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소재 '국산 만능' 비현실적..국가별 공급망 다변화해야"

이정호 기자 입력 2019. 8. 7. 19:41 수정 2019. 8. 7.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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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에 대응하기 위해 반도체 분야의 부품·소재를 만드는 국내 기업 제품을 되도록 많이 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이는 현실적이지 않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국내 부품·소재의 질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이는 게 우선이고, 일본 외 여러 나라로 공급망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7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국내 대표 과학단체인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한국공학한림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개최한 토론회에서 주제 발표에 나선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한양대 교수)은 앞으로 보호무역주의가 심화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박 회장은 “기존에 제기된 ‘국산화’라는 개념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 대기업은 국산 제품이 세계 최고가 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좀 더 좋은 완성품을 내놔야 하는 대기업의 입장에서 ‘한국 중소기업’이라는 점이 납품 결정의 고려 요인이 되긴 어렵다는 얘기다. 최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국내 중소기업을 만나 물어보니 일본의 수출규제 대상이 된 불화수소를 대기업이 사주지 않는다”고 하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순도가 얼마인지가 중요하다”며 질적 수준이 아쉽다고 반박한 바 있다.

하지만 박 회장은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대기업이 최고 수준의 부품·소재를 찾아 공급망 다변화를 꾸준히 추진했지만 정작 해당 기업의 국적이 일본에 쏠려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 일본 수출규제의 대상이 된 포토레지스트는 JSR과 신에츠케미컬, TOK 등에서 납품받는데 모두 일본 기업이다.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 카드를 빼들어 한국 경제를 타격하기 용이한 구조가 됐다는 얘기다.

한국이 부품·소재 공급망을 국가별로 다변화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부품·소재 기업 상당수가 공급 능력을 일시적으로 상실했을 때 한국에서도 부품·소재 육성과 공급망 다변화 주장이 나왔지만, 약 6개월 만에 일본 기업의 조업 능력이 회복되자 이런 논의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지속 추진될 수 있는 부품·소재 중장기 공급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와 대기업이 부품·소재 공급 업체를 선정할 때 해외와 국내 부품·소재 업체를 같은 선상에 놓는 방식으로 국내 업체의 수준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낫다고 지적했다. 국산이어서가 아니라 품질이 좋아 대기업이 선택하도록 지원하자는 얘기다.

토론회에 참석한 국내 부품·소재 기업도 비슷한 입장을 밝혔다. 일본 수출규제 품목인 불화수소 공급 능력을 갖춘 국내 업체인 솔브레인 박영수 부사장은 “지금까지의 국산화 전략은 다른 나라의 추격이 쉬운 보편적인 기술에 집중됐다”며 “앞으로는 일본처럼 고난도 기술 투자에 가중치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부사장은 “투입되는 예산을 나눠먹기 식으로 집행하는 게 아니라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국산화 전략도 국내 대기업과 연계된 가운데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대·중소기업 상생 전략을 좀 더 강력하게 추진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반도체 부품기업인 메카로 이종수 사장은 “세계 1위, 2위를 다투는 대기업만 바라보고, ‘소재와 부품은 알아서 개발하라는 식이 아니었느냐’”고 지적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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