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적 입시'의 대안, 학종은 왜 공공의 적이 됐나
대입 수시 전형 중 하나인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JTBC 드라마 ‘SKY캐슬’의 흥행으로 올 초 널리 회자되며 도마에 올랐다. ‘기승전 입시’인 한국 사회에서 ‘0.1%’ 상류층이 자녀의 서울의대 합격을 위해 돈으로 학종의 허점을 비집고 들어간다는 드라마의 설정이 인기 비결이었다. 시험점수로 계량화하는 정량평가와 달리 정성평가인 학종 제도가 안고 있는 ‘금수저 전형’의 한계를 제대로 파고 든 것이다.
5월에는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 시험지 유출 사건 1심 판결을 계기로 ‘내신 농단’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며 학종의 공정성 논란으로 이어졌다.
“매일 아침 일곱 시 삼십 분까지 /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 /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서태지와 아이들, <교실 이데아〉 노랫말 중에서)
예비고사-학력고사-수능으로 이어진 지긋지긋한 획일적 입시 위주 교육의 악몽을 벗어나려 도입한 학종(옛 입학사정관제)은 지금 신음하고 있다.
돈과 권력, 인맥이 있는 자들에게 유리한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판, 도대체 평가근거를 알 수 없다는 ‘깜깜이 전형’ 논란, 불투명한 입시로 ‘쓰앵님’(고액 입시 컨설턴트를 빗댄 유행어)으로 상징되는 사교육만 키웠다는 비판 등 지금 학종은 공공의 적이 되고 있다. 도대체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몇 차례로 나눠 살펴본다
본고사·예비고사와 학력고사, 수학능력시험 등 4지·5지선다형 시험에 익숙한 학부모에게 학종은 낯선 대입 전형이다. 내신(학생부 교과) 외에 봉사활동이나 수상 경력, 동아리 활동, 자기소개서 등 교과 성적 외에 다양한 활동을 입시에 활용한다. 시험 한방으로 승부하지 않고 과정을 두루 평가하는 게 핵심이다. 과정을 중시하는 만큼 학생의 다양성을 살필 수 있어 교육적으로도 유익하다. 점수로 줄을 세우는 잔인한 교육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였다. 거슬러 올라가면 입학사정관제와 같은 뿌리다.
2010년을 전후해 대학 입시 시장에서는 논문과 봉사활동, 인턴 경력 등 ‘스펙 쌓기’ 열풍이 불었다. 조 후보자 장녀가 활용한 당시 고려대 ‘세계선도인재전형’도 당시 대표적 ‘외고 특별전형’이라 불렸다. 만점에 가까운 어학성적이나 당시에 외고에서만 시험을 치를 수 있었던 AP(Advanced Placement)성적 등이 있어야 지원이 가능했다. 자연계열로도 선발해 조씨처럼 외고 학생들이 이공계나 의전원 진학의 수단으로도 활용됐다.
우리의 롤모델이었던 미국의 입학사정관제도도 이미 이런 문제를 겪고 있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교육담당 기자이자 퓰리처상을 수상한 대니얼 골든(Daniel Golden)은 자신의 책 <왜 학벌은 세습되는가>에서 미국의 경우 입학사정관제도를 통해서 교수자녀들이 다른 학생들보다 평균적으로 SAT(Scholastic Aptitude Test·미국의 대학입학 자격시험) 점수가 낮고 내신 성적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입학하는 사례들이 제시되는데, 미국의 교수들은 자녀들이 본인이 재직하고 있는 대학에 (입학할 역량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입학시키는 것을 일종의 교직원 복지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통계적으로 교수 자녀들이 부모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에 합격하는 확률이 일반학생들의 합격확률보다 더 높으며 이는 입학사정관제도가 가지는 문제로서 심각한 공정성의 문제가 제기된다고 보고 있다.
당시 낯선 제도에 불안하던 일반 학부모들은 갈 길을 잃은 채 사교육에 기댔다. 학부모의 불안감은 사교육의 먹잇감이 됐고, 적응력 빠른 사교육계는 학종 대비에 최적화한 프로그램을 내놨고, 입시를 주도해갔다.
입시로 신분 상승의 사다리에 올라탔던 경험을 간직한 일부 ‘눈 뜬’ 자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입학사정관제에 최적화한 대치동으로 향해 그들만의 성을 쌓았다.
대입으로 가는 큰 강이 물줄기를 틀자 고교 입시를 향한 샛강은 더 빠르게 물길을 냈다.
상위권 대학을 학종으로 입학하는 데 유리하다는 입소문과 함께 영재고·과학고, 외고·국제고 등 특수목적고, 전국형·광역 단위 자사고 등의 인기가 치솟았고, 고입 경쟁은 과열됐다. 상대적으로 절대 다수인 일반고는 ‘2부 리그’로 낙인찍혔고, 고교는 1960~1970년대처럼 서열화됐다.
고입 경쟁은 초등학교 1~2학년까지 영재·선행학습 학원으로 내모는 결과를 낳았다. 불안한 학부모들은 너도나도 아이들을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학원에 보내기 위해 아등바등했고, 아이들은 학원에서 허우적댔다. 집집마다 껑충 뛴 사교육비에 곡소리가 터졌다.
교육부는 최근에도 학종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 마련에 공을 들이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3월 5일 발표한 2019년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 기본 계획에 이런 내용을 담았다. 교육부는 2019년 평가지표에서 ‘학종 공정성’을 재차 강조했다. 학종 공정성과 관련된 4개 지표가 새롭게 포함됐다. 자기소개서를 대필하거나 허위작성한 경우 의무적으로 탈락·입학취소하는 규정이 있는지 살펴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학종 평가 기준 공개를 확대하는지, 다수 입학사정관 평가를 의무화하는지, 공정성 관련 위원회에 외부위원이 참여하는지도 평가 대상이다. 학종 공정성에 관한 지표 배점은 29점에서 36점으로 높였다.
그러다보니 국민들이 입시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여전히 공정성이다. 2018년 대입제도 관련 입시제도 방향을 결정하기 위해 꾸려진 대입제도개편 공론화위 시민참여단. 이들이 생각하는 입시제도의 방향성을 설문조사로 살펴봤는데 ‘공정하고 투명한 입시제도가 중요하다’는 의견이 95.7%(4.62점)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입시제도 방향은 학교교육 정상화에 기여하는 입시제도 92.8%(4.42점), 다양한 적성 개발에 부합하는 입시제도 86.7%(4.27점), 교육 기회의 형평성을 제고하는 입시제도 85.5%(4.22점) 순이었다. 대학의 특성을 반영하는 입시제도 중요성은 51.2%(3.51점)으로 가장 낮았다.
세종=이천종 기자 sky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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