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섬뜩하게 하는 일제강점기 기록물들

조종안 입력 2019. 9. 16.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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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개관한 '일제강점기 군산역사관' 특별전시회에 다녀와서

[오마이뉴스 조종안 기자]

 군산 개항당시 수덕산 전경
ⓒ 조종안
 
일본의 경제 보복과 일부 각료들의 망언으로 반일 감정이 고조되고 있는 요즘, 전북 군산에서 일제 침략과 수탈의 역사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려 주목받고 있다. 지난 6월 개관한 '일제강점기군산역사관(아래 군산역사관)'에서 열리고 있는 <수탈의 기억 군산>(6월 4일~10월 31일) 특별전이다.
 
이번 전시의 사진 및 유물은 군산시와 대한역사연구소가 소장하고 있는 자료가 대부분으로 <수탈의 기억>, <쌀의 군산>, <제국주의 일본>, <빛과 그림자>, <기억은 계속됩니다>, <시청각실> 등의 주제로 나눠 전시되고 있다.
 
지난 12일 군산역사관을 찾았다. 전시실에는 일제의 쌀 수탈 관련 자료(곡물검사소 신축 기념엽서, 벼 공출명령서, 미계요람)를 비롯해 개항 전후 군산 모습, 미곡상, 양조장, 백화점, 잡화상 등 다양한 업체의 상표 모음, 영화 및 연극 전단 등 일제강점기 군산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희귀자료 30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실 ‘수탈의 기억’ 코너 사진자료들
ⓒ 조종안
   
 일제가 군산시 옥산면 공석여 씨에게 보낸 쌀 공출명령서
ⓒ 조종안
 
개항 당시와 10년 후 군산의 인구(일본인) 및 무역액 그래프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개항하던 해(1899) 250명이던 일본인이 1909년에는 3300명으로 나타난다. 10년 동안 일본인이 13배라니 놀라운 수치다. 무역액도 47만 엔(円)에서 654만 엔으로 14배 급증했다. 이는 말이 좋아 '무역'이지 일제 수탈이 그만큼 잔인했음을 암시하는 도표이다.
 
입맛을 씁쓸하게 하기는 '쌀 공출명령서' 역시 마찬가지.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11월 15일 일제가 옥구군(군산시) 옥산면 당북리 한림마을에 사는 공석여(孔錫汝) 씨에게 보낸 공출명령서에는 할당된 벼 12석 7두(25가마)와 '쌀 공출이 국가에 보답하는 길'이라는 뜻의 표어(공미보국 신도실천·供米報國 臣道實踐)가 인쇄되어 있다.
 
연극 <춘향전>과 영화 <젊은 자태(若き姿)> 전단
 
 희극 <춘향전> 전단
ⓒ 조종안
 
위 사진은 1938년 일본 교토와 오사카 공연을 알리는 희극 <춘향전> 홍보 전단이다. 극을 쓴 사람은 친일 작가로 알려진 장혁주(1905~1998). 대판조일신문사 회사사업단이 행사를 주최하고 교토(京都) 조일회관과 오사카(大阪) 조일회관에서 각각 사흘씩 공연하며 신협극단(新協劇團) 배우들이 출연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장혁주는 대구 출신으로 1932년 소설 <아귀도>로 일본 문단에 등단한다. 기록에 따르면 장혁주는 신라 화랑도 정신을 예로 들면서 태평양전쟁에 용감히 참전할 것을 권유하는 <화랑도 정신의 재현-젊은 학도의 갈 길은 하나> 등 다수의 친일 저작물을 남겼다. 노골적이고 적극적인 친일활동을 보여줬던 그는 광복 후 일본으로 귀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해(1938) 8월 29일 치 '매일신보'는 "경성 YMCA에서는 동경 축지극장 신협극단을 초빙하여 <춘향전>을 오는 10월 25일부터 사흘 동안 부민관에서 상연하기로 하였고, 신협극단원 35명 일행은 23일에 입성하여 평양, 진남포, 대전, 전주, 군산, 대구, 부산 등지로 순회공연을 하고 동경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춘향전>은 한국의 대표적인 고전으로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도 유성기 음반으로 발매되는가 하면 소설, 영화, 창극 등으로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전한다.
 
 영화 <젊은 자태> 포스터
ⓒ 조종안
 
위는 1940년 '조선영화령(令)' 공포 후 황민화를 선전하기 위해 일제가 홍보용으로 만든 영화 <젊은 자태(若き姿)> 전단이다. 귀에 익숙한 배우 문예봉, 황철, 이금룡, 김령, 박혜숙, 최운봉 등이 출연한 이 영화는 일제가 '내선일체'를 내세우며 조선 청년들의 강제 징병을 정당화하기 위해 1943년 개봉한 것으로 기록된다.
 
총독부 통제를 받는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가 제작하고, 일본인 감독 도요다 시로(豊田四郞)가 연출을 맡은 것에서도 친일 영화임이 드러난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전단에 등재된 조선인 배우는 모두 8명이고 일본인 배우는 21명이라는 것. ㅇㅇ부대 장병들과 타(他) 학생 생도 수백 명이 참여하는 등 출연진도 화려하다.
 
만주사변(1931) 전부터 전쟁 모드로 돌입한 일제는 중일전쟁(1937) 이후 전시체제를 구축한다. 이후 한반도를 군사 작전에 필요한 인원과 물자를 보급, 지원하는 병참기지로 만든다. 1938년부터 한국에서 지원병을 모집하는데 이는 경술국치 이후 처음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일제가 부족한 병력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그즈음 군산 지역 관청에서도 일장기 게양, 궁성요배 등 황국신민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학생들은 주일마다 신사를 참배해야 했고, 강제 동원된 조선 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보낼 때마다 월명공원 아래 신사광장에서 장행회를 거행하였다. 장행회는 장한 뜻을 품고 먼 길을 떠나는 청년들을 축복하는 의미로 행사 때마다 남녀학생들을 동원하였다.
 
가슴 섬뜩하게 하는 유물들
 
 일본 병사들이 사용했던 콘돔과 성병 치료제
ⓒ 조종안
   
 일본 헌병들이 사용했다는 수갑과 포승즐
ⓒ 조종안
 
위안부 설치와 강제동원 사실을 입증해주는 유물도 전시되고 있다. 일제가 위안소를 조직적으로 운영했음을 암시하는 콘돔(condom)과 성병 치료제 연고인 '성비고(星秘膏)'가 그것이다. 육군용임을 나타내는 '돌격일번(突擊一番)'과 별 마크가 선명하다. 군인들이 위안소에 들어가기 전 나눠줬을 거라는 생각과 함께 분노가 치솟는다.
 
일본 육군부대가 사병 스즈키(鈴木)에게 발급한 수첩과 봉공대(奉公袋)도 보인다. 봉공대는 군인이 입대하면서 받는 자루로 훈장, 천인침(허리띠) 등을 보관했다고 한다. 천인침은 여인 천명이 병사들의 무운장구를 기원하며 한 땀씩 꿰매어 만들었다 해서 부르기 시작했단다. 일본 사람들은 천인침 허리띠를 두르면 총알이 피해간다고 믿었다.
 
조선인 지원병이 일본군 훈련소에 입소하는 모습이 담긴 호외와 대일본 국방부인회 동경 시부야 지부 요요기도 미가야(代代木富ケ谷) 분회에서 사용했던 어깨띠 등은 한반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던 당시 일본제국주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유물로 평가된다.
 
일제 탄압이 노골화되던 1935년, 군산 지역에서 대규모로 치러졌던 사단(師團) 대항연습 사진과 일본 군복 상·하의, 일본도(日本刀), 대검이 착검 된 99식 소총, 군모, 견장 등도 전시되어 있다. 일본 헌병들이 사용했던 포승줄과 수갑 등은 섬뜩한 전율이 느끼게 한다.
 
"극일 정신 고취와 산 교육장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
 
 미래 계획을 설명하는 김부식 관장
ⓒ 조종안
 
군산역사관 김부식 관장은 "일제가 1937년에 만들어 조선인들에게 외우도록 강요한 충성맹세서(황국신민 서사)와 군산 비행학교에서 교육받고 가미카제로 출격해서 전사한 조선인 노용우씨 관련 자료, 만선시찰 영상(한반도와 만주일대 생활 모습을 담은 1933년 작 흑백영화) 등도 방문객들에게 호평을 받는다"라고 소개했다.
 
김 관장은 "저희 군산역사관 관람은 내선일체 정책에 따른 수탈의 아픔과 일본 제국주의에 강력히 저항해온 우리 역사를 되새기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콘텐츠를 더욱 개발해서 이곳을 찾는 관광객 및 시민과 학생들의 극일 정신 고취와 근대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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