따라 놀 수 있는 것이다.

개나 고양이보다는 지능이 낮은 쥐라면 어떨까? ‘사이언스’ 최근 호에 내가 여태까지 본 논문 중 가장 귀엽고 사랑스러운 논문이 실렸다. 독일 훔볼트대학 연구팀이 쥐와 숨바꼭질 놀이를 하고, 그 내용을 논문으로 발표한 것이다.

■ 쥐와 사람의 숨바꼭질 놀이

연구팀은 30㎡(약 9평) 정도의 방에서 청소년 시기의 쥐와 숨바꼭질을 했다. 먼저 쥐를 ‘시작상자’에 넣는다. 쥐가 술래일 때는 시작상자의 뚜껑을 닫고, 실험자가 숨은 뒤에 리모컨으로 뚜껑을 열었다. 그러면 쥐는 상자를 나와 실험자를 찾아다녔다. 쥐가 성공적으로 실험자를 찾으면 실험자는 쥐와 장난을 치며 한동안 놀아주었다. 반대로 실험자가 술래일 때는 쥐를 시작상자에 넣은 다음에 뚜껑을 닫지 않았다. 실험자는 시작상자 옆에 가만히 앉아서 기다렸고, 쥐는 상자가 열린 지 90초 이내에 상자를 나와서 숨어야 했다. 실험자는 쥐를 찾은 뒤 장난을 치며 놀아주었다.

이 과제는 쥐가 레버를 누르면 먹이를 받는 것과 같은 전통적인 실험에 비해 어려운 편이다. 먹이처럼 생존에 필요한 보상을 주지도 않았는데, 이번에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쥐가 알아차리고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실험에 참여한 쥐 6마리가 1~2주 이내에 술래 역할을 습득했다. 쥐들은 술래 역할을 맡았을 때 시각 정보와 기억을 활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실험자가 눈에 보이는 곳에 있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을 때보다 빨리 찾았기 때문이다. 또 실험자가 5회 연속 같은 장소에 숨으면 쥐가 실험자를 찾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술래 역할을 배운 쥐 6마리 중 5마리는 숨는 역할도 성공적으로 학습했다. 쥐들은 숨는 역할을 맡았을 때 투명한 상자처럼 눈에 보이는 장소보다는 불투명한 상자나 판자 뒤편처럼 보이지 않는 장소를 선호했다. 또 숨어 있을 때는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지만 쥐들도 발성을 하는데, 쥐들이 숨을 곳을 찾아다닐 때와 숨어 있을 때는 발성의 빈도가 낮았다. 이는 쥐가 술래 역할과 숨는 역할의 차이를 이해하고, 역할에 맞게 행동했음을 암시한다. 연구자들은 쥐들이 숨바꼭질을 하는 동안 배측 중앙 전전두엽에 있는 신경세포의 활동을 측정해 이 영역이 숨바꼭질 놀이의 역할 수행과 관련됨을 발견했다.

쥐의 주관적인 느낌을 알 방법은 없지만, 쥐들은 정말로 놀이를 즐긴 걸로 보인다. 먹이와 같은 보상을 주지 않았음에도 쥐들은 숨어 있는 실험자(쥐가 술래일 때)나 숨을 장소(실험자가 술래일 때)를 찾아 빠르게 열정적으로 돌아다녔다. 숨어 있던 실험자를 찾거나 숨어 있다가 들킨 뒤에는 연구자 주변을 맴돌며 장난을 쳤고, 기뻐서 점프를 하기도 했다. 또 먹이를 얻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하는 전통적인 실험에서와 달리 발성을 많이 했다. 쥐들은 술래 역할을 맡아 돌아다니다가 실험자를 찾은 순간에 발성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숨어 있던 실험자를 찾거나 실험자에게 들킨 뒤에 장난을 칠 때, 시작상자로 돌아갈 때도 발성을 자주 했다.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할 때 술래가 “찾았다!”고 외치는 장면, 술래가 찾아낸 아이와 재잘거리면서 되돌아가는 장면이 그대로 떠오르지 않는가.

■ 다른 생명과의 교감과 공존

진지한 것과는 거리가 먼 데다 경제적 효과도 적어 보이는 이런 연구는 연구비를 지원받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연구는 배측 중앙 전전두엽에 대한 이해를 진전시켰으며, 쥐의 공간 탐색과 역할 수행, 상대 관점 이해, 의사 결정을 연구할 수 있는 새로운 실험 디자인을 제시한다. 또 쥐와도 숨바꼭질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바꿔준다. 우리는 다른 생명체들과 어울리고 교감하며 거기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존재다.

우리 삶을 지탱하고 있으며, 우리와 교감할 수 있는 생명들이 요즘 아프다.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으로 해양 생물들이 고통받고 있고, 아마존 열대우림은 몇 주 동안이나 불탔다. 북극의 얼음이 녹아 북극 생명들이 갈 곳을 잃었고, 빙하에 녹아 있던 온실가스가 방출되면서 이미 빠른 기후변화는 더 빨라졌다. 생태계를 지탱하던 생물 다양성이 빠르게 훼손되고 있고, 머지않아 호모 사피엔스도 그중에 포함될 수 있다. 10년 뒤, 20년 뒤에도 봄이면 나비가 날고, 가을이면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 세상에서 숨바꼭질 놀이를 할 수 있으려면 당장 움직여야 한다. 기후위기의 주요 원인에는 약육강식의 성장논리와 전쟁이 포함되므로, 함께 지혜를 모은다면 이 위기는 세상을 더 좋게 바꿀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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