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사상의 최전선>Q : 21세기의 사상,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① 전체 개괄
A : ‘인간 vs 비인간’ 이분법 넘어 ‘동등한 행위자’로 인식
21세기 사상에서는 지구적 생태 위기를 극복할 희망을 원주민의 사유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아마존 원주민은 동물, 식물, 무생물, 기상 현상, 인공물 등과 같은 모든 비인간에게도 인간과 동등한 영혼이 있다고 보고 이들과 공존하고자 한다. 주체·객체 이분법을 벗어나 비인간을 인간과 동등한 행위자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지, 비인간을 반드시 사랑해야 한다고 도덕적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 북반구를 강타한 폭염은 재난으로 간주될 만큼 극심하고 피해도 컸다. 기상학자들은 폭염이 일회적·예외적 사건이 아니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최근 벌어지는 이상 기후가 1990년부터 자연 과학자들이 경고해 온 전 지구적 기후변화에 속하기 때문이다.
보통 재난은 발생 원인에 따라 자연 재난인 ‘재해’와 인공 재난인 ‘인재’로 구분한다. 그런데 오늘날 기후변화는 재해로 봐야 할지 인재로 봐야 할지 매우 애매하다. 인간이 발생시킨 온실가스가 주된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제 지구에서 벌어지는 재난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기 곤란해졌는지도 모른다. 이에 따라 자연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확고히 분리하는 기존의 근대주의적 사유도 큰 도전에 직면했다. 인간 탓에 생겨난 전 지구적 기후변화는 자연 과학의 대상인가, 아니면 인문 과학의 대상인가?
기후변화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삶을 좌우하는 많은 사건이 근대주의적 사유와 그에 기초한 자연 과학·인문 과학 이분법에 대해 동일한 문제를 제기한다. 미세먼지, 에너지 위기, 식품·농업 위기, 플라스틱 쓰레기, 인수 공통 전염병,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과학 기술의 변혁 등은 더 이상 자연·사회, 비인간·인간의 이분법에 기초해서는 제대로 이해하거나 해결할 수 없는 ‘하이브리드’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대체 인류는 왜 이런 상태에 처했을까? 21세기 사상은 근대주의적 사유에서 벗어나지 못한 20세기 사상이 외면하거나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이런 문제들을 진지하게 탐구하면서 출현했다. 21세기 사상은 인류가 자연 세계와 동떨어진 인간 세계에서만 살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한다. 또한 인류가 다양한 비인간 사물들과의 관계, 즉 하이브리드 세계 속에서 줄곧 삶을 영위해 왔음을 분명히 자각하고 이에 대해 본격적으로 사유한다.
예컨대 서구의 사회 과학 분야에서 1940∼1960년대에 지배적 영향력을 발휘했던 기능주의와 구조주의는, 사회가 안정된 체계 또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고 이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유기적 관계가 어떻게 사회의 통합과 질서를 나타나게 하는가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데 치중했다. 그러나 이 패러다임은 전후 자본주의의 장기 호황이 끝나고, 베트남전 발발과 이에 영향을 받은 68혁명 발생으로 설득력을 잃고 쇠퇴했다. 1970년대에는 그 대신 사회의 갈등과 변혁을 중요시하면서 이를 계급 투쟁의 역사 유물론적 관점에서 설명하는 마르크스주의가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사회 운동이 잦아든 1980년대에는 마르크스주의가 쇠퇴하고 포스트 구조주의와 사회 구성주의가 대두했다. 사회를 일종의 언어적 구성물로 보고 다양한 의미 해석을 통해 사회 현상을 설명하려는 ‘언어적(문화적) 전환’이 지배적 패러다임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이 사회 현실에서 언어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물질성의 중요한 역할을 간과한다는 자각이 2000년대부터 일어났다. 자연, 공간, 인공물, 기술 등 비인간 사물들도 사회의 핵심적 구성 요소로 파악하는 ‘물질적(존재론적) 전환’ 또는 ‘신유물론’이 사회 과학 전반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두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 사상과 달리 20세기 사상에서는 자연 세계나 물질성을 아예 무시하고 다루지 않았다는 말인가? 물론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20세기 사상에서는 비인간 사물을 인간과는 본질적으로 속성이 다른 실체로 취급했다. 즉 인간을 이성과 자유 의지가 있고 언어를 사용하는 능동적 ‘주체’로 본 반면, 비인간은 순수한 물질로서 인과적 결정 법칙을 따르는 수동적 ‘객체’로 봤다. 따라서 인간은 비인간보다 우월한 존재이고, 비인간 사물은 인간 행위에 사용되는 도구나 자원 또는 그 배경이나 제약 조건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와 같은 인간 중심주의적 이분법의 뿌리는 서구 르네상스의 휴머니즘과 17세기 근대 철학의 기초를 놓은 데카르트의 이원론(정신·물질)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21세기 사상의 공통점은 모든 근대주의적 사유의 토대를 이루는 인간 중심적 이원론을 극복하려고 한다는 데 있다.
동물에 대한 견해 차이를 예로 들어 보자. 데카르트는 동물을 생각 없는 존재, 영혼 없는 기계 같은 것으로 봤다. 마르크스 역시 인간의 일과 동물의 일이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인간은 생각에 따라 일하는 반면, 동물은 본능에 따라 일한다고 주장했다. 베버가 말한 ‘의미 있는 사회적 행위’도 오직 인간에게 국한되며, 뒤르켐이 말한 ‘사회적 사실’ 역시 인간이 정신 활동을 통해 만들어 낸 집합 표상만을 포함한다. 이에 반해 21세기 사상의 탈인간중심주의를 대표하는 인류학자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지 카스트루에 의하면, 아마존 원주민들은 인간과 동물에게 같은 종류의 영혼이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스스로를 인간으로 보고 재규어를 포식자 동물로 보지만, 재규어는 자신을 인간으로 보고 우리를 재규어 자신이 잡아먹을 동물로 본다. 동물도 인간과 동등하게 생각하는 행위자라는 것이다.
서구의 근대주의적 사유에서 보면 아마존 원주민의 우주론은 비합리적인 야만인의 사유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 중심적 이원론을 극복하고자 하는 21세기 사상에서는 지구적 생태 위기를 극복할 희망을 원주민의 사유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아마존 원주민은 동물, 식물, 무생물, 기상 현상, 인공물 등과 같은 모든 비인간에게도 인간과 동등한 영혼이 있다고 보고 이들과 공존하고자 한다. 아마존 원주민 세계에서는 인간의 이기적 목적 때문에 비인간 존재를 살상하거나 파괴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 서구의 ‘식민화’ ‘근대화’란, 자신이 이 세계의 보편적 진리를 담지한다고 내세우면서 비서구의 토착적 지식과 실재를 폭력적으로 파괴하고 정복한 행위이지 않았던가?
21세기 사상은 주체·객체 이분법을 벗어나 비인간을 인간과 동등한 행위자로 봐야 한다는 것이지, 비인간을 반드시 사랑해야 한다고 도덕적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은 브뤼노 라투르가 즐겨 드는 총기 살인의 예에서 알 수 있다. 총기 살인이 큰 사회 문제로 자리 잡은 미국에서는 ‘총이 사람을 죽이는가, 아니면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가?’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총기 규제에 대한 정책적 논쟁이 벌어진다. 총기 규제를 주창하는 사회 운동가들은 미국처럼 총기 개인 소유가 자유로운 나라에서는 필연적으로 총기 살인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미국총기협회는 자기방어를 위해 총기 개인 소유가 반드시 필요하며 살인은 살인 의도를 가진 사람이 저지르는 것이지 총이 저지르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라투르는 총기 살인에 관해 새로운 견해를 제시한다. 총기 살인은 총과 사람이 연결된 집합적 행위자 ‘총 - 사람’이 초래한 결과다. 총은 위험한 무기지만 벽장에 따로 있다면 살인을 저지를 수 없다. 사람은 격분하더라도 손에 총이 없다면 살인까지 저지르기는 쉽지 않다. 총이 사람 손에 쥐어졌을 때 그 결합으로 인해 총의 속성과 사람의 속성이 서로 교환되고 동시에 두 행위자가 변하면서 총기 살인이라는 집합적 행위가 일어난다. 총기 살인은 총과 사람이 ‘공동 구성’한 결과인 것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공동 구성을 매우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자동차 운전, 휴대전화 사용 등 수많은 예를 들 수 있다. 20세기 사상에서는 인간이라는 능동적 ‘주체’가 시키는 대로 자동차나 휴대전화라는 ‘객체’가 수동적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인간 행위자가 어떤 지시를 내리더라도 자동차와 휴대전화는 호락호락하게 순응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인간은 자동차와 휴대전화가 요구하는 대로 행위를 조절해야만 성공적으로 자동차를 운전하고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다.
21세기 사상은 우리가 사는 세계가 다양한 인간 및 비인간 행위자의 결합으로 이뤄져 있다고 본다. 21세기 세계에서 기후변화, 생태 위기, 과학 기술의 획기적 변화 등 하이브리드적 현상들이 점점 확대 및 심화되고 있다면, 인간중심적 이원론에 기초한 20세기 사상은 이 문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해결에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 인간과 비인간을 동등한 행위자로 보면서 그들의 다양하고 역동적인 결합을 이해하려는 21세기 사상의 탈인간중심적 일원론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문제를 다루는 데 훨씬 더 필요하고 적절하다. ‘21세기 사상의 최전선’은 바로 이런 모험적 시도를 보여 주는 새로운 이론들을 소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김환석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
공동기획 :이감문해력연구소
■ example
- 총기살인 원인, 총? 인간?
총기규제 주창 사회운동가
“미국처럼 총기 개인 소유가 자유로운 나라에서는 필연적으로 총기 살인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총기규제 반대 미국총기협회
“살인은 살인 의도를 가진 사람이 저지르는 것이지 총이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21세기 사상가의 견해는
“총은 위험한 무기지만 벽장에 따로 있다면 살인을 저지를 수 없다. 사람은 격분하더라도 손에 총이 없다면 살인까지 저지르기는 쉽지 않다. 총이 사람 손에 쥐어졌을 때 그 결합으로 인해 총의 속성과 사람의 속성이 서로 교환되고 동시에 두 행위자가 변하면서 총기 살인이라는 집합적 행위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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