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떠나는 여행예능.. TV 떠나는 시청자들

강경루 기자 2019. 9. 10.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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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석 '꽃할배' 이후 수년째 인기.. 얼개 비슷, 대중들 식상함 느껴
나영석 PD가 열어젖힌 여행 예능 붐을 타고 최근 몇 년간 비슷한 얼개의 프로그램들이 숱하게 안방을 찾고 있다. 프로그램들마다 여행지의 이색적인 정취와 새로운 출연진들을 앞세워 어필하고 있지만, 반복되는 형식과 이야기에 물림을 토로하는 시청자들이 적지 않다. 왼쪽 위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시베리아 선발대’, ‘더 짠내투어’(이상 tvN), ‘선을 넘는 녀석들’(MBC), ‘캠핑클럽’(JTBC), ‘스페인 하숙’(tvN). 각 방송사 제공

예능마다 여행 떠나기에 여념이 없다. 한 채널에서 푸른 태평양이 넘실대는가 하면 다른 쪽에선 러시아 모스크바의 웅장한 대성당이 소개된다. 지상파 종편 케이블 등 국내에서 한 해 동안 선보이는 200개가 훌쩍 넘는 예능 중 ‘여행’은 가장 큰 줄기 콘텐츠가 됐다. 원조 아이돌 핑클 멤버들이 캠핑카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는 ‘캠핑클럽’(JTBC)을 비롯해 ‘배틀 트립’(KBS2), ‘선을 넘는 녀석들’(MBC), ‘더 짠내투어’(tvN) 등 숱한 여행기가 안방을 찾는 중이다.

여행 예능은 여행지의 이색적 정취와 정보는 물론 연예인들의 일상적 모습을 살펴보는 재미도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두루 사랑받아왔다. 하지만 수년 동안 비슷한 얼개의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오면서 등을 돌리는 시청자들도 하나둘 생겨나는 추세다. 안방에서 떠나는 간접 여행에 ‘힐링’이 된다는 평과 식상하다는 반응이 엇갈린다.

여행 예능을 이야기할 때 나영석 PD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무한도전’(MBC)으로 대표되는 야외 버라이어티의 시대가 저물어가던 2010년대 초반 나 PD는 ‘꽃보다 할배-유럽&대만편’(tvN·2013)을 히트시키며 여행 예능 전성시대를 열어젖혔다. 국내 여행을 소재로 한 ‘1박2일’(KBS2)을 이끌던 나 PD가 2012년 지금의 CJ ENM으로 이적한 이후 처음 선보인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얼개는 간단했다.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등 원로 배우들이 짐꾼 이서진과 함께 해외 명소를 돌아다닌다는 포맷이었다. 나 PD의 기획력이 빛을 발하며 최고 시청률 6.5%(닐슨코리아)를 기록했다. 이 포맷을 빌려온 ‘꽃보다 누나’ ‘꽃보다 청춘’ 시리즈도 흥행 쌍끌이에 성공하면서 비슷한 모양의 여행 예능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물론 이 흐름을 타고 등장한 여행 소재 예능이 하나같이 똑같기만 한 건 아니었다. 다양한 차별화 전략을 내세운 프로그램들이 등장했는데, 이색적인 장소를 찾아다니는 게 그 첫 번째였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여행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만큼 여행지도 중요하다. 여행 장소에 따라 할 수 있는 얘기들이 달라지기 때문”이라며 “프로그램마다 차별화를 위해 이국적인 풍경들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왔다”고 분석했다.

가령 그룹 god 멤버들의 트래킹을 담은 ‘같이 걸을까’(JTBC·2018)와 최근 종영한 나 PD의 ‘스페인 하숙’(tvN)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 배경이었다. 지난 2월 배우 류준열과 이제훈의 배낭여행기를 그렸던 ‘트래블러’(JTBC)는 쿠바가 배경이었고, 오는 26일 첫 전파를 타는 ‘시베리아 선발대’(tvN)에서는 스타들이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몸을 싣는다.

포맷에 변주를 준 프로그램들도 있었다. ‘배틀 트립’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출연자들의 여행 계획으로 대결을 펼친다는 얼개다. 여행과 다른 테마를 결합한 프로그램도 생겨났는데, 뮤지션들의 해외 버스킹 도전기를 다룬 ‘비긴 어게인’(JTBC)과 스페인에서 이발소와 미용실을 운영하는 ‘세빌리아의 이발사’(MBC에브리원)가 그런 경우다. 이들은 해외 도시들의 이국적 풍경을 함께 전하면서 시청자들에게 가산점을 받았다.

여행 예능의 이 같은 범람에는 인기와는 별개로 ‘가성비’에 대한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는 게 방송가의 견해다.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 얼마간의 인기를 끌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포맷이라는 것이다. 한 제작사 PD는 “여행 예능 등 관찰 포맷은 최근 리얼함을 원하는 트렌드를 따라가면서도 야외 버라이어티보다 20~30% 정도 제작비가 적게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런 경향과 맞물려 물림을 토로하는 시청자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여행 예능의 다양한 변주 노력에도 별다른 신선함은 느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시청자 전준영(29)씨는 “여행 다니기를 즐겨 여행 예능들도 즐겨보는 편이었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여행지나 출연진, 내용이 다 엇비슷하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많아 이제는 잘 찾아보지 않는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신선한 얼굴들을 기용해 여행 포맷이 가진 식상함을 피해 가려는 노력도 엿보인다. god의 ‘같이 걸을까’에 이어 ‘캠핑클럽’은 이효리 옥주현 성유리 이진 등 14년 만에 완전체로 돌아온 핑클 멤버들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내며 3~4%의 시청률을 꾸준히 기록 중이다. ‘시베리아 선발대’도 올해 초 드라마 ‘열혈사제’(SBS)를 통해 사랑받은 김남길을 포함해 이선균 이상엽 고규필 김민식 등 예능에서 보기 힘들었던 배우들이 출연해 기대감이 높다.

전문가들은 여행 예능의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여행에서 자연스레 풀어지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정 평론가는 “여행 예능을 두고 ‘이제 새롭게 할 수 있는 게 있느냐’는 말도 나온다. 배낭여행기인 ‘꽃보다’ 시리즈와 지역 여행의 감성을 담은 ‘삼시세끼’ 시리즈 등 나 PD가 정착시킨 여행 예능과 유사한 발상의 프로그램들만 숱하게 반복돼왔기 때문”이라며 “단순한 포맷 변주를 떠나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발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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