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적 입시'의 대안, 학종은 왜 공공의 적이 됐나

이천종 2019. 8. 2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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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씁쓸한 방정식..'학종=금수저 전형?'
2019년은 이래저래 ‘학종의 해’로 기억될 것 같다.
 
대입 수시 전형 중 하나인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JTBC 드라마 ‘SKY캐슬’의 흥행으로 올 초 널리 회자되며 도마에 올랐다. ‘기승전 입시’인 한국 사회에서 ‘0.1%’ 상류층이 자녀의 서울의대 합격을 위해 돈으로 학종의 허점을 비집고 들어간다는 드라마의 설정이 인기 비결이었다. 시험점수로 계량화하는 정량평가와 달리 정성평가인 학종 제도가 안고 있는 ‘금수저 전형’의 한계를 제대로 파고 든 것이다.
 
5월에는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 시험지 유출 사건 1심 판결을 계기로 ‘내신 농단’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며 학종의 공정성 논란으로 이어졌다.
 
급기야 8월 들어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딸의 외고 시절 의학논문 제1저자 등재를 둘러싼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학종의 전신인 입학사정관제 시절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들만의 리그를 지켜보는 흙수저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매일 아침 일곱 시 삼십 분까지 /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 /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서태지와 아이들, <교실 이데아〉 노랫말 중에서)
 
예비고사-학력고사-수능으로 이어진 지긋지긋한 획일적 입시 위주 교육의 악몽을 벗어나려 도입한 학종(옛 입학사정관제)은 지금 신음하고 있다.
 
돈과 권력, 인맥이 있는 자들에게 유리한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판, 도대체 평가근거를 알 수 없다는 ‘깜깜이 전형’ 논란, 불투명한 입시로 ‘쓰앵님’(고액 입시 컨설턴트를 빗댄 유행어)으로 상징되는 사교육만 키웠다는 비판 등 지금 학종은 공공의 적이 되고 있다. 도대체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몇 차례로 나눠 살펴본다
 
본고사·예비고사와 학력고사, 수학능력시험 등 4지·5지선다형 시험에 익숙한 학부모에게 학종은 낯선 대입 전형이다. 내신(학생부 교과) 외에 봉사활동이나 수상 경력, 동아리 활동, 자기소개서 등 교과 성적 외에 다양한 활동을 입시에 활용한다. 시험 한방으로 승부하지 않고 과정을 두루 평가하는 게 핵심이다. 과정을 중시하는 만큼 학생의 다양성을 살필 수 있어 교육적으로도 유익하다. 점수로 줄을 세우는 잔인한 교육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였다. 거슬러 올라가면 입학사정관제와 같은 뿌리다.
입학사정관제는 2007년에 처음 도입된 후 이명박정부에서 크게 확대됐다. 입학사정관제는 그러나 입시 지옥 한국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꼬이고 비틀렸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딸 논란에서 보듯 초기 입학사정관제는 적잖은 부작용을 낳았다.

2010년을 전후해 대학 입시 시장에서는 논문과 봉사활동, 인턴 경력 등 ‘스펙 쌓기’ 열풍이 불었다. 조 후보자 장녀가 활용한 당시 고려대 ‘세계선도인재전형’도 당시 대표적 ‘외고 특별전형’이라 불렸다. 만점에 가까운 어학성적이나 당시에 외고에서만 시험을 치를 수 있었던 AP(Advanced Placement)성적 등이 있어야 지원이 가능했다. 자연계열로도 선발해 조씨처럼 외고 학생들이 이공계나 의전원 진학의 수단으로도 활용됐다.

이러다보니 일선 고등학교에서도 독서, 동아리 활동, 봉사활동, 소논문 쓰기 등 각종 비교과활동 프로그램이 양산됐다. 발 빠른 특목고는 조 후보자 사례에서 보듯 학부모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했다. 이 당시 고교생들의 논문 공저자 등재는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교수들이 자신의 자녀를 논문 공저자로 등재해 대학 진학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교육부는 지난 5월 13일 <교육부·과기정통부, 책임 있는 대학의 연구문화 확립에 나선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 자료를 보면 2007년 이후 전국 총 50개 대학 소속 교수 87명이 139건의 논문에 자녀를 공저자로 등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 대상 대학 중 서울대 교수가 가장 많았다. 7명 교수는 논문에 대한 기여가 없는 자녀를 논문 12편의 공저자로 올리기도 했다.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일지 모른다. 2016년도 말에 송기석 전 국민의당 의원실에서 국공립대 33개 대학의 교직원 자녀 학종 관련 대학입학자료 국정조사를 수행한 바가 있는데, 당시 교직원 자녀의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대학들이 많았다.

우리의 롤모델이었던 미국의 입학사정관제도도 이미 이런 문제를 겪고 있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교육담당 기자이자 퓰리처상을 수상한 대니얼 골든(Daniel Golden)은 자신의 책 <왜 학벌은 세습되는가>에서 미국의 경우 입학사정관제도를 통해서 교수자녀들이 다른 학생들보다 평균적으로 SAT(Scholastic Aptitude Test·미국의 대학입학 자격시험) 점수가 낮고 내신 성적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입학하는 사례들이 제시되는데, 미국의 교수들은 자녀들이 본인이 재직하고 있는 대학에 (입학할 역량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입학시키는 것을 일종의 교직원 복지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통계적으로 교수 자녀들이 부모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에 합격하는 확률이 일반학생들의 합격확률보다 더 높으며 이는 입학사정관제도가 가지는 문제로서 심각한 공정성의 문제가 제기된다고 보고 있다.

당시 낯선 제도에 불안하던 일반 학부모들은 갈 길을 잃은 채 사교육에 기댔다. 학부모의 불안감은 사교육의 먹잇감이 됐고, 적응력 빠른 사교육계는 학종 대비에 최적화한 프로그램을 내놨고, 입시를 주도해갔다.

이때부터 등장한 사교육은 이전 과목 과외 수준과는 차원이 달랐다. 학업능력 향상은 기본이고 학교 내 수행평가와 각종 대회 준비, 봉사활동 스펙 만들기 등을 통해 학생부를 원하는 방향으로 설계하도록 빠르게 진화했다. 명문대를 보내려면 그들의 정보와 컨설팅을 활용할 수 있는 학부모의 재력과 시간적 여유가 필수요소가 됐다. 입시가 점점 더 ‘있는’ 이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입시로 신분 상승의 사다리에 올라탔던 경험을 간직한 일부 ‘눈 뜬’ 자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입학사정관제에 최적화한 대치동으로 향해 그들만의 성을 쌓았다.

대입으로 가는 큰 강이 물줄기를 틀자 고교 입시를 향한 샛강은 더 빠르게 물길을 냈다.

상위권 대학을 학종으로 입학하는 데 유리하다는 입소문과 함께 영재고·과학고, 외고·국제고 등 특수목적고, 전국형·광역 단위 자사고 등의 인기가 치솟았고, 고입 경쟁은 과열됐다. 상대적으로 절대 다수인 일반고는 ‘2부 리그’로 낙인찍혔고, 고교는 1960~1970년대처럼 서열화됐다.

고입 경쟁은 초등학교 1~2학년까지 영재·선행학습 학원으로 내모는 결과를 낳았다. 불안한 학부모들은 너도나도 아이들을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학원에 보내기 위해 아등바등했고, 아이들은 학원에서 허우적댔다. 집집마다 껑충 뛴 사교육비에 곡소리가 터졌다.

교육당국에도 비상이 걸렸다. ‘입학사정관제 공통 운영 기준’을 마련해 입학사정관전형으로 인해 사교육이 유발되지 않도록 학생이 학교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하는 과정에서 학습․체험할 수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평가하도록 했다. 대학은 평가 시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된 사항을 충실히 반영하도록 해야 하며, 특히 지원자에게 과도한 제출서류 작성의 부담을 주지 않도록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자 교육당국은 2013년 ‘대입전형 간소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 때 입학사정관전형을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변경하고 이 전형의 경우, 외부 실적 등을 요구하는 등 취지에 맞지 않는 자료 제출은 제한하고, 추가 전형 요소를 최소화하여 준비 부담을 완화토록 했다. 또한 제출 서류는 자기소개서·추천서 등 학생부 기재 내용 확인·보완을 위한 자료로 한정하고, 공인어학성적·교과관련 외부수상실적 제출은 엄격히 금지했다.

교육부는 최근에도 학종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 마련에 공을 들이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3월 5일 발표한 2019년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 기본 계획에 이런 내용을 담았다. 교육부는 2019년 평가지표에서 ‘학종 공정성’을 재차 강조했다. 학종 공정성과 관련된 4개 지표가 새롭게 포함됐다. 자기소개서를 대필하거나 허위작성한 경우 의무적으로 탈락·입학취소하는 규정이 있는지 살펴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학종 평가 기준 공개를 확대하는지, 다수 입학사정관 평가를 의무화하는지, 공정성 관련 위원회에 외부위원이 참여하는지도 평가 대상이다. 학종 공정성에 관한 지표 배점은 29점에서 36점으로 높였다.

그렇지만 일반고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은 학종이 ‘있는’ 집 출신 학생, 특목고와 자사고, 과학고 등에 유리한 제도라는 인식이 우세하다. 교육당국의 공정성 강화 대책도 땜질식이어서 사교육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국민들이 입시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여전히 공정성이다. 2018년 대입제도 관련 입시제도 방향을 결정하기 위해 꾸려진 대입제도개편 공론화위 시민참여단. 이들이 생각하는 입시제도의 방향성을 설문조사로 살펴봤는데 ‘공정하고 투명한 입시제도가 중요하다’는 의견이 95.7%(4.62점)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입시제도 방향은 학교교육 정상화에 기여하는 입시제도 92.8%(4.42점), 다양한 적성 개발에 부합하는 입시제도 86.7%(4.27점), 교육 기회의 형평성을 제고하는 입시제도 85.5%(4.22점) 순이었다. 대학의 특성을 반영하는 입시제도 중요성은 51.2%(3.51점)으로 가장 낮았다.

세종=이천종 기자 sky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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