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로힝야족 난민촌에서 태어난 국적없는 아이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글·사진 김판 기자 입력 2019. 8. 2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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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힝야족 학살 2년, 세계 최대 난민촌이 생겼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에 설치된 로힝야 난민촌의 모습. 어린 아이들이 자신보다 더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지난해에만 8만6000명 정도의 신생아가 태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녹슨 양철 패널과 마대 천, 대형 비닐 포장지를 나무에 이어붙인 공간이 아이의 보금자리였다. 퀴퀴한 냄새가 가득한 움막 틈 사이로 2살이 채 안 된 삼수우딘은 처음 햇살을 봤다. 아이는 2년 전 엄마 뱃속에서 미얀마 국경을 넘었다. 목숨 건 탈출을 함께 한 난민들이 이웃이 돼 엄마의 출산을 도왔다. 고향이 난민촌인 아이에게 국적은 없다. 핏줄인 미얀마, 태어난 곳인 방글라데시 모두 아이를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난민의 아이는 무력했다. 아이의 건강은 가족 숫자에 따라 받는 식량 배급량에 의해 결정된다. 난민촌 밖으로의 이동은 제한됐고, 난민촌 내에는 일감이 없어 삼수우딘 가족은 구호단체나 NGO가 주는 식량을 받아 하루하루 삶을 이어가고 있다. 부모가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더 먹일 수 있는 건 없다. 집 밖에는 온갖 쓰레기 더미가 가득했다. 마땅한 배수 장치가 없어 폭우가 내린 뒤 해가 뜨면 물은 곧 썩었다. 악취 풍기는 오염된 물이 집 주변에 넘쳤다.

삼수우딘은 올해 초 집 안을 기어 다니다 끓는 물에 왼손을 집어넣어 화상을 입었다. 피부가 녹아내려 손가락을 펼 수 없게 됐다. 난민촌에서 지구촌구호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사단법인 지구촌구호개발연대(이사장 전병금 목사)는 지난 5월 삼수우딘의 왼손을 발견했다. 아이를 진료했던 최병한 원장이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병원으로 보내 겨우 회복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잠시 머물 곳으로 생각했던 땅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는 난민들의 터전이 돼버렸다.

2년 전 난민촌에서 태어난 삼수우딘. 지구촌구호개발연대가 운영하고 있는 지구촌구호병원에서 삼수우딘의 화상 입은 왼손을 발견해 치료를 지원했다.

도망쳐 온 낯선 땅에도 생명이 태어났다
미얀마 군부의 학살과 억압으로 촉발된 로힝야 난민 사태가 25일로 2년을 맞았다. 죽음을 피해 열흘을 걸어 도망간 곳, 콕스바자르는 농사지을 만한 땅이나 우물을 팔만한 지하수가 없어 방글라데시 사람들조차 거의 살지 않던 척박한 땅이었다. 방글라데시 군대는 로힝야 난민들이 자국 내로 밀려들어 오지 못하게 총을 들고 난민촌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난민이 계속 불어나면서 난민촌은 인근 야산으로 확대됐다. 현재 캠프 31곳이 마련돼 있는데, 난민은 100만명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세계 최대 규모 난민촌이다.

지난 12일부터 나흘간 방문한 로힝야 난민촌에서는 유독 어린아이들이 많이 보였다. 6, 7살 정도 되는 아이들이 아직 혼자 걷지 못하는 한두 살쯤 되는 동생을 데리고 거리에서 놀고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아이들이 흙장난을 하며 내는 웃음소리가 메마른 땅을 겨우 채워 넣었다.

지구촌구호병원 측은 난민촌에 현재 임산부가 10만명 정도에 달할 것으로 봤다. 이들 중에선 미얀마 군부 학살 때 성범죄를 당해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을 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난민촌 관계자는 “성범죄를 당한 뒤 난민촌에서 출산한 경우도 많지만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두려워 쉽게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단법인 아시아태평양재난관리한국협회(에이팟코리아)도 난민촌이 형성된 직후 14캠프에 클리닉을 열었다. 이 클리닉에서만 지난달 19명의 아이들이 태어났다. 에이팟코리아가 15캠프에서 운영 중인 클리닉에서는 지난 8개월 동안 모두 200여명의 신생아가 태어났다. 그러나 병원을 찾지 못하는 사례가 많아 실제 태어난 아이들은 이보다 훨씬 많다.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방글라데시 의사 샤르마(27·여)씨는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산부인과 진료를 못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의사 나오미(25·여)씨도 “문화적 이유 등으로 병원에 오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며 “대부분 집에서 아이를 낳으려고 하는데, 감염 문제가 심각하고 산후 과다 출혈 문제도 많다”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의사 로미나(26·여)는 “처음에는 병원에 안 오려고 하다가도, 남편하고 같이 와 본 다음에 방글라데시 여자 의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안심하고 진료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에이팟방글라데시가 운영하고 있는 병원에 설치된 분만실의 모습.

‘학살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
콕스바자르는 난민촌은 2년 전 대탈출로 인한 어수선함은 사라졌고 대신 무기력함이 가득했다. 아이들은 웃고 떠들다가도 사태를 떠올리면 몸을 움츠렸다. 난민촌에서 이모 가족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삼순 나하르(11·여)의 커다란 눈망울도 2년 전 상황을 떠올리더니 곧 그렁그렁해졌다. “아빠와 엄마가 죽는 것을 보고 이모 집에 뛰어갔어요. 그다음에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군인들이 너무 많이 있었어요.” 나하르는 겨우 입을 떼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가족 중 나하르 혼자 살아남았다.

이모 죠리나 카툰(40)은 “동네에 1000명 정도가 살고 있었는데 학살 때 절반 정도가 죽었다”면서 “도망쳐 온 나하르와 함께 온 가족이 산에 숨어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학살 장면을 지켜본 나하르는 며칠 동안 몸을 부르르 떨면서 말도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 나하르는 이모네 자녀 4명과 함께 살고 있다. 카툰의 남편은 1년 전쯤 혈압이 올라 갑자기 사망했다. 병원 한번 가보지 못해 왜 아팠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카툰은 난민촌에 남편을 묻었다.

누르 카이다(12·여)는 남동생 마흐맛 알롬(10)의 손을 잡고 학살의 현장 탈출했다. 카이다는 “대낮에 군인들이 집에 와서 가족들을 바깥으로 끌어내더니 총으로 쐈다”며 “가족들이 죽는 걸 직접 봤다”고 말했다. 카이다는 가족 5명을 한꺼번에 모두 잃고 동생 2명과 지내고 있다.

카이다 남매를 키우고 있는 이모 아이샤스 디카(40)는 학살 때 남편과 헤어졌다. 디카는 “미얀마 사람들이 남편을 집 밖으로 끌고 가는 것까지만 보고 아이들과 조카를 데리고 정신없이 도망쳤다”며 “남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디카는 자녀 4명과 조카 2명까지 모두 6명을 데리고 열흘을 걸어 이곳에 정착했다.

학살 과정에서 부모 모두를 잃고 난민촌으로 넘어온 고아는 약 5000명 정도라고 한다. 이들은 죽음을 피해 도망 왔지만 트라우마는 치유되지 않았다. 현재 지구촌구호개발연대는 16캠프에서 병원과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캠프 내 200명 가까운 고아들 중 절반 정도를 데리고 있다.

2년 전 미얀마의 학살 당시 부모를 잃은 삼순 나하르의 모습. 현재는 난민촌에서 이모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진퇴양난의 로힝야, 난민촌 장기화될 듯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촌에선 지난해에만 8만6000명 정도의 아이가 태어난 것으로 추산됐다. 어디 하나 반기는 곳 없는 아이들은 늘어가지만 로힝야 난민 문제 해결은 요원해 현지에서 철수하는 구호단체와 NGO들은 늘고 있다. 15캠프의 경우 각국 NGO들이 운영하는 클리닉이 최대 8곳까지 있었는데 현재는 2곳으로 줄어든 상태다. 클리닉이 줄어들면서 남아있는 클리닉에 환자들이 쏠리고 있고, 이로 인한 부담은 더욱 커져 난민들의 상황은 열악해져 갔다.

로힝야족 난민 사태는 2017년 8월 25일 미얀마 군이 자행한 대규모 학살로 시작됐다. 일부 로힝야 반군들이 미얀마 경찰 초소를 습격하자, 로힝야족에 적대적인 감정을 갖고 있던 미얀마 군부가 이를 구실로 대대적인 소탕에 나섰다. 군부 탄압에 도망치듯 나온 로힝야족은 인근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도로를 따라 차례대로 난민촌이 형성됐고, 난민촌은 지속적으로 확장하며 그 규모를 넓혀가고 있다.

최근엔 방글라데시 내부에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방글라데시 역시 인구밀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빈국이어서 난민 수용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방글라데시 군·경은 난민촌 길목을 지키며 로힝야족 이동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난민들이 방글라데시에 정착할 것을 우려해 난민촌 내에서 방글라데시 언어 교육까지 금지하고 있다. 난민촌 길목에서 만난 방글라데시 국적의 A씨(42)는 “방글라데시는 좁은 땅에 이미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로힝야족보다 가난한 사람들도 많다”며 “다시 미얀마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사태 해결의 실마리는 풀리지 않고 있다. 방글라데시와 미얀마 정부가 난민 송환 협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별다른 진척이 없다. 로힝야 난민들도 미얀마로의 송환에 미온적이다. 미얀마에서 2년 전과 같은 학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미얀마에서도 로힝야족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여전히 압도적이다. 실제로 아직 미얀마에 남아있는 로힝야족들은 여전히 열악한 상황에서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5일 EFE 통신에 따르면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의 필 로버트슨 아시아 담당 부국장은 “미얀마 라카인 주에 있는 로힝야족이 끔찍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며 “이동의 자유 없이 밀착 감시를 받고 있고, 건강과 교육에 대한 접근도 제한되고 있다”고 밝혔다.

난민촌 캠프에서 활동하고 있는 NGO 관계자들은 “미얀마도 방글라데시도 반기지 않는 상황이어서 마땅한 대책이 없다. 상황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로힝야 난민촌의 외부 전경 모습. 난민들이 계속 떠밀려오면서 인근 야산까지 난민촌이 확대됐다.

“난민 문제는 인권 차원서 접근해야”
문재인정부 출범과 함께 1기 참모진에 합류했던 하승창 전 청와대 사회혁신수석은 지난 12일 구호전문단체 에이팟코리아와 함께 로힝야 난민촌을 방문했다.

하 전 수석은 “한국전쟁 직후에 사실상 난민과 다를 바 없는 상황에서 우리도 아무런 조건없이 외국의 도움을 받았다. 또 여전히 예상치 못한 재해로 난민이 될 가능성도 있다”며 “인간으로서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세계 시민의 자세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평소 하 전 수석과 친분이 있던 A-PAD 관계자들이 하 전 수석에게 동행을 권유하자 흔쾌히 응했다고 한다.

하 전 수석은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난민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 전 수석은 “영국 식민지 시대 당시 로힝야족이 일부 악행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그 이유만으로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상대로 학살을 벌이는 것은 분명한 제노사이드(집단 학살)이고 반 인권적인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로힝야 난민촌 현장을 방문한 이장우 에이팟코리아 대표이사.

이장우 에이팟코리아 대표이사는 로힝야 난민촌 현장을 돌아본 뒤 “로힝야 난민이 다 사라질 때까지 이 두 곳의 클리닉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라면서 “난민촌이 형성된지 2년이 지나면서 여러 NGO들이 속속 철수하는 상황이지만, 우리가 마지막 방어선이라는 생각으로 버티겠다”고 말했다. 이어 “로힝야족이 완전히 이곳에 정착하든 미얀마로 되돌아가든 문제가 일단락될 때까지 일정 수준 이상의 의료 서비스를 꾸준히 제공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로힝야 난민촌에서의 활동이 초기에는 긴급 지원의 성격이었다면 2년이 지난 지금은 정착기에 맞는 지원으로 운영 방향을 바꾸고 있다”면서 “산전 산후 검진 활동, 가족계획 수립, 영양실조, 기생충 감염 등 로힝야 난민촌 현지에는 아직도 과제가 많다”고 강조했다. 에이팟코리아의 진료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4월 한달에만 모두 4900여명의 환자들이 이 단체가 운영하는 클리닉에서 진료를 받았다. 전체 환자의 68%가 여성이었고, 15세 이하 환자도 33%에 달했던 것으로 집계됐다.

사단법인 아시아태평양재난관리한국협회(에이팟코리아)는 로힝야 난민촌이 형성된 직후 초기 투입된 대표적인 NGO 중 하나다. 방글라데시, 네팔,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필리핀, 한국 등이 재해와 재난에 공동으로 협력하자는 취지로 설립된 일종의 연맹체다. 각국의 현지 NGO들이 직접 판단하기 때문에 신속하면서도 지역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구호 활동을 펼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에이팟코리아는 현재 로힝야 난민촌 지원과 관련해 에이팟방글라데시 지부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에이팟방글라데시 지부 소속 의사들이 로힝야 난민촌에서 두 곳의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고, 한국 지부는 병원 건설과 운영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현지 의사들이 진료하기 때문에 로힝야족 사람들이 비교적 거리낌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두 곳의 클리닉을 합쳐 하루 평균 500명 가까운 환자들이 진료를 받고 있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글·사진 김판 기자 p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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